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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연170407() / 헤겔 세미나 / 헤겔 - 탈스 테일러 3장 / 화니짱

헤겔-찰스 테일러(17.04.07).hwp


 

3장 자기 정립하는 정신

1. 헤겔에게 주어진 철학의 주된 임무는 분리의 지양으로 표현될 수 있다. 대립들은 원래의 표현적 통일이 깨지면서 생겨났다. 따라서 우선 인식 주체로서의 인간은 자연과 분리된다. 이제 인간은 이 자연을 어떤 이념이나 목적을 표현하지 않는 맹목적 사실로 본다.(147) 따라서 자연은 정신과 달리 어떤 합리적 필연성이나 표현적 형식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구분을 끝까지 밀고 갈 경우 우리는 칸트에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칸트는 우리가 경험 속에서 발견하는 어느 정도의 필연적 형식을 우리 오성에 영향을 미치는 실재의 속성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성의 속성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자연으로부터의 인간의 벗어남은 세계를 궁극적으로 미지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헤겔은 종종 물자체라는 칸트의 생각이 비일관적이라고 비판한다. 즉 이 술어를 사용하는 철학자는 정신이 정립하는 영역 외부에 존재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역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을 정립하고 있다는 것이다.(148) 한편으로 우리는 자유로운 합리적 행위자로 호명되며, 따라서 이성을 따른다. 다른 한편으로 자유는 자기에게서 나온 동기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지, 외적으로 부과된 혹은 첨가된 동기에 의해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또한 자연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적 경향을 배제하는 혹은 반대하는 그런 자유관은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149) 이제 대립은 유한한 정신들의 자기 의존성과 자율성우주적 정신과의 통일이라는 요구사이에 놓여 있다.(151) 이 대립들은 어떻게 화해될 수 있을까? 헤겔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대립은 이전의 동일성에서 발생한다. 동일성은 그 자체로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고, 대립을 생산할 수밖에 없다. , 각 개념은 어떤 다른 개념과 관련 맺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타자와 관련을 맺으며, 이 숨겨진 동일성은 필연적으로 통일이 회복될 때 다시 유효해진다.(153) 헤겔이 동일성에 대한 일반적 견해가 소위 변증법적 이라고 불리는 사유 양식을 위해 철학에서 포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주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2. 동일성과 차이는 추상적으로 간략하게 살펴보면 이상해 보이지만, 이것을 정신에 적용해 보면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헤겔의 성숙한 견해에서 절대자를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인 술어는 주체이다.(154) 헤겔의 견해는 헤르더 등에 의해서 발전되었던 표현주의적인 이론에 기반을 둔다. 실현된 형상은 처음에는 알려질 수 없었던 주체의 속성을 명료히 한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표현으로 고찰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이론과 근대의 표현 이론이 결합되는 것을 보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자기실현을 말할 수 있다.(155) 지성의 원형은 자기 의식적 존재들이 목표를 추구하는 가운데 자기와 환경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다른 말로 하면 생명체는 단순히 기능하는 단일체가 아니라 행위자의 본성에 놓여 있는 어떤 것이다. 이것은 인간 주체에서 그 정점에 이르는 발전 노선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헤겔은 데카르트주의에 의해 훼손된 생명체들의 연속성이라는 의미를 되살렸다.(159) 의식적 삶의 잠재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내적 분열과 변형이 필요하다. 또한 그러한 진전은 인간이 충동과 투쟁할 것을 요구하며, 충동을 넘어 합리성과 자유를 표현할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는 문화 형식들이라는 사닥다리를 오르는 것이다. 우리는 주체는 자신의 구현체와 동일하면서 동시에 대립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주체가 항상 두 차원에서 정의되기 때문이다.(163) 주체가 자신/타자와 맺는 이중적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내적 복잡성이다.(164) 인간의 역사는 분열을 넘어 보다 높은 문화 형태로 나아가며, 이런 문화 형태 속에서 우리의 자연은, 자율적 개인의 계획보다 더 큰 합리적 계획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보다 더 놓은 의식 양태까지 도달하게 한다. 보다 높은 이런 의식 양태는 이성이며, 사물들을 분열된 혹은 대립된 것으로 보는 것은 오성이라고 헤겔은 말한다. (165)

 

5. 자기 정립하는 신이라는 헤겔의 생각은 주체의 체현물은 주체의 실존 조건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유신론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세계를 우주와는 구별되고 독립해 있는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고 보는 생각은 헤겔이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이다.(189) 왜냐햐면 이런 생각은 체현의 원리를 위반하기 때문이다. 그는 종교철학 강의에서 세계가 없으면 신은 신이 아니다라고 쓴다.(190)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실존 조건을 영원히 만들어 가는 신이라는 생각을 다듬어 간다. 이것이 바로 헤겔의 정립하다라는 말에 대한 나의 해석이다.(191) 합리적 필연성은 유한한 사물들의 집합체로서의 세계 없이는 실존할 수 없지만,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구조를 규정한다는 의미에서 이 세계보다 더 뛰어나다. 따라서 헤겔의 이론은 만유 내재신론적혹은 유출론적이라 불렸다.(193)

 

6. 절대자는 긍정과 부정의 과정에 의해 살아간다. 그것은 유한한 사물들 안의 모순을 통해 살아간다. 따라서 절대자는 본질적으로 삶이고 운동이고 변화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이러한 운동을 통해 표현되는 가운데 자기 자신으로, 동일한 주체로, 동일한 사유로 머물로 있다.(203) 세계는 정립되었다는 생각을 함으로써 헤겔은 사물들이 그것의 타자와 동일할 뿐 아니라 사물들이 그것의 타자로 변한다고도 말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확실히 외부 구현체에 대해 참되다. 왜냐하면 이 구현체는 정신 속에서 내적인 자기 의식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는 정립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자신으로부터 자기의 타자로, 외면성으로 이행해가는 이념을 말하고자 한다. 이념은 전체를 어떤 필연적 연관의 사슬로 보는 공식이다. 이것은 전체를 필연적으로 체현된 것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정립함이라는 헤겔의 언어의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이 필연성이다. 그리고 이념은 자신의 타자가 되며, 그런 다음 정신 속에서 자기 의식으로 귀환한다.(206)

 

7. 부정성은 헤겔의 또 다른 근본 개념이다. 이 개념의 용법은 위에서 서술한 모순 개념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대립들은 서로를 부정한다. 특히 헤겔은 부정성을 주체와 연결시킨다. 왜냐하면 주체의 본성은 자신의 대립자를 통해 자기 자신으로 귀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208) 이 개념과 더불어 헤겔은 두 가지 주장을 결합할 수 있게 된다. 하나는 실존하는 모든 것은 모순적이며, 따라서 필멸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존하는 모든 것은 규정되어 있기에 그 안에 부정을 포함하는 개념들 속에서만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이다.(209)

헤겔에게서 무한성에 대한 적절한 이미지는 무한하게 연장되는 직선이 아니라 원이다. 이런 관점에서 유한자는 무한자와 분리되지 않는다. 무한자는 질서를 갖춘 전제이다. 더 나아가 유한자는 스스로 무한자로 변한다.(219) 우리는 긍정과 부정 양자가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는지, 그리고 어떻게 서로에게 필요한지를 봄으로써만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 학은 체계로만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형태의 학을 이끌어 가는 사유의 유형을 헤겔은 이성이라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이성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습관으로 자리 잡은, 그리고 동일성의 원리에 고착된 사유 유형인 오성과 구별된다. 헤겔은 계속하여 오성이 고정된 딱딱함을 갖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유의 불가피한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사유는 스스로에게 명료하게 되고자 하며, 표상이라는 모호한 유동성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유동성으로 넘어가야만 한다.(220)

8.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인식론적 간극을 보여 주는 가장 잘 알려진 형태는 현상과 물자체 사이의 칸트적 구별이다. 물 자체는 영원하며, 원리상 인식될 수 없다. 헤겔은 칸트의 물자체에 대항하여 아주 강력히 저항한다. 그리고 그 궁극적 논증은 다음과 같다. 정신은 궁극적으로 실재 전체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나는데, 인식을 넘어선, 즉 마음이나 정신을 넘어선 어떤 것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221) 낭만주의자들은 주체와 객체가 형언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존재한다는 통일에 대한 직관 속에서 일치한다고 느꼈다. 이에 반해 헤겔은 유한한 정신과 무한한 정신의 통일의 문제를 자유에 대한 상실 없이 자신의 이성 개념을 통해 해결한다.(222) 극한으로까지 나아간 대립 그 자체는 동일성으로 이행한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로서의 자신의 소명을 실현하는 가운데 자신을 자연에서 분리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명이 완전히 실현될 때, 혹은 합리성이 완전히 전개될 때 인간은 스스로를 정신의 매개자로 드러내며, 따라서 대립을 화해시킨다.(225) 단순한 형태의 국가는 자유로운 자이 의식적 개인이 되고자 하는 인간과 대립한다. 그러나 이런 대립은 극복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왜냐하면 자유로운 개인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보편적 이성의 매개자로 보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가 이 이성의 구현체로 완벽하게 발전할 때 국가와 개인은 화해한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집합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는 공동체의 온전한 힘에 의해 지탱되는 집합적 삶의 양식이다. 따라서 자유는 국가에서 체현되어야 한다.(228)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인간의 죽음보다 문명의 죽음을 설명하는 데 열심이다. 정교한 과거의 문명들의 파괴와 소멸은 정신이 법에 근거한 국가와 이성으로 실현되어 가는 도정에서 필연적인 단계 드러난다. 즉 죽음 그 자체 뿐 아니라 역사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운명의 사건도 의미 있는 계획의 일부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성으로서 그 계획과 완전히 화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229)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을 실제로 보편적 이성의 매개자로 보게 될 경우 죽음은 더 이상 타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계획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죽음을 넘어선다. 그것은 더 이상 한계가 아니다. 그것은 죽음을 넘어서 진행해가는 이성의 삶에 포함된다.(230)

9. 지금까지 언급한 헤겔 체제는 증명되어야 한다.(231) 증명을 위한 한 가지 분명한 길은 우리가 관찰한 현존하는 존재 위계에서 출발하여 개요적인 방식으로나마 각 단계들이 체계적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가장 낮고 외적인 수준에서, 즉 시간과 공간 속에 연장된 물질에서 출발할 것이다. 이것은 자연철학과 정신철학에 등장하는 증명이다. 그리고 이것들의 부분들을 확장하여 서술한 다양한 작품으로는 법철학, 역사철학, 종교철학, 철학사, 미학 등이 있다.(232)

우리가 위의 증명에서 본 존재의 전체연쇄는, 이념 속에서 표현된 합리적 필연성의 연쇄를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다양한 종류의 실재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사유할 때 반드시 의지하는 범주들에 대한 연구를 보다 직접적으로 수행할 수 없을까? 우리는 가장 빈약하고 공허한 범주인 존재(있음)와 더불어 시작하여, 이 범주의 내적 모순에 의해 결국 모순적인 것으로 드러날 다른 범주들로 이행하는, 즉 언제나 점점 더 높은 단계의 복잡성으로 움직여 마지막 이념에까지 이르는 그런 증명을 포착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논리학’, ‘엔치클로페디소논리학에서 발견하는 증명이다.

마지막으로 헤겔은 제3의 증명, 우리가 정신현상학에서 발견하는 증명을 제시한다. 우리는 이 작품을 주요 체계의 서설이나 서론으로 간주할 수 있다.(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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