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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수양/비판이란 무엇인가?(1978년5월27일)/ 미셸푸코
/ 2017.2.2.(목) / 닥홍
제가 말씀 드리고 싶었던 것은 ‘비판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입니다. 제 생각에 칸트가 시도한 걸출한 작업으로서의 비판과 일상적으로 비판이라 불리는, 논쟁적이고 직업적인 소소한 활동 간에는, 말하자면 비판적 태도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합니다. 비판은 그것이 다른 어떤 것과 맺는 관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비판은 자신이 알지도 못하고 또 도달할 수도 없는 어떤 미래 혹은 어떤 진실을 위한 수단이자 방법이며, 자신이 잘 관리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법을 제정할 능력은 없는 영역을 향한 시선입니다. 비판은 철학, 과학, 정치, 도덕, 법 권리, 문학 등을 실증적으로 구성하는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종속적으로 기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고대 문화에 완전히 생소한 어떤 관념을 발전시켰습니다. (42) 모든 개인이 그의 나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생애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세세한 행위들에 이르기까지, 통치 받아야 하고 또 통치 받도록 자신을 내맡겨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자신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누군가와 전면적인 동시에 면밀하고 세밀한 복종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의로 이해된 진실, 특수한 인식을 내포하는 한에서의 진실, 규칙과 특수한 인식들이 고백 대화 등의 숙고된 테크닉으로 발휘되는 한에서의 진실과 맺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삼중적인 관계속에서 인도가 행해져야 합니다.
15세기부터, 종교개혁 전부터 인간들을 통치하는 기술의 진정한 폭증, 두 가지 의미에서의 폭증이 있었습니다. 우선 종교적 기원을 갖는 이 기술이 말하자면 세속화되는 변화가 일어나고, 사람들을 통치하는 기술과 그 통치 기술을 시행하는 방법들에 관한 주제가 시민 사회 속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어린이, 가난한 이, 가족에 대한 통치 등 다양한 영역으로 이 통치 기술이 확대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신체를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자기 자신의 영혼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 제 생각에 ‘어떻게 통치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16세기의 서구 유럽의 여러 사회들에서 상당히 특징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통치화 gouvernementalisation는 어떻게 통치 받지 않을 것인가?라는 물음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44) 어떻게 하면 이런 식으로, 이들에 의해서, 이런 원칙들의 이름으로, 이런 목표들을 위해, 이런 절차를 통해, 그런 식으로, 그것을 위해, 그들에 의해 통치 당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비판의 정의를 상대방인 동시에 적대자인 어떤 것으로서, 통치 기술을 불신하고 거부하고 제한하며, 그것의 정당한 한도를 모색하고 그것을 변형시키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혹은 어쨌든 그 통치 기술을 변화시키려는 방식으로서, 본질적인 유보의 자격으로서, 그에 더하여, 또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통치 기술이 발전하는 선으로서, 그 당시 유럽에서 탄생한 듯 한 일종의 일반 문화적 형식, 도덕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태도, 사고방식과 같은 어떤 것을 저는 아주 간단히 통치 받지 않기 위한 기술, 다시 말해 이런 대가를 치르면서 통치 받지 않으려는 기술이라 하고자 합니다.
비판적 태도를 식별할 수 있는 역사적 지점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1) 첫 번째 적용 지점: 인간들에 대한 통치가 본질적으로 영적 기술이었던, 혹은 본질적으로 교회의 권위와 성서의 권위에 결부된 종교적 실천이었던 시대에, 이런 식으로 통치받지 않고자하는 의지는 근본적으로, 신의 가르침의 작용 방식에 결부된 관계와는 다른 관계를 성서 속에서 모색하는 일이었습니다.
2) 두 번째는 이러저러한 법들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 의지인데, 그 이유는 이 법들이 부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법적 비판입니다.
3) 권위가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을 진실로서 받아들이지 않거나, 적어도 권위가 그것을 진실이라 말했다는 이유만으로는 그것을 진실이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 진실하다고 받아들이는 이유들이 자기에게 타당하다고 간주될 때에만 수용하겠다는 태도입니다.
정리하면 성서, 법 권리, 학문 그리고 성서, 자연, 자기와의 관계, 또 권위, 법률, 독단적 권위가 비판의 적용 지점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권력, 주체, 진실을 서로 연결시키거나 이 중 하나를 다른 두 가지와 연결시키는 관계망이 본질적으로 비판의 진원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통치화가 사회적 실천의 현실 속에서 진실을 주장하는 권력 매커니즘을 통해 개인을 예속화하는 문제와 관련된 활동이라면 저는 비판이란 진실에 대해서는 그 진실이 유발하는 권력 효과를, 권력에 대해서는 그 권력이 생산하는 진실 담론을 문제 삼을 수 있는 권리를 주체가 자신에게 부여하는 것과 관련된 활동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판은 자발적 불복종의 기술, 숙고된 불순종의 기술일 것입니다.
이것은 계몽에 대한 칸트의 정의로부터 멀리 있지 않습니다. 1874년 텍스트에서 칸트는 어떤 미성숙 상태와 연관시켜 계몽을 정의했습니다. 둘째로 어떤 무능력한 상태. 셋째, 이러한 무능력을, 인류를 미성숙 상태에 머무르게 만드는 권위와 맺는 어떤 상호관계를 통해 정의했습니다.
계몽과 관련해 엄밀한 의미에서 비판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비판은 이렇게 말해줄 것입니다. (51) 우리의 자유는, 우리가 다소간의 용기를 갖고 어떤 것을 기획할 때 문제시된다기보다는, 우리가 우리의 인식과 그 인식의 한계들에 대해 갖는 관념 속에서 문제시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따라서 타인이 복종하라고 명령하도록 내버려두는 대신 자기 자신의 인식을 스스로 올바른 관념으로 만들게 될 때, 바로 그 순간 자율성의 원리를 발견하게 되고, 복종하라는 명령에 더 이상 순종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아니 차라리 복종하라는 명령이 자율성 자체에 의거하게 되리라고 말입니다.
계몽의 용기보다는 칸트식의 비판이 훨씬 더 우세했던 이시기의 역사 발전 과정에는 간단히 말해 세 가지 근원적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실증과학의 성립입니다. 두 번째로, 스스로를 절대적 역사의 심오한 이성이자 합리성이라 간주하고 경제와 사회의 합리화 절차를 자신의 수단으로 선택한 국가 또는 국가체계의 발전. 세 번째, 과학이 생산력의 발전에 점점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국가주의적 유형의 권력이 점점 더 정교화되는 여러 기술의 총체를 통해 행사되면서 조밀한 관계의 피륙이 직조됩니다.
계몽과 비판 사이의 관계에 관한 문제제기는 당연히 점점 더 불신과 회의의 경향을 띠게 됩니다. 즉 바로 이성 그 자체가 권력의 남용과 통치화에 역사적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이성 자체 내에 권력 남용의 책임이 있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느냐 라는 의심이 독일에서 발달한 원인은, 최근에 새롭고 합리적인 고약한 국가가 발전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대학과 학문이 오래전부터 행정 및 국가의 구조에 속해왔었기 때문입니다. 독일 좌파에게 실증주의, 객관주의, 합리화, 기술, 기술화에 대한 온갖 비판이 있었으며 과학의 근본적인 기획과 기술의 근본적인 기획 간의 관계와 관련된 많은 비판이 있었습니다.
계몽 사상과 프랑스 대혁명에 의해 구축된 진영은 대체로 합리화와 권력의 관계에 대한 실질적이고 심도 있게 문제제기를 방해했습니다.
최근 들어 프랑스의 상황이 변한 것 같습니다. 의미가 기표 장치의 특정한 제약 체계들을 통해 구성되며, 그 구조들 고유의 강제 효과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의 분석을 통해, 바로 이 이상한 지름길을 통해 이성과 권력의 문제가 재발견되었던 것입니다. 서양의 사상과 과학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계, 국가 조직, 경제적 실천 그리고 아마도 개인의 행동까지도 특징지었던 이 합리화는 과연 무엇인가?
프랑스에서 우리들이 다시 천착해야 했던 계몽이란 무엇인가라 문제에 대해 저는 차이점들을 지적하고 근대 철학의 문제인 이 계몽의 분석 방식을 우리가 얼마만큼이나 증식시키고 확산시키며 서로 구분할 수 있고 또 분리할 수 있는지를 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철학적 실천에서의 쟁점은 그것의 고유한 역사를 쓰는 일, 즉 진실한 담론을 조직하는 합리성 구조와 그것과 결부된 예속화 기제 간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 의해 관통되는 역사를, 마치 허구를 통해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우리가 고안한 역사적 내용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합니다. 일반적으로 진실의 권력에, 개별적으로는 진실들의 권력에 예속되어 있는 이 인류에 속하는 나, 아마도 인류의 한 부분에, 인류의 이 시기에, 인류의 이 순간에 속해 있는 나는 무엇일까? 역사적 내용에 따라 이러한 철학적 질문을 탈주체화하는 것, 이것이 역사-철학적 실천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다른 한편, 이 역사-철학적 실천은 경험적으로 한정 가능한 일정한 시대와 특권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국가 체제가 정립되고, 근대 과학 및 그에 관련된 기술들의 정초, 통치 기술과 그런 식으로는 통치받지 않으려는 기술 사이의 조직적인 대립 등을 통해 정의되는 이 시대의 권력과 진실 그리고 주체 사이의 관계들을 분석해야 합니다. 이런 관계들의 노출에 입각해 일련의 다른 가능한 영역들의 연구를 위한 어떤 모델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61)
칸트 이후로 계몽의 문제는 칸트 때문에 그리고 아마도 그가 설정한 비판과 계몽 사이의 간극 때문에 본질적으로 인식의 측면에서 제기되었습니다. 빈번하게 답습됐던 인식의 역사적 양식들의 정당성에 대한 탐구라 불릴 수 있는 절차들이 생겨납니다. 인식은 자기 자신을 어떤 그릇된 관념으로 만들어 버린 것일까? 인식은 어떠한 남용에 노출됐는가? 그 결과 인식은 어떠한 지배와 결부됐는가?
우리는 인식의 역사적 정당성에 대한 탐구라는 형태의 절차와는 다른 절차를 구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절차는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를 구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절차는 사건화evenementialisation의 검토라고 부르는 어떤 것을 행합니다.
이것은 그 안에서 일차적 접근을 통해, 완전히 경험적이고 잠정적인 방식으로 강제 메커니즘과 인식 내용 간의 상호 관계를 포착하는 것이 가능한 그런 요소들의 총체를 채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은 강제 메커니즘과 인식 요소 간의 상호 유대 관계가 무엇인지, 양자 간에는 어떤 종류의 상호 참조 및 상호지지 작용이 전개되는 것인지, 다시 말해 이러저러한 인식의 요소가 권력 효과들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요컨대 진실된 요소, 있을 수 있는 요소, 불확실한 요소, 거짓된 요소에 할당되는 권력 효과들이 무엇인지, 이러저러한 강제 절차가 합리적이며 타산적이며 기술적으로 효율적인 일정한 요소를 갖고 있는 고유한 형식과 정당화를 획득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와 같은 것입니다.
일정한 시기, 특정 영역에서 수용 가능한 모든 절차와 모든 인식 효과를 지시하는 지식이라는 용어와, 행동이나 담론을 유발할 수 있는 일련의 특수하고 정의 가능하며 이미 정의된 메커니즘을 포괄하는 권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분석의 매 순간 이 두 용어에 구체적이며 명확한 내용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지식의 요소, 저러한 권력 메커니즘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수용 체계의 수용 가능성을 구성하는 요인들을 포착할 수 있게 하는 지식-권력 결합체를 기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7)
그리고 정당화에 대한 고심으로부터 초월해 있고 그 결과 법칙이라는 근본적 관점을 피해가면서, 수용이라는 사실로부터 지식-권력의 작용을 통해 분석된 수용 가능성의 체계로 전진하면서 실정성의 회로를 탐색하는 고고학의 수준이라 불리는 절차가 있습니다.
한 체계의 수용 가능성의 조건들을 추출하고 그것의 등장을 특징짓는 단절의 경계선을 추적하는 일은 서로 연관된 두 가지 작업입니다. 광기와 정신병이 정신의학의 과학적이면서도 제도적인 체계 속에서 서로 중첩되었던 것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체계의 수용 가능성을 포착하는 작업은 그 체계를 수용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을 포착하는 작업과 분리 불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인식 측면에서 자의성과 권력 측면에서의 폭력성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체계의 수용 가능성의 인위성을 보다 잘 추적하기 위해서는 그 구조를 탐구해야 합니다. (69)
실정석의 분석에서는 어떤 종이나 본질이 아닌 단순한 수용 가능성의 조건들에 관계된 순수한 특이성이 문제이기 때문에 복잡한 동시에 조밀한 인과 관계망의 전개를 전제합니다. 이 망은 심원하고 단일하며 피라미드식으로 강제하는 원리로 가득찬 요구에 부합하지는 않는 다른 유형의 인과 관계망입니다. 이 특이성을 효과로서 파악할 수 있는 관계망을 구축하는 일이 문제인 것입니다. 다양한 계보들을 중압적이고 원리적인 단일한 원인으로 통일하려는 발생학에 대립하는 계보학이 중요합니다.
권력을 언제나 상호 작용의 장 안에서 가능 하는 관계로 간주하며, 지식의 형식들과 분리 불가능한 관계 속에서 고려하고, 언제나 가능성, 즉 역전 가능성의 영역에 연계되어 있다는 시각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비판적 태도를 비판의 문제 내로 이동시킨 운동, 아니 그 목적이 인식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 대한 적절한 관념을 획득 가능하게 하는 데 있는 비판의 기획 내에서 계몽의 기획을 재검토 하는데 있는 운동-이 동요 운동, 이 이동, 요컨대 비판 안으로 계몽의 문제를 강제로 이동시키는 방식-을 고려해 볼 때, 그 반대 방향의 길을 따라 가려고 시도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푸코 : 15-16세기 이래 근대 서양 사회 특유의 비판적 태도의 역사적 기원을 중세 후반기의 종교 투쟁과 영적 태도에서 찾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통치받아야 하는가, 이런 식의 통치를 수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바로 그 시기 말입니다. 중세 후반기의 사목을 둘러싼 모든 투쟁이 종교개혁을 예비했고, 비판적 태도가 발전하는 역사적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앙리비로 : 지식이 그 자체로 권력의 지식으로 정의되고 권력은 지식의 권력으로 정의된다면 지식과 권력의 어떤 공통적 본질을 재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푸코 : 제가 보여드리고자 했던 것은 바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듯한 권력의 여러 극들 아래에, 실은 일정 유형의 광채가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장-루이 브뤽 : 통치 받지 않으려는 결연한 의지라는 급진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통치화의 남용을 감지하셨기 때문입니까? 이 입장 자체가 철학적으로 본질적인 의문과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푸코 : 인상적인 것은 서양 세계에서 이 비판적 태도의 모태를 중세의 종교적 태도 속에서 발견해야만 한다는 점이고 사목 권력의 행사와 관련해서 어쨌거나 아주 놀라운 점은 개인적인 경험인 신비주의와 제도적이며 정치적인 투쟁이 완전히 일체가 되어 지속적으로 서로 의거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식으로, 지나치게 통치 받지 않으려는 의지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개인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집단적 차원에서도 제기해야만 합니다. 이제는 의지의 문제를 제기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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