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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25 게일 루빈 <일탈> 세미나
키슈
4장 가죽의 위협 : 정치와 S/M에 관한 논평
1.
사도마조히즘은 지금껏 게이 공동체를 공격하는 데 가장 성공적으로 이용되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들에게 최악의 대가를 지불하게 만들었던 또 다른 성적 관행이다. 성인과 미성년 사이의 섹스와는 달리 S/M은 그 자체로 불법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M 성적 접촉과 사회적 사건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해석되어왔던 다양한 법들이 존재한다. S/M 충격효과는 언론과 경찰에 의해 무자비하게 이용되었다.
1976년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게이 목욕탕에서 거행되었던 ‘노예 경매’를 습격하면서 애매모호한 19세기 반노예법을 적용했다. 물론 노예들은 지원자였으며 경매 수익금은 게이 자선기금에 보태기 위한 것이었다. 체포된 사람들은 완전 알몸 수색을 받았고 수갑을 찬 채 화장실도 못 가고 몇 시간 동안 감금되었다. 여기에 적용된 법은 실제로 강제 매춘을 겨냥한 반매춘법이었다.
S/M 섹스는 종종 폭행법이 적용되어 기소되기도 했다. 일단 성적인 행위가 폭력으로 구성되면 파트너의 동의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법적으로 폭력은 동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텀이 항의한다고 하여 탑이 감방으로 가는 것을 구해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 경찰들은 그것을 바텀이 정신적으로 불완전한 상태라고 주장할 근거로 이용할 수 있었다.
S/M의 법적인 취약성은 캐나다에서 있었던 일련의 경찰 행동에서도 잘 드러난다. 경찰은 게이 S/M 섹스가 음란하고 그런 행위가 일어나는 곳은 어김없이 매춘업소라고 우겼다. 이런 해석이 법정에서 분명히 옹호될 수는 없었지만, 체포와 재판은 계속 되었고 그사이에 엄청난 피해가 야기되었다. 미국에서는 그처럼 노골적이고 뻔뻔한 일이 그다지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와 유사한 법이 이미 법전에 들어있다. 가령 캘리포니아에서 매춘업소는 ‘매춘을 목적으로 하거나 음란성’을 목적으로 하는 장소로 정의된다. 앞으로 몇 년 안에 취약한 성적 인구집단을 절멸시키려는 도덕적 캠페인이 쏟아져 나오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며, 여차하면 S/M이 직접적인 표적이 될 것이라는 조짐이 상당히 많다.
그러는 동안 이성애 매체들은 동성애자들을 미끼로 삼고 사도마조히스트들을 뭉갬으로써 일시에 구독률이나 유통 부수를 엄청나게 증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악명 높은 CBS다큐멘터리 <게이 파워, 게이 정치>는 게이들의 정치적 갈망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데 S/M을 이용했다. 이 프로그램은 만약 게이들이 정치적 힘을 획득하도록 내버려둔다면 S/M이 설치게 될 것이고, 그 짓을 하다가 사람들은 죽어나갈 것이라고 넌지시 말했다. 기자들은 대부분의 사도마조히스트들이 이성애자들이며 대다수 게이 남성들은 S/M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고, S/M은 위험하고 종종 치명적인 행위인 것처럼 재현했다.
S/M 공동체는 안전 문제에 강박적이기 때문에 감각을 최대화 하면서도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법에 관한 정교한 전승 기술을 갖고 있다. 사람들에게 겁을 줘서 S/M공동체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버리면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행위를 하다가 정말로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오히려 지금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상해를 입히는 가장 큰 원인은 퀴어 혐오로서, 그중 일부는 반-S/M 히스테리로 인한 것이다.
이외에도 KPIX 프로그램은 S/M이 ‘사회의 가닥을 부패시키고’ 있으며,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므로 그에 대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S/M에 연루된 자들에게 영향을 끼친 행위를 탄압하면서 주로 들이대는 핑계는 사회적 퇴락이라는 얄팍한 연관성이다. 또한 기자인 그레그 리시는 S/M을 행하는 부모에게서 자녀 양육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양육법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종류의 성적 일탈자들을 악랄하게 처벌하는 법 중 하나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새로운 법을 제정하여 경찰에게 이런 ‘위협적인 존재’들을 통제하는 데 필요한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자는 아우성이 터져 나올 것이다. 벌써 샌프란시스코의 한 경찰 감독관은 이 도시에서 S/M 기구의 판매금지법을 도입하려고 고려했다. 많은 반포르노 ‘페미니즘’ 집단은 다른 이유로 S/M 물품에 반대하는 입법안을 지지할 것이다. 이런 캠페인은 죄목이라고는 낯선 성적 취향을 가진 것밖에 없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게 될 것이다. 왜 여성운동은 한 줌의 S/M 인구집단에 반대하는 정화운동을 수행해오고 있는가?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이 이런 정화운동의 수사학을 ‘S/M 정치’로 여기고 있다.
2.
페미니즘 운동의 대부분이 S/M을 가부장제의 사악한 산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S/M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공동체에서 회원권을 유지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었다.
1980년 전미여성연맹(NOW)은 '레즈비언 게이 권리'라는 잘못된 명칭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이 결의안이 실제로 하고자 했던 것은 S/M, 세대간 섹스, 포르노그래피, 공공장소 섹스에 대한 비난이었다. 결의안은 이것이 성적 선호이거나 애정상의 선호 문제라는 점을 부인했으며, NOW의 의도는 성적 선호의 개념 정의를 수용하지 않는 게이 레즈비언 집단과 결별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여성운동이 그토록 S/M을 싫어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이유 중 대부분은 페미니즘 바깥에서 유래한 것이다. 일대일 레즈비어니즘과 같은 특별한 예외를 제외한다면, 여성운동은 대체로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성적 편견을 반영하고 있다.
의료 시설 및 정신과 시설들은 동성애의 경우에 대해서는 한발 물러났지만, 그럼에도 사실상 19세기적 관점을 거의 그대로 유지한 채 다른 모든 성적 일탈로 옮겨갔다. 그 다음 수순으로 정신과 이론은 사회에 존재하는 성적 위계질서를 반영한다.
두번째 세력은 성 연구와 성교육의 상태이다. 성 연구 분야는 전체적으로 미개발 상태이다. 성 연구는 성적 행동을 조직하는 권력 관계 안에 각인된다. 새로운 자료를 가지고 기존의 권력관계에 도전하거나 원래의 가설에 도전하게 되면 성에 관한 뿌리 깊은 대중적 이론과 갈등을 초래하게 된다.
성 분야 또한 성적주변성을 반영한다. 거의 모든 고등 학문 기관에는 심리학과가 있지만, 성과학 학과는 사실상 거의 전무하다. 성 연구가 수행되고 잇는 학계 사이트는 미국에서 열두 개도 채 되지 않는다. 대학 수준에서 성을 가르치는 과목은 거의 없으며, 대학 이전 단계에서의 성교육은 여전히 보잘 것 없다. 나이가 어릴수록 성 정보에 접근하기가 힘들다. 성에 관한 호기심을 체계적으로 제약함으로써 성적인 무지 상태가 유지된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식하면 조종하기 쉬워진다.
S/M 논쟁과 관련하여 여성운동과 여성운동 역사에 좀 더 내재적인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있다. 이 중 하나가 성적 경향성과 정치적 신념을 잘못 혼동하는 것이다. 이런 혼동은 페미니즘은 이론이고 레즈비어니즘은 실천이라는 생각에서 유래했다. 이것은 사실상 레즈비언 정치와 레즈비언 의식을 발전시키는데 장애가 된다. 레즈비어니즘은 페미니즘인 한에서만 정치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가게 됨으로써, 비여성운동 다이크를 깔보도록 만들고, 레즈비언들로 하여금 레즈비언 공동체보다 페미니스트에 좀 더 동일시하도록 만든다. 이것은 레즈비언 욕망을 수치스러워하고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페미니즘의 벽장 안에 그것을 감춰두는 레즈비언 정치를 생산했다.
만약 페미니즘 정치가 특정한 성애적 행위의 형태나 성적 위치를 요구하거나 동반한다면, 그 밖의 다른 성적 행위는 특히 반페미니즘적이라는 결론이 뒤따르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어떤 사람들에게 동성애는 파시스트이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동성애는 공산주의자이기도 하다.
많은 측면에서 사회 전반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여성운동 또한 살금살금 우익으로 넘어가고 있다. 1970년대 페미니스트들이 분노했던 이유는 여성, 여성이 하는 일, 여성의 인격적 특성들이 하나같이 평가절하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또한 여성적인 행동에 부과된 제약에 분노했다. 남성 동일시라는 용어는 여성 억압에 관한 의식이 부족한 여성을 의미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이르면 남성 동일시라는 용어는 그런 의미를 상실하고 ‘남성적인 것’과 비슷한 말이 되었다. 오늘날 상당수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는 여성적인 모든 것은 좋은 것인 반면, 남성적인 것은 무엇이든 나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사상 노선은 여성들에게 남성적 활동, 특권, 영토에 접근하도록 권장하지 않는다. 여성성을 찬양하는 이 모든 사고는 전통적인 젠더 역할과 여성에게 적절한 행동 가치를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유형의 페미니즘을 일컫는 수많은 명칭이 있지만 내가 선호하는 명칭은 여성성주의femininism이다.
여성성주의는 섹슈얼리티와 폭력의 문제와 관련하여 특히 강력해졌는데, 이 양자가 서로 결합하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섹슈얼리티는 남성적인 가치이자 활동으로 간주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섹스는 여성의 행동을 추진하는 추동력이 아니다. 하지만 남성은 본능을 따르고 여성은 정숙해야 한다는 생각은 페미니즘적인 것이 아니라 빅토리아 시대적인 것이다.
성적인 정숙의 재강조는 페미니즘의 목표를 위한 논쟁의 양식에 변동을 초래했다. 정의와 사회적인 평등을 주장하는 대신, 많은 페미니즘 논쟁은 이제 여성적인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19세기 운동의 대다수가 다양한 도덕성 십자군 운동으로 퇴행함과 더불어 보수적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의제로서 반매춘, 반자위, 반외설, 반-풍기문란 캠페인을 추구하고 있다.
S/M은 이런 전반적인 정치적 경향에 도전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경향은 섹스와 폭력을 둘러싼 여성들의 공포심을 조장함으로써 권력을 작동시켜왔다. 따라서 페미니스트들이 S/M에 관해 논쟁할 때, 단지 성적인 관행보다는 훨씬 더 많은 문제가 걸려 있다. 일부 여성들은 그들의 정치적 신념의 논리적 일관성을 요구하고, 그 밖의 여성들은 섹스에 관한 정치적 이론이 더 세련된 성 사회학에 기초한 정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관건처럼 보이는 것은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란 무엇인지, 그리고 페미니즘 운동은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지일 것이다.
3.
내가 배웠던 최초의 교훈은 S/M은 합의에 따라 행할 수 있으며, 그리고 성적 흥분 유발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성애, 게이, 레즈비언 S/M 공동체는 서로 엄청나게 분리되어 있다. 그럼에도 범-S/M 의식 또한 있다. “가죽은 피보다 진하다”
사도마조히스트의 최대 하위 인구집단은 이성애자들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남성 서브/여성 돔처럼 보인다. 이성애자 S/M 세계의 대다수는 전문적인 여성 돔과 그들의 고객인 서브 위주로 되어 있다.
페미니즘 신문에서 이성애 S/M에 관해 말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성애 S/M은 표준적 이성애 섹슈얼리티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정상적인 섹스와 S/M 사이의 은유적 유사성이 무엇이든지 간에, 일단 누군가가 채찍, 밧줄, 연극적인 장치들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정상이 아니라 변태로 간주된다.
마조히스트가 사디스트의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많은 S/M 논쟁의 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탑과 바텀은 서로 뚜렷이 구별되는 두 집단이 아니다. 대다수 S/M들은 두 가지 역할을 서로 다 하며, 많은 사람이 상황이나 변덕에 따라서 다른 때에는 다른 파트너와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탑과 바텀의 사회적 관계는 남자와 여자, 흑인과 백인, 이성애자와 퀴어 사이의 사회적 관계와 유사한 것이 아니다. 사디스트는 마조히스트를 체계적으로 억압하지 않는다. S/M과 관련한 가장 흔한 억압은 사람들에게 비관습적인 섹스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섹스를 했을 때 처벌하는 사회로부터 나온다.
S/M에 관한 가장 터무니없는 주장은 사람들이 정말로 그것을 하는데 합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어떤 사람이 자발적으로 무엇을 하겠다고 합의를 했다고 하여, 그런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세력에 의해 침해당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섹슈얼리티의 사회적 관계에도 이런 구분이 유용할 수는 있지만, 강제적 힘에 의해 어떤 사람을 도착으로 만들 수는 없다.
성법에서의 합의는 섹스와 강간을 구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합의는 모든 섹슈얼리티가 똑같이 누릴 수 없는 특권이다. 성인 근친상간은 대부분의 주에서 불법이다. 간통 또한 많은 주에서는 중범죄이다. 동성애는 이성애보다 훨씬 더 제약을 받는다. 성적으로 활발한 청소년들은 소년원에 송치될 수도, 다른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분명히 정의된 법적인 제약에 덧붙여, 성법은 불공평하게 강제된다. 경찰 활동에 더하여 종교, 의학, 언론, 교육, 가족, 주정부와 같은 세력들은 한결같이 사람들에게 결혼하여 이성애 일부일처 관습에 따라 살도록 모든 압력을 가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든지 간에 이성애에 진정으로 ‘합의’할 수 있는지 당연히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4.
계급, 인종, 젠더, 종족의 사회적 위계질서에 덧붙여 성적 행위에 바탕을 둔 위계질서가 있다. 가장 축복받는 성적 계약의 형태는 이성애, 기혼, 일부일처, 재생산에 바탕을 둔 것이다. 비혼, 비일부일처, 비재생산적이고, 두 사람 이상의 파트너가 연루된 다자 결합은 동성애이거나, 성적 괴짜나 페티시와 연루된 성애는 열등한 것으로 평가되므로 따라서 처벌받아야 한다.
급진주의자들, 진보주의자들, 페미니스트들, 좌파들은 그들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억압적 구조를 재생산하는 대신 그것이 억압적인 구조를 위한 위계질서라는 점을 이제 인정해야 한다. 섹스를 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단 한 가지만 있다는 생각은 이 주제에 관한 보수주의자들의 사고뿐 아니라 급진주의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적인 섹스 논쟁들 가운데 신-라이히주의의 입장이 있다. 신-라이히주의는 더 섹스-친화적이지만 더 낙인찍힌 섹슈얼리티와 그것의 실천(포르노그라피,S/M,페티시즘)을 성적인 억압의 증상으로 해석한다. 신-라이히주의 입장은 동성애를 건강하거나 자연스러운 성애로 받아들일 수 있다.
파시즘에 대항하여 광범한 연대가 절실히 요청되는 시기에 여성운동의 회원권을 유지하려고 이전투구하는 것이 안타깝다. 페미니즘의 목표에 진정한 위협 세력과 맞서기 위해 S/M을 둘러싼 내부적 갈등의 수위는 비축해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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