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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연 170330(목) / 가라타니 고진 세미나 / 세계사의 구조 / 1부 2장 발제 / 화니짱

제2장 증여와 주술

1. 증여의 힘

다른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왜 증여가 그때까지의 적대적 관계를 바꾸는 힘을 갖는 것일까. 마르셀 모스는 원주민 마오리족을 따라서 증여된 물건에 하우(주력)가 머물고 있다고 생각했다.(95) 레비-스트로스는 증여된 것이 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은 하우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수학적 구조 속에서 ‘유동하는 시니피앙’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96) 고진에 따르면 증여에서는 사용권은 이동하지만 이동하지 않는다. 증여된 물건은 일종의 화폐가 되지만, 그것은 화폐와 드르게 다른 물건을 소유할 권리가 아니라, 역으로 물건을 줄 의무(답례의 의무)를 가져온다. 즉 화폐가 축적이나 소유의 확대를 촉진하는 데 반해, 하우는 소유나 욕망을 부정하는 힘으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2. 주술과 호수

주술이란 자연 내지 인간을 증여(공희)로 지배하고 조작하려는 것이다. 즉 주술 그 자체에 호수성이 포함되어 있다. 호수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주술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유동적 밴드의 단계에서 주술은 미발전한 상태였다. 그것은 정주화와 더불어 발달한 것이다.(97)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인간이 세계에 대해 취하는 태도를 두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는 나-너라는 관계이고, 둘째는 나-그것이라는 관계이다.(98) ‘나-너’관계에서는 ‘너’가 대상이 아닌 것처럼 ‘나’도 주관이 아니다. 말하자면, 애니미즘이란 세계에 대해 ‘나-너’의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수렵 채집민에게는 그와 반대의 곤란이 존재한다.(99) 그들은 수렵자이기 때문에 동물을 죽여야 하는데, 동물에게는 각각의 아니마가 존재한다. 수렵을 하기 위해서는 세계에 대한 태도를 ‘나-너’에서 ‘나-그것’으로 바꿔야 한다. 이런 전환이 말하자면 공희로서 이루어진다고 해도 좋다.

공희란 증여를 통해 자연 측에 부채를 부여하고 그것에 의해 자연의 아니마를 봉하여 ‘그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주술을 자연계를 조작하는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주술은 증여에 의한 탈영화를 통해 자연을 그것으로서 대상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술사는 최초의 과학자이다. 유동적 수렵채집민의 사회에서 주술이 거의 행해지지 않는 것은 그들이 바로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자의 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사자를 매장하고 그 땅을 떠나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씨족사회 이후, 즉 국가사회에서는 너로서의 정령(아니마)이 신으로 초월화되고, 다른 한편으로 자연 및 타자는 그저 조작해야 하는 ‘그것’이 된다.

 

3. 이행의 문제

나는 정주에 의해 유동적 밴드사회에서 씨족사회로의 이행이 이루어졌다고 서술했다. 하지만 의문은 왜 정주에서 국가사회로 이행하지 않고 씨족사회로 이행했는가 하는 데에 있다. 우리는 씨족사회의 형태를 국가형성의 전 단계로서가 아니라 정주화에서 국가사회로의 길을 회피한 최초의 시도로서 보아야 한다.(101) 말하자면, 씨족사회는 내버려두면 반드시 생겨나는 원초적 친부를 끊임없이 미리 죽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원초적 아버지 살해는 경험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호수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구조를 뒷받침하고 있는 ‘원인’인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되돌아오는 것은 정주에 의해 잃어버린 유동성(자유)-평등성은 유동성에 수반된다.-이다. 그것은 왜 호수성의 원리가 강박적으로 기능하는지를 설명한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는 유동적 단계의 사회와 정주적 씨족사회가 구별되지 않는다. 또 이런 관점은 최초의 단계에 존재하는 평등성을 중시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유동성(자유)이라는 것을 무시한다. 즉 코뮤니즘을 유동성(자유)이 아니라 부의 평등이라는 점에서만 보는 사고가 되기 쉽다.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볼 때, 이상과 같은 결함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104)

 

제2부 세계=제국

서론 국가의 기원

우리는 교환양식A가 지배적인 사회구성체, 씨족사회의 형성에서 사회구성체 역사에 있어서의 획기적인 이행을 보았다. 제2부에서는 이어서 그로부터 교환양식B가 지배적인 사회구성체로의 이행, 즉 국가사회의 형성을 논한다. 그것은 신석기혁명(농업혁명)이라는 일반적인 도그마를 거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주화는 농업 이전에 일어난 것이고, 재배나 사육은 정주화의 결과로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된 것이다.(107) 신석기혁명이나 농업혁명이라는 말은 산업혁명으로부터의 유추에 근거하고 있다. 산업자본주의가 산업혁명에 의해 생겨났다고 하는 것이 거꾸된 견해이듯 전자도 잘못된 추론이다. 역으로 산업혁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맑스가 했듯 먼저 국가와 자본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관개농업에서 중요한 것은 농경노동보다도 치수관개 공사이다. 그것에는 다수의 인간을 조직하여 ‘분업과 협업’을 하도록 하는 시스템, 그리고 disciline이 필요했다. 농업혁명을 초래한 것은 기계가 아니라 루이스 멈포드의 표현대로 ‘인간기계’였다. 그의 말대로 군대조직과 노동조직은 거의 같은 것이다.(109) 인간을 지배하는 테크놀로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료제이다. 관료제는 인간을 인격적인 관계나 호수적 관계로부터 해방시킨다. 다시 말해 인간을 지배하는 기술이란 단순한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규제에 따라 노동하는 디스플린을 부여하는 것이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에서 노동윤리를 종교개혁과 결부시켰지만, 실은 고대문명에 대해서도 같은 것을 말할 수 있다. 수렵채집사회의 사람들은 단시간밖에 노동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사람들을 토목공사나 농업노동에 종사사키는 것은 단순한 강제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자발적인 근면함이 필요했다. 노동윤리의 변화를 이렇게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은 교환양식이라는 관점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애니미즘으로부터 종교로의 발전이라고 이야기되는 것은 교환양식으로 보면, 호수적 교환양식A에서 교환양식B로의 이행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애니미즘에서 신은 초월적이지 않다. 그것은 개개의 사물이나 인간에 내재하는 아니마이다. 그런데 국가형성에서 신의 초월화가 발생한다. 그것은 수장=사제의 권력증대를 함의한다.(110) 그 아래에서 편성된 것이 농업공동체이다. 종속적인 농경민이나 농업공동체는 국가에 의한 대규모 관개농업의 결과이다. 아시아적 공동체가 아시아적 전제국가를 낳은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유목민은 농경공동체를 거부했지만, 그들 자신도 씨족공동체와는 다른 맹약공동체를 형성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맹약공동체는 히에라르키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가 되기 어려웠다. 유목민이 국가를 형성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중심부의 국가를 약탈, 정복한 경우뿐이다. 그들이 국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국가기구 위에 올라탈 뿐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생성에 관해 유목민을 이야기할 수 없지만, 제국의 형성에 관해서는 불가결한 요소이다.(111)

 

제1장 국가

1.원도시=국가

아담 스미스는 원시시대에 관해서는 공동체에서 농업이 시작되고, 그것이 도시,국가로 발전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이 맑스를 포함하여 이후 도그마가 되었다.(113) 제이콥스는 이것을 과감히 전도시킨다. 농업의 기원은 농촌이 아니라 다양한 공동체들의 사물이나 정보가 집적되고 기술자가 모이는 도시에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원도시(proto-city)라고 불렀다. 다양한 농업기술, 품종개발, 그리고 가축화가 생겨난 것은 도시이며 그것이 주변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114) 원도시=국가는 무엇보다도 공동체 간의 교역을 가능하게 하는 장소로 시작되었다. 그와 같은 원도시=국가 사이의 교역과 전쟁을 통해 거대한 국가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와 같은 국가가 관개농업을 발전시켰다. 그것은 인근 국가에 대한 수출을 위해서였다. 대규모 관개농업은 당시의 세계시장에 의해 가능했다. 그것은 다수의 도시나 국가로 이루어진 세계시스템 가운데서 시작되었다. 도시의 형성은 국가의 형성과 분리할 수 없다. 바꿔 말해, 교환양식B와 교환양식C는 분리불가능하다.(115) 교환양식C는 교환양식B 후에 생겨나지 않았다. 교환양식C는 사회구성체의 초기단계, 즉 A가 지배적인 단계부터 존재했다. 정주공동체는 다른 공동체와의 교역(상품교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2.교환과 사회계약

미개사회에서 교환양식A가 지배적이었던 것은 교역(상호교환)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역으로 교환양식A에 의해 교역(교환양식C)이 확보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116) 홉스는 자연상태를 개인들이 아니라 왕, 봉건영주, 교회, 도시가 항쟁하는 상태로 보았다. 도시국가가 난립하고 경쟁을 하는 상태가, 왕이 절대적 주권자로서 출현하는 ‘사회계약’에 선행했다.(117) 홉스는 국가의 성립을 공포에 의해 강요된 계약이라는 의미에서 생각하고 있었다.(118) 그런데 공포에 의해 강요된 계약은 교환이다. 왜냐하면 복종하는 자에게는 복종을 조건으로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쪽은 생명을 얻고, 다른 쪽은 돈이나 노동을 얻는 교환이다. 이것은 상품교환과 같은 교환(C)은 아니지만, 역시 교환(B)이다. 국가는 피지배공동체 쪽이 지배당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동의함으로써 성립한다. 베버는 국가의 본질을 폭력의 독점에서 발견했으나, 정확히 말해서 국가가 휘두르는 실력은 더 이상 폭력이 아니다. 국가의 권력이 항상 법을 통해서 행사되기 때문이다. 피정복자는 국가로부터 세나 부역을 수탈당하지만, 국가 이외의 누군가로부터 약탈을 당하는 것은 면한다. 그 결과, 피지배자는 부역공납을 단순히 지배자의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으로 지배자가 부여하는 증여(은혜)에 대한 답례(의무)로서 행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다른 관점에서 말하면, 국가는 약탈이나 폭력적 강제를 교환형태로 바꿈으로써 성립하는 것이다.

 

3. 국가의 기원

前 국가적 사회에서는 호수원리에 의해 고차적 공동체가 형성된다. 씨족간의 항쟁이 존재하는 경우, 그것을 멈추게 할 상위집단도 없다. 그러므로 빈번하게 항쟁이 일어난다.(120) 이런 호수적 항쟁의 존재가 집권화를 저지한다. 여기서 보면 국가의 성립이 공동체 간의 호수가 금지될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법전’의 유명한 조항인 “눈에는 눈을”은 “당한 만큼 되돌려줘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끝없이 계속되는 피의 복수를 금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의범죄나 공동체 간의 갈등을, 그들 자신이 아니라 그 상위에 있는 국가의 결정에 의해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가 그저 공동체의 발전으로서 성립하는 것일 수 없다. 호수원리에 기초한 공동체에서는 아무리 내부에 모순이 생기더라도 증여와 재분배에 의해 해소되기 때문이다.(121) 씨족사회에서 긴급한 상황에 수장은 일시적으로 비상대권을 가진 주권자가 된다. 전쟁이 상시가 되는 경우 왕권이 성립한다. 그러므로 정복이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아도,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면, 공동체의 내부에서 주권자가 생긴다. 그러므로 설령 공동체가 내부에서 국가로 변한 것처럼 보여도, 그 배후에는 반드시 다른 국가와의 관계가 존재한다.(123)

 

4. 공동체=국가

국가가 성립하는 데에는 그 이상의 교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지배공동체가 피지배공동체에 부역공납을 가함과 동시에 과세를 통해 얻은 부를 재분배하는 것이다. 국가는 공동체에 의한 재분배를 대행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하지만 수장제공동체와 국가는 이질적이다. 왜냐하면 수장은 부나 권력을 증여에 의해 얻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낌없이 계속 증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124)

이미 서술한 것처럼 왕권(국가)은 공동체의 내부가 아니라 그 외부로부터 온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공동체의 내부에서 오는 것처럼, 즉 공동체의 연장으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국가가 네이션=스테이트인 것처럼, 고대부터 국가는 말하자면 공동체=국가로서 나타난 것이다.

공동체=국가의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종교이다. 원도시=국가의 단계에서 수장은 수장제국가의 단계보다도 훨씬 강한 권한을 가짐과 동시에 공동체들의 신(선조신, 부족신)을 넘어선 신을 모시는 사제가 되었다. 베버는 도시를 맹약공동체라고 생각했고, 이런 맹약은 무엇보다도 같은 신을 모시는 것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것인 종래의 씨족적 공동체를 넘어선 공동체=국가의 형성이다.

하나의 도시국가가 이기면, 그 신이 이기는 것이 된다. 국가가 강대해지면, 신 또한 보편적이 되고 초월적이 된다.(125) 왕은 그저 군사적으로 땅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종래의 신들을 넘어선 신을 모시는 사제가 된다. 이것을 통해 씨족, 부족을 넘어선 ‘상상의 공동체’가 창출된다. 따라서 중요한 점은 공동체가 발전하여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집권적인 국가의 형성과 더불어 공동체가 새롭게 형성되었다는 것이다.(126)

 

5.아시아적 국가와 농업공동체

국가와 더불어 기존의 씨족, 부족적 공동체는 변질되었다. 그때까지의 공동체적=호수적 존재방식이 소멸되고, 히에라르키한 질서가 형성되었다. 물론 그것은 한꺼번에 일어난 것은 아니고 지배계층 안에서 다양한 수장(귀족)이나 사제와 같은 중간세력을 서서히 제압함으로써 집권화가 완료되었다.이처럼 지배자 레벨에서 집권화가 진행됨에 따라 피지배자 레벨에서는 기존의 씨족적 공동체는 농업공동체로 재편되었다.(126) 그래서 마르크스는 아시아적 생산양식을 미개사회(씨족사회)에서 변화한 최초의 형태로 보았다. 아시아적 전제국가 하에 있는 농업공동체에서는 상호부조나 평등화라는 측면의 호수성은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호수성의 또 한 측면, 독립성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은 국가(왕)에 완전히 복속되었다.(127) 다음으로 주의할 점은 아시아적 전제국가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군사적인 정복만이 아니라 새로운 통치원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호수성의 원리를 단절시키는 ‘눈에는 눈을’이라는 법은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창한 사상가가 있었다고 해야 한다.(128) 중국의 전국시대에는 제자백가가 있었고, 그들 가운데 법치주의는 진나라에 의해, 유교는 그 후에 생긴 한나라에 의해 제국의 원형이 되었다. 여기서 재확인하고 싶은 것은 아시아적 전제국가는 그저 씨족사회의 연장으로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전통과 단절하는 과정이 불가결했다. 물론 일단 집권적 체제를 확립하면, 그 후 전제국가는 씨족사회 이래의 전통을 활용한 것이다. 전제국가에 의해 구성된 농민공동체가 마치 씨족사회로부터 존속되어 온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아시아적 공동체를 전반적 예종제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에 의해 구속된다. 농업공동체란 전제적 국가에 의해 틀이 부여된 상상의 공동체이다. 그것은 근대의 네이션과 마찬가지로 집권적 국가라는 틀이 선행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아시아적 전제국가는 말하자면 전제국가=농업공동체라는 결합체로서 존재하는 것이다.(129) 아시아적 전제국가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그것을 노예제로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아시아적 국가에서 대중은 잔학하게 취급되거나 내버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극진하게 보호된다. 케인즈가 주목한 것처럼 피라미드공사는 실업자대책으로서 이루어졌다. 이런 의미에서 전제국가(가부장제적 가산제)는 일종의 복지국가이다.(130) 즉 전제군주는 무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덕에 의해 통치하는 자(군주)로 간주된다. 하지만 쉼없는 왕조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아시아적 농업공동체보다도 오히려 관료제와 상비군과 같은 전제국가의 구조 그 자체이다.(131) 그리스로마의 도시국가에서는 지배공동체(시민) 사이에 집권적 국가에 대항하는 씨족사회의 호수원리가 강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집권적 관료체제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물론 로마는 최종적으로 광대한 제국이 되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아시아의 제국시스템을 기본적으로 계승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시아에 출현한 전제국가를 단순히 초기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광역국가(제국)로서 형식적으로 완성된 것으로 고찰해야 한다.(132)

 

6.관료제

비트포겔은 동양적 전제주의가 대규모 관개농업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 한정을 없애고 그것을 수력사회라고 명명했다.(133) 그러나 수력사회가 실현한 문명이란 자연을 지배하는 기술 이상으로 오히려 인간을 통치하는 기술, 즉 국가기구, 상비군, 관료제, 문자나 통신의 네트워크이다. 즉 인간을 통치하는 기술이 자연을 통치하는 기술에 선행했다.

그렇다면 관료제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아시리아에서는 많은 관료가 환관이었다.(134) 그것은 호수적인 원리에 기초한 공동체의 구성원인 경우, 관료제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말해 관료제는 왕과 신하 사이에서 호수적 독립성이 전면적으로 상실되었을 때 생겨난 것이다. 관료는 빈번히 바뀌는 지배자(왕권)대신에 실질적으로 국가의 지배계급이 된다. 하지만 관료는 근본적으로 노예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주인이 되는 것이다. 전제군주는 관료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135) 또한 과거제도는 관료제를 어떤 왕조도 섬기는 독립된 기관답게 만들었다.(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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