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6장 국가의 기초; 개인의 자연권과 시민권, 그리고 최고권력의 권리

 

모범적인 국가에서 이러한 사상의 자유와 누구나 생각한 것을 말할 자유의 한계가 어떤 것인지 질문할 때가 되었다(p. 255).

 

각자의 자연권은 건전한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욕망과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p. 256).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이성의규칙 및 법칙에 따라 행동하도록 자연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연의 권리와 확정된 질서 … 는 아무도 욕구하지 않고 누구도 할 수 없는 것만을 금지한다.

 

안전하고 유익한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하나의 단체 안에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아주 명백해질 것이다(p. 258).

 

오로지 이성의 지령에 의해서만 인도되도록 … 하는 가장 업격한 서역으로써 자신들을 묶어야 했다(p. 258).

 

우리는 어떻게 이 합의가 그것의 안정성과 유효성을 보증하도록 만들어지는지 고려해야만 한다.

 

누구나 두 개의 선 중에 보다 더 크다고 판단하는 것과, 두 개의 악 중에 자기에게 더 작게 여겨지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이 법칙에 의하면, 보다 큰 악에 대한 두려움 또는 보다 큰 선에 대한 희망이 없이는, 자기의 제한되지 않은 권리를 포기할 정도로 마음을 다 바쳐 약속하려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어떠한 약속이든지 지키려 하는 사람도 일반적으로 아무도 없다는 결론이 필연적으로 내려진다.

 

만약에 모든 사람이 오로지 이성에 의해서만 인도되도록, 또한 국가가 존재하는 것의 최고의 이점과 필요성을 인지하도록, 쉽사리 설득될 수 있다면, 누구나 전적으로 기만을 그만둘 것이다(p. 259).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언제나 이성에 의해 인도되도록 쉽사리 설득될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p. 260).

 

우리는 각자의 자연권이 오로지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만 결정됨을 이미 증명했으므로, 각자가 억지로이든, 자발적으로이든, 타인에게 자기의 능력을 이양한 이상, 그 점에서, 본인도 필연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그 사람에게 넘겨주게 되며, 모두를 힘으로 강제할 수 있고, 모두가 일반적으로 두려워하는 최고의 형벌로 위협함으로써 사람들을 위압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권력]을 보유한 사람이 모든 사람에 대한 최고의 권리를 소유한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자연권에 대한 어떠한 침해도 없이, 누구나 자신이 소유한 모든 능력[권력]을 공동체에 이양하는 조건을 기초로 하여,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고 계약은 절대로 성실하게, 전적으로 항상 보존될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의 권리가 민주주의 국가라고 일컬어지고, 따라서 이것이 자기 능력의 범위 내에서 모든 것에 관한 최고의 권리를 단결하여 소유한 사람들의 연합체로서 정의될 수 있다. 그러므로 최고의 권력[능력]은 법에 구속되지 않으며, 누구나 온갖 문제에서 그것에 복종해야만 한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정부가 완전히 비이성적인 명령을 공포하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p. 261).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한 모임의 다수가, 그게 상당한 규모가 된다면, 어리석은 행위에 대해 똑같이 동의하는 일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가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위험성이 훨씬 더 적다.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목적은, 가능한 한, 욕망으로 인한 우행을 피하고, 사람들을 이성의 한계 안에 머무르게 하며, 사람들이 평화롭게 화합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국민을 노예로 … 변화시키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을 아마도 하게 될 것이다(p. 262).

 

이성의 독점적인 지도 아래에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만이 자유인이다.

 

명령에 따른 행동은 … 실제로 어느 정도 자유에 대한 침해이지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인간을 노예로 만들지는 않는다.

 

자녀들이 부모의 모든 명령에 의무적으로 복종해야 할지라도, 자녀들은 노예가 아니다. 왜냐하면 부모의 명령은 자녀의 선을 주요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최고권력도 국민들과 다름없이 신성법칙에 이해 구속된다는 반대와 마주쳐야만 한다. 반면에 우리는 최고권력이 자연권을 유지하며 권리에 있어서 제한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p. 267).

 

우리는 신성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가, 아니면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가(p.268).

 

우리가 확실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계시를 가지고 있다면 모든 것에 앞서 신에게 복종해야만 한다.

 

만일 정부의 수뇌부에 있는 사람들이 이교도들이라면 … 어느 쪽이라도 그들과는 결코 계약을 맺어서는 안 된다(p. 269).

 

17장 아무도 자신의 모든 권리를 최고권력에 이양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 증명된다. 모세 시대의 헤브라이 국가에 대한 설명,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군주 국가가 설립되기 이전의 헤브라이 국가,그리고 그것의 성공에 대한 설명. 마지막으로 신정국가가 쓰러지는 일이 일어나고 내전 없이는 거의 지속할 수 없는 이유.

 

 

아무리 인간이기를 그만두어야 할 정도로 자신의 모든 권리를, 따라서 자기의 능력[권력]을 타인에게 완전히 이양할 수는 없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최고권력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p. 272).

 

만일 사람들이 나중에 사실상 최고의 권리를 보유한 사람들의 의지에 따르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그토록 완전히 자기들의 자연권을 상실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진실로 가장 난폭한 폭군의 백성들은 속수무책일 것이고, 아마도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상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p. 273).

 

스피노자는 정부의 권력의 범위를 다루면서 개인이 통치체제를 따르는 복종에 대해서 고찰한다. 복종, 즉 명령에 따른다는 행위에 있어서 스피노자는 그 동기를 중요시하지 않고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심에 둔다. 스피노자는 한 사람이 최고의 권력을 따른다고 스스로 결정했을 지라도 자신의 권리에 의해서 행동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바로 통치자의 권리에 의해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는 무슨 이야기인가? 통치권이 개인의 자연권에 기반했다고 주장하는 홉스와 같은 학자의 의견을 반박하는 것인가? 앞서 언급한 자신에게 권리를 남겨놓은 상태로 국가의 명령에 따르기 때문인가?

 

이 때에 한 사람이 그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행동한다는 사실로부터, 우리는 곧바로 그의 행동이 정부의 권리로부터가 아니라 그 자신의 권리로부터 생긴다고 결론지어서는 안 된다(p. 273).

 

국민이 최고권력의 명령에 따라서 행동할 때마다, 그가 사랑에 의해 동기를 얻었든지, 또는 두려움, 또는 희망과 공포의 혼합(이것은 더욱 자주 있는 경우이다), 또는 존숭-이것은 두려움과 감탄이 섞인 감정이다-에 의해 동기를 얻었든지, 그의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그는 그 자신의 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통치자의 권리에 의해 행동한다.

 

이 점은 또 복종이 외적인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내적인 행동의 문제라는 사실에 의해 명확하게 확증된다.

 

명령에 따라서 복종하는 것이 과연 내적인 정신의 문제라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한 개인이 마지 못해서 최고권력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고 하자. 외적 행동은 따르지만 내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 역시도 복종이라고 해석을 해야 하는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행하는 무제한의 권력을 가질 정도로 강력한 정부는 있을 수 없다(p. 274).

 

스피노자는 이러한 내용을 유대인의 역사에서 모세의 사례를 통해 설명하려고 한다.

 

이성과 경험은 우리에게 국가의 보존이 주로 국민의 충성과 덕과 명령을 수행함에 있어서의 확고부동함에 의존한다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말해준다.

 

반면에

 

통치하는 자와 통치받는 자 모두, 그저 사람일 뿐이며, 쾌락을 위하여 의무를 저버리는 경향이 있[다].

 

대중은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감정에 의해서만 지배된[다].

 

이런 모든 위험들에 맞서 지켜내는 것, 범죄의 기회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국가를 조직하는 것, 모든 사람이, 지위에 상관없이, 사적인 이익보다 공공의 권리를 더 중요시하도록 조직을 형성하는 것, 이것이 애써 이뤄내야 할 과업이다.

 

헤브라이 인들은 … 자신들이 바라는 새로운 법을 확립하는 것과 자신들이 원하는 어떤 땅이든지 점령하는 것이 자유로웠다(p. 277).

 

그들은 자기들의 능력 안에 있는 모든 일에 대한 자연권을 되찾았고, 모두에게 그것을 보유하든지 아니면 그것을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든지 다시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 자신들의 권리를 어떤 필멸의 인간에게가 아니라, 오직 신에게만 이양하기로 결심했다.

 

이 나라의 적들은 신의 적들이었다.; 통치권을 장악하려 기도했던 시민들은 신에 대해 반역의 죄가 있었고, 국가의 법은 신의 법이고 명령이었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시민법과 종교 … 는 하나이고 동일한 것이다.

 

스피노자는 이 나라가 "신권국가"처럼 불릴 수 있지만 오히려 민주주의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실제에 있어서 헤브라이인들은 완전하게 자기들의 최고권리를 보유했다.

 

그들(헤브라이인들) 모두는 국가의 정치에 있어서 동등하게 참여했다.

 

“만일 우리가 다시 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우리는 확실시 죽게될 것이오. 당신이 가까이 가서, 우리의 신이 말하는 모든 것을 들으시오.”
이것으로써 그들은, 신의 뜻을 묻고 신의 명령을 해석할 수 있는 자신들의 권리를 절대적으로 모세에게 이양하면서, 첫 번째 서약을 명확하게 취소했다(p. 279).

 

신이 그들에게 이야기하는 모든 것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모세에게 이야기한 것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백성들이 모세를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의 후계자를 선택할 권리를 갖지 못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p. 280).

 

만일 모세가 … 주권자의 모든 직무를 수행할 권한을 갖는 후계자를 선택했다면, 그 국가는 단순히 군주국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법을 해석하고 신의 응답을 공표할 권리는 한 사람에게 부여된 반면, 그렇게 해석된 법과 그렇게 널리 알려진 응답에 따라 국가를 통치할 권리와 권력은 다른 사람에게 부여되었다(p. 281).

 

스피노자는 어떻게 국가가 통치되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국민들은 국가의 최고 주권자인 신의 궁전으로 쓰일 건물을 세우도록 명령을 받았다.

 

다음으로, 군대는 남아 있는 열두 지족으로 구성되었으며, 그들은 가나안의 땅에 침공하여 그것을 제비로 지족들에게 할당될 열두 부분으로 분할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여호수아가 군대의 최고 사령관으로 선택되었고, 그가 홀로 비상사태에서 신의 뜻을 물을 권리를 가졌지만, 모세처럼, 혼자서 천막이나 이동식 신전에서가 아니라 고위 성직자(오직 그에게만 신의 응답이 주어졌다)의 중개를 통해서였다.

 

여호수아의 죽음 후에 신의 뜻을 물을 사람은, 새로운 최고 사령관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아이들이었다(p. 284).

 

누가 각 지족의 지휘관들에 대해 후계자를 임명했는가?(p. 285).

 

나는(스피노자는) 이들 연장자들의 권리에 의해 지휘관의 직무를 승계했다고 추측한다.

 

모세의 죽음 후에 국가는 군주국가로도, 귀족국가로도, 민주국가로도 남겨지지 않았으며 … 신정국가로 남겨졌다.

 

그 이유는 통치의 공간이 신전이며, 심판관은 신이었으며, 최고의 사령관은 신에게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나 방침들 위에 형성된 조직이 인간의 수동적 감정에 대하여 얼마나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 또 피치자들은 반역하지 못하고 치자들은 폭군이 되지 않도록 얼마나 억제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볼 때이다(p. 286).

 

국가를 통치하거나 또는 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이 범한 어떤 악행에 대해서도, 그러한 행동이 올바르고 지당한 것이라고 국민들을 설득하면서, 합법성의 외양으로 덮어 감추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법에 관한 해석이 전적으로 자신들의 수중에 있을 때에는 이것을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지휘관들은 이미 제정되어 있고 모두에게 잘 알려진 법에 따라 전적으로 통치하도록 크게 주의해야만 했다. 만약 그들이 달리 행동하면 그들은 불가피하게 백성들 편에서의 아주 지독한 증오와 마주쳐야만 했다.

 

지휘관들의 제멋대로의 방종을 억제했던 다른 이유들 중에서 상당히 중요한 한 가지가 있었는데, 군대는 스물에서 육십까지의 전체 시민집단에서 예외 없이 모집되었으며, 지휘관들은 외국의 용병을 고용하도록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헤브라이 지휘관들에 대한 또 하나의 억제는 종교가 그들 모두를 한 데 묶는 유일한 끈이었다는 사실이었다(p. 287).

 

세 번째 억제는 새로운 예언자의 출현에 대한 두려움이 제공되었다.

 

네 번째로, 지휘관은 혈통의 고귀함이나 가문의 권리에 의해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우월성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휘관들과 전체 군대는 평화보다 전쟁을 더 좋아할 어떤 이유도 갖지 못했다(p. 288).

 

 

국민들에 대한 억제력

 

그 누구라도 조국을 배신하거나 저버릴 마음을 결코 가질 수 없도록 시민들의 마음 속에 열렬한 애국심을 새겨 놓아야만 한다는 것이 곧 드러날 것이다. 반대로 그들은 외국의 지배를 바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자신들이 숭배하는 바로 그 신의 왕국을 배신하는 것보다 더 사악하고 혐오스러운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진실로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것조차도 아주 부끄러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헤브라이인들의 애국심은 단순히 애국심이 아니라 경건이었고, 이러한 것이 다른 민족들에 대한 혐오와 더불어, 그들의 날마다의 일부에 의해 촉진되고 조장되어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본성의 일부가 되었다.

 

이 나라의 다른 특징이 있었는데, 그것은 시민들이[국가의] 결함을 숙고하는 것과 조국을 저버리기를 원하는 것을 단념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음에 틀림이 없었을 것, -즉, 모든 인간 행동의 추진력이고 활력인, 이기주의의 동기-이었다(p. 290).

 

헤브라이의 시민들은 오직 자신들의 조국에서만 행복한 삶을 향수할 수 있었다(p. 291).

 

사람들이 자신의 동배를 섬기지 않고, 오직 신만을 섬겼던 것과, 자신의 동료시민에 대한 자선과 사랑이 최고의 종교적 의무로 간주되었고, 또한 그들이 다른 민족들에 대해 가졌고, 다른 민족들이 그들에 대해 가졌던 공통의 혐오에 의해 동료시민에 대한 자선과 사랑이 적지 않은 정도로 촉진되었다는 것.

 

그들의 삶은 복종해야 하는 오랫동안의 훈련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에 그토록 익숙해진 사람에게는 복종이 더 이상 예속이 아닌, 자유로 생각되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것으로부터 아무도 금지된 것을 욕구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은 명받은 것을 욕구했따는 것도 역시 귀결되어야만 했다.

 

이제 나에게는 어찌하여 헤브라이인들이 그토록 자주 계율을 버렸고, 왜 그들의 나라가 결국에 가서 전적으로 멸망하는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이유를 묻는 것이 남아있다(p. 292).

 

만일 국가의 구성이 최초에 의도된 대로였다면, 모든 지족들은 동등한 권리와 명예를 누렸을 것이고, 국가의 전체구조는 아주 건전했을 것이다(p. 294).

 

거기에서는 엄청난 변경들, 무한정한 이권, 방종과 게으름이 뒤이어 생겨났는데, 그것들은 전반적인 쇠퇴를 불러왔기에, 모든 지족들이 종교적인 통치와 사제직의 근거에 관한 공통의 시민권을 더 이상 보유하지 않은 채로, 그러나 왕에 대한 충성에 의해 신전보다는 궁정을 통치의 좌석으로 만들면서, 자주 정복당한 후에, 결국 그들은 종교적인 통치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한 불화에 이르고 필멸의 왕을 찾았다(p. 295).

 

아들들이 세습 권리에 의해 계승했을 때 이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수중에만 절대적인 통치권을 소유하기 위해 광범위한 변경을 일으키기 시작했다(p. 296).

 

그들은 자신들의 통치권 안에 있는 또 하나의 통치권을 보았고, 관대히 봐준 덕으로 통치했다.

 

설령 폭군을 제거했을지라도 폭정의 원인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불화와 내전이 끝이 없었으나, 신성한 법을 위반하게 했던 원인들은 항상 똑같았으며, 오로지 전체 조직과 함게 제거될 수 있을 뿐이다(p. 297).

 

우리는 이제 종교가 어떤 방식으로 헤브라이 연합국기 속으로 받아들여졌는지, 그리고 만일 ‘입법자’의 정당한 노여움이 국가가 최초의 형태를 지속하도록 허락했다면, 어떻게 국가가 영구히 지속할 수 있었는지를 알았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것은 결국 반드시 끝나도록 정해져 있었다.

 

신성한 권리, 또는 종교의 권리는, 계약에서 생기며, 계약이 없으면 권리는 없고 자연권만 존재한다는 것, 그래서 헤브라이 사람들은,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을 위해서는 경건을 실행할 종교적 의무를 요구받지 않았으나, 오직 자신들의 동료시민들을 위해서만 그렇게 요구받았다는 것이 명확하게 밝혀진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