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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자연법론 비판과 절대적 인륜성의 체계 – 김준수

자연법 역자 서문 발제(2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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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 : <자연법에 대한 학적 취급방식들, 실천철학에서 자연법의 지위와 실증법학의 관계에 대하여>는 해겔의 여러 저서들 가운데 법철학적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 최초의 저작이다. (14) <자연법> 논문은 도입부 외에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홉스를 필두로 한 근대의 경험주의적 자연법 사상 비판
2) 칸트와 피히테의 형식주의적 이성법 사상 비판
3) 위 이론들의 토대가 되는 근대 시민사회가 분열과 대립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단지 형식적이고 추상적(15)인 법관계만을 산출할 수 있을 뿐이라고 진단하고 이에 대하여 현실과 이념, 다수성과 단일성, 개인과 전체가 분화 속에서 통일을 이루는 절대적 인륜성의 이념을 제시
4) 법에 관한 학문이 실정법에 고착된 실증법학이 되어서는 안 되며 인륜적 총체성 및 그 구현체인 민족공동체의 역사와 유기적 연관을 유지한 자연법 체계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
 
경험주의적 자연법론 비판
p21 : 헤겔은 경험주의적 자연법론, 즉 17~18세기 영국의 자연법 사상들만이 아니라 칸트와 피히테의 선험주의적 자연법(22)론을 포함한 근대의 주도적인 자연법 이론 전반이 근본적으로 경험주의적이거나 혹은 경험주의에 구속되어 있다고 본다. 이 이론들에는 모두 원자적 개별성을 출발점으로 삼고, 경험적 표상을 통해 고착화된 개별규정들의 대립 속에 머문다는 공통점이 있다. (24) 자연상태는 곧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상태’로 파악되는데, 이는 경험주의적 추상화가 이론의 진정한 기반이 될 수 있는 절대적 통일에 이르지 못하고 상충하는 개별규정들의 혼란스러운 착종에 머물 뿐이라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비일관성은 자연상태에서 법적 사회 상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왜냐하면 여기서 경험주의적 자연법론은 예컨대 사교본능 같은 사회구성 요소를 차후에 자연상태에 삽입하는 일종의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하거나 아니면 강자의 지배 같은 앞서 우연한 것이라고 사상시켰던 요소들을 다시 이끌어들이기 때문이다.
 
형식주의적 자연법론 비판
p27 : 발생적 관점에서 볼 때 형식주의는 경험주의와 공통의 토대를 가진 그 이면이자 반면이다. 더 나아가 경험을 부정하는 형식주의는 다수성과 대립되는 추상적 단일성에 고착됨으로써 그 구체적인 적용연관에서 결국은 은밀하게 경험주의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형식주의는 경험주의 못지않게 실증주의에 빠지게 되며, 비인륜성을 더욱 교묘하게 인륜성으로 가장하게 된다. (30)
1) 형식주의 : 칸트가 최상의 도덕법칙으로 제시하는 정언명령은 법칙의 모든 내용규정이 삭제된 공허한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31)
2) 도덕입법의 자기모순 : 내용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도덕입법을 그 본질상 아무 내용도 갖고 있지 않은 이 절대적 실천이성에서 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모순이다.
3) 입법의 자의성 및 결단주의 : 형식적 검증법칙에 따라 보편화가 가능하지 않은 준칙이란 실제로는 없다. 그리고 두 대립되는 준칙들이 정언명법에 따라 동시에 보편화가 가능하다면, 그 중 무엇을 유효한 명령으로 볼 것인지는 자의적이고 주관적인 결단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4) 은밀한 실증주의 : 이러한 주관적 결단주의의 배후에는 은밀한 실증주의가 숨어 있다. 실천이성의 입법 내용은 순수이성을 통해 우연하고 비이성적이라고 배제했던 경험적 현실을 다시 끌어들일 뿐만 아니라 이를 오히려 있는 그대로 정당화한다.
5) 형식주의의 비인륜성 : 규정성과 개별성이 즉자로 격상되는 곳에는 불합리성이 정립되고 인륜과 관련해서는 비인륜성이 정립된다. (33)
6) 강제와 지배질서 : 도덕성과 분리된 합법성으로서 자연법 체계보편적 법칙개별적 주체비합일, 보편의지에 대한 개별의지대립을 근본적으로 전제한다. 이러한 전제 아래에서 개인은 공동체적 결속감과 연대성을 상실한 이기적인 원자로 파악되며, 이러한 개인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규율하는 법규범은 자유의지의 상호제한과 외적 강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35) 인륜성의 참된 이념에 따르면 법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강제의 질서’가 아니라 이를 확장하고 실현하는 ‘자연의 질서’여야 하며,(36)국가는 고립된 단지들의 외면적 집합체가 아닌 생동하는 관련 속에서 개인들이 하나의 민족으로 자기형태화한 현실적 통일체이어야 한다.
 
절대적 인륜성의 체계와 개인의 자유
(44) 헤겔이 제시하는 참된 인륜성의 체계는 인륜적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의 통합체이다. 거부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도덕성 자체가 아니라 개인들의 연대적 자유와 공동체적 덕에서 벗어나고 이에 적대적인 개별적 자유 그리고 그것이 정형화된 “부르주아 또는 사인의 인륜성”으로서의 도덕성이다. (46) 헤겔은 “제압 속에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실현이 개별자에 의해 자율적으로 수행되는 자기극복이 아니라 타율에 의한 자기부정이 될 경우, 그것은 설사 개별자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자유라고는 할 수 없다. (47) 스피노자의 ‘실체’처럼 <자연법> 논문에서의 절대적 인륜성은 그 속성과 양태로는 스스로 분화하되, 개별적 양태가 자기운동을 통해 스스로를 절대적 주체로 형성하고 실체로 복귀하는 길은 열려 있지 않다. 이러한 실체주의를 헤겔은 예나 중기 이후 주체형이상학의 정립 그리고 변증법적 승인이론의 도입과 더불어 비로소 극복할 수 있게 되고, 이와 함께 개인의 자유를 기초로 한 근대적 인륜성을 확립하게 된다. (49) 실천철학의 이와 같은 전면적인 확장은 이 시기의 헤겔이 셸링자연철학의 영향으로 스피노자에게서 극대화되는 고전적 자연개념을 재생시키면서 그것을 토대로 실천철학을 수립하려는 데 기인한다. 능산적 자연 속에는 소산적 자연의 물리적 자연법칙만이 아니라 정신과 이성의 인륜적 법칙까지 근본적으로 동일한 구조를 지닌 것으로서 포함되어 있다. 자연은 이미 그 자체가 모든 존재의 질료이자 동시에 그 규범적 본성인 유기적 총체이다. 따라서 인륜성은 자연의 극복을 통해서 아니라 바로 자연의 실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인륜 속의 비극
p51 : 인륜성 이념의 객관적 현상인 자연은 다시 그 이념을 온전히 실현하는 부분(인륜적 자연)과 그것을 불완전하게 반영하는 부분(물리적 자연)으로 나뉜다. 이처럼 절대적 인륜성이 그 실현과정에서 자신의 한 부분을 이념으로 완전히 장악되지 않은 질료적 자연에 희생하고 양도할 수밖에 없다는 데 인륜적인 것의 비극이 있다. (52) 인륜 속의 비극에는 대립자와의 화해와 이를 통한 자기완성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이 비극은 지극히 비극적이되 파멸적이지는 않고 정화된 숭고함으로 고양된다.
절대적 인륜성이 자연의 두 영역으로 분화됨에 따라 필연적으로 실재성의 체계에서 상이한 두 계층이 형성된다. 그 하나는 인륜적 자연에 상응하는 계층으로서 절대적인 인륜적 의식을 가지고 “인륜적 조직체 전체의 존재와 보존”에 종사하는 “자유인 계층”이고, 다른 하나는 물리적 자연에 상응하는 계층으로서 경험적 의식 속에서 노동과 상업에 종사하며 사적인 삶을 영위하는 “비자유인 계층”이다. 물리적 자연에 대한 인륜적 자연의 관계가 그러해야 하듯이, 비자유인 계층은 자유인 계층에 의해 제압되고 예속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공적 영역(정치)은 사적 영역(경제)에 대해 공동체적 통합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느 정도의 독자성을 인정하되 그것이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하고 공적 영역을 침범할 만큼 지배적인 힘이 되(53)지 않도록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
 
p54 : 형식적인 통일과 평등의 원리가 지배함에 따라 계층 간의 구분은 사라져버리고 국민은 오직 개별존재에 함몰되어 사적인 삶에만 관심이 있는 ‘비자유인 계층’으로 구성되었다. 공동체를 위한 열정과 용기는 소멸되고, 사람들은 “정치적 무능력에 대한 대가를 평화와 영업의 성과에서 그리고 (...) 이 성과를 향유할 수 있는 완벽한 안전에서 찾는” 일차원적 인간인 “부르주아”가 되어버렸다. 이는 인륜성의 죽음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극적인 상황에 무반성적으로 매몰될 때 ‘근대적 희극’이 발생한다. 고대 희극이 대립의 부재 속에서 무운명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면, 근대 희극은 대립과 투쟁 자체에 사로잡혀 유한성 속에서 절대적 무한성을 가장하는 “끊임없는 현혹의 소극”이다. 경험주의와 형식주의, 소유와 계약에 관한 시민법, 그치지 않는 소송과 재판, 그리고 이와 관련된 법규정의 무한한 양적 증가 등은 바로 등장인물들에게는 심각하지만 관객에게는 실소만을 자아내는 근대적 희극이다.
 
자연법과 실증법학의 관계
p58 : 경험적 억견이 유한한 규정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실증주의가 형성된다. ‘실재성의 체계’에서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소유와 계약에 관한 시민법을 국법이나 국제법에까지 확장시키는 근대 사회계약론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그러나 마치 유기체의 한 기관이 전체를 위한 한 부분으로서 기능하지 않고 오히려 전체를 지배하려 할 경우 유기체가 병들고 죽게 되는 것처럼, 국가를 이익 당사자들 간의 계약관계로 파악할 때 국가의 보편성과 인륜성은 파괴되고 만다.
 
p61 : 무엇이 현재 생동하는 것이고 무엇이 지나간 과거의 역사에 속하는지를 판정하고 역사적 상대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보편사적 원리를 상위심급으로 요청할 수밖에 없다. (62) 오직 응보적 처벌만이 처벌받는다는 자도 자유롭게 되고 처벌하는 자도 자유롭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자유의 표현”이고 “자유의 복구”이다. 여기서 자유의 실현은 역사적 단계의 특수성에 따라 이루어질지라도 자유 자체는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사적 원리로 사유되고 있다. 후기의 <법철학>에서 헤겔은 바로 자유의지의 이성적 법칙에 따라 법체계를 구성하게 된다.

1. 1588 (1679) –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출생
2. 1596 (1650) –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출생
3. 1618–1648 – 30년 전쟁(Thirty Years’ War)
4. 1632 (1677) –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출생 / (1704) 존 로크(John Locke) 출생
5. 1649 – 영국 찰스 1세 처형, 공화정 수립
6. 1688 – 영국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7. 1689 (1755) – 샤를 드 몽테스키외(Montesquieu) 출생
8. 1712 (1778) –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출생
9. 1724 (1804)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출생
10. 1770 (1831) – 게오르크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출생
11. 1776 – 미국 독립선언(Americ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12. 1788 (1860)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출생
13. 1789–1799 –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
14. 1804 – 나폴레옹 황제 즉위(First French Empire)
15. 1813 (1855) –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 출생
16. 1815 – 나폴레옹 전쟁 종결(Congress of Vienna)
17. 1818 (1883) – 카를 마르크스(Karl Marx) 출생
18. 1842 (1910) –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출생
19. 1844 (1900)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출생
20. 1848 – 유럽 혁명(Revolutions of 1848) / 마르크스와 엥겔스, 『공산당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 발표
21. 1856 (1939) –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출생
22. 1859 (1952) – 존 듀이(John Dewey) 출생
23. 1861–1865 – 미국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
24. 1871 – 독일 통일(German Unification)
25. 1901 (1971) – 자크 라캉(Jacques Lacan) 출생
26. 1908 (2009) –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출생
27. 1914–1918 – 제1차 세계대전(World War I)
28. 1915 (1995) –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 출생
29. 1917 – 러시아 혁명(Russian Revolution)
30. 1925 (1984) –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출생
31. 1930 (1983) –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출생
32. 1930 (2022) – 장뤽 낭시(Jean-Luc Nancy) 출생
33. 1932 (2004) –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출생
34. 1935 (1995) – 질 들뢰즈(Gilles Deleuze) 출생
35. 1936 ( ) – 에티엔 발리바르(Étienne Balibar) 출생
36. 1937 ( ) –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출생
37. 1939–1945 –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II)
38. 1949 ( ) –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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