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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1부 발췌.hwp

전사연 170321(화) / 헤겔세미나 /찰스 테일러의 헤겔/1장 발제/바다

1부 사변 이성의 요청

1장 새 시대의 목표

 

1

헤겔은 1770년에 태어났다. 당시 독일은 혁명의 시대였다. 헤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주체의 본성문제, 인간 주체가 세계와 맺는 관계문제, 이에 대한 인간의 두 이미지를 통합하는 문제를 개관하는 일이다.(15)

급진적 계몽운동은 17세기 과학혁명에 영감을 주었고 인식론적 혁명과 더불어 시작된 사유의 노선을 의미한다. 베이컨, 홉스, 데카르트, 로크 등이 발전시켰다. 갈릴레이와 뉴턴의 과학에서 영향 받은 사유노선은 18세기에도 계속 유지되었다. 급진적인 사람들은 철저한 원자론과 기계론, 유물론으로 나아갔다. 윤리학에서는 급진적 공리주의로 나아갔다. 엘베시우스, 돌바크, 흄, 벤담 등이 대표한다. 이 운동은 인간학적 결과로 이어지는 인식론적 혁명이고 그 근저에 놓인 개념은 ‘주체’이다. 17세기 근대인들은 인식론적 혁신자들로서 아리스토텔레스적 과학에 대한 조롱과 비판, 이 과학과 복잡하게 얽힌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 사유의 우주론에 대해 비판했다.(16) 근대 이전의 세계상들은 인간을 유약하게 만들며 발견하고 싶은 형식들, 완전하고 평안하다고 느끼는 형식들을 아무렇게나 사물들에 투시했다.(17) 의미 있는 질서라는 이념은 목적인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우주는 이 이념에 따라 배치되어 있으며 이념이 행하는 대로 발전한다. 궁극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은 이 질서다. 세계를 이념들의 질서나 원형들의 질서를 구현하고 표현하기 위해 실존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적 사물관은 근대 이전의 많은 사회에서 여러 형태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18) 이 이해방식은 18세기 후반 혁명들의 요점이 아니다. 자아 안에서의 두 경향, 즉 환상을 평안하게 인정하는 경향과 척박한 실재만을 보는 경향 사이의 투쟁으로 그 시대의 문제를 구성해야한다. 근대의 자아 개념은 17세기가 되어서야 존재했다. 과거에는 우주적 질서와의 연관 속에서 규정되는데 반해 근대의 주체는 자기 규정적이다. 인간 주체는 경험의 보편적인 면과 조화되어야 한다.(19)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참고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동일성 개념은 없다. 17세기의 혁명으로 발생한 변화는 근대적인 자아 개념으로의 변화다.(21)

의미있는 질서라는 개념을 없애는 것이 자아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자기 현존은 우리의 본질을 아는 것, 우리가 관찰하고 판단하는 세상과 상관없이 우리가 행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다. 따라서 근대 인식론의 자기 규정적 주체는 동일한 운동에서 성장한 심리학과 정치학의 원자적 주체다(22). 자기 규정하는 주체론의 근대적 이행은 세계에 대한 통제와 연계된다. 처음에는 지적인 통제로 다음에는 기술적인 통제로 나타난다. 주체론은 세계가 이해할 수 없는 난공불락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투명한 수학적 추론에 의하여 사물들 안에 있는 규칙성을 정밀하게 도식화하고 그에 상응한 조작적 통제를 강화함으로써 성장했다. 이는 세계를 궁극적으로 중립적, 우연적 상호 연관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인은 사물에 대한 직접적 인식이 고대의 인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인식을 가지며 그들에게 인식의 패러다임으로 이해되었다. 근대 과학·기술과 사물에 대한 이러한 통제는 과학혁명과 근대적 세계관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23)

기술적 진보는 우리의 삶을 변형시키고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것들을 주었으나 17세기에는 매우 적은 정도였다. 업적 그 자체는 진리를 약속하는 것만으로 더 위대하다.(24) 철학혁명과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근대 주체 개념이 발전했다. 근대 주체는 자기 규정적인 것이고 사물들의 내적 의미를 결하며 세계를 관찰에 의해 확인되고 선천적 패턴에도 순응하지 않는 우연한 상호관계로 특징된다. 이러한 세계상은 ‘탈마법화’이며 종교적인 ‘탈신성화’이다. 이는 내적 의미의 세계에 대한 부정, 세계가 체현된 의미임을 부정하므로 ‘객체화’라고도 한다. 근대적인 관점에서 의미와 목적은 오로지 주체들의 사유와 행동에만 적용될 뿐이며 주관적 범주들을 투사한다.(26)

근대의 객체성은 원자적이다. 사물들의 변화를 구성 요소들 사이의 작용인적인 관계에 의해서만 설명한다. 근대의 과학은 기계적, 원자적, 동질화하는 학문이며 사물의 모양을 우연적인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새로운 과학은 인간에 대해서도 그렇게 이해하도록 했고 인간도 우연에 기초해 있다고 본다(27). 계몽의 시대는 새로운 객체성과 상관관계에 있는 자기규정적 주체성 개념과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따라서 객체성에 철저히 종속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혼합된, 혼합 인간학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각각 원자론을 지지했으나 결정론에서는 갈등한다. 주체로서의 인간의 자유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보는 인과적 필연성에 제약된다. 계몽 측면에서 자연은 모든 존재는 서로 맞물려 있는 자연적 실존 양식을 가지며 욕망하는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행복과 선함에 이르기 위한 이성의 계획을 규정한다. 이 두 요소는 다양한 견해를 발생시켰고(28) 두 경향의 화해가 헤겔 세대의 주된 문제였다.

 

2

독일의 경건주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그리스도와의 내적 관계가 중요했다. 이는 영혼과 신의 내적 만남을 중시하는 독일의 정신적 전통에 있다. 경건주의 운동은 열광적 헌신의 종교, 거듭남의 종교운동이었다. 국가와 교회라는 큰 공적 구조에 대항해서 개인을 옹호했고 개인의 확신과 자유롭게 선택된 공동체를 지지했다. 인간 스스로 삶을 개선하고 교육과 복지를 장려했다.(30)

계몽은 독일에서 온건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경제적·문화적 후진성이나 30년 전쟁에 기인한다. 독일의 계몽과 반작용은 부분적으로 경건주의라는 종교재생운동에 의해 형성되었다. 칸트와 레싱, 청년 헤겔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교리들 간의 차이를 넘어서 합리적·인간적 종교를 추구했다. 계몽의 이성과 경건주의의 영성, 양자의 영향이었다.(31) 독일의 저변에서는 프랑스 계몽을 따라야 하는 것에 반대하여 계몽 이후의 기운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근대 혁명의 주된 주제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다.(33) 1770년대 중요한 사상가 헤르더는 계몽의 인간학을 반대하고 대안적 인간학을 발전시켰는데 중심 범주는 ‘표현’이다.(33) 인간의 활동과 인간의 삶이 표현들로 간주된다.(34) 표현으로서의 삶이 의미이며 그 안에 표현으로서의 인간의 행위도 들어있다. 이는 삶을 목적의 실현, 이념의 실현으로 본다는 것이다. 또한 자아의 실현도 의미하므로 근대적이다. 자아의 실현이란 인간적 삶은 단순히 인간외부에 놓여 있는 이념이나 계획의 완성이 아니다. 이를 실현하는 주체와 상관없이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실현한 인간의 본질은 나의 것이며 각각의 개별자는 자기만의 인간성을 갖는다는 것이 표현주의적 인간학이다.(36)

삶을 자아의 전개라고 할 때 정확한 개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내적인 힘이 자기 자신을 외적인 실재에 부과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성장과 발전을 주변 세계가 부과한 힘들에 대항하여 자신의 형태를 실현하고 유지하려는 내적 힘의 선언으로 본다. 이상적인 실현은 이념에 순응한 실현일 뿐만 아니라 내부로부터 발생한 실현이다. 루소는 덕과 악의 전통적 대립을 자아의존성 대 타자의존성이라는 근대적 대립으로 바꿔놓았으나 이에 상응하는 인간론은 헤르더가 전개했다.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개념은 자기 전개하는 주체개념과 유사하다. 헤르더의 인간학은 스피노자의 철학 중 스스로를 보존하기 위해 모든 사물에 내재해 있다고 하는 그의 코나투스(모든 사물에 내재해 있는 자기 유지를 위한 힘, 인간에게 하고자하는 의지, 이루고자 하는 욕망 등)라는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 스피노자는 유한한 주체가 삶의 보편적 흐름에 어떻게 어울려 가는지 제시했는데 이 과정에서 보편적 삶의 힘이라는 범신론으로 나아갔다. 그 힘은 자기 전개라는 범주를 구체화하기 위해 재해석되었으며 더 큰 보편적 삶의 행위로, 하지만 주체와 유사한 것으로 간주되었다.(38) 표현주의의 두 번째 흐름은 형상의 실현이란 그 형상의 본질을 분명히 규정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실현하는 이념은 완성되는 가운데 완벽하게 규정될 뿐이다. 나의 인간성은 나에게 유일한 것이며 이 유일한 성질은 내 삶에서만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 헤르더의 생각이다.(39) 중요한 것은 사람들 간의 차이들이 오히려 우리 각자가 실현해야 할 유일한 형식을 정의한다는 사실이다. 차이들은 도덕적 중요성을 획득한다. 따라서 인간의 삶을 표현으로 보는 생각은 표현을 목적의 실현으로 볼 뿐 아니라 이러한 목적의 명료화로도 본다. 삶의 완성과 의미의 명료화이다. 명료화는 주체에 의한 인지를 전제한다.(40) 의식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잠재적 삶의 본질에 대한 참된 표현으로 인식할 때에야 최고점에 이른다. 표현주의적 인간학은 존재와 의미라는 이원론을 거부한다. 자신의 본질의 실현은 주체의 자기실현이다. 인간이 표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언어와 예술이다. 이것들은 표현으로서의 인간의 삶을 위한 모델들을 제공할 뿐 아니라 표현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탁월한 매체다.(42) 이 시기 언어는 더 이상 이념의 담지자로서 결정적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 헤르더는 언어를 자아의 표현으로 본다. 인간 중심은 로고스[언어, 철학]에서 포에시스[시,예술]로 이동한다. 헤르더는 새로운 언어이론, 새로운 예술관,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다룬다. 인간이 표현의 범주로 이해되어야 하는 존재라면 사유, 성찰 등과 같은 명료하게 인간적인 활동은 체현되지 않은 요소 속에서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매체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언어는 사유에 본질적이다. 언어 매체 속에서만 특징적 인간 활동이 존립할 수 있다면 자연언어들은 인간적 본질을 실현하는 독특한 방식을 표현한다. 언어 연구는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이다.(45) 언어는 세계를 기술하지만 인간을 실현해야 하고 인간이 무엇인지를 명료화해야 한다. 언어와 예술은 연속선상에 있다. 예술은 예술가의 심층적 느낌을 표현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을 완성하고 자신의 실존을 확장시킨다는 것이다.(46) 표현이란 높은 형식으로의 느낌들의 변형이다. 표현은 엄격한 의미에서 주관적이지 않으며 진리를 요청하지 않는다. 최고의 예술 형태는 자연[본성]에 충실하기 때문에 최고이며 가장 완벽한 표현이다. 예술가는 창조자였으며 18세기에 새로운 추동력을 부여했다. 예술이 종교와 유사한 기능을 담당하고 어느 정도 종교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즉 1770년대는 근대 세계의 발전에서 분수령이었다.(47)

인간은 표현적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단일체이며 사유에 대항하는 삶, 합리성에 대항하는 각성, 의지에 대항하는 인식 등으로 나뉠 수 없다. 인간은 이성이 부가된 동물이 아니라 분할 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형식으로 본다. 완벽하게 전개된 인간은 자기 명료화와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 존재다. 이것이 헤르더의 ‘성찰’ 개념이다.(49)

표현주의적 인간학은 인간의 삶에 대한 기계론적·원자론적·공리주의적 해명이다. 계몽은 자연을 주체가 인식하고 행위할 때 다룰 객체화된 사실들의 집합으로 본다. 여기에는 자연과 의지 사이의 균열이 있었다. 이때 자연은 계획이나 도구로 나타내며 의지는 계획 위에서 행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루소, 헤르더, 낭만주의자들은 이러한 균열을 삶의 통일성을 찢는 것으로 여겼다. 자연은 사유와 의지의 영감이자 추동력으로 존재해야 했다. 자연의 목소리는 의지를 통해 말해야 한다.(51) 표현주의적 견해는 주체성의 이념을 강조할 때 조차 주변 환경과의 유대를 주장한다. 표현주의가 추구한 것은 첫째 통일성과 전체성이다. 표현주의는 강력한 반이원론이고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한다. 육신을 입지 않은 어떤 정신적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거부는 헤겔 철학의 근본원리 들 중 하나다. 둘째, 자유를 인간 삶의 한 가치로 만든다. 표현주의 자유는 진실한 자기표현에 본질이 있다. 자유는 외부의 침입에 의해서 뿐 아니라 표현을 강압하는 모든 왜곡에 의해서도 위협받는다. 자유는 인간의 자기실현 목표를 특징화할 수 있는 가치들 중 하나이다. 그 목표는 통일, 최고의 완성, 조화 등으로 표시할 수 있다. 셋째, 자연관의 연합을 추구했다.(54) 자연은 어떤 육체적 한계로 없으며 주체로서의 나는 더 큰 자연과의 상호교호 작용 한에 있다. 표현적 활동 속의 나의 삶이 나의 실제 실존에 적합하려면 나의 자아의 경계에 머물 수 없다. 자아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우리를 관통하여 흘러야 하고 삶의 흐름에 대한 느낌과 연속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유대감 있는 공동체로 경험되어야 한다.(55) 이 시기 고전기 그리스에 대한 영향은 깊었다. 고대 그리스는 이 시기 사람들에게 최고의 삶의 형식을 구가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최고의 것, 인간이 추구하는 형상, 표현, 명료함 등이 인간의 본성과 전체 자연과 일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인간 내부에 통일과 조화가 있던 시기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57) 넷째, 자연관의 교감은 동일한 힘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교감에도 적용된다. 인간들 사이의 공감을 최고의 자기감정과 결합시킬 감정적 통일의 교감을 추구한다. (60) 표현주의적 의식의 열망은 통일성, 자유, 인간과의 교감, 자연과의 교감에 있다. 표현주의적 의식은 주체와 객체사이의 간극을 극복하고자 하며 객체성을 주체성의 표현으로 주체와 상호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62).

 

3

도덕적 자유는 옳은 것을 위해 모든 경향성에 맞서 결정할 수 있음을 의미해야 한다. 도덕적으로 자유로운 주체는 자신의 다양한 욕망과 경향성을 통해 스스로 모을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총체적 책무에 대해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급진적 자유로 정의되는 주체성은 칸트의 비판이론에서 출발한다.(63) 칸트의 목표는 주체를 내적인 성찰에 소여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객체들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가능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선험적 논증에 대한 칸트의 목표는 주체를 내적인 성찰로서가 아니라 객체들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가능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것이었다. 경험으로부터 그 경험의 주체로 나아가는 추론을 하고자 한다. 주체는 내적 반성에 주어진 현상들에 의해 고갈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이나 외적 세계를 관찰할 때 그 토대에 놓여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경험이란 무엇인가’로부터 ‘이런 경험이 가능하려면 자아의 구조가 어떠해야 하는가’로 나아가는 논증이 필요하다. (64) 칸트의 경험 세계는 궁극적 실재와 구별된다. 그 세계는 부분적으로 주체에 의해 우리 정신의 구조로 형성된다. 이 구조는 선험적 논증에 의해 해명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세계의 형태가 부분적으로 우리에 의해 주어져 있다는 사실에 의해, 사물 그 자체의 형태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어떤 결론도 내릴 수 없게 된다고 한다.(65)

궁극적 실재로부터의 분리는 중도에 포기한 것으로 보였다. 칸트는 신앙을 위한 여지를 마련하기 위해 신에 관한 사변적 지식에 대한 요청을 파괴하고자 했다. 그의 근원적 관심은 주체의 도덕적 자유에 있으며 인간의 도덕적 규준은 신으로부터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덕적 명령은 정언적이며, 이 명령은 무조건적으로 구속한다. 그러나 우리 행복의 대상은 무조건적 책무의 토대일 수 없다. 의지 그 자체 속에서 구축될 수 있다. 의지는 합리적 의지이기 때문에 우리를 구속한다.

칸트의 도덕법칙은 선천적 구속력이 있어야 한다.(66) 도덕 법칙은 욕구의 대상이나 투사한 행위의 특수한 본성이 아니라 순수하게 형식적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형식적으로 필연적인 법칙, 그것의 모순이 곧 자기 모순이 되는 법칙은 합리적 의지에 달려있다. 이러한 도덕철학의 핵심은 급진적 자유 개념이다. 나는 엄격한 의미에서 자유로우며, 자연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순수한 도덕적 의지로서 자기 규정자이다. 이것이 칸트 윤리학의 핵심적 개념이다. 도덕적 삶은 도덕적 의지에 의한 자기규정이라는 근본적 의미에서 자유와 등가이다. 도덕적 주체는 올바르게 행동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올바른 동기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올바른 동기는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도덕 법칙 그 자체에 대한 존경으로부터만 올 수 있다.(67)

그러나 자유는 경향성과 대비되었다. 인간은 자연에 의존해 있어야 하며, 욕망과 경향성을 갖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도덕적 삶을 향해 항구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는 문제를 가져왔다.(68) 충동을 극복하고 성스러운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도덕적 인간의 의무라는 문제는 완벽함에 도달하려 투쟁하는 무한한 임무를 주었다. 칸트 철학과 표현 이론은 유사성이 있다. 표현이론은 자유 속에서 인간의 완성을 추구했는데 이때 자유는 자기 규정으로서의 자유이지 외적 접촉과는 상관없는 자유는 아니다. 자기 규정적 자유의 가장 순수하고, 포괄적인 것은 칸트에서 비롯된다. 자기 규정으로서의 칸트의 자유는 완성이며 내적·정신적 자유의 한계를 버리고 자연에 자신의 목적을 각인해야 한다. 그것은 총체적이어야 한다.(69)

자유로운 자아는 인간 행위와 외적 자연과의 인과 법칙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독립해 있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자유로운 주체는 자연과 외적 권위에 대립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즉 개별적 자아로 되돌아오며, 이를 통해 어떤 다른 사람도 관여할 수 없는 결정을 이끌어 낸다.

1790년대 표현과 급진적 자유는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은 위대한 변호가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앞 시대와의 단절을 내적인 필연으로 느꼈다.(70)

독일에서의 영향은 문화와 인간 의식의 영역에서 강렬했다. 자유와 표현, 두 이상을 통합하고자 한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역사를 통해 보는 것, 즉 고대적 삶과 근대적 삶에서 가장 위대한 것을 통합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분열되어야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그리스의 종합은 소멸해야 했다. 특히 이성과 급진적 자유의 성장은 자연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으로부터의 분리를 요구했다.(73) 근대인은 자신과의 싸움에 돌입해야 했다 표현모델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급진적 자유와 통합되어야 한다는 입장은 역사상 속에 통일의 상실은 불가피했고 과거로의 귀환은 불가능하다. 나선형적 역사관에 따르면 우리의 출발점으로 귀환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단계의 통일체로 귀환한다. 통일체는 두 이상 사이의 대립뿐 아니라 대립이 통합될 있음을 희망한다. 사유와 감성의 심각한 대립들의 극복이었고 급진적 자유와 총체적 표현으로서의 두 이상의 분리를 날카롭게 표현한 대립들이었다. 이 분리는 사유·이성·도덕성 대 욕구·감성의 분리, 완벽한 자기 의식적 자유와 공동체에서의 삶의 분리, 자기의식과 자연과의 유대의 분리, 이를 넘어 자연을 관통하여 흐르는 무한한 삶으로부터 유한한 주체성의 분리이다.(75)

 

4

위대한 재통합은 극단적인 관념론, 총체적 관념론이었다. 피히테는 시대와 대결하는 가운데 전체 체계를 변형하고자 했다. 칸트주의의 물자체(Ding an sich)로부터의 분리에 있어서 물자체를 거부했다. 궁극적으로 완벽하게 알려질 수 없는 낯선 실재의 세계와 마주하는 주체성은 없다. 오히려 주체성은 모든 것의 토대에 놓여 있다. 대상 세계는 ‘나는 생각한다’에 의해 정립되며, 궁극적으로 주체에 의존한다. 세계를 정립하는 주체성은 모든 유한자가 그로부터 유출되어 나오는 모든 것을 감싸는 주체와 같다. 피히테는 칸트의 도덕적 주체에 전권을 위임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도덕적 자유의 문제였다. 칸트와 동일하게 자연과 도덕성을 함께 가지는 그런 완벽함은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피히테는 두 이상을 결합시키지 못했다.(77)

괴테와 낭만주의자, 헤겔에 이르는 가운데 등장하는 두 개의 근본적 사상이 있다. 하나는 우리는 자연과 동일한 실체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자연을 실제로 알 수 있으며, 자연과 공감하고자 할 때에만 자연을 적절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는 정신적 힘과 결합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을 안다는 것이다.(89) 급진적 자율성은 소우주라는 관념은 인간의 의식이 자연의 질서를 반영할 뿐 아니라 자연을 보충하고 완성하기도 한다는 관념으로부터 훨씬 더 나아가야 한다. 자연 속에서 전개되는 우주적 정신은 의식적 자기 인식을 통해 스스로를 완성하고자 고투하며 자기 의식의 장소는 곧 인간의 마음[정신]이다.

자연은 자기 의식의 경향을 갖는 반면 의식적 존재인 인간은 자연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한 파악을 통해 인간은 자연을 정신으로, 자기 자신의 정신과 하나인 것으로 보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한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우주적 정신의 담지자로 보게 된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자신을 전개하는 정신과의 위대한 통일에 이를 수 있고 가장 완벽한 자율적 자기 표현에 이를 수 있다. 인간의 기본적 정체성은 정신의 담지자이기 때문에 이 두요소[자연과 정신]는 함께 진행해야 한다. (90) 헤겔의 정신은 전통적인 유신론의 신이 아니다. 인간을 통해서만 정신으로 살아가는 정신이다. 인간은 정신의 정신적 실존인 의식·합리성·의지 등의 필수불가결한 담지자이다. 그러나 정신은 인간으로 환원될 수 없다. 전체 우주의 근저에 놓인 정신적 실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과 등치될 수 없다. 인간이 스스로를 보다 큰 정신의 담지자로 볼 때에야 자기 자신에 도달[자아 실현]하게 된다.(91)

낭만주의적 종합은 처음부터 불완전했다. 새로운 형식들을 창조하도록 부단히 영감을 주는 주체성은 통합적 표현에 도달할 수 없으며,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형식을 발견할 수 없다. 원본성, 무한한 창조적 자유 등 자유로운 주체성의 본질을 피히테로부터 끌어냈고 관념론에 열광했다. 무한한 변화라는 낭만주의적 이상은 무한한 추구하는 피히테의 철학에 의해 영감 받았으며 정신의 외적 표현이 궁극적 상태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거부한다. 정신의 모든 표현은 무한히 창조적인 ‘자아’ 앞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자아’는 동시에 외적 표현을 추구하며 아이러니의 성공적 자기 확인은 상실감, 갈망의 여지를 주며 정신이 떠나 버린 세계에서의 초연을 위한 여지를 남겨 둔다. 무한한 창조성이라는 낭만주의적 주체의 요청과 신이 떠나 버린 세계라는 낭만주의자의 경험 사이에는 내적인 연결이 있는데 이에 대해 헤겔은 현실의 합리성이라는 것으로 꾸준히 투쟁한다. 상상력의 무한한 원본성은 의식적 삶과 무의식적 삶이 교차하는 희미한 영역인데 주체 자신에 의해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자율성의 주된 전제, 즉 합리적 자기 의식과 모순된다. 환상은 이성에 의해 결코 완벽하게 파악될 수도 없다.(95)

헤겔은 환상과 무한한 창조성의 힘을 말하는 낭만주의적 비젼을 거부한다. 궁극적 종합은 이성이 포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주체는 본질적으로(97) 무한한 활동성이라고 본다. 헤겔의 무한성 개념은 유한자를 통합하고 있으며, 원이 그러하듯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는 무한한 활동성을 완결된 형식에 한정하는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다.

헤겔은 ‘이성은 분리하고 분석하고 파편화하고 죽인다’는 낭만주의자들의 이성 반론을 수용한다. 합리적 이해는 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자, 합리적인 것과 정념적인 것 등의 구분을 명료하게 의식한다. 헤겔은 이것 때문에 궁극적 종합은 분리를 포함한다고 본다. 삶이라는 단일한 하나의 흐름과 합리적 의식에 함축된 주체와 객체 사이의 분열을 통일해야 한다고 요구한다.(98) 개념적 명료성으로서의 이성은 헤겔의 종합에서 중심적 역할을 한다. 정신이 자기 자신에 대한 완벽한 합리적 이해에 이른다는 생각은 이성으로서의 정신에 필수적이다. 헤겔은 주체의 완전한 도덕적 자율성을 인간 내부에서, 인간들 사이에서 최고의 표현적 통일과 결합했으며, 또 그 자율성을 자연과도 결합했다. 자연의 근저에 놓인 정신적 실재, 즉 우주적 주체가 습득될 수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때 인간은 우주적 주체와 스스로를 관계시킬 수 있고 그 주체 안에서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99) 헤겔은 우주적 주체, 정신이라는 개념, 즉 유한자를 내포하고 있는 무한자 개념, 이성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표현적 통일과 급진적 자율성을 결합하고자 하는 희망은 맑스주의, 통합적 무정부주의, 기술적 유토피아주의나 자연으로의 복귀의 형식으로 일어났다. 낭만주의적 혁명도 새로운 형식으로 지속되었다.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히피’ 즉 억압되지 않은 의식이라는 우리 시대의 문화 등의 형식이다.(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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