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1 (수) 발제 인무연 정치철학 세미나 콩빠
슬라보예 지젝 - 자유, 치유할 수 없는 질병 (노윤기 옮김)
I. 제2부: 인간의 자유
제4장: 마르크스는 증상뿐 아니라 충동도 얻어냈다 i) 대신에… ii) 진보와 무관심 iii) 변증법적 유물론, 하지만… iv) 마르크스는 어떻게 충동을 얻었는가
아래 나열된 슬라보예 지젝의 소제목들은 관련된 분석의 특정 절 구조를 가리킨다. 개념적 개요는 다음과 같다.
i) 대신에…
이 장에서는 마르크스를 단순한 사회 비평가로 보는 전통적인 관점과 그가 부르주아 사회의 "보편주의"에 구조적 균열을 발견했다는 관점을 대조한다. 마르크스는 사회를 하나의 일관된 전체로 보는 대신, 체제 내적 모순(예를 들어 노동력을 팔 수 있는 "자유")이 드러나는 지점을 "증상"으로 규정한다.
“노동자들이 현실을 자각하는 대신에 그 자각의 가능성을 상실한다. 노동을 통해 생산과 소유를 누리는 당연한 결과 대신에 스스로 소외된다”(지젝 221쪽) “상상적인 것, 상징적인 것 그리고 실제적인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 복잡한 요소를 추가할 수 있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유아 성욕’도 한유형의 ‘대신에’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지젝 227쪽)
ii) 진보와 무관심
여기서는 자본주의 발전의 역설을 다룬다. 기술과 생산이 빠르게 "진보"하는 동안, 개인은 종종 무관심이나 "사회적 부자유"에 빠지게 된다. 끊임없이 생산을 혁신하려는 추구는 개인의 자유(시장) 자체가 부자유의 한 형태가 되는 환경을 조성한다.
“프랑스 혁명은 결국 공포로 귀결되었고, 19세기 후반의 안온한 진보는 대전쟁의 비극으로 단절되었다.”(지젝 230쪽)
“오늘날 글로벌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끝없는 과잉활동과 위험한 사건들에 지속적으로 참여한도록 충동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것에 무관심해진다.”(지젝 235쪽) “오늘날의 이데올로기가 증상이 아닌 패티시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지젝 236쪽) “이것을 프로이트 용어로 진술한다면, 이데올로기는 자신을 증상으로 읽도록 촉구하지만 실제로는 페티시처럼 작동한다.”(지젝 240쪽) 헤겔은 “’부유한 폭도’가 가난한 사람들을 조종하고 보편적이고 평등한 참정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점은 정확히 예견했다.” (지젝 244쪽)
참고: “페티시” = 추상적인 가치 대신 즉물적인 대상을 쫓는 것 (나무위키)
iii) 변증법적 유물론, 하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변증법적 유물론은 경직된 교리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물질적 재생산을 밝히는 도구로 이해된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간 의식이 사회적 존재에 의해 결정되며,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과 같은 모순이 역사적 변화를 이끈다고 강조한다.
이는 아마도 마르크스에 대한 "저속한 진화론적" 해석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증상을 정확하게 지적한 반면, 지젝은 종종 "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덧붙여 사회주의는 단순한 "해결책"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유지하는 과잉욕망(잉여가치 향유) 문제도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iv) 마르크스는 어떻게 '충동'을 얻엇는가
지젝은 마르크스가 '증상'(해독해야 할 숨겨진 진실)을 넘어 '충동', 즉 자기 영속적이고 반복적인 자본 순환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충동으로서의 상품: 자본주의는 단순한 교환 체계가 아니다. 그것은 가치의 무한 축적을 향한 충동이며, 이는 라캉의 '충동'와 유사한데, 라캉은 최종 목표 달성보다는 순환의 반복에서 만족을 추구한다.
잉여가치 대 잉여가치 향유: 마르크스에게 잉여가치는 경제 체제를 움직이는 "초과"이며, 라캉은 이를 후대에 "잉여가치 향유"(plus-de-jouir)로 공식화했다.
(상기 발제는 AI와 지젝의 책 “자유” 제2장을 참조하였음)
II. 지젝의 “자유” 이해의 핵심 개념
지젝의 작업은 기존의 자유주의적 자유 이해에 도전하고 그 역설적인 본질을 탐구한다.
"불치병"으로서의 자유: 지젝은 자유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이고 잠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측면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자유의 역설: 그는 진정하고 급진적인 자유는 종종 덧없고 취약하며, 의식적인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광기" 또는 필연으로 경험된다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에 대한 반론: 지젝은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개념에 반대하며, 우리의 사회 활동이 디지털 및 소셜 메커니즘에 의해 점점 더 통제되고 있으므로 전통적인 자유주의적 자유 개념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습관과 자유: 헤겔의 사상을 바탕으로 지젝은 습관 없이는 자유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더 높은 창조적 기능이 발현되고 신체가 영혼의 "도구"로 변모할 수 있도록 규칙과 관행(언어 등)을 "맹목적으로" 내면화해야 한다.
자유 대 결정론: 이 논의는 자유에 대한 철학적 개념과 신경과학의 결정론적 관점 사이의 긴장 관계를 다룬다. 순전히 객관적인 과학적 접근 방식으로는 현실이나 자유에서 무의식의 역할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주인"의 역할: 지젝은 "주인"이라는 개념을 억압자가 아닌, 개인을 진정한 자유로 이끌 수 있는 외부적인 힘으로 제시한다. 이는 일종의 노예화일 수 있는 소비 사회의 자발적인 "자유"와는 대조적이다.
(AI를 참조하였음)
III. 2차 문헌 산책
김필구,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의 전체주의적 요소들에 대한 연구: 현대 미국의 통치양식을 중심으로,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 학위논문 2015
“본 논문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의 전체주의적 요소들에 대한 분석을 목적으로 집필되었으며, 이러한 학술적 작업을 통해 정치 사상가인 후지따 쇼오조오와 슬라보예 지젝의 명제, 즉 ''현대의 자유민주주의는 전체주의적이다'' 혹은 ''전체주의화 되어가고 있다''의 타당성의 반증 또한 그 내용 안에 포함하고 있다.
분석틀에 있어서 본 논문은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 이론''과 에리히 프롬의 ‘권위주의 성격유형 이론’ 그리고 미셸 푸코의 ‘파놉티콘 이론’의 유기적인 접목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러한 분석틀의 이론적 비판의 대상이 된 요소들은, 미국 정부가 민간 통신 및 IT기업들과의 협약 하에 구축한 디지털 파놉티콘과 미국 저널리즘의 쇠퇴, 그리고 9.11 테러 후 재정된 미 애국자법의 구체적인 조항들이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국가의 감시체계는 비단 전체주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근대 국민국가 전반에 해당되는 요소이며, 이 두 체제의 근본적인 차이는 역시 국가에 의해 주도적으로 행해지는 총체적 테러의 유무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총체적 테러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전체주의 체제의 근간에는 실리 보다는 이데올로기적 논리에 합한 방향으로 현실 세계의 재구축을 시도하는 전체주의 체제의 독특한 정신구조가 발견되는데, 이러한 점에 있어서 본 논문은, 어디까지나 부국강병을 추구하는 현대 미국의 통치양식과 전체주의의 그것과는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존재함을 확인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본 논문은 인터넷과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한 미국 저널리즘의 쇠퇴 및 대테러 입법 등으로 말미암은 시민 기본권의 위축 등을 살펴본 후, 이러한 점들이 국가 전략으로서의 파시스트 운동이라든지, 혹은 관료주의적이고도 권위주의 적인 정체의 성립으로 귀결될 수는 있으나 미국 내 전체주의 지배체제의 성립으로 까지는 이어질 수 없음을 구체적인 요소들을 짚어가며 논증한 후 결론을 맺고 있다.” (논문 초록)
김진환, ‘시스템 폭력’의 두 양상: 한병철과 슬라보예 지젝
人文學硏究 34(0) 2020.12 217 - 240 (24 pages)
“인간은 ‘세계 내로 던져진 존재’다. 세계라는 공간으로 내던져진 인간은 ‘감독’이기보다 ‘배우’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 글은 세계와 외부적 거리를 유지할 길 없는 우리가 세계 자체를 어떻게 사유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의식을 ‘폭력’이라는 키워드와의 관련 하에 풀어내 보고자 한다.
한병철의 세계는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세계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선택을 가능한 것으로 제시한다. 긍정성의 논리는 자본의 논리와 결합해 ‘가능한’ 선택을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성과사회의 자유는 주체의 자기 파괴적 우울을 먹고 사는 시스템 폭력과 동의어다.
반면 지젝의 세계는 여전히 부정성에 기초한다. 성과사회 내에서도 계급 분화는 지속된다. 시스템 폭력은 계급적 폭력을 지속 생산하는 틀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비가시적으로 도처에 존재한다. 자기착취를 ‘용인’하는 긍정성의 폭력, 계급 폭력의 토양으로 작동하는 부정성의 폭력은 오늘날 ‘세계화 사회’가 경험하는 폭력의 두 층위를 역설한다.” (논문 초록 217쪽)
한병철 (위키백과)
“그의 사회철학은 고도의 기술이 발전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 속의 인간상에 집중한다. 그는 《피로사회》에서 현대의 사회를 우울, 불안, 과로 등의 신경증적인 요소로 가득찬 사회로 특징지으면서 이들이 정신의 결핍에 의해서 발생한다기보다는 오히려 과잉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즉 개개인이 성과를 위해 스스로를 과도하게 착취하고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 피로사회를 유발한다는 것으로 이를 규율이 강제되던 과거의 사회와 대조시키며 규율사회로부터 성과사회로의 전환이 일어났음을 보인다. 따라서 이러한 신자유주의 사회는 더 이상 계급구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비교
“우리는 애도의 의례가 개인의 감정일 뿐 아니라, 한병철의 설명처럼 ‘객관적 감정이자 공동체의 감정’이어서, 집단적 애도가 ‘공동체를 결속’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지젝, 자유 - 치유할 수 없는 질병, 2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