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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성을 사유하기_급진적 섹슈얼리티 정치 이론을 위한 노트

성 전쟁

성을 사유할 때가 왔다. 어떤 사람에게는 섹슈얼리티가 가난, 전쟁, 질병, 인종주의, 굶주림, 핵 전멸 같은 중대 사안으로부터 주의를 돌리기 위한 하찮고 미미한 주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파괴의 가능성 속에서 살아가는 바로 이러한 시대에, 사람들은 위태로울 정도로 쉽게 섹슈얼리티에 열광한다. 현대의 성 가치와 성애 행위를 둘러싼 갈등은 지난 세기의 종교 분쟁과 유사한 점이 많다. 여기에는 크나큰 상징적인 무게가 실려 있다. 대개 성행위에 관한 분쟁은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불안을 대체하고 이에 수반되는 강렬한 정서를 방출하기 위한 보조 수단이 되곤 한다. 이렇듯 거대한 사회적 부담에 시달리는 시대이기에, 특수한 관점에서 섹슈얼리티를 다룰 필요가 있다.

성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영국과 미국의 경우 19세기 후반이 그러했다. 그 시기에 순결을 장려하고 매춘을 소탕하고 젊은 층의 자위를 금지하기 위한 교육 및 정치 관련 운동 같은 강력한 사회적 운동이 온갖 종류의 부도덕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19세기 도덕성 발작의 결과물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성행위, 의술, 자녀 양육, 부모 불안, 경찰 수사, 성법에 대한 사고방식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성 자체가 아동에게 해가 된다는 개념은, 성에 대한 지식과 경험으로부터 미성년자들을 격리하기 위한 광범위한 사회적, 법적 구조물들을 산출시켰다.

첫 번째 미연방 반외설법은 1873년에 통과되었다. 초기 반포르노 활동가이자 뉴욕 성범죄규제협회 창립자인 앤서티 콤스톡의 이름을 딴 콤스톡법은, 음란하다고 판단되는 그림이나 서적을 제작하거나 광고하거나 팔거나 소지하거나 송부하거나 수입하는 행위 일체를 연방 범죄로 규정했다. 콤스톡법은 피임이나 낙태를 위한 약이나 기구, 그리고 이에 관한 정보 일체를 금지했다. 1950년대에 와서야 연방 대법원은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콤스톡법을 완화하기 시작했다.

소도미법은 더 오래된 법적 층위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교회법의 요소가 민법에 수용되자 빅토리아 시대에 백인 노예에 반대했던 많은 캠페인에서 비롯한 창녀 및 동성애자 체포에 그 법의 대부분 조항이 적용되었다. 이러한 캠페인은 창녀의 호객 행위, 음란 행위, 부도덕한 목적의 배회, 연령 제한 위반, 그리고 사창가와 매음굴에 반대하는 무수히 많은 금지조항을 만들어냈다.

1950년대 미국 사회의 불안은 매춘이나 자위행위에 집중하는 대신에 성범죄자라는 의심쩍은 망령과 위험한 동성애자라는 허상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성범죄자라는 용어는 강간범에, 때로는 아동 성추행범에 적용되다가 급기야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기호로 기능하게 되었다. 관료적, 의학적, 대중적 문헌의 성범죄자 담론들은 난폭한 성폭행, 그리고 소도미처럼 불법이긴 하지만 합의에 의한 행위 사이의 구별을 흐리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개념들은 성적 사이코패스 규제법이 주 입법부를 휩쓸고 지나가면서 형사 사법 체계에 포함되었다. 이러한 법은 심리학계에 동성애자와 다른 성적 일탈자에 대한 경찰권을 더 많이 부여했다.

지난 100여 년간 성애에 대한 히스테리를 선동했던 가장 효과적인 책략은 아동 보호에 대한 호소였다. 단지 상징적인 수준에 불과할지라도, 성애에 대한 공포라는 현재 진행 중인 흐름은 젊은 층의 섹슈얼리티 경계 영역에까지 깊이 파고들었다. 데이드 카운티 조례 폐지를 위한 캠페인 표어는 동성애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 아이들을 구하자Save Our Children’였다.

1979년 의회에 제출한 가족보호법FPA:Family Protection Act은 가장 야심찬 우익의 입법안으로서 페미니즘, 동성애자, 전통을 벗어난 가족, 10대의 성생활을 광범위하게 공격했다. FPA는 통과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통과되지 않을 테지만, 의회의 보수주의 의원들은 산발적인 방식으로 이 의제를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한편, ‘청소년 가족생활 프로그램’, 일명 ‘10대 순결 프로그램은 이 시대를 상징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영국은 1880년대에, 미국은 1950년대에 섹슈얼리티 관계들을 새로이 법제화했다. 법적 형태, 사회적 관습, 이데올로기에 흔적을 남긴 싸움과 투쟁의 잔여물은 목전의 갈등이 사라지고 난 먼 훗날에도 섹슈얼리티를 체득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오늘날의 시대가 성 정치의 주요한 분기점이라는 사실을 이런 모든 신호가 말해주고 있다. 1980년대부터 등장한 해결안들은 먼 미래에까지 파급력을 미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정책이 지지를 얻고 반대에 부딪치는지를 정확히 숙지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무엇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성에 대한 급진적 사유의 일관된 지적 작업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그러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유감스럽게도 섹슈얼리티에 대한 진보 성향의 정치적 분석은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딘 편이다. 페미니즘 운동에서 차용한 많은 연구는 문제를 덮어버리고 신비화를 조장할 뿐이었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급진적 관점의 개발이 시급하다.

역설적이게도 이렇게 삭막한 시대에 성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와 정치적 저술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초기 게이 인권운동이 촉발되어 활발하게 전개되던 1950년대는 게이 바가 피습되고 게이-반대법이 통과되던 때이기도 했다. 지난 6년간 억압의 한가운데서 새로운 성애 공동체, 정치 동맹, 분석 연구 등이 성장했다. 나는 이 논문에서 성과 성 정치를 사유하기 위한 기술적, 개념적 체계의 요소들을 제안하려고 한다. 이로써 정확하고 인간미 있고 진정으로 자유로운 연구의 창안이라는, 섹슈얼리티 사유의 긴급한 과제에 기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성에 대한 사유

선을 어디에다 그어야 해? 이런 문제에서 개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지점이 아니라면 어디서부터가 타락인 거야?

성 본질주의’, 즉 성은 사회 생활 이전에 존재하여 관습을 생성하는 자연적 힘이라는 신념이다. 성 본질주의는 성이 영구불변하고 비사회적이며 초역사적이라고 여기는 서구 사회의 민간 통념에 스며 있다. 100여 년 동안 의학, 정신의학, 심리학이 주도해온 성에 대한 학술연구는 본질주의를 재생산해왔다. 이러한 학문 분야들은 성을 개인의 고유한 특성으로 분류한다. 성이 호르몬이나 정신에 귀속되는 것일지 모른다. 물질적 혹은 심리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과학의 범주 안에서 섹슈얼리티는 역사를 가질 수도 없고 주요한 사회문제를 결정하는 요인도 될 수 없다.

제프리 웍스의 작업을 비롯한 게이 역사 연구는 우리가 아는 동성애가 비교적 근대에 등장한 제도적 합성물임을 규명함으로써 그러한 도전을 이끌었다. 이제 이성애라는 현대의 제도적 형태가 심지어 최근에 개발된 것이라고 보는 역사가들이 많다.

푸코는 섹슈얼리티가 사회의 구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본능적 리비도라고 한 전통적인 이해 방식을 비판한다. 그는 욕망이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생물학적 실체가 아니라 특수한 사회적 실천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끊임없이 생겨나는 새로운 섹슈얼리티들을 제시하면서, 그는 성을 억압하는 요소들보다 성을 사회적으로 조직하는 발생적 양상들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섹슈얼리티의 친족 기반 체계와 근대적인 양식들 사이에 큰 달절이 있음을 지적한다.

성 행동에 관한 새로운 연구 경향은 성에 역사를 부여하고 성 본질주의에 대한 구성주의적 대안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연구 작업의 저변에는 섹슈얼리티가 생물학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 속에서 구성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다고 생물학적 능력이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필수 선행조건임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의 섹슈얼리티가 생물학적 용어들만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레비스트로스 식으로 말하자면, 생물학과 섹슈얼리티 사이의 관계에서 나의 입장이란 선험적 리비도를 소거한 칸트주의이다.

성을 사회적 분석과 역사적 해석의 관점으로 이해하면 더욱 현실적인 성 정치가 가능해진다. 그렇게 되면 인구, 근린, 정착 유형, 이주, 도시 갈등, 역학, 경찰 장비와 같은 현상을 대하는 관점으로 성 정치를 사유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사유 범주들은 죄, 질병, 신경증, 병리학, 퇴폐, 오염, 제국의 쇠망 같은 전통적인 범주들보다 더 유용하다.

성 본질주의 외에도 성을 사유할 때 매우 강력하게 작용하는 적어도 다섯 가지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적 형태들이 있는데, 그것들을 논의하지 않으면 그 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성부정성, 부적절한 척도의 오류, 성행위에 대한 위계적 가치 평가, 성 유해성에 관한 도미노 이론, 온건한 성 변이 개념의 결핍이 바로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 중에서 성부정성이 제일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서구문화에서는 성을 위험하고 파괴적이며 부정적인 힘으로 간주한다. 바울을 추종하는 대부분의 기독교 전통에서 성은 본디 죄악이다. 혼인 관계 내에서 생식을 목적으로 하고 과도한 쾌락을 즐기지 않는다면, 성은 구원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생식기가 본질적으로 신체의 열등한 부위이며 정신, ‘영혼’,’마음’, 심지어 상부 소화기관보다 신성하지 않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에서 성행위는 늘 혐의를 받는다. 어떤 성 경험이든 가능한 한 최악의 표현으로 해석되고 판단된다. 제일 용인되기 쉬운 사유로는 결혼, 출산 그리고 사랑 등이 있다. 간혹 과학적 호기심, 심미적 경험이나 장기간의 친밀한 관계 등이 해당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쾌락, 즉 음식이나 소설 혹은 천문학을 즐길 때와는 달리, 성애 능력, 지성, 호기심, 창조성 등등의 온갖 구실이 요구된다.

수전 손택은 기독교가 도덕의 근원으로서 성 행동에 집중한 이래, 성과 관련된 모든 것이 우리 문화에서 특별한 경우가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근대 서구 사회는 성행위를 성적 가치의 위계질서에 따라 평가한다. 결혼하고 출산하는 이성애자가 성애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단독으로 위치한다. 비혼 일대일 관계의 이성애 커플이 그 아래에서 아우성치고, 다른 이성애자 대부분은 그 아래에 있다. 혼자 하는 성행위는 규정되지 않은 채 부유한다. 자위행위에 대한 19세기의 강력한 낙인은 다소 누그러들어 변형된 형태로 유지되는데, 혼자 하는 성행위는 우연히 만난 상대와의 성행위에서 느끼는 쾌락에 못 미치는 대체물쯤이 된다. 장기간의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는 레즈비언과 게이 남성 커플은 간신히 체면을 유지하지만, 바에서 섹스 파트너를 물색하는 바 다이크와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는 게이는 피라미드의 최하위 집단 바로 위에서 떠돈다. 트랜스섹슈얼, 복장 전환자, 페티시스트, 사도마조히스트, 창녀와 포르노 모델 같은 성 노동자, 그리고 이들 중에서도 맨 밑바닥에 있는 세대 간 성애자 등이 현제 제일 심한 경멸을 받는 성적 카스트 계급이다.

이러한 위계질서의 상층부에 해당하는 성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정신 건강 인증, 존경심, 합법성, 사회적 신체적 이동성, 제도적 지원 물질적 혜택을 보상받는다. 이 척도의 하층부에 해당하는 성행동이나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정신질환, 불명예, 범죄성, 사회적 신체적 이동 제약, 제도적 지원 상실, 경제적 제재 조치, 성범죄 기소를 당한다.

처벌에 가까운 극단적인 낙인은 특정한 성 행동을 낮은 지위에 묶어두고 관련자들을 제재하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이러한 가혹한 낙인의 근원에는 서구의 종교적 전통이 있다. 그러나 낙인의 현대적 의미는 대개 의학과 정신의학이 가한 비난에서 유래한 것들이다.

성 행동에 대한 정신의학의 선고는 성을 죄라고 간주하는 범주보다 정신적, 정서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이라는 개념을 들먹인다. 지위가 낮은 성 경험을 정신병 혹은 인격 통합 결함의 징후라고 비방하는 것이다. 더구나 각종 심리학 용어들은 성애 행동 양식을 정신역동 기능장애에 결부한다. 예를 들어, 마조히즘은 자아 파괴적 인격 유형, 사디즘은 정서적 공격성, 동성성애는 미성숙과 동일시한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용어 남용은 성적 성향을 근거로 삼아 개인에게 무지막지하게 적용되는 강력한 고정관념이 되었다.

성애 다양성이 위험하고, 건강에 해롭고, 사악하고, 아동에서 국가 안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위협 요소가 된다는 인식이 대중문화에 스며들어 있다. 대중적 성 이데올로기는 성적 죄의식, 심리적 열등감, 반공주의, 군중 히스테리, 주술 혐의, 외국인 혐오증 등을 마구잡이로 뒤섞어 끓인 유독한 스튜이다. 대중매체는 무차별적으로 남발하는 유언비어로써 이런 태도를 부추긴다. 만일 오래된 편견들이 그렇게 왕성한 생기를 보이지 않고 새로운 편견들이 계속 가시화되지 않는다면, 나는 이러한 성애 낙인 체계를 사회가 마지막으로 인정하는 편견 양식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성 판단 체계 대부분은 특정 행위가 경계선의 어느 쪽으로 떨어지는지를 가늠하려고 한다. 경계선의 좋은 쪽에 놓이는 성행위에만 복잡한 도덕적 상황이 허용된다. 일례로 들자면, 이성애적 우연한 만남은 숭고하거나, 역겹거나, 자유의사로 하거나 억지로 강제되거나, 치유하거나 파괴하거나, 애정이 목적이거나 돈이 목적일 수 있다. 다른 규범을 위반하지 않는 한, 이성애는 인간 경험의 전 범위를 드러낸다고 인정받는다. 반면에, 경계선의 나쁜 쪽에 놓이는 모든 성행위는 완전히 혐오스럽고, 섬세한 감정이 결여된 것으로 간주된다. 특정 성행위가 경계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더 나쁜 경험으로 한결같이 묘사된다.

성행위에 관한 가장 고질적인 생각은 최상의 유일한 성교 방식이 있으며 모든 사람이 그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성적 취향이 보편적인 체계로서 모든 사람에게 작동할 것이고 작동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실수를 범한다.

종교적 차원에서 이상적인 성행위는 아이를 낳는 결혼이다. 심리학에서는 성숙한 이성애이다. 성에 대한 단일 기준의 판형은 페미니즘과 사회주의를 포함한 다른 수사 체계 내부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성의 변형

유럽과 미국의 산업화 및 도시화로 인해 전통적인 시골과 농촌의 인구는 새로운 도시산업과 서비스 부문의 노동력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국가기구를 탄생시켰고, 가족 관계를 재편시켰고, 젠더 역할을 변화시켰고,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을 가능하게 만들었으며, 다양한 사회적 불평등을 새로이 산출시켰고, 정치와 이데올로기로 인한 갈등의 새로운 판형을 짜게 했다. 이들은 또한 성적 개인, 인구집단, 계층화, 정치투쟁이라는 뚜렷이 다른 유형들로 특성화된 새로운 성 체계sexual system를 양산했다.

성의 근대화는 동성애자와 창녀를 지역 인구로 조직화할 뿐 아니라 지속적인 성적 종족 형성 체계를 만들어냈다. 보통 도착혹은 성도착증이라고 알려진 다른 성애적 반체제 집단들도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섹슈얼리티는 [DSM] 바깥으로, 사회적 역사의 장으로 계속 진군한다. 현재 몇몇 다른 집단은 동성애자의 성공을 추수하려고 노력한다. 양성애자, 사도마조히스트, 세대 간 만남 선호자, 트랜스섹슈얼, 복장 전환자 등은 모두 공동체 형성과 정체성 획득의 다양한 상태에 놓여 있다. 사회적 공간, 소상공업, 정치적 자원, 성적 이단 처벌에서 벗어날 방법 등을 확보하려고 애쓰는 만큼 도착이 확산되고 있지는 않다.

성의 계층화

성법은 성적 계층화와 성애적 박해의 가장 견고한 도구이다. 주정부는 다른 사회 생활 분야에서는 용인될 리 없는 수준으로 성 행동에 일상적으로 개입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성범의 적용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어떤 성 행동이 어느 정도까지 불법인지, 법률적 제재가 어떤 처벌을 가하는지 알지 못한다. 외설과 매춘 사건에 연방정부 기관이 관여해도 되는데도, 대부분의 성법은 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제정되고 지역 경찰의 광범위한 재량에 따라 집행된다. 그리하여 더군다나 성법의 집행은 지역 경찰의 분위기에 따라 매우 달라진다. 이러한 조밀한 법망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든 잠정적이고 제한적으로 어느 정도는 일반화할 수 있다. 성법에 관한 나의 논의는 성적 강제나 성폭행 혹은 강간 등에 적용되지 않는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에 관한 무수한 금지, 그리고 미성년자 의제강간 같은 위계, 위력을 이용한 성범죄에 적용된다.

성법은 무참하다. 그저 사회적 혹은 개인적 피해라고만 보기에는 성법률 위반에 대한 처벌이 너무나 가혹하다. 많은 주에서, 상호 합의했지만 불법적인 단 한번의 성교만으로, 예를 들어 정염에 사로잡힌 파트너의 생식기에 입술을 갖다 대면 강간, 구타, 살인보다 훨씬 더 혹독한 처벌을 받는다. 생식기에 키스할 때마다, 외설스럽게 애무할 때무다 각각의 행위가 모두 범죄가 된다. 그리하여 불법적인 열정에 휩싸인 하룻밤의 성교만으로도 수많은 중범죄를 저지르는 셈이 된다.

법은 유년의 천진무구함성인의 섹슈얼리티 사이에 놓인 경계를 유지하는 데 특히 흉포하다. 우리 문화는 젊은이들의 섹슈얼리티를 인정하기보다, 그리고 배려하고 책임지는 태도로 그것에 대비하기보다, 지역마다 다르게 지정된, 합법적 성관계 동의 연령에 미치지 못하는 법적 미성년들의 성애에 대한 관심과 행위를 부정하고 처벌한다. 섹슈얼리티에 미리 노출되지 않게 나이 어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마련된 법이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랄 지경이다.

모든 주에서 합법적인 성인의 성행위란, 결혼한 두 남녀 사이에서 남자의 성기가 여자의 질에 삽입될 때뿐이다. 절반이 채 안되는 주에서 통과된 합의에 의한 성인 동성애 합법화 법률은 이러한 상황을 개선한다.

성을 둘러싼 갈등

부도덕’(스푸너는 이 용어를 음주와 관련하여 쓰고 있지만, 그 자리에 동성애, 매춘, 기분전환용 마약 복용을 대입할 수 있다)은 범죄로 이어지므로 예방해야 하고, ‘부도덕을 행하는 이들은 심신 상실 상태이므로 그들이 자해하여 완전히 파멸 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보호해야 하며, 해로울 것 같은 정보로부터 반드시 아동을 격리해야 한다는 것이 그 도덕론의 내용이다.

영토 경계 전쟁, 성적 이주

게이 공동체는 치사율 높은 질병이 처음으로 확산되어 가시화된 인구집단이 되었다. 이 의학적 불운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은 충분히 불리하다. 이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은, 이에 따른 사회적 결과들 또한 해결해야 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에이즈와 그 전염 체계가 규명될 때까지 게이 공동체를 처벌하고 관련 단체를 공격함으로써 그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온갖 방안들이 발의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이제 잠시 멈추어 서서, 에이즈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반게이 정책 발의에 대한 정당화 시도를 진지하게 회의하고 숙고해야 할 것이다.

페미니즘의 한계

이 주제에 관한 페미니즘 사유에는 두 가지 계보가 있다. 첫 번째 경향은 여성의 성 행동의 제약하는 것에 비판을 제기하고,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여성이 비싼 대가를 감수해야 하는 것에 대해 맹렬히 비난을 가한다. 두 번째 경향은 성 해방이 본질적으로 남성 특권의 단순한 확장이라고 간주한다.

현재 많은 페미니즘 문헌이 여성 탄압의 원인을 성교, 매춘, 성교육, 사도마조히즘, 남성 동성애, 트랜스섹슈얼리즘에 대한 생생한 묘사 탓으로 돌린다.

엘런 윌리스는 빈정대는 투로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페미니즘의 편견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는 것이고 남성 우월주의자의 편견은 여성이 열등하다는 것이다. 편견 없는 관점은 진실이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성적 반체제 인사들이 여타의 성행위자 집단과 마찬가지로 정신이 말짱하고 자유롭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드에게 있어 최후의 수단은 심리학이다. 만약 일탈자들이 사회 체계의 조작에 응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이해 불가능한 선택의 근원에는 불우한 어린 시절, 성공적이지 못한 사회화, 부적절한 정체성 형성 등이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섹슈얼리티에 대한 페미니즘의 입장 가운데 결국 주도건을 획득하는 쪽이 우파건 좌파건 중도파건 간에, 그토록 논의가 풍부하다는 것은 페미니즘 운동이 언제까지나 성에 대한 흥미로운 사유의 원천이 되리라는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섹슈얼리티 이론에서 페미니즘이 특권적인 위치에 있다거나, 그러한 위치를 점해야 한다는 전제에 도전하고자 한다. 페미니즘은 젠더 억압에 관한 이론이다. 이러한 사실이 자동으로 페미니즘을 성 억압의 이론이 되게 한다고 추정해버리면, 한편의 젠더와 다른 한편의 성애 욕망을 분간하지 못하게 된다.

영어로 섹스sex라는 단어에는 매우 상이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섹스는 생식과 관련된 해부학적 신체 차이, 젠더, 젠더 정체성을 의미한다. ‘여성남성같은 예가 그에 해당한다. 그러나 섹스는 또한 성행위, 욕정, 성교, 흥분 등과 관련된다. ‘성관계를 갖다가 그 예다. 이러한 의미들의 융합에는 섹슈얼리티가 성교로 수렴되며, 여성과 남성 사이에서 일어나는 관계들의 기능이 섹슈얼리티다라는 문화적 전제가 반영되어 있다.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문화적 혼융으로, 섹슈얼리티 이론이 젠더 이론으로부터 직접 도출될지 모른다는 착상이 고안되었다.

이러한 성 체계의 발전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젠더 관계들의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성에 관한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일부에 욕정은 남성의 영역이고 순결은 여성의 영역이라는 것이 있다. 포르노그래피와 도착이 남성 전용이라는 생각은 우연이 아니다. 성 산업에서 여성은 대부분의 생산과 소비 영역에서 배제되었고, 노동자로서의 참여가 주로 허용되었다. 여성이 도착 행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이동성, 재정적 형편, 성적 자유에 관한 극심한 제약 등을 극복했어야 했다. 젠더는 성 체계의 작용에 영향을 미치고 성 체계는 젠더 특유의 징ㅎ를 보인다. 그러나 섹스와 젠더가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같은 것이 아니며, 뚜렷이 변별되는 두 가지 사회적 관습계의 기초를 형성한다.

따라서 페미니즘의 젠더 위계질서에 대한 비판은 급진적 성 이론에 통합되어야 하고, 성 억압에 대한 비판은 페미니즘을 풍성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섹슈얼리티 특유의 자체 이론과 정치는 새로이 개발되어야 한다.

이 논문으로 나는 성적 다원주의뿐 아니라 이론적 다원주의 또한 주장하는 바이다.

결론

젠더처럼 섹슈얼리티는 정치적이다. 섹슈얼리티는 권력 체계를 조직한다. 이 권력 체계는 어떤 개인이나 행위에 대해서는 보상하고 격려하는 반면, 다른 개인이나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하고 탄압한다. 자본주의가 노동과 보상과 권력의 분배를 조직하듯이, 등장 이래로 진화해온 근대적 성 체계는 정치적 투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런데 노동과 자본 사이의 분쟁이 미궁에 빠진다면, 성적 갈등은 완벽하게 감추어진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 재구성된 일련의 법령들은 근대적 성애 체계 등장에 대한 굴절된 반응이었다. 그 시기에 새로운 성애 공동체들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남성 동성애자나 레즈비언이 될 수 있었다. 대량 생산된 성인 용품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성적 상업의 가능성이 확장되었다. 동성애자 권리를 옹호하는 최초의 조직이 생겨났고 성적 억압을 분석한 논문이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서구 문화는 성을 너무 심각하게 취급하다. 어떤 사람이 매운 요리를 즐긴다고 해서 부도덕하다고 여기거나 감옥에 보내거나 집에서 쫓아내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구두 가죽을 즐긴다고 하면 세가지를 다, 아니 이보다 더한 것을 겪게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신발 위에서 자위하는 것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가능한 사회적 의미 가운데 결국 무엇일 수 있을까? 심지어 그것이 합의에 이한 행위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신발한테 신어도 되느냐고 묻지 않듯이, 절정을 느끼기 위해 신발한테 특별 인가를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진보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선입견을 점검하고, 성교육을 다시 받고, 성 위계 질서의 존재와 그 작용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성애적 삶의 정치적 차원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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