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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June 2024 작성 - 2024 6 26 전주인간무늬연마소사회심리학 연구모임

25 Juni 2024 작성 - 2024년 6월 26일 전주 ‘인간무늬연마소’ 사회심리학 연구모임.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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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안정남역,  야생의 사고, 한길사 2021. 9 역사와 변증법

요약 인용 발표: 콩빠

 

I. 텍스트

인용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야생의 사고는 사르트르가 변증법적 이성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앞을 지향한다. “비판”(Critique) 읽으면서 사르트르가 변증법적 이성을 오류와 진리, 또는 악마와 신과의 관계처럼 대립시키는가 하면, 어떤 때는 개의 이성을 상호보완적으로 같은 진리에 도달하는 개의 길로 나타내기도 한다. (레비스트로스 352)

루소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간을 연구하자고 한다면 가까운 주변부터 보아 나가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곳도 알아야 한다. 보편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차이점을 관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오히려 정밀 자연과학의 일이다. 문화를 자연 가운데 통합하며 인간생활을 물리화학적 조건이라는 전체에 통합하도록 하는 것이다.(레비스트로스 354 - 루소 재인용) 그러나 개별적인 인간성을 일반적 인간성 속으로 흡수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수는 없다. 단계의 일은 다음에 다른 과업의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레비스트로스 354)  

미개인의 사고와 우리들의 사고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반론이 있을 것이다.  정보 이론은 메시지임이 분명한 메시지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미개인은 단순히 자연의 인과성의 발현에 지나지 않은 것을 못해서 메시지로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를 들면 용해한다라는 동사는 다른 성질의 작용에 좌우되는 어떤 물질의 구성 부분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오히려 배제하는) 것을 있다 (레비스트로스 355)

인간을 변증법으로 정의하고 변증법을 역사에 의해 정의할 역사 없는민족은 어떤 취급을 받게 되는가? (레비스트로스 356) 

야생의 사고의 특성은 비시간성에 있다. 그것은 세계를 공식적이면서 통시적인 전체로 동시에 파악하려고 한다. 야생의 사고의 세계인식은 마주보는 면에 고정되어 엄밀하게 평행하지는 않으나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그리고 사이에 있는 공간에 있는 물체도 비춘다) 장의 거울 달린 방이 제공하는 인식과 흡사하다 (레비스트로스 374/375).

야생의 사고는 길들여진 사고와 구별된다. 역사인식은 길들여진 사고의 일면을 구성하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 375)

이유는 우리가 그들과 비교할 있고 그것을 식별하는 기준점을 제공할 우리 사회의 관습이 해리된 상태로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반면, 이러한 이국적인 사회에서는 우리가 인식할 없게 만드는 연관된 형태로 존재한다. (레비스트로스 379)

그러므로 경험을 통해 내부로부터의 관점을 체득하게 되면 이와 같은 관습엔 어떤 신비성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구성조건이 사례마다 다르기 때문에 혼동할 뿐이다. 서구의 경우는 다른 관습과 명확히 구분되어 분명한 상황과 결부된다. 반면에 이방사회의 경우는 같은 관습이나 같은 상황이 다른 여러 관습, 혹은 다른 상황과 밀착되어 있다. 상황이란 가족관계이다.(레비스트로스 379)

우리는 개인적으로 공화국 대통령의 사위는 사생활에서 대통령을 장인이기 보다 그를 국가의 수장으로 본다는 것을 상상할 없다. 그리고 영국 여왕의 남편이 공개적으로 신하의 우두머리로 행동하지만, 생활에 있어서는 단지 남편일 뿐이다. 시댁 금기의 표면적인 기묘함은 동시에 이것 또는 저것일 있기 때문이다.

야생의 사고는 우리와 같은 의미와 방식으로 논리적이지만 물리적 특성과 의미론적 특성을 동시에 인식하는 우주에 대한 지식에 적용될 때에만 한한다. (레비스트로스 379)

미개인의 사고와 우리의 사고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남아 있다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레비스트로스 381)

야생의 사고가 접근할 있는 속성은 과학자의 관심을 끄는 속성과 동일하지 않다. 각각의 경우에 따라 물리적 세계는 양극단의 끝에서 접근된다. 하나는 극도로 구체적이고 다른 하나는 극도로 추상적이다. 바꾸어 말하면  감각적 특성의 관점에서든, 형식적 속성의 관점에서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관점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경로가 당연히 함께 합류할 것이다. (레비스트로스 382)

야생의 사고가 취급할 있는 특성은 과학자가 연구대상으로 하는 특성과 같지 않다. 자연계는 가장 구체적인, 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가장 추상적인 양극단에서 접근할 있다. 금세기 중반에 와서 평행선을 달라던 개의 길이 서로 만나게 된다.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을 우회하여 자연계(물리적 세계) 접근하는 길과 최근 발견된 물리커뮤니케이션의 세계로 가까이 가는 길과의 만남이다.(레비스트로스 382) 야생의 사고와 만남을 통해서 야생의 사고의 원리를 정당화하고 원리를 회복하는데 공헌해야 것이다.(레비스트로스 383)

 

II. 2 문헌 산책

1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

https://www.khan.co.kr/feature_story/article/201604192312005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야생의 사고

입력 : 2016.04.19 23:12 수정 : 2016.04.21 16:33 김호기 (연세대학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변증법적 이성을 분석적 이성의 상위에 두는 사르트르 철학이자기 중심주의’, ‘서유럽 중심주의 불과하다고 비판하였다.

<야생의 사고> 구조주의자 로서의 레비스트로스의 문명론과 사회사상에 담긴 독창성을 대표하는 저작이다. 그는문명의 사고미개의 사고 이분법을 거부했다. 미개의 사고는 문명의 사고보다 결코 열등하지 않은 야생의 사고다. 야생의 사고는 일관된 질서가 존재하는구체의 과학이라는 그의 주장이었다. 그에 따르면 인류학자들이 즐겨 다루는 토테미즘은 신화적 사고로서의 야생의 사고가 갖는 특징을 드러낸다. 토테미즘에는 사물들의 분류체계와 위계질서의 기초가 담겨 있다. 다시 말해, 토테미즘은 미개인의 종교적 현상이 아니라 인간 사유의 보편적 특성을 보여준다는 그의 분석이었다. 야생의 사고에 대한 다양하고 치밀한 논증에 기초해 책의 결론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검토했다. 그는 변증법적 이성을 분석적 이성의 우위에 두는 사르트르 철학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2. 타부와 의례 : `이항대립적 사고체계` 구성과 해체, 그리고 정치적 재구성

최일성 (목포대학교), 종교연구 62

2011.3 1 - 40 (40page)

DBpia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논리적 사고에 기반한 인간의 인지는 사회적 맥락과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금기는 개인이 세상을 합리적으로 분류할 있게 해주는 포괄적이고 일관된 분류 체계라고 언급하였다. 판단에서 그는 금기는 논리적 타당성을 지닌 명목상의 차이라고 설명하였다. 금기의 수용은 인식론에서 금지된 것과 허용된 , 인식 가능한 것과 인식 불가능한 사이의 차별적 속성을 검증하고 혼합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명목상의 규칙을 준수할 효력은 유지될 것이다. 불명예스러운 규칙은 처벌이 부과되더라도 당연히 의미의 상실 또는 약화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점에서 금기는 성스러운 것과 불결한 , 인식할 없는 것과 인식할 있는 사이의 대립에 기반한 역동적인 사고 활동과 관련된 인식론적 차이이며, 이는 서로의 관점에서만 정의되어야 한다. 여기서 존엄성과 , 영감과 정체성의 원천으로서 성스러운 것은 불결한 것보다 우월하다. 따라서 이는 차별적 판단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조건에서 금기를 위반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의식 위반이라고 말한 의도적 반항이 금기의 시스템 자체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금기의 중요성을 잃거나 약화시키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금기의 효율성은 근본적으로 피할 없는 위반의 존재에 기반한다. 실제로 구성원 전체가 의례에 참석하지 않으면 의례 위반은 참석자와 참석자 사이의 차별 구조를 재생산하게 된다. (초록·키워드)

 

3. Wikipaedia

Critique of Dialectical Reason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사르트르는 의식적인 인간의 행위는 인간의 '시간성' 생산하는 자유의 투영이 아니라 '총화' 향한 움직임이며, 의미는 기존의 사회적 조건에 의해 공동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행위의 의미를 절대적으로 자유롭게 결정할 있는 존재도 아니고 자신이 처한 상황의 노예도 아니다. 사회생활은 자유에 뿌리를 개인의 행위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제한을 받는 역사의 퇴적물이기도 하며, 많은 장애물을 부과하고 사회적 관계를 희소성에 의해 지배하게 만드는 자연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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