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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스피노자, 반오웰

2장 스피노자에서 개체성과 관개체성

 

이 글에서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두고, 알렉상드르 마트롱의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질베르 시몽동의 형태, 형태화, 퍼텐셜, 준안정성이라는 개념에 따라 해명해 본 심리적·집합적 개체화를 언급하며 설명한다. 이 발제문에서는 마트롱과 시몽동으로 표기한다.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철학은 사상사의 이원론으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본다(p. 209)

(개체론과 유기체론 / 외적으로 인식된 사회적 관계와 내적으로 인식된 사회적 관계)

 

이 환원불가능성은 스피노자 철학의 결과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의 유한양태이론 및 유한양태들의 자연적 생산이론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윤리학3부에서 “간(間)인간적인[인간 상호 간의] 정념적 삶의 기초들라는 개념을 다룬다.

발리바르는 마트롱이 사회성의 기초를 발견된다고 말했음에 주목한다.

 

마트롱은 정서적 모방의 논리 및, 특히 개인들이 자신들과 유사한 이들로 지각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고 상상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려는 욕망을 이 개인들에게 불어넣는 명예에 대한 야심의 효과들에 특별한 중요성을 부여한다(p. 210).

 

마트롱은 스피노자와 홉스를 대조하며 보여주는데 그 차이를 이해타산으로 둔다.

 

이러한 감정은 자아를 극도로 고양시키기는 하지만, 용어의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해관계를 지닌것은 아니다. 이는 결코 우리가 타인을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홉스가 믿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어떤 계산에도 의지하지 않는다.

 

『윤리학』 4부는 ‘이성적 삶의 기초들’을 다룬다. 마트롱은 앞선 주제와 관련하여 스피노자의 텍스트에서 용어모순을 고안했는데, 이를 “생물학적인 이기적-이타주의”라고 칭한다(p. 211).

 

이제 발리바르는 개념적 이원성을 극복하는 길과 개체성 개념으로부터 관계 및 소통의 존재론이 구성되는 방법을 탐구한다(p. 212).

발리바르는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관념을 결합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개체성은 필연적인, 따라서 실재적인 실존 형식이다.(개체 자체는 실체가 아님)

둘째, 개체는 하나의 통일체다.

셋째, 개체들의 구성과 활동은 원초적으로 다른 개체들과의 관계를 함축한다는 사실이 따라 나온다(p. 213).

 

발리바르는 코나투스 개념을 통해 저항과 동시에 연합이라는 모순성을 설명한다고 본다.

 

역사적·정치적 영역에서 코나투스는 각 실재의 ‘자연권’이라 불리며, 자연권 개념이 함축하는 개체론과 유기체론에 대한 동시적 비판은 다음과 같은 이중의 기본 논거로 표현된다. 곧 한편으로 개체들의 자율성이나 역량은 시민사회나 국가의 구성에 의해 감소하는 게 아니라 증대한다. 다른 한편으로 국가의 주권이나 역량은 개인들의 자율성, 특히 개인들의 사고와 발언의 자유에 의해 제한되는 게 아니라 증대한다.

 

 

 

발리바르는 시몽동의 용어인 관개체성을 통해 이러한 대립물의 상호일치’, ‘추상적인 반대항들의 동시적 부정의 논리를 설명한다.

 

발리바르는 스피노자가 그의 존재론의 최초 명제들에서부터 관개체성의 이론가로 간주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에 대한 답으로 스피노자의 철학이 순수하게 부정적인 정식들을 극복하고 부인할 수 없는 현재성을 지닌 구성적인 한 개념에 도달할 수 있게 도와준다(p. 215).”고 말한다.

윤리학1부에서 관개체성에 대한 인과관계 도식은 칸트의 방식과 차이가 있다. 칸트와 달리 스피노자의 도식은 비선형적이다.

 

곧 실존하기는 작업하기, 또는 다른 실재들에 대해 활동하기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작업 자체는 항상 필연적으로 다른 실재 또는 원인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 원인들의 무한한 연관은 독립적인 선형적 계열들의 추가나 원인과 결과의 계보가 아니라, 독특한 변조들의 무한한 연관망에 의해서만, 또는 변조하면서 동시에 변조되는 활동들의 동역학적 통일성에 의해서만 제대로 표상될 수 있다(p. 216-217).

 

칸트와 스피노자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둘 모두 물리적 원인들의 질서와 도덕적 또는 ‘실천적’ 결과들의 질서를 설명하기 위한 단 하나의 일반 도식만 갖고 있다. 스피노자의 도식은 하나를 다른 하나의 전도된 이미지로 만듦으로써 실재의 두 수준을 대립시키지 않는다. 칸트에서 인과질서는 사후적인 선형적 규정이고, 목적론적 질서는 예상이나 의도들을 수단으로 삼아 작용하는 사전적인 선형적 규정인데 반해, 스피노자는 실천을 모든 작업, 모든 개별적 인과관계와 동등한 자격을 지닌 변조로 만든다. 이렇게 되면 자연적 질서의 전도가 아니라, 이 자연적 질서의 능동적 측면의 필연적 표현이 된다(p. 219).

 

발리바르는 보다 정확히 기술을 하려면 윤리학2부 정리 7에서 동일한 연관의 질서라는 일차적 복잡성에 더해서 두 번째 복잡성을 도입하여 자연에 대한 우리의 공통 개념을 더 가다듬고자 한다.

 

‘부분’과 ‘전체’의 구분은 상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곧 어떤 수준에서는 부분적인 것이 다른 수준에서는 전체가 되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 수준들은 자신의 형태를 보존하는 또는 안정되게 머물러 있는 (또 그렇게 머물러 있는 한에서의) 각각의 통일체의 부분들 사이에 존재하는 ‘운동과 정지의 항상적 비율’의 실존에 기초하고 있다(p. 220-221).

 

발리바르는 이 또한 동역학적개념들에 준거하여 설명함에도 불구하고 정역학적 표상에 의존한다는 결함이 있다고 한다. 이 결함은 소산적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에 우리가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개체는 형식적 통념에 불과하기 때문에 통합의 모든 수준에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이다(p. 221).

 

발리바르는 스피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각각 개체의 보존은 연속적인 재생과 양립 가능해야 한다.”라고 한다.

 

고립된 개체, 자신의 환경을 이루는 다른 개체들과 교환하지 않는 개체는 재생될 수 없다(p. 222). 스피노자는 처음부터 모든 개체는 자신의 형태와 실존을 보존하기 위해 다른 개체들을 요구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교환되는 것은 개체 자체의 부분들인데, 자아의 일정 비율로 남겨두고 타자의 부분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 과정은 반복하며, 자아와 타자 모두 보존과 파괴가 일어난다.

 

‘재상’은 주어진 개체(자아라 부를 수 있는)가 계속해서 개체 자체의 어떤 부분들을 버리고, 다른 개체들(타자들이라 불릴 수 있는)의 부분들을 계속해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단 이때 이러한 교체는 어떤 ‘비율’ 또는 본질은 불변적으로 남겨둔다는 것을 전제한다. … ‘나의’ 보존은 얼마든지 ‘그들의’ 파괴를 함축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역도 역시 참이다. 곧 전체 과정은 여기에 참여하는 가 개체들 모두의 관점에서 고려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보존은 얼마든지 ‘나’의 파괴를 함축할 수 있다(p. 224).

 

이러한 설명에 대해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 주어진 개체의 보존을 다른 개체들의 보존과 양립 가능하게 하거나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준들 또는 상황들이 무엇인지가 바로 그 중 하나이다. 발리바르는 이 난점이 적어도 인간들의 경우에 윤리학뒷 부분에서 전개될 프로그램을 제시해준다고 본다.

 

2부 정리 24의 증명은 각각의 개체가 다른 개체들과 부분들을 교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잠재적 해체를 겪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pp. 225).

 

스피노자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다른 것들에 작용하고 다른 것들의 작용을 겪는 모든 개체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 바깥에’ 놓여있는 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상호작용을 분할 불가능한 개체들 사이의 ‘대면관계’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 그들은 ‘분해’되고 ‘합성’되며, 좀더 기초적인 부분들로 해체되고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통일체들로 재합성된다.

 

 

이제 질문은 개체의 파괴이자 해체의 기준으로 이어진다. 과연 잠재적/전이적/가역적인가 혹은 현행적/비가역적인가? 발리바르는 이에 대한 답을 윤리학4부 사회적 관계에 관한 이론에서 찾는다.

 

자연 안에는 그보다 더 위력적이고 강력한 다른 실재들이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실재는 아무것도 없다. 어떤 실재가 주어지면, 이 실재를 파괴할 수 있는 더 위력적인 다른 실재가 존재한다. 한 개체가 복잡할수록, 이 개체는 외부 세계와 더 많은 관계를 가지며, 유사하거나 유사하지 않은 다른 개체들과의 ‘부분들’의 교환은 더 집약적이게 되고, 이 개체의 실존을 보존하기 위해 이 교환들은 더욱 필수적이게 되며, 또한 이 개체[의 보존]에 필요한 실재들 자체의 우월한 역량 때문에 이 개체의 보존은 더욱 위협받게 될 것이다(p. 226).

 

개체들의 상호 ‘합치’를 수단으로 한 개체들의 다양성의 통합은 개체들 각자가 자신의 자율성(개체화) 및 독특성(개성화)을 유지하기 위한 내생적 조건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만약 개체가 이를 재생하기 위해 자신과 ‘합치하는’ 다른 개체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개체는 한마디로 말해 실존하지 못할 것이다(p. 227).

 

발리바르는 스피노자의 자연적 인과관계 이론은 1부 정리 28이 표현하고, [2부 정리 7] 인과 연관의 질서가 축약하고 있는 일차 수준의 복잡성을 넘어 이차 수준의복잡성을 포함하고 있다고 제안했다. 이때 문제의 개체들이 인간 존재들로 표상될 때에만 설명은 완결적으로 주어질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경험에서 필수적인 요소들을 이끌어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한다. 이 경험은 우리가 다른 실재들, 특히 다른 인간들과 함께 형성하는 조화로운 또는 갈등적인 통일에 대한 경험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는 실존 그 자체, 하지만 이성과 대립하는 한에서가 아니라, 항상 이미 이성을 포함하고 있는 한에서의 실존 그 자체의 경험이다(p.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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