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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토템과 카스트
어떤 민족이 토테미즘과 아울러 외혼제를 행한다면 이는 그 민족이 토(179)테미즘에 의해 이미 수립된 사회의 결속을 더 한층 하나의 체계로 강화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외혼제는 생리적·사회적 친족성이라는 요인을 통해 토테미즘에 연결되며 범친족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토테미즘과 대립되지는 않으나 서로 다른 것이다. 토테미즘과 다른 기초 위에 선 일반 사회에서도 외혼제는 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외혼제와 음식물 교환의 중첩은 서로 다른 두 면 위에서 동일한 도식의 반복으로 인해 간단하고 일관성 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과 식생활 관습의 관계는 보충적이 아닌 상호보완적이며 상호변증법적인 관계가 되는 경우가 있다. 인간 과학의 대상은 임의로 분리된 변환이 아니라 오직 군이다(180).
우리는 습관적으로 토템집단을 가장 ‘미개한’ 문명과 결부시키고 카스트를 가장 진화하고 문자를 가진 사회의 특징으로 생각하곤 한다. 나아가서 토템제도를 엄격한 외혼제와 연결시키는 뿌리깊은 전통을 갖고 있는 반면에 인류학자에게 카스트를 정의하라고 하면 먼저 대혼규칙을 들먹일 것은 분명하다
오스트레일리아 부족사회와 카스트 사회 간에 적어도 표면적인 유사성이 있다. 각 집단은 전문화된 기능을 갖고 있으며 전체 공동체에 대하여 필수불가결하고 다른 집단들의 기능과 상호보완적이다. 특히 씨족이나 반족들이 호혜성의 원리에 의해 결합된 부족인 경우 명확하다(184). 오스트레일리아의 몇몇 부족처럼 토템집단에 변별적인 주술적·경제적 기능을 부여하고 있는 사회와, 중부 브라질의 보로로족처럼 전문가가 알아서 전 집단의 음식물을 금기로부터 해방시키는 기능을 맡은 사회와의 차이는 큰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내혼제 카스트와 외혼제 토템집단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두 극단의 유형 사이에 중간적 형태가 있다는 것을 밝힐 때 그 관계가 좀 더 명료해질 것이다(185).
자연과 문화를 차이점들의 다른 두 체계로 보고 그 사이에 형식적인 유사성이 존재한다면 전면에 나타나는 것은 각 분야에 고유한 체계성이다. 사회집단은 서로 구분된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으로 연대를 이루고 있으며 외혼규정은 다양성과 통일성 사이의 균형된 대립을 융화시키는 수단이 된다. 그러나 사회집단을 사회학적 질서와는 다른 어떤 실체로 고찰한다면 다양성의 관점이 통일성의 관점보다 우월하게 된다. 각 사회집단은(187) 다른 사회집단과 더불어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고 세습적이라 할 수 있는 변별적 특성으로 체계를 구성하는 경향을 가질 것이다. 각 집단의 배타성은 사회 내부의 연대적 결속을 약화시킬 것이다. 멋대로 자연의 모델에서 끌어온 이미지에 따라서 스스로를 정의내릴수록 다른 집단과의 연대 유지가 어려워질 것이고 동생이나 딸을 교환하는 일이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사회적 이미지와 자연적 이미지는 각각 독립하여 분절적으로 연결되어 있던 것인데, 이 두 이미지는 좀 더 세분된 하나의 사회·자연적 이미지가 된다.
자연과 문화의 관계를 인간이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인간 자신의 사회적 관계를 변형시키는 방법에 달려 있다(188).
반족은 주거양식이나 기질이 달랐다. 한 쪽은 호전적이고 광야에서 살기를 좋아한 반면 다른 한 쪽은 평화적이어서 깊은 숲속에서 살았다. 또한 반족은 계층화되어 있었다. 계층적·심리적·기능적 차이는 씨족이나 그 하위 부락의 수준에 특히 잘 나타나 있었다. 너구리 부족들은 생선과 야생과일을 먹고 살았다. 퓨마씨족은 깊은 산속에 살았고 물을 두려워해 피했으며 주로 수렵을 해서 먹고 살았다. 산고양이 씨족은 눈이 대단히 좋아서 낮에는 자고 밤에 사냥했다. 붉은 여우 씨족은 전문적인 도둑으로 구속을 싫어하며 싶은 숲속에서 살았다. 방랑자 이스카 씨족은 이리저리 떠돌며 준비성이 없으나 ‘몸이 쇠약해지는 짓은 하지 않으므로’ 튼튼했다. 인생은 길다고 생각하는 그들은 태평하게 움직였다. ‘휘어진 떡갈나무 기둥’집 패거리들은 숲속에서 살았다. 그들은 변덕스럽고 씩씩한 맛이 없으며(190) 춤을 좋아하고 언제나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붉은 스컹크’의 부락에서는 움막집이 모두 지하에 있었다. 이것은 카스트 사회이며 또 각 카스트의 속성이나 상호관계가 토템집단과 같이 자연종을 부호로 하여 기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씨족과 그 씨족명의 시조가 되는 동물 사이에 상정된 관계는 고전적인 ‘토템’ 사회에 보이는 관계와 같다. 즉 씨족이 동물의 자손이라든가 아니면 씨족의 선조가 신화시대의 동물과 혼인하였든가 둘 중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자연’의 카스트로 구성되었다고 생각되는 사회, 즉 문화가 자연의 투영 내지 반영이라고 생각되는 사회는 옛날 학자들이 토테미즘의 전형으로 간주한 사회나 북미대륙에서 순수한 카스트를 가진 사회와의 연결점이 된다(191). 사람의 판단을 혼란케 하는 토테미즘의 개념에 따라 규정된 사회제도는 기능적인 특징을 가진 것과 여전히 토템 집단의 모델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카스트로서 작용하는 것 두 가지이다(194).
카스트의 본고장인 인도의 토테미즘은 카스트와 접촉하여 미대륙과 대칭적인 변환을 이뤄서 문화를 모델로 한 토템집단을 생각하게 한다(194). 인도에서는 씨족명으로 사용된 제조물은 토템 식물이나 토템 동물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결혼식에서 그것들은 의례의 대상이 되며 그에 대한 존경은 기묘하고 독특한 형태로 나타난다. 빌족의 깨어진 항아리 씨족들은 특정형의 도기 파편을 주워다가 무덤을 만들어준다거나 카루바족의 아리사(향료), 고트람(외혼제 하위 씨족)은 심황을 이름으로 쓰고 있다. 알려진 기묘한 씨족명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북부, 외부의 영향을 가장 많은 받는 지역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195).
인도에서는 토템 명칭에 제조물명이 붙는 비율이 높다. 카스트에 있어서 직능활동은 명확하게 구별되므로 카스트 자체에서도 사회 집단간의 변별적 차이를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미대륙에서는 카스트제의 기본 원리가 토템 분류에 전염된 면을 보이는 데 비해 인도에서는 토템 집단의 흔적이 기술적·직업적 발상의 상징체계 속에 용해되어 있다. 직업 카스트는 변별적으로 또 집단 전체의 생활과 복지에 필요한 활동을 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토템 집단에서 주술은 하나의 상상의 세계에 속한다. 수익자와 스스로 주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어느 쪽이든 주술에 대한 신앙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카스트의 경우와는 구분된다. 주술사와 자연종과의 관계는 공인과 제조물과의 관계와 논리적으로 동일한 모델로 생각할 수 없다. 토템 동물이 조상의 몸에서 직접 생겨났다는 것은 신화시대의 것이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는 카스트제와 유사대응성이 있다. 하나의 4분(196)족은 다른 4분족을 위해서 여성을 만든다. 직업 카스트가 자기의 직접적인 노동력이 없으면 얻을 수 없는 물품을 다른 카스트에게 제동하는 것과 같다. 직업 카스트와 토템 집단은 모두 ‘외실행적’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내실행’률은 식별이 가능하다. 카스트는 표면상 내혼적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집단은 외혼제지만 내혼제를 모방한 한정교환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한정교환 집단은 스스로를 폐쇄된 집단으로 여겨 내부 교환이 자기를 복제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일반교환은 개방적이며 구조를 뒤엎지 않고서도 새로운 집단의 편입을 허용한다. 그림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외혼제의 ‘폐쇄’형인 한정교환은 그 ‘개방’형인 일반교환보다는 논리적으로 내혼제에 가깝다(197). 여성은 다른 생물학적 개체로부터 태어난 자연의 소산이다. 다른 생물학적 개체로부터 태어난 자연의 소산이다. 반면 물품과 용역은 제조물이다. 기술자에 의해 문화적으로 제조된 사회적 산물이다. 직업 카스트와 토템 집단과의 사이는 역대칭적이다. 이때 구별 원칙은 한 쪽은 문화로부터 다른 쪽은 자연으로부터 취해진 점이다. 이 대칭성은 이념적 측면에서만 존재한다. 구체적 기초가 결여되어 있다. 문화의 경우 직업적 특성은 실제로 다르고 또 상호보완적이다. 자연의 경우 외혼제 집단에 대한 식으로 이야기할 수 없다. 직업이란 다른 ‘사회적 종’이지만 여성은 다 같은 자연종이기 때문이다(198).
카스트가 문화적 이질성을 실제로 발동시키는 반면 토템 집단은 자연적 이질성을 환상으로만 발동시키는 데 그친다. 카스트는 자연적 산물을 자연적 모델에 따라 생각해야 한다. 자연적 산물이란 인간에 의해 생산되고 다시 생산해내는 여성들이다. 여성도 다양화되며 교환될 수 없다. 토템 집단은 이것과 반대의 대가를 치른다. 자연의 모델에 따라 규정되므로 자연의 산물을 서로 교환한다. 자연과 문화 사이에 상정되는 대칭성은 문화면에서 자연종의 동화를 야기한다. 결국 문화는 자연종 모두가 동일한 유형의 신앙과 의례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경향을 띠게 된다. 문화면에서 자연종은 인간이 제어하거나 증식시킬 수 있는 공동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여성을 문화적으로 교환하고 여성은 같은 인간을 자연적으로 영속시킨다(199).
직업 카스트와 토템 집단은 같은 특성이 역전된 형상일 뿐이다. 카스트는 기능적으로 서로 이질적이나 구조상에서는 동질적일 수 있다. 기능의 다양성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상호보완성도 현실의 수준에서 성립된다. 토테미즘은 호혜성이라는 동질의 행위로 구성되며 단지 병치되어 있을 뿐이다. 참 호혜성은 자연과 문화 양쪽 과정의 맞물림에 의해 성립된다. 카스트제에서 호혜성은 직능 분화에서 나타난다(200).
여성은 자연적으로 교환이 가능하며 문화는 변별의 게임을 자유로이 전개할 수 있다. 그러나 음식물 쪽은 완전한 교환이 불가능하다. 직업은 실제 서로 다르며 또 상호보완적이므로 이것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호혜성을 설정할 수 있다. 카스트는 어떤 것이든 부분적으로 ‘내기능적’이다. 각 카스트의 임무는 다른 카스트의 임무와 서로 대치될 수 없으므로 분화된 임무를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행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201).
북 아메리카 수렵 부족 신화에서 혼인교환은 자연과 문화를 중개하며 직접 응용되는 모델임을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여성체계’는 동식물 체계와 물품 체계 사이의 중간 항이라는 것, 각 체계는 하나의 군 안에서의 변환으로 파악된다는 것이 확실해진다
동식물 체계는 객관적인 현실성을 가지고 있고 직능의 체계만이 사회적 실재성을 보유하여 인(203)간 세계 내에 있게 된다. 두 체계는 제각기 자체에 충실하기 때문에 다른 면으로 조작하기는 쉽지 않다. 카스트는 호혜성의 일대 체계의 도식을 구성하는 데 소용이 되므로 기능이 내적으로 된다. 어떤 경우든 호혜성이 절대적은 아니다. 혼인교환의 호혜성도 순수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잡종성이야말로 호혜성이 완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이로써 제1의 결론, 즉 토테미즘은 ‘미개성의 언어’가 아닌 카스트제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다룬 것은 변별적 특징에 의해 규정되는 자율적 제도가 아니며 지구상의 특정지역이나 어떤 문명의 특징이 되는 제도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토테미즘의 정반대되는 사회구조의 이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조작양식’이다.
제2의 결론, 토템 관습에는 행동규범이 존재한다(204). 외혼제와 음식물 금기는 사회성과 무관하지 않으며 하나의 ‘실천’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두 가지 면 내지 두 가지 양식이다. 이 실천은 안과 밖이라는 두 가지 방향을 가지고 있다.
개념의 도식이 관습적 행동을 지배하고 규정짓(205)는다. 관습적 행동이 시간적·공간적으로 한정되고 또 생활양식이나 문명 형태의 변별적인 별개의 사실이므로 실천과 혼돈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실천이라는 것은 인간에 관한 과학에 있어서 근본적인 총체이다. 나는 실천과 관습적 행동 사이에는 언제든지 매개항이 있다고 믿는다. 그 매개항은 개념의 도식인데 본질과 형태가 그 도식의 조작에 따라 구조, 즉 경험적이면서 해명 가능한 존재로 구현된다. 상부구조의 변증법은 먼저 ‘구성단위’를 세워야 한다. 구성단위를 사용하여 하나의 ‘체계’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이 체계는 관념과 사실 사이의 종합적 조작매체로서의 역할을 하며 사실을 ‘기호’로 변화시킨다. 정신은 경험적 다양성에서 개념적 단일성으로 나아가고 또 개념적 안일성에서 유의미한 종합으로 나아간다(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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