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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판이란 무엇인가?

미셸 푸코는 우선 자신이 말하는 비판적 태도의 존재 방식을 칸트가 시도한 비판의 기획으로부터 끌어낸다. 푸코에 따르면 칸트적 비판은 이론으로부터 오류를 제거하고 보다 순수한 진리에 접근하는 것과 같은 목적에 한정된 좁은 의미의 비판이 아닌 일반적인 덕으로서의 비판적 태도라고 말한다.(229)

 

통치의 기원

칸트 시대에 교회와 거기에 인접한 세속 권력은 진실과 결부된 양심 지도를 통치의 기술로서 발전시켰고 사람들을 거기에 복종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복종의 태도는 곧 종교개혁을 통해 세속 사회로 확산되었다. 여기로부터, 어떻게 통치해야 할 것인가, 또 어떻게 통치받아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생겨난다.(230)

 

이런 식으로는 통치받지 않기 위한 기술로서의 비판

통치하는 것과 통치받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필연적으로 그 반대적 의미의 상태인 통치받지 않는다는 것을 새로운 문제의 대상으로 제기한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태도, 이것을 푸코는 비판적 태도라 부른 것이다.

비판적 태도는 결코 통치받는 것에 대한 절대적 저항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판적 태도통치 기술을 불신하고 거부하고 제한하며, 그것의 정당한 한도를 모색하고 그것을 변형시키는”, 다시 말해 자신과 자신에 대한 통치의 과잉성을 감시하고 이것을 교정하려는 자세다. 이것은 통치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대한 유럽인들의 경계심을 의미한다고 푸코는 말한다.(231)

비판은 자발적 불복종의 기술, 숙고된 불순종의 기술일 것입니다. 비판은 한마디로 진실을 둘러싼 정치라고 부를 수 있는 활동 속에서 탈예속화를 그 본질적인 기능으로 갖는 것입니다.”

비판은 자기의 의지를 통해 진실, 권력, 주체의 삼위일체 관계를 해명함으로써 자기에 대한 통치에 대항하기 위한 기술로서 정의된다는 데 유념할 필요가 있다.(232)

 

비판과 계몽의 관계

푸코에 따르면 (종교, , 지식과 같은 세 영역의) 권위의 힘이나 지도를 통해 인간의 지성을 행사하는 힘을 약화시켜 미성숙 상태에 놔두려고 하는 권위의 과잉, 이것에 대항하는 용기와 결의를 촉구하는 것, 바로 이것이 칸트가 말하는 계몽이다. 칸트가 기술하는 이 계몽이 푸코가 주장하는 비판이고, 그것은 통치화 내에서 어떤 종류의 저항으로 서구 세계가 고안한 비판적 태도를 만인에게 호소하는 선언이었던 것이다.(233)

 

칸트적 비판과 계몽의 대립

푸코에 따르면 칸트의 비판은 자신의 한계를 깨달은 인간이 자신의 영역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이에 입각해 자신의 자율을 달성한 인간은 복종하시오라는 외부의 명령을 들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기에 복종하시오라는 명령이 자율이라는 형태의 확실한 내부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칸트적 비판은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잉 권력에 의한 통치의 일반화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어왔다는 것이다.

푸코는 칸트 내에서 쌍을 이루고 있는 비판과 계몽 개념을 분리하고, 후자인 계몽의 기획에 입각해 자신이 말하는 비판을 정의한다.(234)

 

지식과 권력의 관계

18세기에 근대 과학이나 국가의 통치가 전면에 등장했다. 어떤 지식, 진실의 체계는 그것이 통치의 기술과 결부됨으로써 강제를 정당화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을 구축할 수 있다. 우선적으로 착수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강제의 절차가 어떻게 합리적으로 계측되고 고유한 형식과 근거를 어떻게 획득하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에서는 지신과 권력이라는 두 개념이 핵심이 된다. 이 두 개념은 어떤 사건으로 가치를 일관되게 환원하여 어떤 행위나 그 효과의 정당성을 특정 상황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수용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다.(235)

지식권력과 결합해 비로소 그 효과를 발휘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과 권력의 연결망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강제가 수용된다는 사실을 실정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236)

하나의 신앙이 붕괴된다는 것은 인간의 안정성을 위태롭게 한다. 그래서 이러한 분석 방법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 어떤 근원에도 의지하지 않는 것, 순수한 형식 속으로 도주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방법이기 때문이다.(237)

 

저항과 비판

푸코의 목적은 계보학을 구축하는 것, 복수의 결정 요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특수성이 출현한 그 조건을 재구축하는 것이다. “권력을 언제나 상호 작용의 장 안에서 기능하는 관계로 간주하며, 지식의 형식들과 분리 불가능한 관계 속에서 고려하고, 언제나 역전 가능성의 영역에 연계되어 있다는 시각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237)

칸트적 비판의 출발 지점, 요컨대 이런 식으로 통치받지 않기라는 의지적 결단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바로 이것이 어떤 지배에 대한 저항을 가능하게 하고 역사적으로 존재하면서 역사에 속박되지 않는 우리들의 가능성의 영역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주체의 문제는 특이성들의 산출의 문제이지 보편적인 것의 인정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이러한 절차는 계보학적인데 그 이유는 이 절차가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우리인 바가 되게 만든 우연성으로부터 현재의 우리인 바가 이제는 더 이상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2. 자기 수양

 

_옮긴이 해제_윤명_샘.hwp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

현실태에 관한 문제 제기되기 이전까지 서구 전통 철학은 주로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은 어떤 것에 대해 문제 제기해왔다. 하지만 현실태가 제기되면서 지금, 여기에 관한 문제 제기가 중요해졌고, 이제 우리 자신에 관한 철학적 질문은 우리 사유의 역사는 어떻게 우리 자신을 현재의 우리로 만드는가?”라는 형태로 제시된다. 이러한 문제 제기 방식을 푸코는 우리의 역사적 존재론이라고 부르며, 우리와 진리(진실)가 맺는 관계, 우리와 타자가 맺는 관계를 연구하게 된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우리를 둘러싼 지식과 권력의 연결망에 의해 우리의 주체성까지 어떤 식으로 결정되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그런데 권력을 실체로 보지 않고 권력 관계로 묘사하는 푸코에게 있어 권력 관계는 언제나 역전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푸코는 자신 있게 권력 관계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저항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푸코는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형성되는 과정에 있어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권력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할 저항의 지점은 바로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241)

자기 돌봄의 재발견

푸코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에서 자기와 관계를 맺는 하나의 중요한 태도를 발견한다. 그것은 자기를 어떤 예술 작품의 질료로 여기며 가꾸어나가는 태도이다. 그러나 그 태도는 서구 역사 속에서 잊혀져, 오늘날에는 이러한 기술들 대부분이 교육과 교습의 테크닉, 의료와 심리학적 테크닉에 통합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한다. 그러한 이유로는 철학사의 흐름 속에서 자기를 인식의 대상으로만 여겨, 인식되고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어떤 실체로서의 자기가 이미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교육, 의료, 심리학적 테크닉 등에 통합되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결정적 요인으로 그리스도교의 금욕주의 전통을 꼽는데, 그리스도교 윤리에서는 자기와 맺는 관계를 포기하고 그 자리를 신과 맺는 관계들로 채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푸코는 그리스 로마 시대에서 자기 돌봄이라는 개념을 발굴한다.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자기 인식자기 돌봄이라는 목표를 위한 수한 정도로 여겨졌다는 것이다.(242)

자기 돌봄의 전성기

도시 국가들이 사라진 기원후 1~2세기의 그리스 로마 시민들에게 이제 자기 돌봄은 평생에 걸쳐 자기 자신과 관계맺는 지속적인 작업이 된다. 방법적인 측면에선 명상을 통한 영혼의 관조가 아닌 구체적인 삶 속에서의 다양한 실천을 활용하게 된다. 한순간의 배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참과 거짓을 지속적으로 분별해내고 거짓에 대해서는 용기 있게 맞서며 비판하고 자기 자신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철학적으로 치유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실천 내부로 흡수되면서 그 목적은 이제 더 이상 자기를 돌보기위한 거이 아니라, 자기를 포기하고 비워내기위한 것이 되었다.

결론

이 강연록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체형성의 복잡성이다. 푸코는 주체가 역사적 절차, 합리성 모델과의 관계, 인식 및 진실과 관계 맺는 방식, 제도, 통치받는 방식 등을 통해 구축되는 것임을 보여주고, 주체에 대한 문제 제기의 핵심은 해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해방은 환상이다. 주체는 실체와 같은 것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와 자기가 맺는 수많은 관계의 방식에 입각해 구축되는 것이라는 점을 푸코는 강조한다. 그러므로 주체는 타자, 권력 등과 관계 맺는 방식과 관련해 일차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주체는 과도하게 통치받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 특이성의 가능한 생산으로서 문제시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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