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제 6장 활동적 삶과 근대 (357-404, 35절-40절)
2022. 9. 20 화. 여여
35. 세계 소외
357
근대가 시작하는 문턱에서 나타난 세 가지 커다란 사건은 근대의 성격을 규정한다. (1)아메리카의 발견과 이에 뒤따른 전 지구의 탐험, (2)교회와 수도원의 재산을 몰수함으로써 개인 재산의 몰수와 사회적 부의 축적이라는 이중적 과정을 야기한 종교개혁, (3)망원경의 발명과 우주의 관점에서 지구의 자연을 고려하는 신(新)과학의 발전.
358
사회를 가장 많이 동요시켰던 것은 정통 그 자체에 내적으로 도전하고 인간 영혼의 평정을 직접적으로 위협함으로써 서구 기독교의 치유할 수 없는 분열을 야기한 종교개혁이었다.
? 조직의 논리?
359
실제로 지구의 발견, 대륙의 지도화, 대양의 해도화는 여러 세기를 걸쳐 지금 겨우 종결되기 시작했다. 인간은 이제야 유한한 거주 공간을 완전히 소유하게 되었으며, 이전의 모든 세대에게는 매력적이면서도 두렵게 여겨졌던 무한한 열린 지평들을 결집시켜 하나의 지구체가 되게 했다. ...지구상에서 이용가능한 공간이 광대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그때부터 그 유명한 지구의 축소가 시작되었고, 근대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지만 결코 근대세계와 동일시할 수 없는 우리의 세계에 이르러 모든 인간은 자기 나라의 거주자인 것과 같이 세계의 거주자가 되었다
근대 초기의 탐험가와 세계일주 여행자들은 지구를 계속해서 확장시켰지 하나의 공으로 축소시키지는 않았다.
360
근대 초기단계의 지도와 항해도는 모든 지구상의 공간을 작게 만들어 바로 손에 닿게 하는 기술의 발명을 촉진했다
우리는 이미 지구를 손으로 만지고, 눈앞에서 소용돌이치는 삶의 공간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지구가 결정적으로 축소된 것은 비행기 발명, 즉 지구 표면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도구를 발명한 결과다. 이 사실이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인간이 지구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고,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지구적 거주환경으로부터 결정적으로 소외되는 희생을 치르고서만 지상에서의 모든 거리 축소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일반적 현상이다.
361
전적으로 다른 사건인 종교개혁은 종국에 가서는 우리를 이와 유사한 소외 현상과 직면하게 만든다. 이것을 베버는 ‘세계 내적 금욕주의’로 명명하고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에서 가장 내밀한 원천으로 파악했다.
이런 세계 내적 소외는 의도나 내용의 차원에서 지구의 발견과 소유과정에 내재하는 지구로부터의 소외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내적 소외는 기독교 신앙의 내세관을 복원하고자 한 루터와 칼뱅에게서 발생한 새로운 도덕성에서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이 소외는 완전히 다른 수준이지만 교회 재산 몰수의 예기치 못한 결과였던 소작농의 재산 몰수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그리고 세계를 소외시킨 이 재산 몰수는 봉건제가 붕괴된 가장 큰 단일 요소였다
362
전후 독일이 보여주는 것처럼 급속히 발전하는 번영은 물질적 재화의 풍부함이나 안정적인 어떤 것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의 과정 자체에 기반한다. 근대의 조건에서 파멸을 야기하는 것은 파괴가 아니라 보존이다. 왜냐하면 보존된 대상이 지니는 바로 그 지속성은 생산과정에 가장 큰 방해요소이기 때문이다.
363
소유가 공동세계에서 사적으로 소유한 몫을 가리킨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따라서 소유는 인간의 세계성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조건이다. 같은 이유에서 재산 몰수와 세계소외는 동시에 발생한다.
우리는 대개 근대의 세속적 성격을 강조하여 세속성을 세계성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으로서 세속화는 단지 교회와 국가,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종교적 관점에서 세속화는 초기 기독교의 태도인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로의 복귀를 의미하며, 신앙과 초월성의 상실이나 이 세계의 사물에 대한 새롭고도 강한 관심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근대 신앙의 상실은 종교적 기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
364
역사는 오히려 근대인이 세계를 지향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의존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데카르트 이후 근대철학의 가장 집요한 흐름이자 철학에 가장 독창적 기여를 한 것 중 하나는 영혼, 인격 또는 일반적 인간과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자아에 대한 배타적 관심이며, 세계와 다른 인간존재와의 모든 경험을 인간과 그 자신 간의 경험으로 환원하려는 시도다. ... 마르크스가 생각한 자기소외가 아니라 세계소외가 근대의 징표가 되었다.
365
세계 안에서 자신의 장소를 박탈당하고 적나라한 생존위기에 내맡겨졌다는 의미의 사유재산 몰수는 부의 본원적 축적을 창출했으며
동시에 부가 노동의 착취를 통해 자본으로 변형될 수 있는 기본조건이었다. 이것들은 공동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발생조건을 구성한다. ...문자 그대로 그날그날 빌어먹고 사는 새로운 노동계급은 삶의 필연성이 강요하는 절박함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삶의 과정 자체에서 직접 발생하지 않는 모든 염려와 근심으로부터도 소외되었다. ...
근대 초기의 발전이 과거의 유사 사건과 다른 점은 탈소유화와 부의 축적이 단순히 새로운 소유로 이어지거나 부의 새로운 분배를 야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탈소유화와 더 큰 생산성 그리고 더 많은 전유(專有)를 창출하기 위한 과정으로 재투입되었다는 점이다.
자본축적은 근대 이전의 부유한 제국들로부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경제침체에 이르지 않고 오히려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 꾸준히 부의 증가 흐름을 주도한다.
366
모든 세계의 사물, 즉 생산과정의 모든 최종생산물이 항상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이 과정에 재투입되는 한, 그리고 세계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간섭하지 않는 한 축적과정은 계속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부의 축적과정, 삶의 과정에 자극받고 역으로 인간생활에 자극을 주는 그 과정은 세계와 (인간의) 세계성의 희생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 소외의 첫 단계 특징은 잔인함이다. ... 이들은 착취로 인해 가족과 소유의 이중적 보호, 다시 말해 세계에서 가족 소유의 몫을 박탈당했다.
소외는 두 번째 단계에 이른다. 가족구성원이 이전에 제공해주던 보호의 역할을 이제 사회계급의 구성원이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회적 연대성은 가족단위체를 지배하던 초기 자연적 유대성의 가장 효과적인 대체물이 되었다. ...가족단위가 사적으로 소유한 세계의 몫인 소유와 동일시되었던 것처럼, 사회는 집단적 소유의 구체적 재산인 민족국가의 영토와 동일시되었다. 20세기에 쇠퇴할 때까지, 무산계급에게서 박탈했던 사적으로 소유한 가정에 대한 대체물을 모든 계급에게 제공한 것이 민족국가다.
사회가 가족의 대체물이 되었기 때문에 ...
인구의 동질성과 주어진 영토에 뿌리박고 있다는 것이 모든 민족국가의 전제조건이다.
367
가족과 소유를 계급 구성원과 민족의 영토가 대체했듯이, 인류는 이제 민족으로 결합된 사회를 대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구는 국가 영토를 대체한다. 그러나 미래가 무엇을 초래하든 탈소유화에 의해 시작되고 부의 지속적인 증대를 특징으로 하는 세계소외의 과정은 그것이 자체의 내재적 법칙을 따를 경우, 보다 극단적인 규모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족과 가계의 구성원들이 사적 소유를 지니는 것처럼 사회적 인간이 집단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사회의 등장으로 인해 공론 영역과 사적 영역은 동시에 몰락했다. 공적 세계의 잠식은 결정적으로 고독한 대중을 낳았으며, 근대의 이데올로기적 대중운동이 무세계적인 성향을 가지는 위험을 야기했다. 이러한 공적 세계의 잠식은 세계에서 사적으로 소유한 몫이 구체적으로 더 많이 상실되면서 시작되었다.
36. 아르키메데스적 점의 발견
368
영원히 인간의 지각능력 밖에 있는 것들을 인간이 지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도구를 통해 우주를 처음으로 엿본 이 사건도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었다.
땅과 하늘의 이분법을 제거한 최초의 사람은 갈릴레오가 아니라 철학자들이었다.
369
필요한 것은 오히려 자연의 단순성이라는 고대 및 중세의 원리와 코페르니쿠스의 상상력, 즉 그를 지구에서 들어 올려 마치 태양의 거주자처럼 지구를 내려다 보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상상력의 위대한 대담성을 따를 수 있는 사변적 용기였다.
370
전에는 누구도 하지 못했으나 갈릴레오만이 인간으로 하여금 망원경을 사용하여 우주의 비밀을 ‘감각적 지각의 확실성을 갖고’ 인지할 수 있게 했다
371
벨라민 추기경이 갈릴레오에게 지적했듯이, “가설이 현상에 적합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곧 지구 운동의 실재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이 얼마나 적절한지는 갈릴레오의 발견이 확증된 후 학계를 지배하던 분위기가 갑작스럽게 변화한 것에서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
갈릴레오는 그의 선임자들을 ‘확증함’으로써, 이전에는 영감에 의한 사변이었던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사실로 확립했다. 이 실재에 대한 철학의 직접적 반응은 환희가 아니라 데카르트적 회의였다.
372
갈릴레오와 더불어 시작된 근대의 천체물리학적 세계관과 실재를 드러내는 인간의 감각능력에 대한 세계관의 문제 제기는 우리에게 하나의 우주를 남겨주었는데, 우리는 이 우주에 대해 그것이 우리의 측정도구에 특정한 방식으로 영향을 준다는 사실밖에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객관적 성질 대신에 도구를 발견하며,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가 말했듯이 자연이나 우주 대신에 인간 그 자신을 조우하게 된다.
373
갈릴레오의 발견은...
세계를 옮기기 위해 지구 밖의 한 점을 원했던 아르키메데스의 희망이 이제 완전히 실현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다.
오늘날 우리가 물리학에서 무엇을 행하든지 간에, . ......
우리는 항상 자연을 지구 밖 우주의 한 점의 관점에서 다룬다. 아르키메데스가 서 있기를 원했던 곳에 실제로 서지 못하고, 인간의 조건 때문에 여전히 지구에 구속되어 있는 우리는 마치 외부, 즉 아르키메데스적 점으로부터 지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양, 지상에서 그리고 지상의 자연 안에서 행동하는 방식을 발견했다.
374
새로운 천체물리학의 모든 법칙은 아르키메데스적 점의 관점에서 만들어졌다. 이 점은 아마도 지구로부터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으며 아르키메데스나 갈릴레오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지구에 가하고 있다.
차라리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아르키메데스적 점을 지구로부터 한 걸음 더 멀리 옮겨, 지구나 태양 모두 보편적 체계의 중심이 될 수 없고 우주 속의 한 점이 되게 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더 이상 태양에 구속되어 있다고 느끼지 않으며 우주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구체적 목적에 따라 편리하면 어디서나 그 준거점을 선택할 수 있다.
375
무중심적 세계관은 “제한된 지금의 순간에 모든 물질은 동시에 실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시·공간에 현상하는 존재가 절대적 실재성을 가진다는 사실조차도 부정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서 개념화되었다.
근대를 선도했던 것은, ...천체의 궤도를 지구가 아니라 태양에서 관찰하도록 해주었던 소망이 아니며, ... 새롭게 지각한 지구와 세계에 대한 사랑도 아니었다. 반대로 세계에 대한 이 사랑은 근대에서 승리한 세계소외의 첫 희생물이 되었다. 즉 ‘행성을 바라보면서 태양에 서 있는 남성적인 인간’의 코페르니쿠스적 이미지는 단순한 이미지나 제스처 이상으로서, 실제로는 지구상에 머물면서도 우주의 관점에서 사유하는 인간의 놀라운 능력을 암시하는 것이었으며 더 나아가 우주의 법칙을 지상행위의 지도원리로서 이용하는 놀라운 인간의 능력을 암시하는 발견이었다. 근대 자연과학 발전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지구소외와 비교해볼 때, 지구 전체의 발견에 내재하는 지상적 근접성의 폐지와 전유 및 부의 축적이라는 이중과정에서 산출된 세계소외는 사소한 의미만을 가질 뿐이다.
376
세계소외가 근대사회의 방향과 발전을 규정했다면, 지구소외는 근대과학의 기호가 되었다.
대수학으로서 수학은 “공간성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성공했다. 근대 수학은 인간을 지구에 묶인 경험의 한계로부터 해방시켰으며 인식능력을 유한성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
오히려 완전히 비플라톤적으로 기하학을 대수학적으로 다루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지상의 감각자료와 운동을 수학의 기호로 환원하려는 근대의 이상을 보여준다. *대수학(代數學, Algebra): 수 대신에 문자사용, 수학법칙을 간명하게 나타냄. 방정식 문제해결에서 시작함
그러나 마음의 눈으로도 ‘볼 수’ 없는 실재를 생각하는 가능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 과학의 도구보다 훨씬 새롭고 중요한 정신적 도구인 수학이 ‘실험’으로 자연을 탐구하고 접근하는 전혀 새로운 양식의 길을 열어놓았다는 사실이다. 실험을 통해 인간은 지구에 묶인 경험의 족쇄로부터 새롭게 획득한 자신의 자유를 실현했다. 다시 말하면 자연현상을 주어진 대로 관찰하기보다 자연을 자신의 정신조건 아래, 즉 자연을 우주의 천체물리학적 관점 또는 자연 외부의 우주의 관점에서 획득한 조건 아래 두었다.
377-378
이데아의 세계에서는 단순 이미지와 그림자들, 즉 사라질 질료들은 더 이상 영원한 존재의 출현을 방해하지 못하며, 이 영원한 존재의 현상은 이곳에서 인간의 감각과 사멸성으로부터 순화될 뿐만 아니라 질료의 소멸성으로부터도 순화되어 구제되고 안전해진다. 그러나 수학과 이데아의 형상들은 지성의 산물이 아니라 감각자료가 감각기관에 주어지듯이 정신의 눈에 주어진 것이다. 신체적 시각과 훈련받지 않은 많은 사람의 정신에 감춰진 것을 지각하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은 참된 존재 또는 참되게 현상하는 존재를 지각했다. 현대성의 발생과 더불어 수학은 ....오히려 현상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수학은 이제 더 이상 철학, 즉 존재를 그것의 참된 현상에서 탐구하는 학문의 시작이 아니며, 그 대신 인간정신의 구조를 탐구하는 ‘과학’이 되었다.
378
데카르트의 분석적 기하학이 공간과 연장, 곧 자연과 세계의 연장 실체(res extensa)를 다루고 “그것들의 관계는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기하학적 공식으로 반드시 표현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수학은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을 인간의 정신구조와 동일한 유형으로 환원하고 번역하는 데 성공했다.
물리학은 자신의 완성을 위해 수학의 원리 외에 다른 원리가 필요하지 않은 학문으로 발전했다.
이제 현상들은 수학적 질서로 환원될 수 있는 한에서만 구제될 수 있다. 수학의 기능은 감각적으로 주어진 자료에서 나타나는 이상적 척도를 정신에 제시함으로써 진정한 존재의 계시를 위해 인간의 정신을 준비시키지 않고 오히려 이 자료를 인간정신의 척도로 환원시킨다.
379
거리에 내재하는 힘을 통해 모든 현상을 수적 관계로 환원시킨 결과물이다.
이렇게 멀리 떨어진 조건에서 사물의 집합은 모두 단순한 다수로 변형되며, 모든 다수는 아무리 무질서하고 비정합적이며 뒤섞여 있다 하더라도 수학의 곡선과 동일한 타당성과 중요성을 가지는 유형과 배치형태에 맞아떨어진다. ... “몇몇 대상을 포함하는 우주를 어떤 종류의 수학적 그물망으로 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우주를 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자연에 내재하는 아름다운 질서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인간정신이 인식에서 감각을 능가하는 능력을 지녔거나 진리의 인식기관으로 적합하다는 확증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보편수학(普遍數學)으로의 과학의 근대적 환원(reductio scientiae ad mathematicam)은 감각이 가까운 영역에서 목격했던 자연의 증거를 파기했다.
그가 본 것은 ‘그것의 방향이 언제나 균일하게 하나의 규칙으로만 정의되는 기하학적 선’의 전개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의 무기력한 분노와 다르지 않다.
37. 보편과학 대 자연과학
380
우리 역시 과학과 기술에 의해 철저하게 결정된 세계에서 살게 된 것은 몇십 년도 되지 않았다. 이 세계의 객관적 진리와 실용적 노하우는 지상의 ‘자연’법칙과 구분되는 우주의 보편법칙에서 얻어지며, 준거점을 지구 밖에서 선택함으로써 얻어지는 지식은 지상의 자연과 인공세계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우주적 기원과 우주적 차원을 가진 과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수단을 발견했다. ...
자연과학은 자연을 우주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자연을 완전히 지배하고자 한다. 이와 달리
보편과학은 자연파괴와 함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종식시킬 수 있는 위험이 명백한데도 우주의 과정을 자연 안으로 끌어들였다.
인간의 파괴력이 엄청나게 증가했고, 파괴력에 상응하는 창조적 힘이다.
381
우리는 머지않아 과거에 가장 위대하고 심오하며 신성한 자연의 비밀로 여겨진 것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고, 기적과도 같은 생명을 창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구와 자연과 인간의 진화를 어떻게 설명하든 간에, 지구와 자연은 지구를 초월하는 ‘우주’의 어떤 힘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고 이 힘의 작용을 이해하려면 같은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그 힘을 모방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말이다.
지구물리학이 아닌 천체물리학이, ‘자연’과학이 아닌 ‘보편’과학이 지구와 자연의 마지막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 이 사태의 본질이다. 우주의 관점에서 지구는 단지 하나의 특수한 사례이자 그 자체로 이해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주의 관점에서 물질과 에너지는 분명하게 구별될 수 없고 ‘동일한 기본 물질의 서로 다른 형태’일 뿐이다.
382
‘보편적’이라는 단어는 이미 갈릴레오에게서, 더 분명하게는 뉴턴 이래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리의 태양계를 넘어서도 타당하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비슷한 일이 철학에서 유래하는 다른 단어에게, 즉 ‘절대시간’ ‘절대공간’ ‘절대운동’ 또는 ‘절대속도’ 등의 용법으로 쓰이는 ‘절대적’이라는 말에도 일어났다. 이 용법들에서 ‘절대적’이라는 단어는 우주에서 실제로 나타나는 시간, 공간, 운동, 속도를 의미하는데, 지구에 묶인 시간, 공간, 운동, 속도는 그에 비하면 ‘상대적’이다.
보편적인 것에 대한 철학자들의 오랜 열정은, 인간이 지구의 조건에서 살지만 동시에 외부의 점에서 지구를 생각하고 지구에서 행할 수 있는 때가 온다는 것을 최초로 암시한 것으로, 마치 자신들 혼자만 이런 불길한 예감을 가진 것처럼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우주의’ 절대적 관점에서, 철학자들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을 행할 수 있는 반면, 그는 동시에 보편적이고 절대적 관점에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림으로써 전통철학의 기준이나 이상을 실현하고 동시에 파괴한다는 것이 유일한 문제이고 ... 땅과 하늘의 오랜 이분법 대신 우리는 인간과 우주, 이해하는 정신의 능력과 참된 이해 없이 발견할 수 있고 다룰 수 있는 보편적 법칙이라는 새로운 이분법을 가진다.)
384
데카르트가 근대철학의 아버지라면 갈릴레오는 근대과학의 시조다.
근대철학은 이전의 어느 철학보다 그 발생과 발전과정에서 특수한 과학적 발견의 덕을 보았다.
여러 세기 동안 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었던 진리였지만 이제 모든 사람에게 현실이 된 세계의 최종적인 진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근대인의 세계소외가 현대철학의 주관주의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385
철학자의 정신을 오랜 형이상학적 질문에서 다양한 자기반성들로 돌리게 만든 것이 관념들이 자동적으로 발전해서 자라난 힘이라고 믿는 것이다. 철학만이라도 전통을 고수했다면 우리 세계는 달라졌을 거라고 믿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리석다.
근대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의 장본인은 데카르트가 아니라 갈릴레오다.
그 이후 출발부터 염세주의가 지배적이었던 근대철학의 분위기와 최근까지 매우 낙관적이었던 과학 분위기 사이의 심각한 불일치는 해소되었다.
38. 데카르트적 회의의 발생
386
근대철학은 테카르트의 회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회의하라라는 명제, 곧 회의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회의(懷疑 doubt, skepticism, incredulity, unbelief)
회의는 데카르트 이후 모든 사상을 움직이는 자명하지만 보이지 않는 동인, 즉 모든 사유가 중심으로 삼았던 비가시적인 축이 되었다. 데카르느 이후 근대철학은 회의의 표현과 결과들로 이루어졌다.
근본적이고 보편적 의미에서 테카르트적 회의는 원래 새로운 현실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성이 감각에 폭행을 감행한 경우,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능력들 중에서 선택하여 생득적 이성을 ‘쉽게 믿는 여왕’으로 만들면 된다. 물리적 세계관을 변화시킨 것은 실제로 이성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도구인 망원경이었다. 새로운 지식은 관조나 관찰, 사색을 통해서가 아니라 만들고 제작하는 호모 파베르의 능동적 개입 때문에 발생했다. 인간은 자신이 신체와 정신의 눈으로 본 것을 신뢰할 경우에 현실과 진리는 인간의 감각기관과 이성에 드러난다고 믿음으로써 기만당해왔다.
387
이성과 이성에 대한 믿음은 (환상일 수도 있는) 개별적인 지각에 의존하지 않고, 전체로서의 지각 작용-공동감각에 의해 서로 결합되고 통제되는 덕분에 인간이 주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는 확실한 가정에 무척 의존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388
데카르프적 회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그 보편성이다. 어떤 사상이나 경험도 회의를 비켜갈 수 없다.
회의의 보편성은 감각의 증거로부터 이성의 증거를 거쳐 신앙의 증거로까지 확산된다.
진리가 자기를 스스로 계시한다는 것은 이교도와 고대 유대인, 기독교와 세속철학의 공통된 신조였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근대철학이 매우 격렬하게...르네상스의 열정적인 고대 부흥과 재발견을 무시한 이유다.
389
새로운 발견들로 인해 세계와 우주에 대한 인간의 확신은 존재와 현상의 명백한 분리에서 알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현상은 인간이 영원히 알 수 없는 참된 존재를 단지 숨기거나 은폐한다고 생각하는 전통적 회의주의에서처럼 그렇게 정적이지 않다. 존재는 매우 능동적이고 힘이 있다. 존재는 자신의 현상들을, 이 현상들이 착각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창조한다.
390
테카르트 철학은 두 가지 악몽으로 괴로워한다. 악몽은 근대철학의 악몽이 되었다.
(1)우리가 감각이나 공동감각 또는 이성을 신뢰할 수 없다면, 당연히 우리가 현실이라 간주하는 모든 것은 꿈에 불과하다.
(2)신이 우주의 지배자라는 사실보다 오히려, 악령, 기만하는 신이 자의적으로 악의를 가지고 인간을 배반한다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다. 악령의 가장 악마적 성격은,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만 동시에 어떤 진리에도 이를 수 없고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기능을 가진 피조물을 창조했다는 데 있다.
근대가 잃은 것은 진리나 현실 또는 신앙에 대한 능력이 아니고 더욱이 감각과 이성의 증거를 반드시 수용하는 태도도 아니다.
근대가 잃은 것은 이런 능력이 이전에 갖고 있던 확실성이다.
종교가 잃은 것은 구원이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확신이었다.
391
근대의 첫 세기에 발생한 도덕적 기준의 근본적 변화에 영감을 준 것은 가장 중요한 집단이었던 신과학자 들의 필요와 이상이었다.
근대의 주요한 덕, 즉 성공, 근면, 진실 등은 동시에 근대과학에서 가장 중요한 덕이었다.
과학자들은 실험과 도구로 자연을 가두었고, 그 비밀을 강제로 알아낼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찾기 위해 이를 조직했다.
이론은 그리스인들 이후 자신 앞에 열려 있는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받아들였던 관찰자의 관조적 시선을 의미했다.
392
이론의 실질적인 효력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그러나 이제 이론은 가설이 되었고, 가설은 성공할 때에만 진리가 된다.
보편적 회의의 데카르트적 해결 또는 내적으로 연관된 두 악몽, 즉 모든 것은 꿈이고 어떤 실재로 존재하지 않으며, 신이 아닌 악령이 세계를 지배하고 인간을 조롱한다는 악몽으로부터의 구원은 방법과 내용의 차원에서 보면 진리에서 진실성으로, 실재에서 신뢰성으로 전환하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것이 의심스럽더라도 적어도 회의한다는 것 자체는 확실하고 실재적이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사유 자체의 자기 확실성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dubito ergo sum ‘나는 회의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의 단순한 일반화였다.
어떤 것을 회의할 때 나는 내 의식속에서 회의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의식한다라는 단순히 논리적인 확실성으로부터 테카르드는 인간정신에서 진행되는 이 과정들이 그 자체 확실성을 가지고 또 자기반성의 탐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39. 자기반성과 공동감각의 상실
393
자기반성은 자신의 신체나 영혼의 상태에 관한 인간정신의 반성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의 인지적 관심이다.
데카르트는 새로운 자기반성의 방법이 보장하는 확실성은
‘나는 존재한다’의 확실성이라고 믿었다.
394
지각과 추론은 신체에서 진행되는 생물학적 과정과 다르지 않고, 이 과정들을 의식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이 작용하는 하나의 실재임을 확신할 수 있다.
395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는 신의 존재가 아닌 신의 선함을 증명해야 했다.
그런데 신의 선함에 대한 회의, 즉 기만하는 신의 관념은 새로운 새계관의 형성과정에서 겪게 된 기만당하는 경험에서 직접 발생했다.
인간은 우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인간이 창조된 의도와 목적을 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신정론이 내세우는 신의 선함은 엄밀히 말해 기계장치 신이다. 테카르트 철학에서는 오로지 이 불가해한 선으로 인해 실재가 구제되면 (정신과 연장의 공존) 마찬가지로 라이프니츠의 철학에서 인간과 세계사이의 예정조화를 가능하게 한다.
396
데카르트의 자기반성의 탁월성, 따라서 그의 철학이 근대의 정신적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이유는 두 가지로 제시된다.
(1)그는 세계의 모든 대상을 의식의 흐름과 과정으로 환원하는 수단으로서 비실재의 악몽을 사용했다. 자기반성을 통해 의식이 발견하는 ‘보이는 나무’는 더 이상 보고 만질 수 있는 나무가 아니다. 그 자체로 동일한 현상을 가진 변경불가능한 실재가 아닌 것이다 단순히 기억하거나 상상할 때의 사물처럼 의식의 대상이 된 실재는 이제 의식과정의 한 부분이 된다. 우리의 마음이 물질을 에너지로, 객체를 원자과정의 소용돌이로 해체하기 위해 객관적 실재를 정신의 주관적 상태로, 더나아가 정신의 주관적 과정으로 환원시키는 이 방식보다 더 큰 역할을 한 것은 없을 것이다.
(2)데카르트 철학이 근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두 번째 이유는 보편적 회의로부터 확실성을 확보하는 테카르트의 방법이 새로운 물리학이 도출해낸 결론과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주어져 있는 은폐된 진리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자신이 만든 것은 알 수 있다. 이는 가장 일반적이고 또 가장 널리 수용된 근대의 태도다.
397
공동감각은 원래 시력이 세계를 볼 수 있게 하듯이 사적인 감각들을 공동세계에도 적합하게 만들던 감각이었는데, 그것이 이제 세계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내적인 능력이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는 것은 세계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신구조다. 엄격히 말해 이 구조도 그들이 공통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근대는 이 능력을 공동감각의 추론이라 부른다. 이 추론은 정신이 자신과 놀이를 하는 것이다. 이 놀이는 정신이 모든 실재성을 상실하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인식’할 때 발생한다. 이 놀이의 결과는 억지로 이끌어낸 강요된 ‘진리’다.
인간이 공동으로 가지는 세계에 적합한 감각을 가지게 되는데, 이 감각을 박탈당한 인간은 단지 추론할 수 있는 동물,
즉 ‘결과를 계산할 수 있는 동물’에 불과하다.
인간은 자신의 보편적 세계관을 실제 환경에 적용하고자 하는 순간, 자신이 다른 세계이자 혼란된 세계에 살고 있음을 발견해다. 이 난관에 대한 데카르트의 해결은 아르키메데스적 점을 인간 안으로 옮기고,
인간의 정신 자체를 궁극적인 준거점으로 채택하는 것이었다.
보편수학으로서의 과학의 근대적 환원은 감각에 주어진 것을 수학적 등식의 체계로 대체하는 것을 허용하는데,
이 체계에서는 모든 실재의 관계들이 인위적 기호 사이의 논리적 관계로 환원된다.
근대과학이 스스로 관찰하고 싶은 현상과 대상을 ‘생산하는 과제’를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대체 덕분이다.
40. 사유와 근대의 세계관
399
데카르트는 아르키메데스적 점을 인간의 정신 안으로 옮겼다.
이로 인해 인간은 어디를 가든 이 점을 가지고 다닐 수 있었고 따라서 주어진 실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질량과 에너지의 등식 같은 수학의 등식은 질량이 에너지로 그리고 에너지가 질량으로 실제로 전환될 수 있게 한다.
400
이 악몽은 비(比)유클리드(non-Euclidean) 수학체계가 아인슈타인의 이론에서 놀랄만한 타당성을 확보하기 이전에 아무런 경험적 의미나 적용가능성이 없었는데도 발견되었다.
인간정신이 짜놓은 모든 유형을 실제로 ‘입증’한다면, 인간은 당분간 ‘순수수학과 물리학의 예정조화’, 즉 정신과 물질, 인간과 우주 사이의 예정조화를 재확인했다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천문학의 관점에서 자연을 탐구하면 천체계를 갖게 될 것이고 지구의 관점에서 천체를 탐구하면 지구 중심의 지구계를 갖게 될 것이다.
401
인간의 정신은 도구를 고안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조건 아래서 자연에 대한 실험을 행했다. 칸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연에 자신의 법칙을 부과했다.
그런데 회의는 아르키메네스적 점을 인간 자신 안으로 옮기는 천재적인 기지로 인해 적어도 자연과학의 영역에서는 수세기 동안 완화되었다.
인간이 자연에게 제기했던 모든 물음은 수학적 양식으로 그 답이 주어졌다. 그런데 수학의 유형에는 어떤 모델도 일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델은 우리의 감각경험에 따라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402
기술이 근대과학의 가장 추상적 개념인 ‘진리’를 증명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단지 인간이 늘 자기 정신의 결과물만을 적용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체계를 이용하든 인간은 늘 생산과 행위를 이끄는 원리로서만 그 체계를 채택할 수 있을 뿐이다.
현재의 과학이 자연에 주어져 있는 ‘진정한 질서’를 다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기술적 성취를 내세운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이 정식화될 수 있는 순환의 오류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과학자는 실험하기 위해 가설을 세운 다음, 이 실험을 이용하여 그 가설을 검증한다.
403
실험의 세계는 항상 인공적 현실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인공현실은 불행히도 인간을 한 번 더 정신의 감옥 속으로 즉 자신이 만든 구체적 한계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는 실험을 통해 확인된 자연의 작용에 따라 예측되는 우주, 우리가 기술적으로 현실화할 수 있는 원리에 따라 구성된 우주가 어떤 방식으로도 재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새로운 점은 우리가 이미지도 만들 수 없는 비물질적인 것을 평가할 때 그 준거점으로 삼는 물질적 사물, 즉 우리가 보고 표상하는 물질적 사물들도 마찬가지로 ‘재현될 수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우주가 ‘실천적으로 접근불가능할뿐만 아니라 사유불가능하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테카르트의 보편적 회의는 이제 자연과학의 중심까지 영향을 미쳤다. 근대의 물리학적 우주가 표상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순수이성의 추리로도 알 수 없고 사유할 수 없다고 판명되면, 인간이 자기 정신 안으로 도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404
The End. 2022. 9.20
'세미나 발제문 > 한나 아렌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역자서문, 해제 (13-24, 25-43)2022. 10. 4 /여여 (1) | 2022.10.04 |
---|---|
제 6장 활동적 삶과 근대 (357-404, 35절-40절) (0) | 2022.09.27 |
인간의 조건 4장 / 작업 / 2022. 9. 6. /여여 (0) | 2022.09.05 |
전체주의의 기원 제 13장 / 이데올로기와 테러 / 여여 / 22.07.04 (0) | 2022.07.04 |
전체주의의 기원2 / 12장 권력을 장악한 전체주의 / 22.06.20 / 화니짱 (0) | 2022.06.20 |
- Total
- Today
- Yesterday
- 무엇을할것인가
- 신학정치론
- 공화국
- 헤게모니
- 루이 알튀세르
- 옥중수고이전
- 옥중수고
- 개인심리
- 로마사논고
- 레비스트로스
- 브루스커밍스
- 마키아벨리
- 프롤레타리아 독재
- 안토니오그람시
- 알튀세르
- 검은 소
- 집단심리
- 생산관계
- 생산양식
- 그람시
- 의식과사회
- virtù
- 이탈리아공산당
- 스피노자
- 딘애치슨
- 이데올로기
- 야생의사고
- 루이알튀세르
- 한국전쟁의기원
- 계급투쟁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