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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카이에 소바주에 대해서
일련의 강의에서 현대라는 시대가 갖고 있는 과도기적 성격을 밝혀보고자 했다. 근현대 과학이 구사해 온 사고의 모든 도구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획득한 지적 능력 속에 이미 전부 준비되어 있던 것이다. 일신교의 성립에 의해 발생한 종교는 신석기 혁명적인 문명에 대한 대규모의 부정이나 억압 위(7)에 성립되었다. 억압당한 ‘야생의 사고’로 불리는 그런 사고능력이 제2차 ‘형이상학 혁명’을 통해 겉포장도 근거도 새롭게 바꾸어 ‘과학’으로 부활한 것이다. 이제는 그 혁명의 성과가 거의 바닥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과학에 한계를 가져온 여러 조건들(기계론적으로 평범해진 생명과학, 분자생물학과 열역학의 불충분한 결합, 양자역학적 세계관이 확대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자본주의의 영향(8))을 부정하고, 일신교가 개척한 지평을 과학적 사고에 의해 변혁함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다.
일련의 강의는 ‘초월적인 것’에 대해 인류의 모든 사고 영역을 답파하여 신화에서 시작해서 글로벌리즘의 신학적 구조에 이르기까지 사고를 전개했다(9).
‘대칭성’이라는 개념에 이르기까지 미나카나 구마구스의 점균 연구, 『화엄경』과 티벳 불교가 큰 영향을 끼쳤다. 불교는 수행을 통해 ‘마음’의 자연스러운 상태를 추구하는데, 언어적 사고에서 해방된 ‘마음’은 받아왔던 구속을 떨쳐버리고 고차원적인 본성을 드러낸다. 자유로운 활동을 시작한 유동적인 고차원의 지성으로서의 ‘마음’은 고도의 대칭성을 유지한 채 전체운동을 하게 된다(11).
신화적 사고의 본질을 대칭성이라는 개념으로 재조명하였는데(12) 프로이트나 라캉이 심화한 ‘무의식’이라는 사고와 깊은 관계가 있다(13). 대칭성 사고로 신화적 사고의 본질을 밝힘과 동시에 ‘무의식’의 작용이 지닌 특별한 가치를 회복시키고자 한다. ‘야생의 사고’에 관한 구조인류학의 가능성을 현대에 실현하고자 하는 사고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앙띠 오이디푸스』와 동일한 관점에 입각해 있다. 대칭성의 논리에 의해 작동하는 ‘무의식’은 충실한 유동적 지성으로서의 본질을 갖고 있다. ‘무의식’이야말로 현생인류로서의 우리 ‘마음’의 본질을 이루는 것이며 비대칭성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 논리적 능력은 절대로 인류의 지적 능력의 본질이라고 할 수 없다(14).
대칭성인류학이라는 일관된 사고에 의해, 레비스트로스의 신화론, 클라스트르의 국가론, 마르크스의 경제학비판, 바타유의 보편경제학, 라캉에 의한 무의식의 토폴로지론, 들뢰즈의 다양체론 등에서 제시된 사상의 현대적인 재구성을 시도하고자 했다(15).
서장 대칭성을 향하여
마젤란해협을 빠져나가
신화에는 보편적 의미 내용이 담겨있다. 깊은 레벨에서 작동하고 있는 일관성 있는 ‘논리’가 존재한다. 신화를 ‘인류 最古의 철학’으로 부르기로 한다. 인류가 사물의 의미나 우주 안에서 자신들의 위치, 자연계와의 사이에 결성된 유대관계의 의미 등을 생각하고자 탄생시킨 최초의 ‘철학’이 바로 신화이다. 20세기의 신화학을 통해 신화 내부에서 어떤 일관성을 가진 논리의 작동 원리를 밝혀낼 수 있게 되었다. 신화를 움직이는 것은 ‘이진연산’ 내지 ‘이진논(19)리’의 사고 과정에 의한다. 신화는 동물이나 식물, 사회관계와 같은 구체적인 사물을 논리 조작을 위한 ‘항’으로 설정해서 분명한 ‘철학’을 전개했다. 신화와 과학, 신화와 철학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현실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부정하거나 극복하려는 신화의 태도를 ‘대칭성의 논리’라고 부른다. 신화적 사고는 ‘이진연산’을 사용하면서 ‘대칭성의 논리’에 의해 독자적인 사상을 탄생시켜 왔다. ‘대칭성의 논리’가 작동됨으로써 교환은 증여로 뒤바뀌고, 언어에는 시가 탄생하고, 인간은 우주의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윤리적 사고가 생명을 되찾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들이 전부 비대칭성이(20) 지나치게 활발해져 인간 세계는 회복 불가능한 균형의 붕괴를 초래하고 있다.
‘대칭성의 논리’에 내포되어 있는 가능성을 확대하고 신화적 사고는 인류 사고능력의 비밀을 밝힐 수 있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 그런 사고능력에서 종교와 예술과 경제가 탄생했다. 대칭성 사고는 마젤란해협을 빠져나가 망망대해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줄 것이다(21).
신화적 사고와 컴퓨터
신화적 사고를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로서 이진연산이 중요한 작용을 한다. 신화는 자기 주위의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이나, 식물, 물질, 자연현상 등을 이용해서 이진연산을 반복하는 복잡한 사고를 수행해 왔다(29).
신화에 의한 ‘아리스토텔레스 논리’의 전복
신화는 ‘브리콜라주’(주변의 것을 사용해 직접 만드는 DIY 작업)의 방법을 적용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과학은 이진논리 도구를 사용해서 아리스토텔레스 형의 논리를 작동시킨 반면 신화의 사고는 이진논리를 기초적 도구로 사용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전혀 다른 유형의 논리를 작동시킴으로써 신화적 우주를 창조한다(30).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순율’ 사고법은 A라는 명제가 있고 ~A(A가 아닌 것)라는 명제가 있을 때 둘은 양립할 수 없다는 법칙인데 우리 일상적 사고는 대부분 아리스토텔레스 형의 논리를 사용한다. 신화에서는 이런 ‘모순율’의 전복이 일어난다 (31).
신화는 현실에 타협한다/현실은 신화에 타협한다
신화에는 ‘반인간’이나 ‘반동물’, ‘인간-동물’과 같은 묘한 존재가 등장하곤 한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불명확한 정도가 아니라, 어떤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의 변화가 간단히 이루어짐으로써 현실의 행동이 요구하는 분리를 위한 경계선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버리는, 매력적인 주인공이 수없이 등장한다(34).
신화가 발동시키는 대칭성의 원리는 사냥꾼이 현실 세계에서 취해야만 하는 행동을 마비시켜 버릴 가능성도 있다. 신화적 사고 특유의 대칭성의 사고방식을 지나치게 중시하면, 비대칭성을 원(35)리로 해서 움직이는 현실 세계의 행동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신화는 일종의 타협안을 제시한다. 분리할 것‘과 ’유대관계를 형성할 것‘, 즉 비대칭성의 원리와 대칭성의 원리 사이에서 균형을 형성하고자 심사숙고 끝에 탄생시킨 지혜가 담겨있다. 야생 염소를 사냥하는 선주민들은 현실이 요구하는 것과 신화적 사고 사이에 일종의 타협안을 생각해 냄으로써, 긴 안목에서 보면 가능한 한 자연환경을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사려 깊은 지혜를 토대로 한 윤리를 성공적으로 탄생시켰다(36).
죽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조차도 동질성과 대칭성을 찾아내고자 한다. 죽음 같은 것은 없으며, 죽은 동료들은 그저 본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동물들이 본래 살던 집이란 완전한 대칭성이 실현되어, 동물이 인간처럼 말하고 인간도 원하면 언제든지 동물로 변신할 수 있는 고차원의 공간을 의미한다. 동물들은 사냥꾼에 의해 ’표면적으로만‘ 살해되어 본래 살던 대칭성의 공간으로 돌아가는데 선물을 남기듯 털가죽과 고기를 남기고 갈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신화적 사고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극복하려 해왔다. 하지만 대칭성의 원리에 의해 살아가는 특별한 세계, 이상으로 가득 찬 풍요로운 세계를 생각해 냄으로써, 죽음(37)이라는 절대적으로 비대칭적인 현실을 극복하려 한다.
과학은 죽음을 전체성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오로지 죽음이라는 현실의 표면적인 것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다. 언제나 신화적 사고에서 양분을 취해온 모든 종교에서는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대칭성을 갖춘 ’뭔가‘를 사고함으로써 죽음이라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노력해 왔다. 그런 노력은 계속될 것이고 그 이유는 현생인류의 마음 구조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이다(38).
갈까마귀에게 배워서
신화에서 사용된 인류의 지적 능력은 과학적 사고를 탄생시켜 온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신화적 사고는 ’대칭성‘이라는 특수한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과학의 사고 원리만으로는 절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사상‘이라는 것을 탄생시킨다. 이 ’사상‘만이 오늘날 인류에게 닥친 심각한 위기로부터 탈출하게 해줄 것이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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