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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클럽하우스에서 한 유저가 본인의 감방 경험을 들려줬을때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이 부분이었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도 다 똑같아요. 왜 여기에 들어온지 모르겠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감옥도 일상과 같습니다. 다만,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불편해요. 예를 들자면, 일주일에 한번 구입할 수 있는 라면은 신라면과 짜파게티 중에 하나를 고를 수 밖에 없습니다. 자유의 금지가 가장 불편한 점이예요. 감옥 내에서는 공식적으로 근력 운동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젝은 이렇게 말한다. (13) 가장 위험한 것은 마치 자유인것처럼 누리는 비자유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이 괴테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자유롭다고 오해하는 사람보다 더 절망적으로 노예 상태에 있는 사람은 없다.”

자유를 잃었다는 것을 분명히 자각하는 수인보다, 감옥 밖에 있는 우리 자신이 노예 상태에 처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는 무조건 더 자유롭게 허용될수록 좋은 걸까?

(14) 칸트와 헤겔은 모두 자유가 가장 급진적일 때 질병이 되고, 그 질병이 인간의 행복에 기생하여 부정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해악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현상을 프로이트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자유는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5) 칸트는 도덕 법칙이라는 개념으로 이것을 설명한다. 도덕 법칙은 인간이 자유를 ‘인식하는 근거’이며, 아울러 내가 병리적 이유 때문이 아닌 자율적으로 행위하는 존재임을 밝히는 유일한 증거다. 그러나 동시에 도덕 법칙은 우리의 내재된 내면의 삶에 개입하는 외적 침입자로 경험된다. 즉 그것은 “쾌락의 원칙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 자유는 근본적으로 하나의 질병이며, 이 때문에 인간은 칸트가 주장했듯 자신을 훈육하고 가르칠 주인이 필요한 동물이다.

 

(25) 우리는 언제나 추상적 자유와 구체적 자유 사이의 긴장 속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매개하는 ‘소외된’ 기관들인 시장, 국가, 대의민주주의 등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의 자유를 매개하는 불가피한 조건인가, 아니면 자유를 억압하는 장애물로 작용할 뿐인가? (26) 이제 공산주의를 반혁명적인 것으로 재구상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새롭고 안정된 질서를 확립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어야 한다.

 

1. 자유를 생각하다

1. 자유 그리고 그것의 한계

(33) 정치 참여자로서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자유와 그 자유의 현실적인 내용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간극에서 자유라는 이상에 첨가할 내용물을 자유롭게 가감할 수 있다. 영어에서 자유의 개념을 규정하는 미묘한 차이는 프리덤과 리버티라는 두 단어를 통해 드러난다. (34) ‘프리덤’이 배타적이지는 않지만 가능한 한 자신의 의지대로 행하는 능력과 권한을 의미한다면, ‘리버터’는 작위적인 제약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관련된 모든 이들의 권리도 고려한다. (36) 우리는 당연히 공동체적인 삶의 규칙을 개선하고자 노력할 수 있다. 그 규칙은 팬데믹 상황에서처럼 강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완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규칙이라는 존재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기본 토대로 작용한다.(37)이것이 헤겔이 말하는 추상적 자유와 구체적 자유의 차이다. 그런데 ‘추상적 자유’는 일상의 세계에서 제한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종종 ‘구체적 자유’로 전환되어 실행된다. (38) 무엇을 선택할지 명령받는 자유로운 선택은 이제, 후기 자본주의의 전매특허가 되어 점점 더 우리 삶에 침투하고 있다. (46) 옳지 않은 일을 보았을 때 시대적인 상황을 거론하며 역사 상대주의로 감싸는 일은 잘못된 것이다. 즉 과거의 잘못을 지금의 기준으로 재단하고 (그 야만성에) 충격을 받아야 한다. 역사 상대주의의 맹점은 그것이 진정으로 역사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그 관점이 발화하는 곳은 순수한 메타언어의 지점이다. 그 관점이 발화하는 곳은 순수한 메타언어의 지점이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을 배제한 채 모든 시대를 중립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고 믿는 자만과도 같다.

 

그렇다면, 자유라는 개념에도 깊은 역사성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지젝은 답은 이렇다.

(46) 자유란 각 사람이 계층적 질서 내에서 주어진 역할을 자유롭게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47)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자유는 추상적인 법적 평등과 사적 자유가 결합된다. (...) 오늘날 강조되는 것은 ‘선택의 자유’다. 하지만 그것은 선택의 프레임이 개인에게 어떻게 강요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개인에게 특권적인 선택들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은폐한다.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프리덤(48)을 실현하고 있으며 그들이 장차 이룩하고자 하는 것은 리버티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개념 구분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까?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규범을 무시하고 자유롭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좌익 반체제 운동에 맞선 우익 포퓰리스트 반란을 목격하고 있다. (...) 이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부패한 엘리트가 통제하는 의회 선거우파 포퓰리스트가 통제하는 봉기 사이에서 하나를 택하는 일일까? (50) 리버티와 프리덤의 양극단 사이에는 법의 보편성과 개별성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개별성은 언제나 보편성을 넘어선 예외를 형성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51) 종교가 추구하는 주요 과제는 단지 금기를 시행하는 일이 아니라 법의 광범위한 예외 영역을 정당화하는 일이다.

-> 오늘날 왜 기독교 근본주의 등 종교를 근간으로 한 극우파의 부흥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55) 헤겔에게 자유는 필연성으로서의 ‘진리’이며 또한 지양되는 필연성이다. (57) 어떤 사회적 과정은 사회 구성원 일부가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실현된다. ‘의식’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의식’이어야만 한다.// (59) 마틴 루터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라는 표현은 지극히 다의적인 말이다. 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사은 이미 죄를 초월한 상태라는 의미가 된다.(‘밀양’ 살인범의 회개는?) //일부 마르크르스주의자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을 물화된 객체로 경험한다면 그는 이미 주체가 된 상태다. 다시 말해 오직 주체만이 그 혹은 그녀를 그런 방식으로 경험한다.
그런데 이 말은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60) 사회질서에 대한 비판적 거리는 그 질서가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매개가 된다. 오늘날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아트 비엔날레들을 생각해보라. 이들이 추구하는 것이 글로벌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상품화에 대한 저항이라고 해도, 그들의 예술 또한 자본주의적 자기 재생산의 현장에서 조직과 양식을 재생산할 뿐이다. 이러한 ‘비판적 자기거리’(혹은 냉소적 이성’과 같은 페티쉬 향유)가 가진 맹점은 선택의 자유가 실제적인 변화를 선택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62) 진정한 자유(freedom)는 우리의 삶 전체를 좌우할 ‘자유(liberty)’의 윤곽을 선택할 때 발생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연루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유가 가질 윤곽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되돌리 수는 없으며, ‘과거로 돌아가 다시 선택지 앞에 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64) 웨이터는 크림을 뺀 커피(coffee without cream)를 원하는 손님에게 이렇게 말한다. “죄송합니다만, 크림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크림 뺀 커피 대신 우유 뺀 커피(coffee without milk)만 드릴 수 있습니다.” 손님은 거절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원하는 것은 크림을 뺀 커피이기 때문이다. 그는 크림에 유혹을 느끼고 있으며, 강박적인 희생의 제스처로서 정확히 크림을 빼고 싶어 하는 것일 뿐, 우유를 빼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 위와 같은 복잡한 논의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자유란 금지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자신이 가장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의 행위라는 것이다.

 

[다음편 예고 : 자유의지](65) 지금까지 우리는 사회적 범주에서의 자유, 다른 말로 사회-상징적 공간에서의 자유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 자유가 사실은 비개체적이고 비주체적인 신경 메커니즘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간이라는 ‘사용자의 착각’이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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