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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한나 아렌트)
이성의 좌절, 제3장 1950년대: 민족과 국민 사이에서/근동에서의 평화, 정전? (803-858)
2023. 4.3.
이성의 좌절: 베르나도테의 임무
국제연합이 파견한 팔레스타인 중재자 베르나도테의 암살 이후 지난 몇 주 동안 상황은 꾸준히 악화되었다.
벤구리온 수상은 이스라엘의 운명은 파리의 국제연합회의가 아니라 아랍과 이스라엘 사이의 전투나 평화 협상이 이루어지는 팔레스타인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암살의 충격 속에서 영국과 미국의 증가하는 팔레스타인 정책 공조는 결과적으로 베르나도테가 국제연합에 제출한 제안에 대한 공동 승인을 이끌어 냈다
이때 샤레트는 자국 정부가 완전 독립 국가들이 함께 활동하는 국가 연합을 고려할 의향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마그네스는 부분적으로는 샤례트에 대한 완전히 부정적인 태도 때문에 이 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한편, 샤례트의 최근 명은 일종의 팔레스타인 국가연합은 근동에 대한 국제적 통제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다.
국가 주권이 아니라 항구적 협력을 정치적 이행과 보장, 즉 국가 연합만이 해결책을 제공한다.
그러나 베르나도테는 팔레스타인 화해 위원회의 형태로 일종의 국제 연합 신탁 통치를 권고했다.
신탁 통치 국가의 권리와 의무와 정상적으로 연계된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을 것이다.
국제연합조정관의 임무는 국제적으로 지원을 받는 갈등 조정을 통해 어떤 항구적인 국제적 지배를 회피할 해결 책에 도달하는 것 이외에 다른 목표를 갖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시도가 결과적으로 무용하며 국제연합이 팔레스타인 화해 위원회의 설립을 수용해야 한다면, 이것은 애석한 전례로 기여할 수도 있으며 현존하지 않는 국제연맹 위임 통치 체계의 재고찰로 UN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이 임무를 맡은 베르나도테 백작의 마지막 말은 이성과 타협이 가까운 미래에 실천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면 국제연합 신탁 통치의 모험을 대체할 유일한 대안은 실제로 유대인-아랍인 전쟁이란 더 큰 위험인 것과 같다
베르나도테의 마지막 국제연합 보고서가 지니는 정치적 의미는 주로 제1차 평화 협상 말에 제출된 팔레스타인 정착지에 대한 자신의 최초 제한과의 차이에 있다.
초기의 제안이 협상을 통한 평화에 합당한 증거들로 제기되었던 원칙은 철회되었다.
베르나도테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접근 방식을 바꾸었다 아랍인들은 계속해서 유대인 소수파에 어울리는 모호한 조항으로 통일된 아랍을 요구했다.
유대인은 자신들은 국제연합이 제시하는 국경이나 경제적 연합의 제한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즉 국제연합의 제안은 이제 이스라엘 정부의 자유롭고 제한받지 않는 재량권에 맡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제 2차 보고서의 권고사항은 실제로 국제연합의 관리 아래 신생 이스라엘 국가의 주권이란 온갖 음식 고명을 제공한다.
국제연합은 아랍인과 유대인 영토 사이에 국경선을 존중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특별 보장, 즉 국제적 관리는 유대인 이민을 자동적으로 경제적 수용능력의 범위로 제한하겠다는 특별 보장을 제공하기로 되어 있다.
제 1차 보고서와 제 2차 보고서에 담긴 기본 정신의 결정적 차이는 누가 팔레스타인에 가는가라는 정치적 질문에 대한 상이한 해답에 있다.
베르나도테가 아랍인들과 유대인에게 자신들이 살았던 현실을 납득시키고자 온갖 수를 다 썼다,
즉 유대 국가는 이미 존재하고 주요 강대국 다수에 의해 승인받았으며 유대인이 계속 존속하지 않으리라고 가정할 훌륭한 이유가 없다는 점을 아랍인들에게 밝혔다.
또 팔레스타인 분할이 유대인은 내내 있었고, 이제 사실 완전히 독립한 문화 공동체이며 정치 공동체라는 사실에 기반을 둔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런데 두 당사자는 팔레스타인에 상이한 두 민족이 거주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오히려 자신들의 야망을 축소시키는 음모가 있다고 믿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때 그는 두 공동체 사이의 진정한 공통의 특징은 오로지 이성이 아닌 강제력이 갈등을 해결할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베르나도테의 주요 관심사는 평화였다. 확신에 찬 평화주의자인 그는 국제연합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근동에서의 전쟁을 중단시켜 달라고 자신에게 요청 했다고 생각했다.
유대인은 베르나도테를 영국의 대리인으로, 아랍인들은 그를 시온주의자로 비난해 왔다
그는 전쟁 대리인들에 의해 암살되었을 때 어느 누구의 대리인도 아닌 베르나도테는 평화의 영웅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부역에 관하여
유대인 전선 8월 호에 벤 할페른의 글 ‘이스라엘의 파르티잔’이 수록되었다. 할페른 씨는 다음과 같은 점을 올바르게 언급한다.
즉 한편, 근동에서 유대인의 지위에 대한 장기적 분석 다른 한편, 모두 인종적 국수 주의적 태도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불신에 기반을 둔 현재의 시온주의 정치에 대한 반대가 있으며 이런 반대는 변화하는 계기의 배열 상태를 통해 묵살되거나 부정되지 않을 것이다.
할페른의 글에 포함된 파르티잔 유형과 부역자 유형 사이의 차이를 언급하는 단락들은 현실주의에 대한 이런 논의보다 더 간단명료하다
부역자라는 용어는 물론 명예 훼손이다.
그러나 할페른은 실제로 이 용어를 애매한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복귀시킨다. 마그네스 박사가 최근 제시한 국가연합 팔레스타인 방안은 7월 4일 베르나도테 백작의 평화 안에 따라 담긴 기본 이념들 가운데 일부와 일치한다.
할페른 씨는 중재자가 매우 비실천적인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는가?
1930년대의 유대인 협회가 나치 독일과 이송 협정을 체결했을 때 이 협정은 독일 상품형식으로 독일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 재산의 일부를 이전시키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아랍인이든 영국인이든 양자택일의 대상으로 정당화할 적은 아니다.
우리는 양자와 더불어 평화 속에 살아야 한다.
신생 이스라엘 국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새롭고 더 냉정하고 더 정당한 국제적 견해를 습득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시민이다.
신생 팔레스타인당: 매나헴의 방문과 정치 운동의 목적 논의
조직 방법, 정치 철학, 사회적 호소에서 나치당이나 파시스트당과 아주 흡사한 정당, 즉 자유당이 신생 이스라엘 국가에서 등장한 것은 우리 시대 가장 혼란스러운 정치 현상이다.
이 당은 과거의 이르군 츠바이 레우미, 즉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스트, 우익 국수주의 단체의 회원 및 지지자로 구성되었다.
백인을 위한 재정 기부와 공적 표명 미국의 상당 지역이 이스라엘 파시스트 분자들을 지지한다는 인상을 판레스타인에서 확산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미국 공중은 베긴 씨와 그의 운동의 전력 및 목표를 알아야 한다.
오늘날 그들은 자유민주주의 반제국주의에 대해 언급하지만 최근까지 파시스트 국가의 교의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아랍인 공격 마을
4월 9일자 뉴욕타임스는 테러리스트 무리가 전투에서 군사적 목표가 아닌 이 평화로운 아랍 마을을 공격해 주민들 대부분을 살해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은 자신의 소행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이 대학살을 자랑했으며 널리 공표하고 데이르 야신에 쌓인 시체와 대 혼란을 살펴보기 위해 이 나라에 온 모든 외국 특파원을 초청했다.
데이르 야신 사건은 자유당의 성격과 행동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
그들은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초민족주의 종교적 신비주의 인종적 우월성이 혼합된 모습을 주장해 왔다
이르군 즈바이 레우미와 슈테른 테러단은 팔레스타인 유대인 공동체에서 공포 정치를 시작했다.
자유당의 당원들은 팔레스타인의 건설적 업적에 참여하지 않았다.
과장 홍보된 그들의 이민 유입 활동은 세심하다 파시스트 동지들을 끌어들이는 데 집중되었다.
드러난 불일치
자유당은 일반적인 정당의 인상을 가지지 않는다.
이것은 파시스트 정장 정당의 흔들리지 않는 징표이며 테러리즘과 그릇된 설명은 이 당에게는 수단이며 지도자 국가는 이 당의 목표이다.
제 3장
1950년대: 민족과 국민 사이에서
근동에서의 평화 또는 정전?
근동의 평화는 이스라엘 국가, 아랍 민족, 서양 세계에 중요하다
평화는 협상, 즉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 상호 타협과 최종적 합의의 결과일 수 있다.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정착촌은 근동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으나 항상 아랍해의 비교적 작은 섬으로 존재할 것이다.
유대인과 아랍인이 진정한 이해에 도달하지 못함에 따라 이스라엘의 생존은 두 국가의 지속적인 동조와 지원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1921년 폭동, 1929년 대학살, 1936년-1939년 소요는 영국 지배 아래 아랍인과 유대인 관계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영국 군대의 철수가 유대인 아랍인 전쟁의 발발과 일치한 것은 일리가 있었다.
아랍인과 유대인 관계에 관한 한 전쟁과 이스라엘의 승리는 어떤 것도 변화시키거나 해결하지 못했다.
온전한 평화가 결여된 어떤 해결도 아랍인에게 더 강해지고 아랍 국가들 사이 경쟁을 개선할 기회, 아마도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측면의 혁명적 변화를 촉진시킬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그러한 변화는 이 지역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서양화된 민족인 유대인과 긴밀한 경제적 정치적 협력을 중심으로 결집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팔레스타인의 두 민족은 25년 동안 온갖 형태의 감정적 민족주의적 환상적 행태를 마음껏 누리고자 영국 정부에 의존할 수 있었다.
아랍인들은 유대인의 강제력(경제력?)이 급속하게 신장되는 것과 경제 발전의 광범위한 결과를 고려하지 않았고.
유대인은 아랍 세계에서 확산되는 새로운 민족주의적 연대와 식민지 국민의 자각을 무시했다.
두 민족은 희망이나 증오로 자신들이 실제로 서로 무시했던 영국의 자신들의 관심을 전적으로 집중했다.
유대인은 영국이 아닌 아랍이 근동 정책에서 항구적인 현실이라는 것을 망각했고, 아랍인은 영국 군대가 아닌 유대인 정착민이 팔레스타인에 영구적으로 머물 의도가 있음을 망각했다
다른 한편 영국은 이런 상황에 대단히 만족했다.
이런 상황은 영국의 지배에 대한 반란을 결과적으로 초래할 수 있는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에 실질적인 합의, 나라의 평화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양자 사이의 공개적인 갈등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영국이 나라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을 때 비로소 아랍인과 유대인 이해에 대한 영국의 관심은 일어나게 되었다.
이후 영국은 아랍인과 유대인의 합의에 관심을 갖고 다시 제 3세력을 끌어들일 수 있는 지역의 발칸화를 저지하는 데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졌다
근동은 권력 공백 상태를 방지하고 독립을 보장하는 내구력을 신속하게 확보하기 위해 유대인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아랍인들은 유대인보다 잠재적으로 더 강하더라도 강대국이 아니며 강대국이 되어가는 도정에 있지도 않다
이스라엘 군대의 승리는 있음직한 유대인 지배 때문이 아니라 실증된 권력 공백 때문에 아랍인 위험하다
지난번 전쟁은 국수주의적 폭력으로 수행된 자그마한 민족 갈등이 장래의 공격자들에게 가장 좋은 구실이나 수단을 제공했다.
현재 아랍인과 유대인의 커다란 행운은 미국과 대영 제국이 향후 적대 행위에 관심을 갖지 않고 오히려 지역 전체의 진정한 평화 회복을 조성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는 점이다.
유대인과 아랍인이 영국이나 러시아의 대리인이라는 취지로 자신들을 상호비방하는 것은 현실적 쟁점을 호도하는 데 기여할 뿐이다.
그것은 바로 아랍의 이익에 대한 고려 없이 국민 주권을 유지하고 가능하면 확장하겠다는 유대인의 결정,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의 성과를 고려하지 않은 채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침략자들을 축출하겠다는 아랍의 결정이다.
만약 이런 독립적이고 주권적인 행태가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된다면, 독립과 주권은 완전히 상실될 것이다.
주장들의 양립 불가능성
유대인과 아랍의 좋은 관계는 서로에 대한 변화된 태도 팔레스타인과 근동의 분위기 변화에 좌우되는 것이다.
아랍인은 이를 친유대적이라고 비난하고 유대인은 이를 친아랍적이라고 비난했다.
베르나도테의 두 차례 평화 안의 수용은 전형적이다.
국제연합에 제출한 제 1차 보고서는 국제연합의 분할 결정의 정신으로 이루어진 1년의 권고안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권고안은 조정된 외교 정책과 공동 방해 조치를 통한 경제 협력의 정치적 실행, 국경선 조정, 유대인 이민의 제한된 보장을 마련했다.
반대로 제 2차 보고서는 중립 지대로 분리되다 되고 잠정적으로 국제연합 위원회의 관리를 받는 완전히 주권적이고 독립적인 두 정치적 실체를 추천했다. 유대 민족 대다수는 지난 몇 년의 사건이 1947년 국제연합의 결정, 1917년 벨푸어 선언, 심지어 팔레스타인에서의 개척 사업 50년보다 기원 후 70년 성전의 파괴, 디아스포라 2000년에 메시아적 열망과 더 가까운 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유대인의 승리는 근동에서 당면한 현실의 관점이 아니라 매우 먼 과거의 관점에서 판단된다.
유대인은 ‘아니면 우리는 항복해야 한다’는 구호에 고취되고 민족적 자멸을 대가로 치르더라도 온갖 타협을 단호히 거부하는 마사다 정신으로 영국 점령군과 아랍 군대에 맞서 전투에 나섰다
아랍 정책은 매우 단순하며 패배를 무시하고 국가의 소유권에 대한 과거의 주장과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승인 거부를 차분히 완고하게 언급하고 다시 언급하는 외교로 이루어진다
25년 동안 유대인과 아랍인은 서로 완전히 양립할 수 없는 주장을 해왔다
아랍인들은 비록 유대인 주민에게 제한적인 소수 민족 권리를 때로는 억지로 인정했지만, 팔레스타인에 단일의 아랍 국가를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유대인은 자신들의 궁극적 목적에 대해 언급하기를 거부했다.
부분적인 이유를 들자면 그들은 아랍인의 비타협적인 태도를 너무나 잘 알았고 영국의 보호로 무제한적으로 신뢰했다.
1942 년 빌트모어 강령은 처음으로 유대인의 정치적 목적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사회적 경제적 분리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가까운 이웃을 구체적인 인간으로 상상하지 못한 실수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이들 가운데 눈에 띄는 이유는 아랍인과 유대인 지역이 소위 빈틈없는 장벽으로 분리되어 있는 나라의 경제 구조이다.
경제적 요소는 결코 유대인과 아랍인 협력에 좌우되지 않고 전적으로 유대인 노동자의 사업과 개척정신 전 세계 유대인 재정 지원에 좌우되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이 완전히 산업화되고 아랍 국가들이 고품질 상품을 위한 시장을 제공할 수 있는 문명 수준에 도달했을 때만 이런 상호 의존 단계는 실현될 것이다.
외국의 대규모 재정 지원이 확보되는 한 유대인과 아랍인 협력은 새로운 이스라엘 국가에게 경제적으로 불가피한 일이 될 수 없다.
조직화된 유대인 노동자는 값싼 아랍인 노동자와 싸웠고 냉혹한 전투에서 승리했다.
옛날식의 아랍 노동자가 유대인 정촉 정착촌 때문에 자신들의 토지를 박탈당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새로이 근대화된 나라의 구조에 부적합하고 쓸모없는 일종의 유물로 급속히 바뀌었다.
팔레스타인은 다소간 봉건적 질서에서 다소간 자본주의적인 질서로 변화를 겪었다
팔레스타인에서 노동자의 이입을 필요로 했고 원주민을 자유노동자로서 고용 전망도 없는 잠재적 프롤레타리아로 전락시켰다
이런 불행한 잠재적 아랍인 프로를 레타리아는 토지 매매에 관한 통계에 따라 논의될 수 없거나 극빈자의 관점에서 고려될 수 없다.
유대인은 순전한 생산성을 통해 곧 결정적 요인이 된 새로운 것을 나라에 도입했다.
원시적 아랍 경제는 이런 새로운 삶을 비교할 때 유령 같은 모습을 띄었으며 낙후성과 비효율성은 아랍 경제를 휩쓸어 파국을 기다리는 것 같다
마그네스의 말을 빌리면 누구도 유대인과 아랍인 협력을 결코 주요 정책의 주요 대상으로 삼지 않지 않았다.
결국 시온주의 이데올로기는 벨푸어 선언에 앞서 채 30년도 안 된 시점에 팔레스타인 현실에 대한 고려에서 시작된 게 아니라, 아니라 조국을 상실한 유대인의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나라 없는 민족이 민족 없는 나라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시온주의 지조자들의 정신을 사로잡기에 그들은 원주민 문제를 그저 간과했다.
아랍인 문제는 항상 시온주의 정치의 숨겨진 쟁점이었다.
아랍인 노동력은 값싸기에 위험했다.
유대인 자본가는 더 많은 임금을 받고 더 강한 권리 의식을 가진 유대인 노동자들 대신 아랍인들을 지속적으로 고용하고 싶어 했다.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의 계급 투쟁은 대부분 아랍 노동자에 대한 투쟁이었다.
팔레스타인에서 반자본주의자라는 것은 사실상 대개 반아랍인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위임 통치의 조건에 따르면 자치 제도의 발전을 대비하기로 되어 있는 영국 행정 당국은 두 민족을 화해시키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으며 아랍인의 생활 수준을 제고하는 데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
유대인 중간 계급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간과했다.
즉 베드인족 자신들의 나라에 유대인이 살기해 정착할 땅을 더욱 긴급하게 요구할 것 같았고 토착 농업 노동자들은 힘을 덜 들여 더 좋은 생산품을 획득할 기계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으며 도시 주민들은 유대인이 도착하기 이전 자신들이 거의 알지 못했던 생활 수준에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것 같았다.
아랍인 대중은 개인의 성공과 관습을 마치 동화에 나오는 허상과 같이 간주했다.
나라의 독특성
팔레스타인에 사는 유대인의 현실은 여러 측면에서 독특했다.
팔레스타인에서 발생한 것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아 유대인 조국의 건설은 유럽인들이 원주민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이들을 희생시켜 이방인의 부를 착취한 식민지 사업은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은 가난한 나라였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라로 흘러드는 미국과 유럽의 자본은 부재 주주가 보유한 배당주 자본이 아니라 수령인들이 자유롭게 마음대로 사용한 자선 기부금이다.
이 자본은 토지의 획득과 국유화, 집단 정착촌의 설립, 농민과 노동자 협동조합의 장기 대여금, 사회와 건강 복지, 자유롭고 평등한 교육, 명백한 사회주의 형태의 경제 건설을 위해 사용되었다.
팔레스타인 실험은 종종 인위적인 실험으로 분리했다.
유대인 조국의 건설과 관련된 모든 일은 말하자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따르는 데 이치 사물에 본질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사회 뼈대이며 개척자 정신의 표현인 농촌의 집단 정착촌은 확실히 공리주의적 이유로 설명될 수 없다.
토지 개간, 히브리 대학교 설립, 거대한 의료시설의 건립은 모두 인위적인 개발이며 해외에서 지원을 받아 이윤과 손실의 계산에 주목하지 않은 개척정신으로 시작되었다.
반 시온주의 자들이나 시온주의자들이 이 사업의 인위적 성격을 칭찬받기보다 비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온주의자들은 유대인 조국의 건설을 추정컨대 영구적인 반유대주의에 대한 유일하게 가능한 해결책으로, 집단 정착촌의 건립을 유대인 농업 노동자들의 난관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국익의 관점에서 의료시설과 히브리 대학교의 건립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설명은 각기 부분적 진실을 담고 있으나 약간은 핵심을 벗어난다
이데올로기적 왜곡은 오로지 도전, 즉 반유대주의 빈곤 민족의 조국상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생산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정치적으로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통치 아래, 즉 아마도 원시적인 민족이 자치의 기본 규칙을 아직 배우지 못한 낙후 지역을 위해서만 정부의 형태 아래 있었다.
유대인 노동자의 압도적 다수, 즉 주민 대다수는 팔레스타인 노동조합 히스타드루트였다. 이 노동조합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했다. 이 단체는 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단일 고용주로 성장했다.
이것은 유대인 자치의 단순한 선언이 궁극적으로 국가 기구를 탄생시킨 충분하다는 경이로운 사실을 설명한다.
현재의 이스라엘 정부는 외형상 연립 정권이지만 실제로 히스타드루트 정부이다.
유대인 조국 건설의 불행은 거의 초기부터 조국 건설이 유대인 사이에서 중유럽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종족적 사고를 동반했고 아랍인들 사이에서 옥스퍼드풍의 식민지적 낭만주의를 동반했다는 점이었다.
유대인은 민족 해방이라는 미리 고려된 이념에 부합시키기 위해 사람이 살지 않는 나라였을 곳에서 산 아랍인들을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간과했다.
아랍인들은 유대인을 전통적 사고방식을 가진 침략자나 제국주의의 신식도구라고 생각했다.
비민족주의 전통
유대인과 아랍인 협력을 지지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이런 이데올로기적 사유를 배경으로 해 자신들의 진정한 능력을 발견한다.
그들은 아랍인이나 유대인 측에서 명백한 전통을 형성했다.
어쨌든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그들의 접근 방법은 상황의 객관적 현실에서 시작된다.
통상적으로 주장되듯이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조국에 대한 선의를 항상 전혀 지니고 있지 않았으며, 아랍인과 유대인 이해를 위한 대변자들은 자신들과 협력할 의향이 있던 사람, 즉 어떤 어느 정도 명성을 지닌 한 명의 아랍인도 결코 만들어낼 수 없었다
1922년 카이로에서 아랍인과 유대인 회의가 개최되었다.
이때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의 경제 능력이라는 한계 내에서 유대인 이민에 동의할 의향이 있다는 점을 보였다.
1945년에 아랍 연맹 사무총장 아잠 베이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아랍인은 팔레스타인을 정신적 고향, 심지어 실질적 고향으로 확정된 것으로 생각하려는 유대인의 욕구 충족을 광범위하게 인정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확실히 이런 아랍인들은 협상 상대인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아랍인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거의 받지 못했다.
유대인이 외부 통치 세력으로부터 지지를 얻기를 바라고 자연스럽게 난관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한 (바이츠만) 문제의 해결을 일반적으로 영국에 의존하는 순간, 그들은 아랍인들을 무시하거나 협상을 결렬시켰다
아랍인 찰스 말리크 국제연합 레바논 대표와 탁월한 유대인 마그네스 박사, 즉 히브리대학교 총장이며 팔레스타인 이후드(통합)당의 의장은 아랍인과 유대인 공동 정책의 핵심 사항을 최근에 공식적으로 작성했다.
말리크 박사가 1948년 5월 28일 유대인과 아랍인 합의의 우의성에 대해 언급한 연설은 근동의 평화와 현실에 대한 차분하고 공개적인 주장이다.
말리크 박사는 ‘세계 정치인들의 현실적 임무는 유대인과 아랍인들이 서로 영구적으로 소외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마그네스 박사는 팔레스타인이 세 일신교의 성지라는 점을 인정했다.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자연권을 갖고 유대인은 역사적 권리를 갖는다 양자는 동등한 정당성을 받는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은 이미 이중 민족 국가이다.
이것은 아랍인을 위한 정치적 평등을 의미하며 유대인을 위한 숫자상의 평등, 즉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할 권리를 정당화한다.
이중 민족 팔레스타인은 세계에서 평화의 신호등이 될 수 있었다.
히브리 대학교와 집단 정착촌
유대인 민족주의는 유대인 조국의 두 조직, 즉 히브리 대학교와 집단 정착촌에 의해 고취되었을 것이다.
이런 두 조직, 즉 집단 정착촌과 히브리 대학교는 시온주의에서 비민족주의적 반국수주의적 추세와 반항을 지지하고 촉진시켰다
대학교는 이 특정 유대인 땅에서 유대교의 보편성을 대변하게 되어 있었다. 이 대학교는 팔레스타인 대학이 아니라 유대 민족의 대학으로 착상되었다.
즉 헤르츨의 전통은 주요 추진력을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는 영구적인 현상으로서 반유대주의에 대한 견해로부터 얻었다
이 전통은 완전한 주권적 유대 국가의 조건을 제외하고는 어떤 다른 조건에서도 유일한 유대인 생존의 가능성을 부정했다.
헤르츨 전통의 주요 성과는 유대 국가이다.
이 성과는 아랍인과 유대인 전쟁으로 나타났다.
아하드하암 전통의 주요 성과는 히브리 대학교이다.
아하드 하암의 시온주의와 연계되어 있지 않지만 영향을 받은 운동의 다른 부분은 동유럽 사회주의에서 성장했고 궁극적으로 집단 정착 전에 설립을 이어졌다
이 운동은 새로운 형태의 농업 경제, 사회적 삶, 노동자 협동 조합으로서 유대인 조국의 경제적 삶에 중심이 되었다. 특히 하쇼메르 하차이르가 자신들의 이중 민족 프로그램을 국제 연합의 분할 결정이라는 기정 사실에 희생시켰다는 점은 새로운 이스라엘 국가의 최대 비극들 가운데 하나였다.
전쟁의 결과
시온주의를 따르는 소규모 단체는 유대인과 아랍인 협력이 있거나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쟁이 그리고 있었다.
이중 민족의 팔레스타인이나 다른 민족에 의한 한 민족의 지배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고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에서 50만 명 이상의 아랍인이 탈출했다. 영국 측에서 어떤 승인도 하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대인이 주권 국가를 건설했다는 사실이 있다.
지난해 사건들로 인해 근동의 민족들이 치른 희생, 이 가운데 크게 두드러진 것은 고향을 상실한 민족, 즉 아랍 난민이라는 새로운 법 범주의 탄생이었다.
그들의 탈출이 아무리 발생했더라도 이런 탈출은 전쟁 동안 대규모 주민의 이동에 관한 쉬운 의 계획으로 마련되고 난민을 고향에 재수용하지 않겠다는 이스라엘의 거부로 이어졌고 결국 시온주에 대한 아랍의 오랜 주장이 사실임을 보여주었다,
즉 유대인은 단지 고향으로부터 아랍인의 추방을 목표로 했다.
착취에 기반을 두지 않았다는, 유대인 조국의 자존심은 최종 시험이 다가왔을 때 저주로 바뀌었다.
연방 또는 발칸화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트란스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안, 이집트와 같은 작은 국가들에서 절대주권에 대한 민족주의적 주장은 단지 전 지역의 발칸화로 이어질 수 있고 결국 모든 진정한 국가 이익을 해치며 이 지역을 강대국들의 이익충돌의 각축장으로 바꿀 수 있다.
결국 발칸화의 유일한 대안은 지역 연방이다.
에반에 따르면 어쩌면 ‘불가침, 상호 방위와 경제협력연맹에서 아랍 세계 당사국으로부터 터키, 기독교 레바논, 이스라엘, 이라크’를 포함시킬 수 있는 연방은 커다란 장점을 가진다
이 연방은 아랍인과 유대인이라는 두 민족보다 더 많은 민족을 포함하며 이에 따라 아랍인이 수적으로 우세를 차지한다는 유대인의 공포를 제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연방식 또는 국가연합식 해결책의 주요 장점들 가운데 하나는 훨씬 온건한 아랍 정치인들 특히 렌바논이 이런 해결책에 합의했다는 점이었다.
레바논 대표 카밀 샤문은 국제연합안전보장 이사회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다시 한번 독립적인 팔레스타인 국가가 “연방에 기반해서 구성되고.... 유대인 주와 아랍인 주의 연방 정부와 주 정부를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카밀 샤문은 팔레스타인 국가 연합을 위한 계획을 설명한 마그네스 박사와 같이 미합중국 헌법이 새로운 국가의 미래 헌법을 위한 모델로서 기여한다는 것을 환기시켰다
예루살렘을 공동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연합 계획은 국제연합의 분할 결정에 유일하게 가능한 이행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었다
이 결정은 경제적 연합을 필수 요건으로 했다.
전쟁은 유대인과 아랍인 연합 경제의 모든 부분 부분을 파괴했으며 이스라엘 점령 지역으로부터 거의 모든 아랍인의 추방과 더불어 공동 경제 이익의 미래 발전을 위한 희망이 기반을 두었던 소규모 공동 경제 기반을 제거했다.
실제로 불안정한 정전과 대조적으로 평화를 주장하고 계속적인 발칸화와 대조적으로 국제 국가연합을 주장하는 것에 명백한 결점은 이것들이 경제적 필요성과 같은 것에 거의 기반을 둘 수 없다는 점이다.
유대인과 아랍인 전쟁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국가 건설과 현재의 엄청난 이민이 없었다면 결코 제공되지 않았을 자선기금 수입의 실질적인 증가는 앞에서 밝힌 노동 시간 손실, 재산 파괴를 상쇄한다.
아랍 난민의 척박한 정부 공여 농지에 부분적으로 정착한 새로운 유입 이민이 재건 목적을 실현하는 데 긴급히 필요했고, 동원으로 야기된 엄청난 인력 손실을 보충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나라의 경제적 부담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가장 안전한 자산이 되었다.
난민 정착 용도로 모금에 소요되는 미국 재산의 유입은 다른 다만 이전보다 더 큰 규모로 인력 유입과 결합되어 이스라엘 경제를 짐작시킬 수도 있었다.
오늘날 현재의 정황으로 이스라엘 국가는 아랍해의 유대인 섬이고 부진한 정체 경제의 사막에 있는 서구화되고 산업화된 전초기지이며 또한 어떤 수요도 인근 국가에 존재하지 않는 상품 생산자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연방과 발칸화 사이의 대안은 정치적 대안이다.
일종의 근동 연방의 임무는 공동의 경제 구조를 창출하는 것이고. 경제 정치적 협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며 유대인의 경제적 사회적 성과를 통합시키는 것이다.
발칸화는 육체 노동과 높은 문화 수준을 결합시키고 현대의 삶에 새로운 인간적 요소를 도입하는 길을 발견한 새로운 유대인 개척자 노동자를 심지어 더욱 고립시킬 것이다.
그들은 히브리 대학교의 계승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지속된 군사적 불안과 민족주의적 공격성의 첫 번째 희생자들일 것이다.
The End. 2023.4.3.월. 허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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