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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과 화폐'에 대한 정리
자넘자 분석 -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가치와 맑스의 가치.hwp
발제자 : 화니짱
※ 주요참고도서 :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진경 (이하 '자넘자'),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데이비드 그레이버,
자본론-마르크스, 정치경제학비판요강-마르크스.
쟁점1) 마르크스는 ‘노동가치론’을 옹호하고 있는가?
답) 마르크스는 ‘노동가치론’을 포함한 ‘정치경제학’을 비판하기 위해 그의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작은 그림으로 보면 노동가치론과 정치경제학을 옹호하는 듯 보이나, 이는 그가 최종적으로 이를 부인하고 비판하기 위해, 그 논리들을 이용하며 내재적 비판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자본론 관련 구절]
“가치라는 면에서 모든 상품은 일정한 크기의 응고된 노동시간에 불과하다.” (자본론1, p49)
정치경제학에서 가치란 시간으로 표시되는 “노동량”을 뜻한다. 리카도는 여기서 좀 더 나아가서 노동은 교환가치의 척도일 뿐만 아니라 모든 가치를 생산하는 원천이자 기원이라고 말한다. 달리 말해,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상품의 가치척도를 노동(량)이라고 보고, 노동만이 모든 가치의 원천이라고 보는 이런 이론을 ‘노동가치론’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가치론은 곧 휴머니즘이다. 산이나 숲도, 갯벗도 그 자체론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아깝단 생각없이 그것들을 없애버린다. 마치 장애물 치우듯이, 개발을 위해, 비싼 가치의 ‘부동산’과 건축물을 위해 제거한다. 물론 인간이 돈을 들여 나무를 심거나 갯벌을 조성하는 경우라면 사정이 다르다. 그것은 돈을, 아니 노동시간을 투여한 만큼 가치를 갖는다. 공기도 사먹게 된다면 그때 비로소 공기 또한 가치를 갖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의 가치를 인간의 노동시간이 결정하는 실제 상황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 이것이 노동가치론이나, 그것을 필두로 하는 정체경제학에 대해 비판하고자 하면서 맑스가 종종 혼동을 야기하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다. 그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제목으로 내걸고 있는 책에서 기이하게도 노동가치론이나 정치경제학의 주장을 정리하여 개진하는 듯이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경우 맑스는 노동가치론자로 간주되기도 하고, 맑스의 이론은 ‘노동가치론’이나 ‘정치경제학’이라고 명명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선 먼저 자본주의의 실제적 양상을, 자본의 운동법칙을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 맑스는 그러한 사태를 ‘반영’하고 있는 이론인 ‘정치경제학’을 이용하며 거기서 배우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자본의 입장에서 자본주의적 세계를 서술하고 이론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에, 맑스는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에서 그것을 비판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를 또 한사람의 정치경제학자로 이해해선 안 된다. 그것은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 사람을 또 하나의 호랑이라고 간주하는 것과 똑같은 것일 게다. (자본을 넘어선 자본- 이진경)
쟁점2)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p225 “맑스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화폐와 상품이 그가 추상적 ‘내용’과 구체적 ‘형식’이라고 부른 것 사이를 진자운동 하면서 판매자와 구매자의 인식 속에서 재정의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라는 구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답) 원래 ‘단순한 가치형태’에서는 상품에 대하여 등가물(화폐역할을 하는 상품)이 ‘형식’이었고, 상품이 ‘내용’이었다면, ‘일반화된 가치형태’에 이르면 둘 사이의 관계가 역전되게 된다. 이와 같은 경향성은 결국 물신주의(패티쉬즘)를 만들어내는 매커니즘이 된다.
[단순한 가치형태]
단순한 가치형태는 다음의 도식으로 요약된다.
x*A = y*B
x량의 상품A는 y량의 상품B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가령 책상 1개는 바지 2개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표시하려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1개x책상=2개x바지
여기서 ‘가치는 시장에서 교환되는 상품간의 양적인 관계를 표시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차라리 ’값어치‘에 가깝다고 해야 할 개념이다. 책상이 자신은 바지 2개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책상이 바지를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가치형태의 도식을 맑스는 ‘가치’의 표현적인 관계를 표시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책상(원문-아마포)은 자기의 가치를 바지(원문-저고리)로 표현하며, 바지는 이러한 가치표현의 재료가 된다.” (자본론1권 p61)
책상은 바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표현한다.
이를 다른 식으로 말하면, 좌변의 주어(상대적 가치형태, x*A)는 우변(등가형태, y*B)의 자리에 오는 항을 이용해서 ‘자기를 표현하고’ 우변은 그것의 표현물이 된다. 두 항의 이러한 관계를 통하여, 이 관계의 본질이 표현된다. 이런 삼항관계를 들뢰즈는 ‘표현적 관계’라고 말한다. 이 관계를 ‘가치관계’라고 한다면, 그런 가치를 창조한 활동이 그 관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경제학자들은 그것을 노동이라고 부르려 하겠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아직 그렇게 불러선 안 된다. 그것은 무언가 ‘가치있는 것’을 생산하는 활동이지만, 아직 경제학적 의미를 갖는 가치란 개념은 성립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런 가치 개념과 결부된 활동인 노동이란 말을 사용할 순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활동은 그보다는 차라리 만드는 활동이나 그 생산물의 질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단어인 ‘작업’에 더 가깝다. 예술가는 장인의 작업이 그 생산물/작품의 질적인 값어치와 직접 결부되어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이는 쉽게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작업’이 질적인 활동이라고는 하지만, 단지 자기만족적인 활동이 아니라 등호로 표시되는 관계 속에 들어갈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하며, 등가물을 통해 자신의 값어치를 표현할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 이는 그것이 타자에 대해 유의미한 활동이어야 함을 뜻한다.
단순한 교환의 형태를 취하는 이러한 도식을 통해 또 하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작업이나 활동의 가치(값어치)는 타자와의 만남에 의해,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표현된다는 것이다. 즉 가치란 타자와의 관계 이전에 존재하는 어떤 객체적 실재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유의미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자넘자 70)
고전경제학자들이 즐겨 인용하는 로빈슨 크루소의 예는, 원시인의 활동을 노동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대착오적 가정을 포함(자본론 p98~99)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자 없는 고립된 개인이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는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한 것이다.
다른 한편 단순한 가치형태를 책상과 바지, 혹은 A와 B를 직접 교환하는 물물교환이라고 해선 안 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물론 두 사람이 상이한 물건을 주고받는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교환은 물물교환의 경우에조차 가치라는 양적 관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 도식은 경제적인 교환이 어떻게 성립되는가를 성명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교환의 개념을 전제해선 안 된다. 그 경우 다시 순환논법이 되고 만다. 그래서 맑스는 이 도식에서 A가 B를 통해 자신의 값어치를 표현하는 ‘주어’임을 강조하며, 좌우변을 바꾸어선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확대된 가치형태]
x*A=y*B
=u*C
=v*D
=w*E
우변에 병렬되어 있는 y*B나 u*C는 어떠한 관계도 갖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A하고만 관계를 표현할 뿐이다.
[일반화된 가치형태]
x*A
y*B
u*C = z*Q
v*D
w*E
이전의 도식은 상이한 질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질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양변 모두 양적인 것으로 환원됨으로써 순수하게 양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좌변의 모든 항들은 우변의 단일한 척도에 의해 객관적으로 비교가능한 양으로 동질화된다. 달리 말하면, 우변의 이 등가물을 통해 단일한 척도에 의해 비교가능한 비교공간이 만들어진다. 그 비교공간이 바로 생산물의 가치를 양적 척도로 비교하고 계산하는 상품세계를 이룬다.
이리하여 “모든 상품이 이제 질적으로 동등한 것 (즉 가치 일반)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가치량으로 나타난다.(자1권 85) 이렇게 비교되는 가치는 하나의 척도에 의해 양적으로 비교되는 것이란 점에서 값어치가 아니라 양적인 가치가 된다. 질적인 것으로서 가치는 순수하게 양적인 관계로서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가치(이를 가치일반이라고도 한다)로 대체된다. 표현적인 관계를 표시하던 등호는 이제 비로소 객관적인 양적 등가관계를 뜻하는 것이 된다.
이로 인해 또 다른 변화가 발생한다. 앞서의 도식에선 어떤 것도 좌변의 주어가 인정하고 선택하기만 한다면 등가물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도식에선 그런 선택이 불가능하다. 즉 등가물을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오직 하나의 정해진 등가물이 있을 뿐이며, 주어인 좌변의 생산물은 그걸 등가물로 하여 자신의 가치를 표시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가치를 표시하기를 포기하거나 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달리 말하면, 우변의 등가물은 다른 생산물이 자신의 자리에 오는 것을 거부하고 배제한다. “상품세계에 속하는 모든 상품(단 하나의 상품을 제외하고)이 등가형태로부터 배제”된다.(자1권 87) 등가물의 선택은 주체의 자리에 있는 좌변의 선택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표시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모든 생산물, 그 모든 주체들에게 강요되는 초월적(transcendent)조건이 된다.
이러한 역전과 나란히 또 다른 역전이 발생한다. 이전에 등가물의 선택은 주체인 좌변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도식에서는 우변의 등가물과 교환될 수 있는 한에서만 좌변의 상품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즉 가치를 갖는 상품이 될 수 있다. 그 등가물과 교환될 수 없는 것은 좌변의 괄호 속에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을 생산한 활동은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한 것이 된다. 즉 생산물의 값어치는 우변의 항으로 환원될 수 있는 한에서만 가치가 되고, 그렇지 못한 것은 폐기된다.
모든 상품이 오직 하나의 등가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표현할 때 그리고 그러한 가치가 오직 양적인 가치로 환원될 때, 이전에 존재하던 표현적 관계는 양적인 등가관계로 대체된다. 더불어 표현적 관계의 다양성이 가치관계의 단일성(획일성)으로 대체된다. 그 단일한 등가물은 이제 상품 가치를 재현/표상하는 것(representing) 것, 가치의 유일한 대표자(representative)가 된다. 그 등가물이 가치를 올바로 재현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만이 유일한 가치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가치의 표현적 관계는 이로써 가치의 재현적(representative)관계로 대체된다. 이러한 관계가 일단 성립되고 나면 이제 주어의 자리에 있는 상품 내지 상품소유자의 유일한 관심은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자신이 그 등가물의 양으로 표시되는 가치를 제대로 재현하고 있음을 인정받는 문제일 뿐이다. 역으로 척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등가물의 유일한 관심은 자신이 상품들의 가치를 정확하게 재현한다는 것을 믿게 하고, 그러한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모든 상품들이 공통적으로 화폐로 표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가치라는 상품의 성격을 확정시킨 것이다.”(자1권 97)
단순한 가치형태나 확대된 가치형태의 도식에서는 생산물의 ‘가치’가 등가물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는 양상으로 나타나지만, 화폐형태의 도식에서는 생산물이 등가물과 교환가능성을 얻을 때만 가치를 갖는 상품이 되기 때문에 거꾸로 상품이 화폐의 가치를 재현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즉 좌변의 주어 자리에 있는 생산물의 가치를 그 등가물인 화폐가 표현한다기보다는 역으로 그 생산물(‘얼마짜리 상품’)이 화폐의 가치를 재현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얼마짜리’라는 화폐의 가치를 제대로 표상하지 못하면 어떤 것도 상품이 되지 못하며, 가치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맑스는 이렇게 말한다. “화폐가 상품을 대표(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이 화폐를 대표(재현)한다.”(정치경제학비판요강 1권 187쪽.)
이런 점에서 화폐는 모든 상품들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다시 말해 상품으로서의 ‘생명’을 부여하는 존재다. 화폐는 상품세계의 신이다!
생산물 내지 상품들의 가치가 등가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로 인해 생산물이 가치를 부여받고 상품으로서의 생명을 부여받는 것처럼 나타나는 이 신비한 역전 현상, 화폐가 상품들의 신으로 나타나는 이 기묘한 역전 현상을 맑스는 ‘물신주의(fetishism)’라고 부른다. 이는 모든 상품소유자, 모든 생산자가 화폐를 욕망하고 화폐라는 물신을 섬기는 현상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흔히 ‘물신숭배’라고 하기도 한다.
물신주의란 단지 화폐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비난하는 말은 아니며, 화폐를 신처럼 떠받들고 섬기는 ‘주관적’ 태도를 지칭하는 것만도 아니다. 그것은 타자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능력이, ‘타인에 대해 유의미한(valuable) 활동’이 나아가 그 능력과 활동의 사회적 성격이, 가치라고 불리는 “노동생산물 자체의 물적 성격(물건들의 자연적 성격)으로 보이게”되는 것을 지칭한다. 이는 심지어 선물과 같은 질적이고 증여적인 관계조차 그 가치(값)에 의해 평가되는 양적인 교환으로 바꾸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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