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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한나 아렌트)
제1장 1930년 ; 동화의 좌절과 정치적 자각(191-258)
2022. 12.18.일. 저녁 9:40
Gotthold Ephraim Lessing (22 January 1729 – 15 February 1781) was a philosopher, dramatist, publicist and art critic, and a representative of the Enlightenment era.
His plays and theoretical writings substantially influenced the development of German literature.
계몽주의와 계몽주의와 유대인 문제
레싱의 인간적 가치: 관용과 진리 문제
근대 유대인 문제는 계몽주의에서 시작된다.
계몽주의의 공식화와 이에 대한 해답은 유대인의 행태와 동화를 규정한다.
동화의 각 사례는 역사 속에서 발생하고 그래서 역사에 특별하고 우연적인 단계에 특정 문화의 적응과 수용으로서가 아니라 다만 진리에 대한 지속적인 통찰로서 나타날 필요가 있다.
레싱의 경우 똑같은 인간이 모든 인간 내면 깊숙이 있다는 레싱의 생각, 즉 인간의 모습을 지닌 모든 것에 대한 존경은 결코 순수한 형식적 특성으로서 이성의 일반적 타당성으로부터 단독으로 유래될 수 없다.
오히려 관용의 이념은 레싱의 진리 개념과 긴밀하게 연계된다.
그의 진리 개념은 신학 사상과 역사 철학의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진리를 추구하는 인간이 진리보다 더 중요하다
누군가 소유한 진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가 진리 이면에서 얻고자 행한 진정한 노력이 인간적 가치를 규정한다.
인간은 인간적 가치를 위해 상대화된 진리보다 더 중요해진다.
이 인간적 가치는 관용에서 발견된다.
레싱으로 대변되는 독일 계몽주의는 종교적 계시로서 진리를 상실한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상실은 긍정적인 것,
즉 진정 인간적인 것의 발견으로 이해된다.
역사의 진리는 우연적이며 이성의 진리는 필연적이고 우연한 사건은 몹시 불결한 넓은 시궁창으로 인해 필연성과 분리된다.
역사의 진리는 증거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진리의 사실성과 증거는 항상 우연적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증거도 마찬가지로 역사적이다.
역사의 진리는 이성의 진리를 확인하는 한에서만 참이다.
역사의 우연성은 사후에 이성을 통해 그 품격을 유지할 수 있다.
이성은 발현된 역사가 이성과 일치한다는 것을 이후에 결정한다.
그러나 계시가 계시일 수 있고 그래야 한다면, 계시는 진리의 침해라기보다 오히려 이성의 자리 자체의 진리를 하나 이상 증명해야 하며 이성은 계시에서 진리를 넘어서는 것들을 발견해야 한다.
종교는 ‘성서’ 이전에 존재하고 성서와 무관하다
명제, 독단으로서 진리 또는 객관적이고 안전하게 유지되는 소유물로써 진리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종교성은 본질적인 것이다.
얼핏 보면 이것은 경건주의의 계몽적 견해에 불과한 것 같다
‘성서’에 대한 계몽주의의 불신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내면성에 대한 이런 강조에 기절을 둔다
‘성서’의 계시가 드러내는 객관성이 더 이상 확실하지 않기에 순수한 내면성이 강조된다
복음주의자들과 사도들이 종교를 가르쳤기에 종교가 참된 게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종교가 참되기에 종교를 가르쳤다
종교의 진리가 성서를 선행하기에 진리는 더 이상 객관적으로 확실하지 않고 탐구되어야 한다.
경건주의적 종교성에 대한 계몽적 수용은 동시에 경건주의를 파괴한다.
새로운 것은 내면성에 대한 강조가 아니라 오히려 내면성과 객관성이 서로 대립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역사는 레싱의 작품에서 두 가지 이질적인 맥락으로 나타난다
첫째, 역사는 진리에 대한 영원한 탐구이다.
둘째, 역사는 인류의 교육자이지만 인간의 성숙으로 불편해지고, 불필요해지고 끝난다
인간이 일단 자신의 이성을 알게 되면 인간은 역사에 대한 최초의 이해를 통해 역사를 새로이 시작하고 정립하게 된다.
이런 이해는 레싱의 사상에 대한 멘델스존의 수용에서 여전히 결정적인 유일한 이해이다.
인간은 하느님이 자신에게 부여하는 교육을 통해 가까스로 성숙하게 됐다.
인간의 성숙은 두 번째 역사의 시작을 명시한다.
이 역사 이론은 결코 기독교의 세속화가 아니고 오히려 처음 처음부터 오로지 인간에 주목한다.
진리는 실제로 세속적 인간의 관심사가 아니기에 이 역사 이론은 진리를 가능한 한 미래로 떠넘긴다
진리는 오직 하나님에게 중요하며 인간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멘델스존의 계몽주의 수용: 유대교와 영원한 진리
계몽주의를 수용한 멘델스존의 경우 교양은 여전히 유대교에 대한 절대적 충성의 맥락 내에서 나타난다
멘델스존은 유대교를 변호하면서 자신만의 교양의 가능성을 주장해야만 했다.
계몽주의가 주장하는 이성의 절대적 자율성은 그의 목적에 기여했다.
스스로 사유할 수 있다는 레싱의 이념은 멘델스존의 이상인 교양의 기초이다.
멘델스존의 경우 이성은 역사와 더욱 관계가 없으며 역사 속에 낯을 내리지 않는다.
멘델스존은 레싱의 역사철학 인류의 교육을 명백히 반박한다.
역사 지식은 단지 사유를 위한 해방, 즉 멘델스존의 교양에는 아직도 필요하지 않다
멘델스존은 자율적 이성이란 이념을 채택하면서 스스로 사유하고 여전히 모든 사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개념에 유일하게 초점을 맞췄다
반면, 레싱의 경우 이성은 인간적인 것을 발견하는 길이다.
멘델스존은 유대교에 대한 자신의 변명에서 새로운 기축 機軸을 이용하고 교의화한다.
멘델스존의 경우 유대교 오로지 유대교는 합당한 것과 동일하다,
즉 유대교는 또한 종교적 의무를 단독으로 요구하는 영원한 진리를 지니기 때문에 합당한 것과 동일하다
멘델스존은 다음과 같이 계속 말한다.
영원한 진리는 모든 성서와 관계가 없고 모든 시대에 이해될 수 있다.
영원한 진리는 유대교의 기초이다.
유대인은 영원한 진리 때문에 오늘날에도 자기 선조들의 종교에 여전히 연계되어 있다.
영원한 진리가 구약에서 발견될 수 없었다면 율법이나 역사적 전통은 어떤 정당성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영원한 진리는 관용의 기초이다.
멘델스존의 경우 모든 사람은 이성을 공유하며 모든 시대 모든 민족은 똑같이 이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 이르는 길은 상이하며 유대인의 경우 이것은 유대교의 수용뿐만 아니라 율법에 대한 엄격한 준수도 포함한다.
레싱은 독단으로서 종교를 종식시키기 위해 이성과 역사를 구별했다. 멘델스존은 이런 구분의 역사적 입증과 무관하게 어떤 영구적 내용에 기초해 유대교를 특별히 구원하기 위해 이런 구분을 사용하고자 시도한다.
이렇듯 유대인은 역사를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
돔은 유대인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다룬 독일의 첫 번째 작가이다.
그의 경우 유대인은 결코 하느님의 백성이거나 구약의 백성도 아니다.
역사가 이런 인간들을 파괴했다는 점을 제외하고 그들은 다른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다.
편견의 역사는 계몽주의 시대 이전에 민족에 영향을 미쳤다
역사는 여전히 편견에 사로잡힌 부끄러운 과거나 현재의 역사이다. 현재를 이 역사의 부담과 결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유대인을 해방시키고 통합시키는 임무가 된다.
프리드랜더의 동화주의: 세례를 통한 공적 통합
제 2세대 동화주의자들은 계몽주의에 파멸된 역사 이론을 여전히 고수했다.
이 동화주의자들은 멘델스존과 같이 더 이상 종교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에 참여할 모든 수단을 사용해 자신들의 노력에 유리한 이런 토양을 선용하고자 시도했다.
동화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부정하고 자신들과 관련해 특이한 모든 것을 통합의 걸림돌, 즉 안전한 인간이 되는 것에 걸림돌로 간주했다.
동화주의자들은 이성과 역사에 대한 멘델스존과 레싱의 구별을 채택하면서 이성에 유리한 결정을 내렸다
프리드랜더의 경우 이성과 역사의 구분은 더 이상 유대교를 구원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다만 유대교를 가능한 한 신속하게 제거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이었다.
프리드랜더는 계몽주의, 즉 모든 사람이 똑같이 공유하는 이성과 도덕 감정에 호소하면서 세례를 사회의 공적으로 적응하는 수단으로 추천했을 때 그런 조언을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조언을 받은 프로보스트 텔러는 냉담했다.
그리고 슐라이어마허는 그러한 반갑지 않은 손님들에게 강력하게 저항했다.
슐라이어마허는 자신의 종교의 특이한 것을 외국인들의 종교에서 필히 다른 것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었다
이성은 단지 부분적인 합의의 가능성을 제공했다.
그것은 종교가 아닌 시민권에 적용됐다.
슐라이어마허는 가능한 한 통합을 선호했다.
모든 사람이 원래 평등하다고 가정하고 그러한 평등을 복구하고 싶어 하는 계몽주의 형식은 하찮은 것이 되었다.
슐라이어마허는 유대인의 의식 규칙이 민법에 예속되고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헤르더 역사 해석의 역설: 역사 없는 민족
헤르더는 자신의 시대, 즉 계몽주의 시대에 대한 비판을 선도했다. 우리는 멘델스존이 레싱의 생각을 채택하면서 어떻게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각 개인의 고립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가를 보았다.
헤르더와 후기 낭만주의자들은 이 개념을 제거하고 레싱을 레싱이 선도했던 역사의 발전을 재개했다.
헤르더는 .... 한 인간은 ‘일련의 개인들’ 사이에서 살아간다(고 본다)
순수 이성은 결코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변경되고 변화하며 수많은 형태로 분배된다.
그것은 영원히 변화무쌍한 프로테우스이다.
헤르더는 수정된 형태이지만 레싱의 진리 개념을 영원한 탐구로 수용한다.
진리의 소유가 인간에게 적합하지 않기에 레싱이 진리를 영구히 평온을 제공하는 소유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듯이 헤르더는 순수 이성을 하나의 진리의 가능성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결과적으로 헤르더의 경우 이성과 역사의 관계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이성은 역사에 예속된다.
추상화는 역사를 지배하는 법칙을 실제로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의 지배, 즉 성숙해 스스로 존재하는 인간의 지배는 끝나려 한다.
신적인 것의 초월성은 영원히 상실되어 왔다
종교는 인간을 통해 그리고 인간을 위해 단지 자체의 목표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한 민족이 더 오래되면 될수록 그 민족은 다른 민족과 더 많이 달라진다
역사적 사건의 결과는 우선 사람과 민족들 사이에서 차이를 낳는다 헤르더는 독일에서는 처음으로 유대인 역사를 유대인이 구약을 간직함에 따라 본질적으로 특징을 지닌 역사로 가시화했다.
헤르더는 유대인이 역사를 해석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유대인의 역사를 하느님의 선민의 역사로 이해한다.
‘
헤르더의 경우 유대인의 이산 離散은 그들이 인류에 미친 영향에 시작이며 전제 조건이다.
헤르더의 생각에 옛날 옛적에 파괴된 예루살렘에 대한 애도와 메시아에 대한 희망은 유대인에게 사실의 증거이다.
유대인의 종교는 편견의 근원이나 멘델스존의 이성의 종교가 아니라 유대 인종에 양도할 수 없는 유산이다.
헤르더는 동시에 유대인의 역사가 모세의 율법에서 발생했고 그것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율법에 대한 복종 여부와 운명을 같이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헤르더는 다른 민족과 유대인의 똑같음을 유대인에게 인정하지 않고 대신 유대인의 이질성을 강조한다.
헤르더는 자기 선조들의 종교를 진정으로 신봉했기에 바로 이 종교에서 민족 통합의 상징을 찾는다
임무는 이제 다른 종교를 관용하거나 사회적으로 수치스러운 상황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일 내에서 다른 민족을 통합하는 것이다.
헤르더는 유대인이 비록 기생하는 방식이더라도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마저도 한 민족으로서 그들 역사의 일부로 이해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유대 민족과 관련해 기생적인 것을 생산적이게 만드는 것이다.
율법이 여전히 준수되는 때에도 그러한 동화가 어느 정도 가능한가는 정치 문제이고 그것이 전적으로 어느 정도 가능한가는 헤르더의 경우 인간화를 의미하는 교양 교육과 교양 문제이다.
인간성의 특징은 교양과 관용이란 두 개념을 통해 나타난다
헤르더는 계몽주의의 교양 개념에 대한 가장 예리한 논쟁을 유보한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그러한 개념이 어떤 현실감도 결여했다고 비난한다.
이런 교양은 인간이 태어나고 서 있는 현실을 망각하기에 인간은 가르쳐 낼 수 없다.
헤르더가 정의하는 교양을 통한 교육은 이런 선행하는 전례들을 단순히 모방하는 데 관심을 가질 수 없다.
결국 헤르더는 역사 심지어 가장 위대하고 가장 찬란한 역사의 특이성을 증명했다.
교양은 전례들을 이해함으로써 형성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고자 시도한다.
그러한 이해는 자체 내에
첫째로, 현실의 요청을 포함하며
둘째로, 과거와 거리 두기를 포함한다.
따라서 내용의 측면에서 볼 때 역사는 자신을 이해하는 누군가에게 구속력이 없다.
해르더는 역사를 특이하고 잠정적인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교양 기능은 이해 자체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미 없어진 것은 새로운 관용 이념의 기초를 제공한다.
모든 역사적 시대는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체의 운명을 지니며 어느 한 사람이 운명을 판단할 수 없다.
헤르더는 실제로 해석할 때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을 동화된 유대인에게 돌려주지만 모든 사건은 하느님 없이 발생했다.
따라서 그는 동화된 유대인으로부터 자신이 계몽주의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획득했던 자유를 박탈하지만 더 이상 하느님의 권능 아래 두지 않고 운명의 힘 아래 자유를 설정한다.
계몽주의는 역사를 취급한다는 점에서 역사의 내용과 어느 정도 직접적인 연결 고리를 최소한 여전히 유지한다.
헤르더는 역사에 대한 이해에서 사건의 우선순위를 두며 결과적으로 역사의 내용과 의무를 연계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유대인의 경우 역사의 내용을 파괴하는 것은 모든 역사적 기반의 상실을 의미한다.
유대인의 역사가 지닌 독특성은 역사 자체가 신전 파괴 이후 어떤 의미에서 사물의 연속성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헤르더는 교육받은 유대인, 즉 어떤 형태의 역사적 내용과 연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편견 없음을 강조한다.
유대인을 둘러싼 비유대인 세계는 교양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연속성의 결과로 여전히 역사의 내용에 예속되어 있다.
유대인이 한때 헤르더의 의미에서 교양을 형성하자 그들은 인류로 복귀한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해석에 따르면 인류란 이제 그들이 선민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 때문에 그들의 팔레스타인은 그들이 고귀한 노력으로 생활하고 활동하는 모든 것이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선
비유대인 세계에서 유대인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계몽주의의 본질적으로 비역사적인 주장에 따라 부침하는 점을 고려하면 유대인은 자신들의 역사적 상황을 이해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들은 이 기대에 거의 부응할 수 없다.
그들은 해방투쟁에서 어쩔 수 없이 지속적으로 목숨을 건 도약을 감행하고 자신들의 통합을 향한 도약을 시도해야만 한다.
그들은 자연이 지체의 과정을 밟게 하는 것, 즉 단계적 발전을 신뢰할 수 없다.
그들은 이방인 세계에서 그러한 발전을 시작할 명확한 곳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인은 역사 속에서 역사 없는 민족이 되어 왔다
역사에 대한 헤르더의 이해는 유대인으로부터 그들의 과거를 박탈한다. 유대인은 다시 한번 무와 직접 대면한다.
그들은 역사적 현실 내에서 유럽의 세속화된 세계에서 어쩔 수 없이 어떻게든 이 세계에 적응하고 자신을 형성해야만 한다.
교양은 그들이 이 현재에도 살아남기 위해 갖게 되는 유일하게 가능한 수단이다.
교양이 무엇보다도 과거의 이해를 의미한다면, 교양 있는 유대인은 이방인의 과거에 의존한다.
과거를 명백히 역사라는 것은 헤르더가 교양 있는 사람을 위해 주장하는 거리 두기 효과 에 대한 긍정적 표현이다.
따라서 역사는 역사의 이질감으로부터 벗어나 유대인의 특별하고 정당한 관심사로 등장한다.
사교육 기관을 반대하며
부모들은 학교가 자식들에게 유대인 특유의 자기 의식을 배양시켜 주기를 바랐다
현재 상황에는 온갖 시각의 차이를 넘어서 가장 광범위한 기초 위에 형성된 유대인 학교 제도가 요구된다.
오늘날 독일 학교에서 전학을 온 어린이들은 이런 방식에서만 한 제도에서 배제되지 않고 진정 다른 조직에 포함될 수 있다.
문제가 스스로 해결되도록 방치한다면, 부유한 유대인 가정은 사교육 기관으로 뭉쳐 고등교육을 제공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는 현 상황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배제 정책을 정당화하기도 할 것이다.
한 어린이에게 이런 운명을 부담지우는 것은 그를 적대적인 반유대주의 환경에 노출시키는 거시기에 궁극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
사교육 기관은 등장할 것이다.
이것은 독일계 유대인의 정서에 친숙한 누구에게나 분명하다
유대인 학교는 유대인 전체에 유용하며 미래 세대에 영향을 미칠 가장 중요한 제도가 될 것이다.
미래 세대는 동화될 때까지 유대교의 역사를 알 뿐만 아니라 유대인 동화의 역사와 반유대주의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유대인 학교는 인종적 순수성의 원리를 고수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을 수용하도록 예비해야 한다.
우리 어린이들은 개토나 독일 제 대중 사이에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유대인의 역사에서 새로운 것이다.
유대인 학교만이 이 전례 없는 상황에 대처할 희망을 가진다
정통파 학교 제도
우리는 독일 내 정통파가 얼마나 인상적인 학교 제도 특히 베를린의 아다스 이스라엘 회중을 건설하고자 노력했음을 언제 언급해야 했다. 이런 학교 제도의 설립은 정통파와 시원주의 유명 인사들의 노력 덕택이다.
최초의 동화: 라엘 파르하겐 서거 100주년 후기
1. 계몽주의 시대 이후 동화 문제
동화는 유대인이 역사상의 유럽 세계에 참여한 것을 의미한다.
현실 세계에서 유대인의 역할은 사회학적으로나 지적 역사적 관점에서는 명료하게 결정될 수 없다.
동화는 항상 계몽주의로의 동화를 의미했다.
계몽주의는 유대인의 해방을 약속했고 무엇보다도 동등한 인권을 요구하며 유대인을 옹호했다.
이후 유대인은 거의 대부분 계몽주의 옹호자가 됐다.
유대인 문제는 개별 유대인이 직면한 하나의 문제가 되었다.
2. 개별 유대인 동화 문제
라엘 헬리에테 헤르츠 도르테아 슐레겔과 메이어 자매는 이런 개개인의 범례이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유대교를 회피하려는 욕구를 공유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남긴 흔적을 어떻게 지울지를 이해했고 사회 세계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사람들은 유대교로부터 달아나야 한다(라헬)고 강조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기질은 이 여성들의 특징이다.
3. 동화의 법례인 라헬
그는 자기 혼자에게만 해당되지 않는 상황에 걸맞은 범례, 그가 말한 것보다 오히려 삶의 여정 자체를 통해서 범례가 되었다.
유대교는 라엘에게 절름발이, 너무 짧은 한쪽 다리처럼 타고난 것이었다.
라헬은 마치 최초 인간의 역설적 상황 속에 있기라도 한듯이 선입견을 갖지 않았다.
라헬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만나고 있는 듯이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전유해야만 했다.
라헬은 전례 없음에 좌우됐다.
라헬은 자신의 무지를 주장했기에 역사적으로 주어진 특정 세계의 관용과 불확정성을 실제로 기록했다.
이것은 라헬이 사물 사람 상황을 기술하는 인상적인 방식의 원천이었다.
모든 것은 라헬에게 마치 처음인 것 같이 나타났다.
라헬은 모범과 전통을 지니지 않았으며 어떤 단어들이 연계되어 있는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헬은 진정 독창적이었다.
라헬은 결코 신속한 표현으로 사물의 의미를 결코 모호하게 하지 않았다.
라헬은 무의미한 연구나 결혼을 통해 이렇게 자신의 삶에 의존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라헬은 백작의 약혼녀가 됐을 때 동화를 한때 시도했다.
라헬의 동화에 대한 내력은 그의 개인적인 사랑 이야기가 됐다.
하나의 정향을 자명하게 만드는 사회적 지위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라헬이 세계와 대면할 유일한 가능성은 그 자신의 삶 속에 있었다.
라헬이 이런 삶과 경험에 의존했음은 그가 현실을 돌파하는데 궁극적으로 성공하는 전제 조건이었다.
그러나 전제 조건 이상은 아니었다
라헬은 실제로 이방인의 역사에 참여하기 위해, 즉 이방인 세계에 살기 위해 자신 자신의 경험과 소통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4. 라엘의 행운: 괴테
그가 괴테에게서 중재인을 찾지 못했다면, 이런 시도는 완전히 무기력하고 방향 감각을 상실했을 것이다.
그는 이 중재자를 사랑할 수 있었으며 괴테의 본을 따랐다 라엘은 한동안 자신의 삶의 역사를 갖지 못했고 파괴성 앞에서 완전히 속수무책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삶을 통해 이런 삶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면서 자신을 이해하게 됐다.
괴테는 대상 세계를 인정하라고, 즉 목적 없이 무절제하게 독창성을 추구하지 않도록 라헬에게 오랫동안 요구했다.
라헬은 괴테를 이해했고 괴테를 통해 자신을 이해했기에 괴테는 라엘에게 전통의 대리인과 같은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는 괴테로 개종했고 괴테와 협력했으며 이로써 이제 독일 역사에서 한 위치를 차지한다.
라헬은 괴테로부터 ‘존재의 기술’(슐레겔)을 획득하지 못했지만, 거장 수준으로 자신의 삶을 전달하는, 즉 자신을 드러내는 기술에 통달했다. 라헬은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그들과 연대할 수 있었다.
5. 라헬과 살롱
낭만주의와 연속성을 지닌 계몽주의에 담지자는 시민들이다.
시민들은 더 이상 어떤 사회 계층에 속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대변하지 않는다.
살롱은 라헬의 사회적 기회이고 정당화이다.
라헬은 그곳에서 자신이 살 수 있는 기초, 즉 자신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공간을 발견한다.
살롱은 그의 사회적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 지속되는 한 라헬은 결혼이나 개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1811년 라엘은 파른 하겐과 결혼하고 기독교로 개종한다.
파른하겐은 라헬의 삶, 편지, 인격을 보존해 후손들에게 이것을 넘겨주는데 자신의 생애 대부분을 바쳤다
젊은이들의 직업 재분류
유대인 젊은이들의 직업 재분류는 그들이 우파이든 좌파이든 독신자이든 무신자이든 시온주의자이든 동화주의자이든 관계없이 그들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1. 사람들은 유대인 분류가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항상 자각한다.
재분류를 반유대주의에 저항하는 보편적 만병통치약이라고 설교하기 시작했다.
1900년경 유대인 자선단체는 이런 불행한 개개인을 재분류하기 시작했다.
최근의 히틀러는 재분류를 독일계 유대인을 위한 정치적 요구 조건으로 삼았다.
2. 재분류는 훨씬 더 효율적인 동화를 허용한다.
이것은 그들이 탈유대화 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이 경쟁을 하는 것마다 반유대주의가 등장한다는 점을 간과한다.
3. 유대인 분파가 자신의 위치를 포기하고 새로운 이민을 대비하지 않을 수 없을 때 직업 재분류는 중대해진다.
4. 재분류는 시온주의에서 여전히 팽배해 있다.
5 자선에 기초한 직업체 분류는 항상 의심거리이다.
자선은 전반적인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통상 고립된 개인들만을 지원한다.
자선은 한 민족을 제공하는 사람과 수용하는 사람으로 분리시킨다.
6. 직업체의 분류는 노동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수중에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제 직업 재분류가 구원에 이르는 궁극적인 방법이 아니라 수많은 길들 가운데 하나임을 자각해야 한다.
부버는 '나와 그것'의 관계는 도구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대상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일시적이고 기계적인 관계이다.
부버는 인간이 자신의 참다운 내면을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나와 너'의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년 2월 8일 ~ 1965년 6월 13일)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계 종교철학자이다.
1938년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에서 사회철학 교수가 되었다.
구약성서의 새로운 독일어역을 시도하기도 하고, 하시디즘(신비주의적 유대교의 운동)에 깊이 참여하여 추진자가 되었으며,
유대교의 현대적 우위를 명백히 하는 데 큰 공헌을 남겼다.
잡지 <유대인>(1916-24) 및 <피조물>(1926- )을 편집, 발행하였다.
젊은이들을 위한 지도자 마르틴 부버
거의 20년 전 독일계 유대인 공동체 전체는 예외법 때문에 강요당한 고립과 자체의 물질적 도덕적 파멸에 대응해야만 했다
시온주의 옹호자보다 더 큰 역할을 담당하고 저명한 유대인 전문가보다 더 큰 역할을 담당하는 탁월한 유대인 학자 겸 역사가 이상의 위상을 지니는 유대인 문화에 살아있는 대변자 이상의 위상을 갖는 지도자가 있는가
마르틴 부버는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반박의 여지가 없는 독일 유대교의 지도자이다.
그는 30년 동안 전적으로 정치적 시온주의에 반대했고 또 화석화된 전통파에 반대했다.
그는 과거의 보존과 미래를 위한 투쟁을 결합시키는 데 뛰어난 품격을 갖고 있으며 언제나 유대 민족의 부활이 오로지 위대한 과거와 살아 있는 종교적 가치로부터의 근본적 복귀를 통해 일어날 수 있다고 반복해 주장한다.
아하드 하암이 동유럽을 대표해 왔다면 마르틴 부버는 서유럽을 대표해 왔다
부버와 그의 작품에서 적극적인 유대교를 발견했다.
유대교 학문에서 벗어나 유대학을 창시했다.
부버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인간의 나에 대한 하느님의 너의 요구는 창세기와 시편 구약 예언서와 욥기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이런 바로 옛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이들을 이해하는 법을 배움으로써만 하느님이 백성에게 부유한 임무를 어떻게 실현할지를 알 것이다.
그는 위대한 과거 아래 자신과 유대교를 매장하지 않았기에 젊은이들의 지지를 얻었다
더 위대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이 과거에 살아있는 뿌리를 재발견하는 법을 알았다.
나는 유대교가 가진 모든 것을 위해 유대교가 과거가 아닌 미래를 가졌다는 것을 고려한다.
내가 믿는 것은 여기에 있다.
유대교는 진정 작업을 아직 수행하지 않았으며 유대 민족 모든 민족 가운데 가장 비극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민족 내에서 살아있는 위대한 힘은 아직 인류 역사의 중요한 동헌을 하지 않았다.
귀향하는 젊은이들
비쩍 마른 아이들!
유대인은 2000년 동안 전 세계를 방랑하면서 소유물 자식들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고 다닌다
그러나 이런 운명을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어린이들은 안정된 가정 정상적인 환경 고향 친구 언어를 모두 잃는다
그들은 뿌리 뽑혔을 뿐만 아니라 곧 길을 잃으니 그들은 미래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못하며 단지 당면한 문제에만 신경을 쓰고 어린이들의 상황을 망각한다.
어린이들은 일할 권리나 어떤 것을 배울 권리를 갖지 않는다.
해결책
증명서도 없고 유럽에서 어떤 것이라도 배울 가능성이 없어서 거리에서 목적 없이 방황하는 젊은이들은 에레츠 이스라엘의 입국이 허용될 것이다.
유대인 정착촌은 2년 동안 젊은 이민자들을 수용하고 그들에게 학교 교육과 실용적인 훈련을 제공한다.
정착촌에서는 농장을 학교로 정착촌의 동료를 선생으로 제안한다.
연로한 시온주의자
처음에 그는 독일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직접 갔다
그는 하선을 허락받지 못한 채 마르세유로 보내졌다
파리보호소는 단지 그곳에 한발 떨어진 곳에 있다.
그는 자신이 연로한 시온주의자라고, 즉시 선언한다.
물론 그는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아니라 전체 대규모 집단의 일원으로 팔레스타인에 갔을 것이다.
그가 분개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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