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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종으로서의 개체

 

  페낭족의 인명 체계 - 고유명, 친명, 상명

제_7장_종으로서의_개체.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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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르네오 내륙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페낭족은 연령과 가족 안에서의 위치에 따라 개인명, 친명(親名), 그리고 상명(喪名)이라는 종류의 이름으로 불린다. (281)

 

 이와 같은 이름의 사용법을 정하는 규칙은 놀라울 만큼 복잡하다.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아이는 직계존속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자기의 고유명으로 불린다고 있다. 부모는 첫아이가 태어나면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버지 아이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친명을 사용할 있게 된다. 아이가 죽으면 친명은 상장자(喪長子)라는 상명으로 바뀌며 다음 아이가 태어나면 상명을 대신해 새로운 친명이 붙는다.

  상황은 형제간에 관련된 특별한 규칙이 있어 복잡하다. 형제자매가 모두 살아있다면 아이는 자기 이름으로 불리다가 누군가 죽으면 상명으로 바뀐다. 그러다 동생이 새로 태어나면 상명을 버리고 다시 자기의 개인명을 쓴다.

 

  전체적으로 체계는 유형의 주기성에 의해 규정할 수가 있다. 개인이 조상에 대해서는 상명에서 상명으로, 형제에 대해서는 본명에서 상명으로, 자식에 대해서는 친명에서 상명으로 이동한다. 친명과 상명은 친족관계 때문에 존재하므로 관계명이다. 친명은 고유명을 포함하며 본인의 이름이라기보다는다른 자기와의 관계 표현하는 것으로 규정될 있다. 상명에는 고유명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친족관계만이 서술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이를 타자 관계 규정할 있는데, 관계는 부정적인 관계이다. 상명이 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오로지 관계의 소멸을 언명하기 위해서일 뿐이기 때문이다.

 
   

 

 

 

  본명과 상명의 관계는 역대칭의 관계이다. 저자는 고유명사라 생각할 있는 본명과 단순한 클래스 표식항의 성격을 가진 상명이 실제로 동일 군에 속하며, 변환을 가함으로써 서로에게 이행할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낸다.(283)

 

 어렴풋하게나마 상명과 유사한 것은 미망인 칭호로 유럽의 관습이 있다. 남성은 홀아비 고아앞에 누구의 결합시키지 않지만 여성의 경우 남편을 잃으면 누구씨의 미망인 된다. 프랑스 관습에서 여성은 이미 본명을 포기하고 다른 주체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이름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친명의 정의인 것이다.(284)

 

 

 고유명은 복잡한 체계에서 독립된 범주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고유명은 종속적 위치를 점유한다. 자기의 고유명을 공공연히 쓰는 자들은 아이들 뿐이다. 너무 어려서 가족과 사회로부터 구조적인 자격을 부여받지 못했거나 양친을 위해 이와 같은 자격 부여의 방법이 일시적으로 보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유명은 클래스에의 후보로서 클래스를 부여 받지 못한인간의 표시이다.

 

 다른 형식에 대한 상명의 논리적 우선성은 절대적이다. 상명을 가지게 되면 차례 기다리기의 표시에 불과했던 고유명을 바꾸어 체계 속의 위치를 획득한다.(287) 페낭족에 의하면, 죽은 자가 이름을 잃는 이유는 자가 체계 내에 들어가기 위해 이름을 버리고 상명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전에는 체계 밖에 있던 사람과 이제 체계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체계를 구성하는 여러 관계의 클래스 속에서 합치된다.

 

 이름을 대단히 중히 여겨서 사실상 영구히 사용하는 사회도 있으며 이름을 남발해서 사람이 죽으면 이름도 죽어버리는 사회도 있다. 후자의 사회는 금기를 세워 이름을 결말지으며 대신 이름을 만든다.

 

  가지 방법은 표면적으로는 상반돼 보이지만 실제로 분류체계는 유한하며 불변이라는 분류체계의 항시적 특성의 양면을 나타내는 불과하다. 각각의 사회는 저마다의 규칙과 관습에 의해 연속적인 세대의 흐름에 견고하고 비연속적인 격자틀을 적용시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죽은 자가 이름을 잃어버리면 이름을 자가 이어받느냐(291) 아니면 폐지되느냐로 나뉜다. 어떤 관계가 소멸하면 반드시 그에 따라 사회적이든(죽은 자가 붙여준 이름) 언어적이든(죽은 자의 이름을 닮은 언어) 그것과 관계가 있었던 고유명도 소멸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가 생기면 관계의 영역 안에서 반드시 재명명의 과정이 시작된다.

 

 

 

고유명과 종의 이름

 

  고유명은 근본적으로는 종의 이름과 다름이 없다.(293) 가디너도 동식물의 학명에 붙어 있는 고유명의 성질을 인정한다. 문외한에게는 모두 비슷해 보이는 식물의 표본을 분류해 이름을 붙이는 일은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다. 가디너는 고유명이라는 것은 지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성에 의해서 인식되는 동종표식이다라는 중심 이론을 제시했다.(294)

 

  레비스트로스는 고유명이 종명에 가깝게 보이는 것은 특별히 그것이 클래스 표식항의 역할을 분명히 담당하고 있을 경우, 그러므로 그것이 하나의 의미 체계에 속해 있을 때라고 생각했다. 반면 가디너는 유사관계를 학명의 무의미성으로 설명하려 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학명은 고유명과 같이 단순 변별적인 음성에 지나지 않는다.(295)

 

 우리가 학명을 쓰는 것은 식물이나 동물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아니지만,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부르는 이름을 동물에게 붙이기도 하며 식물에서 빌려 쓰기도 한다. 중에서도 조류가 다른 클래스의 동물보다 사람의 이름을 취하기 쉬운 것은 새가 사람과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인간과 유사하도록 허용된다는 점에 있다.(297) 새는 인간의 사회와 독립된 다른 사회를 형성하지만, 독립성 때문에 우리 사회와 별개이면서도 서로 유사한 사회로 생각될 있게 되는 것이다. 집을 만들어 가정 생활을 하거나 인간의 언어를 연상케 하는 음향적 수단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 새의 세계를 인간 사회의 은유라고 생각하기 위한 모든 조건이 객관적으로 갖추어져있다.(298) 반면 개의 입장은 역대칭적이다. 개는 가축으로서 인간사회에 참여하고 있으며, 지위가 대단히 낮아서 사람과 같은 고유명이나 친족 호칭을 붙여 부르지 않는다.(299)

 

 새나 개는 인간 사회와의 관련에 있어서 관여적이다. 인간은 이들 동물의 사회생활이 인간을 모방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그들의 사회생활이 인간 사회를 닮았기 때문이거나 또는 동물에게 고유의 사회생활은 없지만 인간의 사회생활의 부분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개와 같이 소도 인간 사회의 부분을 차지하지만, 참가의 방법은 이른바 비사회적이다. 그것은 소가 물건과의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주마는 새와 마찬가지로 인간사회와 분리된 하나의 계열을 형성하지만 소의 경우처럼 내재적 사회성을 결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새를 은유 인류’, 개를 환유 인류라고 한다면 소는 환유 비인류’, 경주마는 은유 비인류라고 있다. 소는 유사성을 결여하는 까닭에 인접적이며 경주마는 인접성을 결여하므로 유사적이다. 범주는 서로 역대칭 관계에 있으며 다른 범주도 서로 역전된 상을 나타낸다.(303)

 

 고유명사와 종명은 동일 군에 속하고 있으며 유형 사이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310) 분류의 수준에서 경우에 따라 보통명사를 호칭하기도 하며 고유명사를 호칭하기도 하는 것은 사회적 결정에 의한 것이다. 종이나 개체의 관념은 사회학적이며 상대성을 띤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동일 인종에 속한 사람들은 나무에서 발아하고 개화하고 시드는 개개의 꽃에 비교할 있다. 이처럼 호모 사피엔스 종의 성원은 모두 논리적으로는 임의의 동식물의 성원에 비교된다.

 

 그런데 사회생활 때문에 체계에는 기묘한 변환이 생긴다. 사회생활을 통해 발달되는 개체의 개성은 이상 다양성 속에 있는 표본을 상기시키지 않는다. 토테미즘의 이름하에 임의적으로 따로 취급되는 약간의(311) 분류양식이 실제 보편적으로 상용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에서는 토테미즘 인간화(개인화)되어 있는 것뿐이다. 서양 문화에 있어서는 마치 개인이 각가 자기의 개성을 토템으로 하고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개인의 존재를 기표라 하면 개성은 기의가 된다.

 

 고유명사는 계열적 집합체에 속하는 것으로서 하나의 전체 분류체계의 주변부를 구성하고 있다. 그것은 분류체계의 연장임과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명사가 고유성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는 명사의 내적 성질로 결정될 없으며 다른 단어와의 비교로 정해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저마다의 사회가 분류 작업을 언제 끝내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어떤 이름이 고유명사 느껴진다는 것은 절대적인 기준에서가 아니고 문화체계 속에서 단어가 이상 분류할 없는 최종 수준에 위치한다라는 점에 있다. 고유명사는 언제나 분류의 끝에 머무는 것이다.(312)

 

 분류체계의 한계성을 정하는 방법은 문화마다 다르다. 원주민은 자신들의 분류양식을 통해 지적 조작을 계속해서 사회집단의 개개의 성원에게까지 확장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개인이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점유할 있는 여러 가지 단독적 위치까지 넓힐 있다. 그러므로 새로 발견된 식물에 대해 체계적으로 조립된 학명을 붙인 학자나 집단의 새로운 성원에게 사용가능한 이름을 지어두어 인간의 사회적 계열관계를 규정하는 모하자족의 사제는 형식의 관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어느 경우나 합당한 일을 하고 있다.(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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