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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철학과에서의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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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니짱 발제

질문1) 에피쿠로스는 자기를 배려하는 데는 결코 너무 늦은 것도 없고 너무 이른 것도 없다고 말했는데, 저는 라캉의 현대의 영웅들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언제나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르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p129)

대답) 윤리의 문제는 어떤 것을,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그것을 아낭케 혹은 튀케로 바꾸고자 하는 문제가 전혀 아니라, 이미 있는 어떤 것을 관리하는 문제였고 또 우리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좋은 때를 포착하는 문제였습니다. 카이로스는 어떤 활동이 있습니다. 그 카이로스라는 요소 덕분에 인간의 자유는 아낭케, 즉 이 세계의 필연을 관리하고 그것을 화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저는 카이로스, 즉 좋은 때라는 문제가 그리스 윤리에서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정신분석의 문제는 어떻게 욕망의 필연을 관리할 것인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연관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고비가 전개되는 와중에 행동하기 좋은 때를 선택하는 것, 그러니까 결과나 결말을 받아들든지 환자를 구조하든지 하기에 좋은 대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정신분석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윤리의 기술이니까요. (131)

질문2) 자기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틀이 존재합니까?

대답) 윤리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 생각에, 주체들이 그들의 활동과 행위 등등 안에서 도덕적 주체로서 자기 자신을 구축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발전시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어떤 유형의 관계를 맺어야 윤리적 주체로서 자신을 구축할 수 잇는지를 정의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자기 발전이 아니라 자기 구축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132) 자기 자신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윤리적 주체로 구축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발전이 아닙니다. 자기라는 것은 애초부터 주어진 현실도 아니고 특정 도식이나 특정 모델에 맞춰서 발전시켜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는 심리학적 현실이 아닙니다. 혹은 아마도 자기는 특정한 역사-문화적 형식들을 통해서 심리학적 현실이 되거나, 혹은 적어도 경험의 근간이 됩니다. (133)

 

질문3) 근대인들과 달리 고대인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스토아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오류라고 여기는 환상과 정념을 없애버리려고 할 때, 그들의 방법은 자기발견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었을까요? 자기발견과의 차이를 다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대답) 요컨대 스토아주의자들이 자기 자신이 실제로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할 때 그 기준이 되는 것은 세계 내에서 혹은 내 주변에서 무엇이 내 소관이고 무엇이 내 소관이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이었습니다. 내 소관이 아닌 바,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바는 그러므로 나 자신이 아닙니다. (134) 이 자기 발견적인 것은 내 소관인 바와 내 소관이 아닌 바를 분할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문제는 내 지고성의 영역을 정확하게 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인에게서 문제는 이렇게 바뀝니다. 나 자신과 관련해 내가 갖고 있는 환상, 내가 나 자신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하게 방해하는 환상은 무엇인가? (135) 사탄으로부터 왔지만 신이 자신을 자극하는 어떤 환상(착각)이 자기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관념, 표상, 욕망 등을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는 엇입니다. 바로 이것이 자기 해석의 의무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자기 해석은 스토아주의에서 행하는 구분, 즉 자기의 소관인 바와 아닌 바를 구분하는 것과는 아주 다릅니다.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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