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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 / 8장 과거가 된 혈전 / 게일루빈 / 2016.10.03.() /닥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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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과의 싸움

 

성을 사유하기 논문은 여러 다른 학문적 의제와 정치적 고민을 횡단하면서 나온 결과물인데 처음 발표되었을 때는 페미니즘 성 전쟁의 신랄할 논쟁에 그 모든 것이 다 묻히고 말았다. 내가 반포르노 페미니즘 활동가들의 공공의적으로 인식되자 내 출현 자체가 항의 시위의 빌미가 되었다. 이 당시의 싸움에 대한 기억이 고통스럽긴 하지만 망각과의 싸움에서 한 명의 보병이 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성 패러다임의 변화

 

나는 내 논문이 현대 섹슈얼리티 연구를 개시했다고 믿지 않는다. 내 연구는 1970년대에 이미 잘 진행되고 있었던 젠더 및 섹슈얼리티 연구에서 일어난 폭넓은 지적 변화가 만들어낸 생산물이었다. 사회구성주의는 동성애와 섹슈얼리티를 결혼, 아동기, 식사 예절 같은 친밀한 일상사 안에 위치시킨다. 결혼과 같은 행위를 하는 방식과 그에 연루된 행동 관습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구분되고 불연속적이다. 사회구성주의는 섹슈얼리티도 인간 행동에 대한 다른 주제나 양상처럼 동일한 방법론적 전략과 이론적 원칙에 종속되어 있다고 간단히 주장한다. 사회구성주의가 급진적으로 보였던 이유는 상당 부분 과도하게 낙인찍힌 비관습적 주체에게 관습적 접근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성을 사유하기는 1970년대 후반 섹슈얼리티 연구를 재구성하여 지적으로 발효시키는데 한몫했다.

비통함에 대해 말하기: 페미니즘 성 전쟁

바너드 성 회의라는 명칭은 실제로는 1974년 이후 바너드 대학에서 매년 열렸던 학자와 페미니스트의 아홉 번째 회의였던 9차회의 성 정치를 향하여의 약칭이다. 워크숍에 언급된 주제는 자크라캉, 낙태권, 게이와 레즈비언의 권리, 포르노그래피, 창조성과 연극, 이생에 관계에서의 부치/펨 역할, 계급, 인종, 심리치료 등이다. 내가 참여한 워크숍은 급진적인 성 정치를 위한 개념들이었다.

이 회의는 반포르노그래피 페미니즘 사람들로부터 공격받았다. 반포르노 운동의 이데올로기는 포르노그래피를 여성 종속의 주요 동력이자 남성 우월의 독특한 치명적인 제도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WAP(Women against Pornography)의 항의는 두 가지 모순된 입장이 공존한다. 바너드 회의가 S/M을 노골적으로 찬양했다는 입장과 도착적인 어젠다가 감춰져 있어 더 은밀하게 퍼지리라는 입장이다. 라이트홀트는 <<우리를 내버려둬>>의 기자에게 프로그램 어디에도 워크숍 대표가 사모아나 뉴욕 레즈비언 섹스 마피아 소속이라는 정보가 없었다고 항의했다. 학술행사의 모든 참석자가 자신의 여가 활동이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소속을 일일이 열거해야 하는가? 나는 학술회의에서 발표하기로 되어 있는 미시간 대학 대학원생이었기 때문에 내 소속을 학교로 했고, 그것은 너무나 적절한 처사였다. 아무래도 내가 눈의 띄게 검은 가죽으로 삼각형 표식이나 주홍글씨를 달아서 품위를 갖췄어야 했었던 것 같다.

 

서부 해안 전쟁: WAVPM과 사모아

 

바너드 회의의 실제 행사 내용은 이 회의가 S/M, 부치/,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무비판적 옹호로 점철되어 있었다는 주장이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증명한다.

서부 해안 지역의 전투는 최초의 반포르노그래피 페미니즘 조직인 포르노그래피 및 미디어의 폭력에 반대하는 여성(WAVPM)과 최초의 레즈비언 S/M조직인 사모아 사이에서 벌어졌다. 반포르노그래피 페미니즘 운동이 그 시작부터 실제로 S/M 이미지 및 실천에 반대하는 전쟁이었다는 사실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반포르노그래피 수사학으로 인식될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한 가지 공통된 전략은 강간과 같은 분명히 끔찍한 것들과, 엉덩이 때리기 같은 쾌락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을 뒤섞어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영화를 모사하며 내가 본 또 다른 영화에서는 묶인 여자의 가슴에 펄펄 끓는 촛농이 떨어진다. 그녀는 과연 사전에 동의했을까? 가슴에 떨어지는 촛농을 누구도 즐길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경험은 타당한 사람의 행위가 될 수 없으며 그 행동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함축된 한 가지 의미는 실제로 그런 실천을 즐기는 여성은 모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인간의 성적 다양성에 대한 제한된 생각과 S/M이 본질적으로 모멸적이며 역겨운 것이라는 가정을 무심코 드러낸다.

 

1978년 세워진 사모아가 지속성을 가진 첫 레즈비언 S/M단체였다. 이 단체는 S/M이 심지어 페미니스트들에게도 타당한 에로티시즘이라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옹호했다. 사모아는 결코 S/M이 특별히 페미니즘적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단지 페미니즘 정치와 S/M 실천 사이에 본질적인 모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사모아는 결코 S/M이 본질적으로 해방적인 실천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다만 S/M이 본질적으로 억압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포르노그래피 페미니즘 운동의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는 법적이고 사회적인 우려의 주심이 얼마나 근거리에서 성기를 보여주느냐에서 변태스러움으로 이동하는 것을 강화해왔다는 것이다. 반포르노 운동은 하드코어에 대한 대중적 인식을 바꾸는 데 일조했으며, 법적 정의 또한 변화시켰다. 하드코어 포르노와 소프트코어 포르노 사이의 구분은 한때는 주로 성기 노출과 접촉 여부에 따라 이뤄졌다. 점점 더 하드코어는 관람자가 혐오스럽다고 느끼거나 너무 지나치다고 여기는 그리고 너무 자주 도착적인 S/M섹슈얼리티의 묘사가 포함된 이미지들을 지시하게 되었다. “미국 외설법의 주요한 변화와 노골적인 섹스라는 통념 속에서 희생양이 된 일탈자로 표적을 바꾼 성범죄 기소를 추적한다. WAVPM은 특유의 반 S/M 명제와 반포르노 명제의 결합을 개척했으며, 이 결합은 이후의 반포르노 페미니즘 운동의 숨겨진 주요 동기였다.

 

반포르노 프로그램을 따르지 않았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의 도구이며, 포르노 제작자, 사도마조히스트, 좌파, 맑스주의자, 반페미니스트들에게 속아 넘어간 이들이라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어떻게 정체성, 신념, 행동의 이러한 범주가 우리의 논쟁과 경험적 주장을 무효화시키는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반포르노 도그마에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은 그들의 실제 성적 선호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종종 사도마조히스트 혹은 그 지지자들로 불렸다. 이 모든 역사가 바너드에 한정되지 않고 널리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유산이 여전히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바너드의 귀환

 

바너드 성 회의는 일련의 유사한 갈등의 서막이었음이 판명되었다. 과하게 열성적이고 원칙 없는 행동이 여성을 보호하다는 명분으로 용인되었다. 19865개 대학 여성학 프로젝트에서도 그런 전략이 반복되어 사용되었다. 반포르노 페미니스트 들은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계속해서 반페미니스트, 사도마조히스트, 가부장적 폭력의 옹호자로 부당하게 취급해버린다. 현재는 그들 중 다수가 여성운동 판을 떠나 대단한 대중적 영향력을 갖고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연방정부와 국제적인 비정부기구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는 그들이 하는 말을 덜 듣게 된 편이다. 이제 그들 대다수는 과거 포르노그래피에 동원했던 어젠다를 그대로 가져와서 성매매를 타도 대상으로 삼고 국제법과 정책을 성문화하려고 한다. 급진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 학술회의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으로 나가 그들의 영향력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성을 사유하기를 다시 사유하기

 

모든 이론은 막스 베버가 불편한 사실이라고 부른 것을 갖고 있다. 불편한 사실이란 기존에 주어진 지적 도식의 역량으로는 처리하기 힘든 범례나 자료를 가리킨다. 성을 사유하기에서 발전시킨 이론적 모델과 개념적 구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성 노동과 트랜스섹슈얼리티는 모두 베버가 말한 불편한 사실이다. 수전 스트라이커는 성을 사유하기가 트랜스젠더 실천을 자아의 의미나 젠더 정체성의 표현보다는 성적 혹은 성애적 행위로 범주화한 것에 대해 부드러운 어조로 비판한다. 현대 성 연구 분류 체계들이 자리를 잡아나갈 때 트렌스젠더 실천이 처음에는 성도착으로 묶이긴 했지만 이것은 타당한 비판이다. “(성관계를 하는 여러 자유분방한 방식보다는 신체적 온전함, 시각적 일관성, 관료적 명료성의 규제적 도식과 더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트렌스젠더 현상은 본질적으로 성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논평한 것은 완전히 옳다.

나는 성을 사유하기의 결론에서 섹슈얼리티와 젠더는 분석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 당시에는 보통 젠더와 섹슈얼리티가 융합되거나 혹은 섹슈얼리티를 단지 젠더 관계의 파생으로만 보곤 했다. 페미니즘은 모든 것을 성적인 것으로 분석하는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특권 체계를 갖고 있다는 가정으로 귀결되곤 한다. 나는 그런 가정에 이의를 제기하며 섹슈얼리티에 특화된 이론적 도구가 개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누군가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끊임없이 우리의 주체에 대해 더 나은 방식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학자가 해야 할 일일 뿐 아니라 특정 기술의 도덕적 임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베버에 따르면 계급은 상품의 생산 및 획득과의 관계에 따라 계층화된다고 하면, 지위 집단은 특별한 삶의 방식에 의해 재현된 상품 소비 원칙에 따라 계층화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베버가 지위와 계급의 위계에 적용했던 이런 종류의 미묘한 구분을 발전시킬 것을 제안했다.

아동의 성에 대한 여러 질문들에 대해 대다수의 논의가 대중과 정치인에게 미성년자를 위한 더 안전한 장소를 만들어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들의 발전에 좋은 방향이 되지도 못한 신중하지 않은 정책 및 법 개정을 하도록 몰아붙이며, 냉소적으로 조종해온 어설픈 인상적인 어구나 고정된 이미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전술로만 환원되어온 것은 비극적이다. 10대 주요 치사율은 교통사고가 높고 수영장에 빠져죽은 아이들이 유괴당한 아이들보다 훨씬 많다. 아동 성 학대 담론은 아동 섹슈얼리티 담론을 대가로 확장되었다. 아동과 청소년의 성적 표현을 좌절시키는 수많은 성 정치가 있다. 여러분과 나는 이것이 역사에서 거의 처음으로 논의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한때는 어린아이였고 기분이 좋을 대면 여전히 어린아이가 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이 문제와 관련이 있다. 성을 사유하기에서 나의 현재 작업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부분은 도시 공간과 관련된 사암들이다. 도시 공간의 문제는 내 연구에서 가장 오래 지속해온 주제이다.

수많은 현대의 갈등은 바너드 회의를 압도하면서 성을 사유하기를 형성했던 논쟁들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나는 미래를 위한 우리의 최선의 정치적 희망은 상호 존중과 차이에 대한 공감에 근거해 연대를 형성하고 공통 근거를 찾는 데 있으며, 최선의 지적 연구는 복잡성을 수용하고, 뉘앙스를 소중히 여기며, 교조와 지나친 단순화의 유혹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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