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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와 목자/ 나캬야마 겐 / 서문 1장/ 2017.2.24.(금) / 닥홍
서문을 대신하여; 맑스와 현자
맑스는 철학의 진실로서의 내용 그 자체보다 철학의 진실을 말하는 소포스라는 주관적 형식에 관심을 가졌다. 맑스는 소포스를 실체적 개인이라 부르면서 이렇게 말한다. “질료(Materie)에 대한 고찰 속에서 이론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소포스의 규정 속에서 실천적으로 나타난다.” 진실을 말하는 이 ‘실체적 개인’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맑스는 그리스 철학을 소묘한다. 맑스는 초기의 현자, 소크라테스, 그리고 스토아 및 에피쿠로스의 현자 세가지 형태로 현자를 구분한다.
초기의 현자는 인륜의 일부이며, 인륜을 형성해 가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현자에게 이렇듯 자연스러운 관계가 허락되지 않게 된다.
우선 인륜이 신의 영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그들의 말은 현실적으로 통용되는 실체 법률(Gesetze)이 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영혼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즉 다이몬을 따르므로 아테네의 인륜을 따르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주체 안에서 자신을 상실한 실체의 실체적 증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실천적 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현자이다.
스토주의와 에피쿠로스의 현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 철학의 거대한 성과를 획득한 이후의 철학이 존재하는 방식을 상징한다. 맑스는 에피쿠로스가 데모크리톳의 자연철학을 개작함으로써, 어떻게 외부의 사건에 좌우되지 않고 마음의 평정(아타락시아) 상태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렸던 진짜 철학자, 신에 대해 명상하는 소포스가 될 수 있었는지를 소묘한다.
맑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 철학의 정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리스 철학의 끝을 장식하는 에피쿠로스 속에서 그 철학의 내용이 철학자라는 그릇 속에서 실현된다고 지적한다.
맑스가 말하는 소포스의 세 전형은 분명, 찰학자라는 그릇과 철학자가 말하는 진실에 관한 헤겔적 변증법과 닮아 있다. 초기의 현자는 인륜이라는 진실을 체현하고 있는데 그것을 자각하고 있지는 않다. 진실은 신탁처럼 소위 바깥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이 주어진 내용을 일단 부정한다. 그리고 자기 주관의 내부에 밖에는 진실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에게는 말해야 할 진실이 없다. 플라톤이 묘사하는 소크라테스는 이데아 이론을 말하지만 소피스트를 순화하려 한 소포스로서의 소크라테스는 그저 영혼의 배려만을 추구할 뿐 거기서 실질적인 내용은 말하지 않는다.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를 포함한 누구도 진실을 모른다는 사실이 강조되는데, 그 무지가 의미하는 바를 이 현자로서의 존재 방식으로부터 읽어 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철학적 진실이 구축된다. 철학과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최고의 방식은 사유자체에 대한 사유이며 활동(관조)는 가장 즐겁고 좋은 것이라 말해진다. 이러한 관조를 철학의 목적으로 삼고 실제로 이에 종사했던 것이 에피쿠로스라는 이물이엇다. 여기서 찰학자라는 그릇과 철학의 이론이라는 내용이 일치했던 것이다.
이 변증법의 세 단계를 거침으로써 맑스의 소포스는 착실히 변신을 이룬다. 진실을 살아 내는 자인 현자의 변신 과정이 그리스 철학의 전진을 상징하고, 그리스 철학을 움직여 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소위 현자의 계보는 그리스 철학의 계보로서 해석될 수 있다.
1부 현자의 전통 1장 현자의 등장
푸코와 진실 말하기
푸코의 장대한 시도
맑스는 철학자가 말하는 진실 자체보다도 진실을 말하는 철학자에 주목함으로써 헤겔의 철학사와는 전혀 다른 철학사를 시도했다. 푸코는 자신이 해온 것은 주체가 어떻게 자기에 관한 진실을 말하는가, 그리고 그때 어떤 대가를 지불하게 되는가, 또 그때 어떤 권력관계가 생겨나는가를 고찰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광기가 진실 탐구의 영역에 등장하게 된 경위를 고찰하려 했고 임상의학의 탄생에서는 근대적인 생명 개념의 등장과 더불어 질환이 과학적 탐구와 실험의 장에 등장하고 환자에 대한 진실 말하기가 가능하게 되는 상황을 고찰했다. 이 책에서는 푸코의 진실을 말하는 주체의 변모를 역사적으로 추적해 보면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게 된 주체, 진실, 자기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2. 신이 빼앗아 가는 진실
일리아스에서의 진실 고백
푸코는 초기의 진실 말하기 방식에 대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전차 경주의 장을 예로 들어 고찰한다. 이 경기에 참가를 희망하는 경기자는 애초부터 그 지위가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푸코는 경기에 출전하는 다섯 영웅들의 조건이 평등하지 않으며 선수들이 강한 순서대로 일어났다는 데 주목한다. 그리고 선수들에게 주어지게 될 포상은 선수의 진정한 강함에 따라, 소위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요컨대 이 경기는 평등한 자들 간에 승자를 결정하기 위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영웅들의 강함이라는, 처음부터 존재하는 진시에 따라 포상하기 위한 예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경기라기보다 진실의 예식으로서 행해질 예정이었다.
안틸로코스는 고발당하고 있는 인물이며 진실을 스스로 알고 있는 인물이고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다음 장에서 고찰하게 될 오이디푸스와 같은 지위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이디푸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안틸로코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두려워하는 까닭에 진실을 말하는 것도, 진실을 추구하는 것도 모두 피한다는 것이다. 안틸로코스는 신에게 맹세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물음은 상품을 양보하는 것으로 완전히 회피되고 만다. 호메로스가 묘사하는 이 장면은 사법의 장면이 아니라 영웅들의 경기 장면이며, 진실을 추구하고 심판하는 재판관의 입장에 있는 자도, 현장에 입회하여 경기의 올바름을 심판하는 자도 증거를 모아 진실을 확정하는 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서 진실은 경기와 예식 내에 있는 것이다.
3. 신명재판의 역사
그리스의 신명재판, 중세에 남은 흔적
고대 그리스로부터 서양의 중세에까지 이어지는 이 신명재판의 특징은, 그것이 공개적인 장에서 행해지고 입회한 모든 사람들의 칭찬과 찬탄의 목소리가 그 신의 판단의 올바름을 뒷받침하고 인정하는 것이었다는데 있다. 닫힌 장소에서의 재판은 전혀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다음에 이야기할, 유대교에서의 여성의 정절을 둘러싼 재판과 대조되는 점이다.
유대교의 신명재판
유대교 율법에서는 남편이 아내의 간음을 의심할 경우 아내를 사제에게 데리고 간다. 사제는 아내와 둘만 남아 그 여자를 주님 앞에 세운다.
그리스의 아르테미스 신역에서의 재판처럼 사람들 앞에서 치르는 시련은 아니다. 신의 노여움과 마주하는 유대의 재판과 비교하면 그리스의 재판은 공적인 의례의 성격을 갖고 있다. 신명재판이라는 시련은 연극적 형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진실의 의례
푸코가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은 고대의 진실이 현대에서와 같은 과학적 진실이 아니라 신이 밝혀 주는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을 신으로부터 듣거나 혹은 신으로부터 가로채기 위해서 진실의 현시(알레투르기아)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거짓, 은폐된 것, 보이지 않는 것, 예견할 수 없는 것 등과 대립하는 진실된 것을 제시하는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 절차의 총체를 알레투르기아”라고 부를 수 있다.
알레투르기아라는 말은 알레테우오(진실을 말하다)라는 동사와 라이투르기아(의례)라는 명사로부터 푸코가 만들어 낸 조어인 듯한데, 이렇게 진실을 말할 때에는 어떤 종류의 권력 행사가 수반된다.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자는 그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는 행위는 권력의 장 안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푸코는 해몽에 주목했다. 그리스에서 꿈의 가치는 충분히 인정되어 있었고, 크세노폰은 꿈에서 영혼의 신적 본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리스에서 의료의 신으로 여겨지는 아스클레피오스는 환자의 꿈을 통해 치료 방법을 전했다. 푸코가 말하듯 꿈은 항상 준비가 되어 있는 예언자, 지칠 줄 모르는 과묵한 조언자로 간주되어야 하며 따라서 우리는 모두 자신의 꿈을 해석하는 데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스의 전통적인 꿈 이론이다.
점성술
점성술이 진실을 알리는 기술인 만큼 그리스도교가 국교가 되어 점성술이 금지될 때까지 이 기술을 다루는 것은 목숨이 걸린 일이며, 실제로 다수의 점성술사가 사형에 처해졌다.
푸코와 진실게임
푸코는 이렇게 고대 그리스에서의 진실의 의례, 꿈의 해석, 그리고 로마 제정기의 점성술 등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곳에 있는 진실이 신의 권위나 여러 기술에 기초해서 드러나는 절차에 주목한다. 푸코는 진실의 의례가 진실 게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진실게임이란 사람들을 지배하는 절대적 진실과 같은 것이 사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인간관계상의 여러 수준에서 진실이 만들어져 간다는 생각을 나타낸다. 어떤 것이 진실로서 인정되는 순간 거기에 하나의 권력관계가 탄생하며, 진실은 언제나 이러한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여러 대가를 지불하면서 하나의 게임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실게임이란 진실된 것들의 발견이라기보다는, 어떤 것들에 관해 주체가 어떤 규칙에 따라 진실을 말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진실 게임은 어떤 것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담론의 출현 조건, 그로 인해 지불된 대가, 그 담론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등의 총체를 통해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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