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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제 13장 이데올로기와 테러.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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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국가형태(255-284)   

 

 255앞장에서 우리는 전체주의 지배의 수단이 과격할 뿐만 아니라 ... 우리에게 낯익은 정치 탄압의 형태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전체주의 정권은 항상 계급을 대중으로 전환하고, 정당 체제를 일당 독재가 아닌 대중 운동으로 대체하며, 권력의 심장부를 군대에서 경찰로 이전하고, 공개적으로 세계 지배를 지향하는 대외 정책을 확립한다. 이 정권이 진정한 전체주의로 변할 때, 그것은 항상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 체계에 따라 활동하기 시작한다. 257전체주의 정부는.... 정부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기초가 되는 양자택일의 가능성, 즉 ◈법적 정부와 무법 정부, ◈자의적 권력과 합법적 권력 중에서 선택할 가능성을 파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정법이 ‘무법’이기는커녕 그 궁극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권위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자의적이기는커녕 그 반대로 과거의 어떤 정부보다 더 이 초인간적 힘에 복종하며,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기보다 역사 법칙이나 자연 법칙이라 추정되는 것을 집행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중요한 이익을 희생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전체주의 지배의 주장은 기이하지만 반박하기 힘들어 보인다. ◈실정법을 무시하는 것이 더 높은 형태의 정당성이라 주장한다. ◈이 정당성은 그 근원에서 직접 유래하기 때문에 사소한 합법성을 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주의의 적법성은 이 지상에 정의의 지배—실정법의 합법성이 결코 획득할 수 없는 것—를 확립할 방법을 찾은 것처럼 행동한다.  실정법의 합법성을 무시하고 지상에 정의의 왕국을 직접 건설한 것처럼 가장하는 ◈전체주의의 적법성은 역사 법칙이나 자연 법칙을 집행하면서 그것을 개인의 행동을 위한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바꾸지 않는다. 258전체주의 정책은 인류를 적극적이고 믿음직스러운 법의 화신으로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보통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법에 복종했을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와 문명세계 간의 연결 고리가 전체주의 정권의 기이한 범죄로 끊어진 것이 사실이라면, 이 범죄는 단순한 공격성, 무자비함, 전쟁과 반역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법적 합의를 의식적으로 파괴했기 때문이다. 259...전체주의 정책은 그저 단순하게 한 세트의 법을 다른 세트의 법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의 법적 합의를 확립하는 것도 아니며, 한 번의 혁명으로 새로운 형태의 합법성을 창출하는 것도 아니다. 전체주의가 자신의 실정법을 포함하여 모든 법을 무시하는 것은 법적 합의 없이도 지낼 수 있고 무법과 자의성, 두려움으로 이루어진 압제적 상태에 자신을 내맡길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체주의는 법의 실행을 인간의 모든 행위와 의사로부터 해방시킬 것을 약속하기 때문에 법적 합의 없이 지낼 수 있다.전체주의의 해석에서 모든 법은 운동의 법이 된다. 나치가 자연 법칙을 말하고 볼셰비키가 역사 법칙을 이야기할 때, 여기서 자연이나 역사는 죽을 운명을 가진 인간의 행위에 권위를 부여하는 안정적인 근원이 아니다. 자연과 역사는 그 자체가 운동이다.  260적자생존이라는 ‘자연’ 법칙은 마르크스의 가장 진보적 계급의 생존 법칙처럼 역사 법칙이며 또 그것만큼 인종주의에 의해 이용될 수 있었다.[다윈의 아이디어, 말살, 듀이민주주의 철학]26119세기 중반에 일어난 엄청난 지적인 변화는 ... 이 이데올로기에서 ‘법’이란 용어 자체의 의미가 변했다. 즉 인간의 행동과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안정성의 틀을 표현하는 용어에서 운동 자체를 표현하는 용어가 되었다....전체주의 운동이 권력을 장악하고 집행할 때의 수단인 살해 법칙은, 설령 모든 인류를 성공적으로 그들의 지배하에 둘 때에도 운동 법칙으로 남을 것이다. 261-262전체주의 정부의 체제에서는 총체적인 테러가 실정법의 자리를 대신한다. 총체적인 테러는 역사나 자연의 운동 법칙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 합법성이 비독재 정부의 본질이고 무법이 독재의 본질이라면, 테러는 전체주의 지배의 본질이다. 262테러는 운동 법칙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반대든 동정이든 어떤 자유로운 행위도 역사나 자연, 계급이나 인종의 ‘객관적인 적’의 제거를 훼방해서는 안 된다.... 즉 ‘열등 인종’에 관해, ‘살기에 부적합한’ 개인들에 관해, ‘멸망해가는 계급과 퇴폐적인 사람들’에 관해 판결을 내린 자연 과정이나 역사 과정의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이 ‘유죄’다. 지배자는 스스로 정의롭다거나 현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역사 법칙이나 자연 법칙을 집행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들은 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 운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법이 어떤 초인간적인 힘, 즉 자연이나 역사의 운동 법칙이라면 테러는 합법적이다.  운동의 목적은 인간의 복지나 한 사람의 이익이 아니라 인류를 만들어내는 데 있는데, 이런 운동 법칙을 실행하는 테러는 종을 위해 개인들을 제거하고 ‘전체’를 위해 ‘부분’을 희생시킨다.  263총체적인 테러는 쉽게 압제 정권의 징후로 잘못 이해된다. 초기 단계의 전체주의 정권이 압제정치와 유사한 행동을 보이고 인간이 만든 법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263-264총체적인 테러는 개인들 간의 경계와 의사소통 채널을 철로 만든 하나의 끈으로 대체한다. 이 끈은 사람들을 너무나 단단하게 묶기 때문에 마치 복수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거대한 차원의 한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총체적인 테러는 압제정치의 옛 도구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압제정치에 고유한 공포와 의혹의 황야, 무법이 판치는 무방비 상태의 황야도 파괴한다. .  사람들끼리 서로 압박하게 함으로써 총체적인 테러는 그들 사이의 공간을 파괴한다. 철의 끈 안의 조건과 비교하면, 심지어 독재의 사막도 여전히 일종의 공간을 남겨둔다는 점에서 ◈자유를 보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264전체주의 정부의 본질인 총체적 테러는 ... 자연이나 역사의 힘에 운동을 가속화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를 제공한다. 고유한 법칙에 따라 전진하는 이 운동은 장기적으로 볼 때 저지될 수 없다.  265그러므로 자연 운동 또는 역사 운동의 순종적인 하인 역할을 수행하는 테러는 그 과정에서 어떤 특별한 의미에서의 자유뿐만 아니라 자유의 근원, 즉 인간이 탄생한다는 사실과 함께 주어져 있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속에 존재하는 자유의 근원을 제거해야만 한다.실제로 테러는 자연이 ‘살기에 부적절한’ 인종이나 개인에게 선고하고 역사가 ‘쇠퇴해가는 계급’에 선고했다는 사형을, 좀더 느리고 덜 효과적인 자연이나 역사 자체의 과정을 기다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집행한다.  266모든 인간이 한 사람(One Man)이 되고 모든 행동이 자연 운동과 역사 운동의 가속화를 추구하며, 모든 개별적 행동이 자연이나 역사가 이미 선고한 사형의 집행을 의미하는 완벽한 전체주의 정부, 다시 말해 운동을 끊임없이 지속하기 위해 완전히 테러에 의존하는 그런 조건 아래서는 본질과 분리된 행위의 원칙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267전체주의 교육의 목표는 확신을 심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신념도 가질 수 없도록 그 능력을 파괴하는 데 있었다....그 대신 전체주의는 전적으로 새로운 원칙을 공무에 도입한다. 그것은 행동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없어도 되는 원칙이며, 운동 법칙...을 통찰하려는 강한 열망에 호소하는 원칙이다.전체주의 국가의 주민들은 자연 운동이나 역사 운동을 가속화하기 위해 .....그들은 운동의 내재적 법칙의 집행인이나 희생자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 전체주의 지배가 그 백성들의 행동을 지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들 모두를 집행인의 역할이나 희생자의 역할에 똑같이 들어맞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 양면 준비, 행위 원칙의 대체물이 바로 이데올로기다.이데올로기—지지자들이 만족할 정도로 모든 것과 모든 사건을 단 하나의 전제로부터 추론하여 설명할 수 있는 ‘이즘’—는 아주 최근의 현상으로 수십 년 동안 정치 생활에서 대수롭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267-268이데올로기는 말 그대로 그 이름이 지시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는 역사 과정 전체의 신비—과거의 비밀들, 얽히고설킨 복잡한 현대의 사물들, 미래의 불확정성—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 이데올로기의 이념에 들어 있는 논리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이데올로기는 존재의 기적에 대해서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 ‘인종’이라는 단어는 과학 탐구의 영역으로서 인종에 대한 진정한 호기심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념’이며, 이 이념으로 역사 운동을 하나의 일관된 과정으로 설명한다. 268... ‘이념’을 이 새로운 역할에 적합하게 만든 것은 그 자체의 ‘논리’, 즉 운동이다. 운동은 ‘이념’ 자체의 결과이며, 어떤 외부 요소도 필요 없이 이념을 움직인다. 이신론이 신 개념에 내재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믿음인 것처럼 예) 인종주의는 인종사상에 고유한 움직임이 있다는 믿음이다. 269역사 운동과 이런 관념의 논리적 과정은 서로 일치한다고 간주된다. 처음 논제는 전제가 되며, 이데올로기적 설명에서 변증법적 논리가 가진 이점은 실제로 나타나는 모순들을 하나의 동일한, 일관된 운동의 단계들로 설명하면서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270이데올로기는 발전하고 있는 모든 것을 전제로부터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이념이면 충분하다고 항상 가정했으며, 논리적 연역의 일관된 과정 속에서 모든 것이 이해되기 때문에 경험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71...모든 이데올로기 사유에 고유한 세 가지 전체주의적인 요소가 나타난다.  첫째, 총체적 설명을 주장하면서 이데올로기는 존재하는 것을 설명하지 않고 생성되는 것, 태어나서 죽는 것을 설명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데올로기는 인종주의의 경우에서처럼 자연이라는 전제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역사를 지향한다.둘째, 이데올로기 사유는 이런 능력을 가지면서 모든 경험에서 독립한다. 방금 일어난 일에 관한 물음이라 할지라도, 이데올로기 사유가 경험에서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수한 이데올로기를 위한 교의 제공: ‘정치 군인들’을 훈련하는 나치의 오르덴스부르크 기관이나 코민테른과 코민포름) 272셋째,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바꿀 힘이 없기 때문에 논증의 방법으로 경험에서 사유를 해방시킨다. ....이데올로기 사유는 현실의 영역에서는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을 정도의 일관성을 가지고 나아간다. ....‘과학적으로’ 확립된 운동 법칙을 정신이 논리적 또는 변증법적으로 모방함으로써 이해가 이루어진다. ... ◈우선 이데올로기 논증의 사유 운동이 경험에서 유래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둘째 이데올로기 논증은 경험한 현실로부터 끌어내어 수용한 유일한 요소를 자명한 전제로 전환하며, 그때부터 이어지는 다음의 논증 과정을 어떤 경험과도 완전히 무관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논증이 한번 전제나 출발점을 확립하면, 경험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 사유에 영향을 미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의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다. 273(히틀러, 스탈린) 그들은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 이론가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 새로운 전체주의 이론가들과 그 선배들의 차이점은 그들이 일차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이념’이 아니라—계급 투쟁과 노동자의 착취 또는 인종 투쟁과 독일 민족에 대한 배려—그 이념으로부터 발전해 나올 수 있는 논리적 과정에 끌렸다는 것이다. 274이데올로기의 진짜 내용(노동계급이나 독일 국민)이 원래 ‘이념’을 산출했지만(역사 법칙으로서 계급 투쟁이나 자연 법칙으로서 인종 투쟁), 이 ‘이념’을 실행하는 논리가 그 내용을 삼켜버리는 것은 이데올로기 정치의 본성이다—단순히 자기 이익이나 권력욕 때문에 저지른 기만이 아니다.[논리성= 자명하다], [논리성이 갖는 독재성, 전체성] [무엇을 위한 논리인가?]275전체주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동원하기 위해 강압이라는 방식에 의존한다. ...논리성의 독재는 정신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과정인 논리에 복종하면서 시작된다. ... 그가 외부의 독재에 굴복하면서 운동의 자유를 양도하는 것처럼 논리에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내적 자유를 양도한다. ...새로운 인간의 탄생과 더불어 새로운 시작이 나타나서 세상에 그 목소리를 높이지 않게 하려면 테러가 필요하듯이, 어느 누구도 사유를 시작하지 않도록—사유는 인간의 모든 활동 가운데 가장 자유롭고 가장 순수한 활동이며 연역의 강제적인 과정의 정반대다—논리성의 자기 강요적 과정이 동원되어야 한다. 276...이데올로기 사유의 자기 강요의 힘은 현실과의 모든 관계를 파괴한다. ... 관계의 상실과 함께 인간은 경험과 사유의 능력 모두를 잃게 된다. 전체주의 지배에서 이상적인 신하는 골수 나치나 골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즉 경험의 현실)의 차이와 참과 거짓(즉 사유의 기준)의 차이를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우리가 이 연구를 시작할 때 제기했고 이제 다시 제기하려는 질문은 테러를 본질로 하고 이데올로기 사유의 논리성을 행위 원칙으로 삼는 정부 형태에는 인간의 공동생활에 대한 어떤 근본적 경험이 스며들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277“일제히 행동하는”(버크)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한, 고립을 상징하는 표지는 무기력이다. 고립된 인간은 정의 그대로 무력하다.  고립과 무기력, 즉 근본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무능력은 항상 압제의 특성이었다. 우리가 정치 영역에서 고립이라 부르는 것은 사회 교제의 영역에서는 외로움으로 불린다.  278우리가 정치 영역에서 고립이라 부르는 것은 사회 교제의 영역에서는 외로움으로 불린다. 인간이 제작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노동하는 동물로 취급되며 그의 ‘자연과의 신진대사’가 어느 누구의 관심사도 되지 못할 때, 정치적 행위 영역에서 자기 자리를 잃은 고립된 인간은 사물의 세상에서도 버림을 받게 된다. ...모든 압제정치와 마찬가지로 전체주의 정부도 분명 삶의 공적 영역을 파괴하지 않고는, 즉 인간을 고립시킴으로써 그들의 정치 능력을 파괴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통치형태로서 전체주의 지배는 이 고립으로 만족하지 않고 사생활도 파괴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전체주의 지배는 고독에 세상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경험에 기반을 둔다. (가장 극단의 절망 경험 해당)고독은 전체주의 정부의 본질인 테러의 공통된 토대이며, 전체주의의 [행위원칙을 대신하기 위한] 집행인과 희생자를 준비하는 이테올로기나 논리적 타당성의 공통된 토대이다. 282비전체주의 세계의 사람들이 전체주의 지배를 맞이할 자세를 갖게 된 것은.....외로움이 이제 우리 세기의 점점 더 많은 대중이 매일 겪는 일상 경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부의 강제는 한 사람을, 그가 혼자 있을 때조차 테러의 강철 끈 속에 스스로를  맞추게 하며, 전체주의 지배는 단독 유폐라는 극단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를 결코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다. ...283이런 관행을 압제정치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사막을 움직여서 사람이 사는 지구 곳곳을 뒤덮을 수 있는 모래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정치영역에서 우리는 오늘날 실제로 이 파괴적인 모래바람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에 처해있다. 모든 사람의 비조직적인 무기력보다 조직적인 외로움이 더 위험하다. ...284정치적으로 시작은 인간의 자유와 동일한 것이다. 시작이 있기 위해 인간이 창조되었다. 실제로 모든 인간이 시작이다. The End. “아이러니 속 상식의 장악, 희생자 박멸을 위한 최종해결의 집행, 그리고 무심히 유지한 생활세계에 대한 아렌트의 작업에 경의를 보내며”2022.7.3. 여여; 새로운 국가형태(255-284)    255앞장에서 우리는 전체주의 지배의 수단이 과격할 뿐만 아니라 ... 우리에게 낯익은 정치 탄압의 형태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전체주의 정권은 항상 계급을 대중으로 전환하고, 정당 체제를 일당 독재가 아닌 대중 운동으로 대체하며, 권력의 심장부를 군대에서 경찰로 이전하고, 공개적으로 세계 지배를 지향하는 대외 정책을 확립한다. 이 정권이 진정한 전체주의로 변할 때, 그것은 항상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 체계에 따라 활동하기 시작한다. 257전체주의 정부는.... 정부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기초가 되는 양자택일의 가능성, 즉 ◈법적 정부와 무법 정부, ◈자의적 권력과 합법적 권력 중에서 선택할 가능성을 파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정법이 ‘무법’이기는커녕 그 궁극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권위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자의적이기는커녕 그 반대로 과거의 어떤 정부보다 더 이 초인간적 힘에 복종하며,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기보다 역사 법칙이나 자연 법칙이라 추정되는 것을 집행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중요한 이익을 희생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전체주의 지배의 주장은 기이하지만 반박하기 힘들어 보인다. ◈실정법을 무시하는 것이 더 높은 형태의 정당성이라 주장한다. ◈이 정당성은 그 근원에서 직접 유래하기 때문에 사소한 합법성을 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주의의 적법성은 이 지상에 정의의 지배—실정법의 합법성이 결코 획득할 수 없는 것—를 확립할 방법을 찾은 것처럼 행동한다.  실정법의 합법성을 무시하고 지상에 정의의 왕국을 직접 건설한 것처럼 가장하는 ◈전체주의의 적법성은 역사 법칙이나 자연 법칙을 집행하면서 그것을 개인의 행동을 위한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바꾸지 않는다. 258전체주의 정책은 인류를 적극적이고 믿음직스러운 법의 화신으로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보통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법에 복종했을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와 문명세계 간의 연결 고리가 전체주의 정권의 기이한 범죄로 끊어진 것이 사실이라면, 이 범죄는 단순한 공격성, 무자비함, 전쟁과 반역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법적 합의를 의식적으로 파괴했기 때문이다. 259...전체주의 정책은 그저 단순하게 한 세트의 법을 다른 세트의 법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의 법적 합의를 확립하는 것도 아니며, 한 번의 혁명으로 새로운 형태의 합법성을 창출하는 것도 아니다. 전체주의가 자신의 실정법을 포함하여 모든 법을 무시하는 것은 법적 합의 없이도 지낼 수 있고 무법과 자의성, 두려움으로 이루어진 압제적 상태에 자신을 내맡길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체주의는 법의 실행을 인간의 모든 행위와 의사로부터 해방시킬 것을 약속하기 때문에 법적 합의 없이 지낼 수 있다.전체주의의 해석에서 모든 법은 운동의 법이 된다. 나치가 자연 법칙을 말하고 볼셰비키가 역사 법칙을 이야기할 때, 여기서 자연이나 역사는 죽을 운명을 가진 인간의 행위에 권위를 부여하는 안정적인 근원이 아니다. 자연과 역사는 그 자체가 운동이다.  260적자생존이라는 ‘자연’ 법칙은 마르크스의 가장 진보적 계급의 생존 법칙처럼 역사 법칙이며 또 그것만큼 인종주의에 의해 이용될 수 있었다.[다윈의 아이디어, 말살, 듀이민주주의 철학]26119세기 중반에 일어난 엄청난 지적인 변화는 ... 이 이데올로기에서 ‘법’이란 용어 자체의 의미가 변했다. 즉 인간의 행동과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안정성의 틀을 표현하는 용어에서 운동 자체를 표현하는 용어가 되었다....전체주의 운동이 권력을 장악하고 집행할 때의 수단인 살해 법칙은, 설령 모든 인류를 성공적으로 그들의 지배하에 둘 때에도 운동 법칙으로 남을 것이다. 261-262전체주의 정부의 체제에서는 총체적인 테러가 실정법의 자리를 대신한다. 총체적인 테러는 역사나 자연의 운동 법칙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 합법성이 비독재 정부의 본질이고 무법이 독재의 본질이라면, 테러는 전체주의 지배의 본질이다. 262테러는 운동 법칙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반대든 동정이든 어떤 자유로운 행위도 역사나 자연, 계급이나 인종의 ‘객관적인 적’의 제거를 훼방해서는 안 된다.... 즉 ‘열등 인종’에 관해, ‘살기에 부적합한’ 개인들에 관해, ‘멸망해가는 계급과 퇴폐적인 사람들’에 관해 판결을 내린 자연 과정이나 역사 과정의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이 ‘유죄’다. 지배자는 스스로 정의롭다거나 현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역사 법칙이나 자연 법칙을 집행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들은 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 운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법이 어떤 초인간적인 힘, 즉 자연이나 역사의 운동 법칙이라면 테러는 합법적이다.  운동의 목적은 인간의 복지나 한 사람의 이익이 아니라 인류를 만들어내는 데 있는데, 이런 운동 법칙을 실행하는 테러는 종을 위해 개인들을 제거하고 ‘전체’를 위해 ‘부분’을 희생시킨다.  263총체적인 테러는 쉽게 압제 정권의 징후로 잘못 이해된다. 초기 단계의 전체주의 정권이 압제정치와 유사한 행동을 보이고 인간이 만든 법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263-264총체적인 테러는 개인들 간의 경계와 의사소통 채널을 철로 만든 하나의 끈으로 대체한다. 이 끈은 사람들을 너무나 단단하게 묶기 때문에 마치 복수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거대한 차원의 한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총체적인 테러는 압제정치의 옛 도구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압제정치에 고유한 공포와 의혹의 황야, 무법이 판치는 무방비 상태의 황야도 파괴한다. .  사람들끼리 서로 압박하게 함으로써 총체적인 테러는 그들 사이의 공간을 파괴한다. 철의 끈 안의 조건과 비교하면, 심지어 독재의 사막도 여전히 일종의 공간을 남겨둔다는 점에서 ◈자유를 보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264전체주의 정부의 본질인 총체적 테러는 ... 자연이나 역사의 힘에 운동을 가속화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를 제공한다. 고유한 법칙에 따라 전진하는 이 운동은 장기적으로 볼 때 저지될 수 없다.  265그러므로 자연 운동 또는 역사 운동의 순종적인 하인 역할을 수행하는 테러는 그 과정에서 어떤 특별한 의미에서의 자유뿐만 아니라 자유의 근원, 즉 인간이 탄생한다는 사실과 함께 주어져 있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속에 존재하는 자유의 근원을 제거해야만 한다.실제로 테러는 자연이 ‘살기에 부적절한’ 인종이나 개인에게 선고하고 역사가 ‘쇠퇴해가는 계급’에 선고했다는 사형을, 좀더 느리고 덜 효과적인 자연이나 역사 자체의 과정을 기다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집행한다.  266모든 인간이 한 사람(One Man)이 되고 모든 행동이 자연 운동과 역사 운동의 가속화를 추구하며, 모든 개별적 행동이 자연이나 역사가 이미 선고한 사형의 집행을 의미하는 완벽한 전체주의 정부, 다시 말해 운동을 끊임없이 지속하기 위해 완전히 테러에 의존하는 그런 조건 아래서는 본질과 분리된 행위의 원칙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267전체주의 교육의 목표는 확신을 심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신념도 가질 수 없도록 그 능력을 파괴하는 데 있었다....그 대신 전체주의는 전적으로 새로운 원칙을 공무에 도입한다. 그것은 행동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없어도 되는 원칙이며, 운동 법칙...을 통찰하려는 강한 열망에 호소하는 원칙이다.전체주의 국가의 주민들은 자연 운동이나 역사 운동을 가속화하기 위해 .....그들은 운동의 내재적 법칙의 집행인이나 희생자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 전체주의 지배가 그 백성들의 행동을 지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들 모두를 집행인의 역할이나 희생자의 역할에 똑같이 들어맞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 양면 준비, 행위 원칙의 대체물이 바로 이데올로기다.이데올로기—지지자들이 만족할 정도로 모든 것과 모든 사건을 단 하나의 전제로부터 추론하여 설명할 수 있는 ‘이즘’—는 아주 최근의 현상으로 수십 년 동안 정치 생활에서 대수롭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267-268이데올로기는 말 그대로 그 이름이 지시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는 역사 과정 전체의 신비—과거의 비밀들, 얽히고설킨 복잡한 현대의 사물들, 미래의 불확정성—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 이데올로기의 이념에 들어 있는 논리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이데올로기는 존재의 기적에 대해서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 ‘인종’이라는 단어는 과학 탐구의 영역으로서 인종에 대한 진정한 호기심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념’이며, 이 이념으로 역사 운동을 하나의 일관된 과정으로 설명한다. 268... ‘이념’을 이 새로운 역할에 적합하게 만든 것은 그 자체의 ‘논리’, 즉 운동이다. 운동은 ‘이념’ 자체의 결과이며, 어떤 외부 요소도 필요 없이 이념을 움직인다. 이신론이 신 개념에 내재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믿음인 것처럼 예) 인종주의는 인종사상에 고유한 움직임이 있다는 믿음이다. 269역사 운동과 이런 관념의 논리적 과정은 서로 일치한다고 간주된다. 처음 논제는 전제가 되며, 이데올로기적 설명에서 변증법적 논리가 가진 이점은 실제로 나타나는 모순들을 하나의 동일한, 일관된 운동의 단계들로 설명하면서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270이데올로기는 발전하고 있는 모든 것을 전제로부터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이념이면 충분하다고 항상 가정했으며, 논리적 연역의 일관된 과정 속에서 모든 것이 이해되기 때문에 경험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71...모든 이데올로기 사유에 고유한 세 가지 전체주의적인 요소가 나타난다.  첫째, 총체적 설명을 주장하면서 이데올로기는 존재하는 것을 설명하지 않고 생성되는 것, 태어나서 죽는 것을 설명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데올로기는 인종주의의 경우에서처럼 자연이라는 전제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역사를 지향한다.둘째, 이데올로기 사유는 이런 능력을 가지면서 모든 경험에서 독립한다. 방금 일어난 일에 관한 물음이라 할지라도, 이데올로기 사유가 경험에서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수한 이데올로기를 위한 교의 제공: ‘정치 군인들’을 훈련하는 나치의 오르덴스부르크 기관이나 코민테른과 코민포름) 272셋째,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바꿀 힘이 없기 때문에 논증의 방법으로 경험에서 사유를 해방시킨다. ....이데올로기 사유는 현실의 영역에서는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을 정도의 일관성을 가지고 나아간다. ....‘과학적으로’ 확립된 운동 법칙을 정신이 논리적 또는 변증법적으로 모방함으로써 이해가 이루어진다. ... ◈우선 이데올로기 논증의 사유 운동이 경험에서 유래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둘째 이데올로기 논증은 경험한 현실로부터 끌어내어 수용한 유일한 요소를 자명한 전제로 전환하며, 그때부터 이어지는 다음의 논증 과정을 어떤 경험과도 완전히 무관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논증이 한번 전제나 출발점을 확립하면, 경험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 사유에 영향을 미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의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다. 273(히틀러, 스탈린) 그들은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 이론가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 새로운 전체주의 이론가들과 그 선배들의 차이점은 그들이 일차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이념’이 아니라—계급 투쟁과 노동자의 착취 또는 인종 투쟁과 독일 민족에 대한 배려—그 이념으로부터 발전해 나올 수 있는 논리적 과정에 끌렸다는 것이다. 274이데올로기의 진짜 내용(노동계급이나 독일 국민)이 원래 ‘이념’을 산출했지만(역사 법칙으로서 계급 투쟁이나 자연 법칙으로서 인종 투쟁), 이 ‘이념’을 실행하는 논리가 그 내용을 삼켜버리는 것은 이데올로기 정치의 본성이다—단순히 자기 이익이나 권력욕 때문에 저지른 기만이 아니다.[논리성= 자명하다], [논리성이 갖는 독재성, 전체성] [무엇을 위한 논리인가?]275전체주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동원하기 위해 강압이라는 방식에 의존한다. ...논리성의 독재는 정신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과정인 논리에 복종하면서 시작된다. ... 그가 외부의 독재에 굴복하면서 운동의 자유를 양도하는 것처럼 논리에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내적 자유를 양도한다. ...새로운 인간의 탄생과 더불어 새로운 시작이 나타나서 세상에 그 목소리를 높이지 않게 하려면 테러가 필요하듯이, 어느 누구도 사유를 시작하지 않도록—사유는 인간의 모든 활동 가운데 가장 자유롭고 가장 순수한 활동이며 연역의 강제적인 과정의 정반대다—논리성의 자기 강요적 과정이 동원되어야 한다. 276...이데올로기 사유의 자기 강요의 힘은 현실과의 모든 관계를 파괴한다. ... 관계의 상실과 함께 인간은 경험과 사유의 능력 모두를 잃게 된다. 전체주의 지배에서 이상적인 신하는 골수 나치나 골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즉 경험의 현실)의 차이와 참과 거짓(즉 사유의 기준)의 차이를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우리가 이 연구를 시작할 때 제기했고 이제 다시 제기하려는 질문은 테러를 본질로 하고 이데올로기 사유의 논리성을 행위 원칙으로 삼는 정부 형태에는 인간의 공동생활에 대한 어떤 근본적 경험이 스며들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277“일제히 행동하는”(버크)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한, 고립을 상징하는 표지는 무기력이다. 고립된 인간은 정의 그대로 무력하다.  고립과 무기력, 즉 근본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무능력은 항상 압제의 특성이었다. 우리가 정치 영역에서 고립이라 부르는 것은 사회 교제의 영역에서는 외로움으로 불린다.  278우리가 정치 영역에서 고립이라 부르는 것은 사회 교제의 영역에서는 외로움으로 불린다. 인간이 제작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노동하는 동물로 취급되며 그의 ‘자연과의 신진대사’가 어느 누구의 관심사도 되지 못할 때, 정치적 행위 영역에서 자기 자리를 잃은 고립된 인간은 사물의 세상에서도 버림을 받게 된다. ...모든 압제정치와 마찬가지로 전체주의 정부도 분명 삶의 공적 영역을 파괴하지 않고는, 즉 인간을 고립시킴으로써 그들의 정치 능력을 파괴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통치형태로서 전체주의 지배는 이 고립으로 만족하지 않고 사생활도 파괴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전체주의 지배는 고독에 세상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경험에 기반을 둔다. (가장 극단의 절망 경험 해당)고독은 전체주의 정부의 본질인 테러의 공통된 토대이며, 전체주의의 [행위원칙을 대신하기 위한] 집행인과 희생자를 준비하는 이테올로기나 논리적 타당성의 공통된 토대이다. 282비전체주의 세계의 사람들이 전체주의 지배를 맞이할 자세를 갖게 된 것은.....외로움이 이제 우리 세기의 점점 더 많은 대중이 매일 겪는 일상 경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부의 강제는 한 사람을, 그가 혼자 있을 때조차 테러의 강철 끈 속에 스스로를  맞추게 하며, 전체주의 지배는 단독 유폐라는 극단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를 결코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다. ...283이런 관행을 압제정치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사막을 움직여서 사람이 사는 지구 곳곳을 뒤덮을 수 있는 모래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정치영역에서 우리는 오늘날 실제로 이 파괴적인 모래바람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에 처해있다. 모든 사람의 비조직적인 무기력보다 조직적인 외로움이 더 위험하다. ...284정치적으로 시작은 인간의 자유와 동일한 것이다. 시작이 있기 위해 인간이 창조되었다. 실제로 모든 인간이 시작이다. The End. “아이러니 속 상식의 장악, 희생자 박멸을 위한 최종해결의 집행, 그리고 무심히 유지한 생활세계에 대한 아렌트의 작업에 경의를 보내며”2022.7.3. 여여; 새로운 국가형태(255-284)    255앞장에서 우리는 전체주의 지배의 수단이 과격할 뿐만 아니라 ... 우리에게 낯익은 정치 탄압의 형태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전체주의 정권은 항상 계급을 대중으로 전환하고, 정당 체제를 일당 독재가 아닌 대중 운동으로 대체하며, 권력의 심장부를 군대에서 경찰로 이전하고, 공개적으로 세계 지배를 지향하는 대외 정책을 확립한다. 이 정권이 진정한 전체주의로 변할 때, 그것은 항상 근본적으로 다른 가치 체계에 따라 활동하기 시작한다. 257전체주의 정부는.... 정부의 본질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기초가 되는 양자택일의 가능성, 즉 ◈법적 정부와 무법 정부, ◈자의적 권력과 합법적 권력 중에서 선택할 가능성을 파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정법이 ‘무법’이기는커녕 그 궁극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권위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자의적이기는커녕 그 반대로 과거의 어떤 정부보다 더 이 초인간적 힘에 복종하며,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기보다 역사 법칙이나 자연 법칙이라 추정되는 것을 집행하기 위해 모든 사람의 중요한 이익을 희생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전체주의 지배의 주장은 기이하지만 반박하기 힘들어 보인다. ◈실정법을 무시하는 것이 더 높은 형태의 정당성이라 주장한다. ◈이 정당성은 그 근원에서 직접 유래하기 때문에 사소한 합법성을 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체주의의 적법성은 이 지상에 정의의 지배—실정법의 합법성이 결코 획득할 수 없는 것—를 확립할 방법을 찾은 것처럼 행동한다.  실정법의 합법성을 무시하고 지상에 정의의 왕국을 직접 건설한 것처럼 가장하는 ◈전체주의의 적법성은 역사 법칙이나 자연 법칙을 집행하면서 그것을 개인의 행동을 위한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바꾸지 않는다. 258전체주의 정책은 인류를 적극적이고 믿음직스러운 법의 화신으로 만든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보통 수동적으로 마지못해 법에 복종했을 것이다. 전체주의 국가와 문명세계 간의 연결 고리가 전체주의 정권의 기이한 범죄로 끊어진 것이 사실이라면, 이 범죄는 단순한 공격성, 무자비함, 전쟁과 반역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법적 합의를 의식적으로 파괴했기 때문이다. 259...전체주의 정책은 그저 단순하게 한 세트의 법을 다른 세트의 법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의 법적 합의를 확립하는 것도 아니며, 한 번의 혁명으로 새로운 형태의 합법성을 창출하는 것도 아니다. 전체주의가 자신의 실정법을 포함하여 모든 법을 무시하는 것은 법적 합의 없이도 지낼 수 있고 무법과 자의성, 두려움으로 이루어진 압제적 상태에 자신을 내맡길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체주의는 법의 실행을 인간의 모든 행위와 의사로부터 해방시킬 것을 약속하기 때문에 법적 합의 없이 지낼 수 있다.전체주의의 해석에서 모든 법은 운동의 법이 된다. 나치가 자연 법칙을 말하고 볼셰비키가 역사 법칙을 이야기할 때, 여기서 자연이나 역사는 죽을 운명을 가진 인간의 행위에 권위를 부여하는 안정적인 근원이 아니다. 자연과 역사는 그 자체가 운동이다.  260적자생존이라는 ‘자연’ 법칙은 마르크스의 가장 진보적 계급의 생존 법칙처럼 역사 법칙이며 또 그것만큼 인종주의에 의해 이용될 수 있었다.[다윈의 아이디어, 말살, 듀이민주주의 철학]26119세기 중반에 일어난 엄청난 지적인 변화는 ... 이 이데올로기에서 ‘법’이란 용어 자체의 의미가 변했다. 즉 인간의 행동과 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안정성의 틀을 표현하는 용어에서 운동 자체를 표현하는 용어가 되었다....전체주의 운동이 권력을 장악하고 집행할 때의 수단인 살해 법칙은, 설령 모든 인류를 성공적으로 그들의 지배하에 둘 때에도 운동 법칙으로 남을 것이다. 261-262전체주의 정부의 체제에서는 총체적인 테러가 실정법의 자리를 대신한다. 총체적인 테러는 역사나 자연의 운동 법칙을 현실로 옮기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 합법성이 비독재 정부의 본질이고 무법이 독재의 본질이라면, 테러는 전체주의 지배의 본질이다. 262테러는 운동 법칙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이다. ...반대든 동정이든 어떤 자유로운 행위도 역사나 자연, 계급이나 인종의 ‘객관적인 적’의 제거를 훼방해서는 안 된다.... 즉 ‘열등 인종’에 관해, ‘살기에 부적합한’ 개인들에 관해, ‘멸망해가는 계급과 퇴폐적인 사람들’에 관해 판결을 내린 자연 과정이나 역사 과정의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이 ‘유죄’다. 지배자는 스스로 정의롭다거나 현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역사 법칙이나 자연 법칙을 집행한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들은 법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고유한 법칙에 따라 운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법이 어떤 초인간적인 힘, 즉 자연이나 역사의 운동 법칙이라면 테러는 합법적이다.  운동의 목적은 인간의 복지나 한 사람의 이익이 아니라 인류를 만들어내는 데 있는데, 이런 운동 법칙을 실행하는 테러는 종을 위해 개인들을 제거하고 ‘전체’를 위해 ‘부분’을 희생시킨다.  263총체적인 테러는 쉽게 압제 정권의 징후로 잘못 이해된다. 초기 단계의 전체주의 정권이 압제정치와 유사한 행동을 보이고 인간이 만든 법의 경계를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263-264총체적인 테러는 개인들 간의 경계와 의사소통 채널을 철로 만든 하나의 끈으로 대체한다. 이 끈은 사람들을 너무나 단단하게 묶기 때문에 마치 복수의 사람들이 사라지고 거대한 차원의 한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일 정도다. ...총체적인 테러는 압제정치의 옛 도구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압제정치에 고유한 공포와 의혹의 황야, 무법이 판치는 무방비 상태의 황야도 파괴한다. .  사람들끼리 서로 압박하게 함으로써 총체적인 테러는 그들 사이의 공간을 파괴한다. 철의 끈 안의 조건과 비교하면, 심지어 독재의 사막도 여전히 일종의 공간을 남겨둔다는 점에서 ◈자유를 보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264전체주의 정부의 본질인 총체적 테러는 ... 자연이나 역사의 힘에 운동을 가속화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를 제공한다. 고유한 법칙에 따라 전진하는 이 운동은 장기적으로 볼 때 저지될 수 없다.  265그러므로 자연 운동 또는 역사 운동의 순종적인 하인 역할을 수행하는 테러는 그 과정에서 어떤 특별한 의미에서의 자유뿐만 아니라 자유의 근원, 즉 인간이 탄생한다는 사실과 함께 주어져 있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속에 존재하는 자유의 근원을 제거해야만 한다.실제로 테러는 자연이 ‘살기에 부적절한’ 인종이나 개인에게 선고하고 역사가 ‘쇠퇴해가는 계급’에 선고했다는 사형을, 좀더 느리고 덜 효과적인 자연이나 역사 자체의 과정을 기다리지 않고 그 자리에서 집행한다.  266모든 인간이 한 사람(One Man)이 되고 모든 행동이 자연 운동과 역사 운동의 가속화를 추구하며, 모든 개별적 행동이 자연이나 역사가 이미 선고한 사형의 집행을 의미하는 완벽한 전체주의 정부, 다시 말해 운동을 끊임없이 지속하기 위해 완전히 테러에 의존하는 그런 조건 아래서는 본질과 분리된 행위의 원칙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267전체주의 교육의 목표는 확신을 심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의 신념도 가질 수 없도록 그 능력을 파괴하는 데 있었다....그 대신 전체주의는 전적으로 새로운 원칙을 공무에 도입한다. 그것은 행동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없어도 되는 원칙이며, 운동 법칙...을 통찰하려는 강한 열망에 호소하는 원칙이다.전체주의 국가의 주민들은 자연 운동이나 역사 운동을 가속화하기 위해 .....그들은 운동의 내재적 법칙의 집행인이나 희생자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 전체주의 지배가 그 백성들의 행동을 지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들 모두를 집행인의 역할이나 희생자의 역할에 똑같이 들어맞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 양면 준비, 행위 원칙의 대체물이 바로 이데올로기다.이데올로기—지지자들이 만족할 정도로 모든 것과 모든 사건을 단 하나의 전제로부터 추론하여 설명할 수 있는 ‘이즘’—는 아주 최근의 현상으로 수십 년 동안 정치 생활에서 대수롭지 않은 역할을 해왔다. 267-268이데올로기는 말 그대로 그 이름이 지시하는 것이다........이데올로기는 역사 과정 전체의 신비—과거의 비밀들, 얽히고설킨 복잡한 현대의 사물들, 미래의 불확정성—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가장한다. 이데올로기의 이념에 들어 있는 논리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이데올로기는 존재의 기적에 대해서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 ‘인종’이라는 단어는 과학 탐구의 영역으로서 인종에 대한 진정한 호기심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념’이며, 이 이념으로 역사 운동을 하나의 일관된 과정으로 설명한다. 268... ‘이념’을 이 새로운 역할에 적합하게 만든 것은 그 자체의 ‘논리’, 즉 운동이다. 운동은 ‘이념’ 자체의 결과이며, 어떤 외부 요소도 필요 없이 이념을 움직인다. 이신론이 신 개념에 내재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믿음인 것처럼 예) 인종주의는 인종사상에 고유한 움직임이 있다는 믿음이다. 269역사 운동과 이런 관념의 논리적 과정은 서로 일치한다고 간주된다. 처음 논제는 전제가 되며, 이데올로기적 설명에서 변증법적 논리가 가진 이점은 실제로 나타나는 모순들을 하나의 동일한, 일관된 운동의 단계들로 설명하면서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270이데올로기는 발전하고 있는 모든 것을 전제로부터 설명하기 위해 하나의 이념이면 충분하다고 항상 가정했으며, 논리적 연역의 일관된 과정 속에서 모든 것이 이해되기 때문에 경험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71...모든 이데올로기 사유에 고유한 세 가지 전체주의적인 요소가 나타난다.  첫째, 총체적 설명을 주장하면서 이데올로기는 존재하는 것을 설명하지 않고 생성되는 것, 태어나서 죽는 것을 설명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데올로기는 인종주의의 경우에서처럼 자연이라는 전제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역사를 지향한다.둘째, 이데올로기 사유는 이런 능력을 가지면서 모든 경험에서 독립한다. 방금 일어난 일에 관한 물음이라 할지라도, 이데올로기 사유가 경험에서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수한 이데올로기를 위한 교의 제공: ‘정치 군인들’을 훈련하는 나치의 오르덴스부르크 기관이나 코민테른과 코민포름) 272셋째,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바꿀 힘이 없기 때문에 논증의 방법으로 경험에서 사유를 해방시킨다. ....이데올로기 사유는 현실의 영역에서는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을 정도의 일관성을 가지고 나아간다. ....‘과학적으로’ 확립된 운동 법칙을 정신이 논리적 또는 변증법적으로 모방함으로써 이해가 이루어진다. ... ◈우선 이데올로기 논증의 사유 운동이 경험에서 유래하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둘째 이데올로기 논증은 경험한 현실로부터 끌어내어 수용한 유일한 요소를 자명한 전제로 전환하며, 그때부터 이어지는 다음의 논증 과정을 어떤 경험과도 완전히 무관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논증이 한번 전제나 출발점을 확립하면, 경험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 사유에 영향을 미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의 가르침을 받을 수도 없다. 273(히틀러, 스탈린) 그들은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 이론가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 새로운 전체주의 이론가들과 그 선배들의 차이점은 그들이 일차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이념’이 아니라—계급 투쟁과 노동자의 착취 또는 인종 투쟁과 독일 민족에 대한 배려—그 이념으로부터 발전해 나올 수 있는 논리적 과정에 끌렸다는 것이다. 274이데올로기의 진짜 내용(노동계급이나 독일 국민)이 원래 ‘이념’을 산출했지만(역사 법칙으로서 계급 투쟁이나 자연 법칙으로서 인종 투쟁), 이 ‘이념’을 실행하는 논리가 그 내용을 삼켜버리는 것은 이데올로기 정치의 본성이다—단순히 자기 이익이나 권력욕 때문에 저지른 기만이 아니다.[논리성= 자명하다], [논리성이 갖는 독재성, 전체성] [무엇을 위한 논리인가?]275전체주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동원하기 위해 강압이라는 방식에 의존한다. ...논리성의 독재는 정신이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과정인 논리에 복종하면서 시작된다. ... 그가 외부의 독재에 굴복하면서 운동의 자유를 양도하는 것처럼 논리에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내적 자유를 양도한다. ...새로운 인간의 탄생과 더불어 새로운 시작이 나타나서 세상에 그 목소리를 높이지 않게 하려면 테러가 필요하듯이, 어느 누구도 사유를 시작하지 않도록—사유는 인간의 모든 활동 가운데 가장 자유롭고 가장 순수한 활동이며 연역의 강제적인 과정의 정반대다—논리성의 자기 강요적 과정이 동원되어야 한다. 276...이데올로기 사유의 자기 강요의 힘은 현실과의 모든 관계를 파괴한다. ... 관계의 상실과 함께 인간은 경험과 사유의 능력 모두를 잃게 된다. 전체주의 지배에서 이상적인 신하는 골수 나치나 골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즉 경험의 현실)의 차이와 참과 거짓(즉 사유의 기준)의 차이를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우리가 이 연구를 시작할 때 제기했고 이제 다시 제기하려는 질문은 테러를 본질로 하고 이데올로기 사유의 논리성을 행위 원칙으로 삼는 정부 형태에는 인간의 공동생활에 대한 어떤 근본적 경험이 스며들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277“일제히 행동하는”(버크)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한, 고립을 상징하는 표지는 무기력이다. 고립된 인간은 정의 그대로 무력하다.  고립과 무기력, 즉 근본적으로 행동할 수 없는 무능력은 항상 압제의 특성이었다. 우리가 정치 영역에서 고립이라 부르는 것은 사회 교제의 영역에서는 외로움으로 불린다.  278우리가 정치 영역에서 고립이라 부르는 것은 사회 교제의 영역에서는 외로움으로 불린다. 인간이 제작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노동하는 동물로 취급되며 그의 ‘자연과의 신진대사’가 어느 누구의 관심사도 되지 못할 때, 정치적 행위 영역에서 자기 자리를 잃은 고립된 인간은 사물의 세상에서도 버림을 받게 된다. ...모든 압제정치와 마찬가지로 전체주의 정부도 분명 삶의 공적 영역을 파괴하지 않고는, 즉 인간을 고립시킴으로써 그들의 정치 능력을 파괴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통치형태로서 전체주의 지배는 이 고립으로 만족하지 않고 사생활도 파괴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전체주의 지배는 고독에 세상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경험에 기반을 둔다. (가장 극단의 절망 경험 해당)고독은 전체주의 정부의 본질인 테러의 공통된 토대이며, 전체주의의 [행위원칙을 대신하기 위한] 집행인과 희생자를 준비하는 이테올로기나 논리적 타당성의 공통된 토대이다. 282비전체주의 세계의 사람들이 전체주의 지배를 맞이할 자세를 갖게 된 것은.....외로움이 이제 우리 세기의 점점 더 많은 대중이 매일 겪는 일상 경험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부의 강제는 한 사람을, 그가 혼자 있을 때조차 테러의 강철 끈 속에 스스로를  맞추게 하며, 전체주의 지배는 단독 유폐라는 극단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를 결코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다. ...283이런 관행을 압제정치의 그것과 비교한다면, 사막을 움직여서 사람이 사는 지구 곳곳을 뒤덮을 수 있는 모래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정치영역에서 우리는 오늘날 실제로 이 파괴적인 모래바람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조건에 처해있다. 모든 사람의 비조직적인 무기력보다 조직적인 외로움이 더 위험하다. ...284정치적으로 시작은 인간의 자유와 동일한 것이다. 시작이 있기 위해 인간이 창조되었다. 실제로 모든 인간이 시작이다. The End. “아이러니 속 상식의 장악, 희생자 박멸을 위한 최종해결의 집행, 그리고 무심히 유지한 생활세계에 대한 아렌트의 작업에 경의를 보내며”2022.7.3. 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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