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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고고학 읽기 20170514.hwp
기레민
4. 고고학적 기술
1) 고고학과 관념사
관념사는 사소하고 주변적인 역사를 논한다. 그리고 관념사는 기존의 분야들을 가로질러 그것을 논하고 재해석하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관념사는 모든 표상의 놀이, 교환과 매개의 놀이를 가로지르곤 한다. 그것을 가로지르는 방식은 탄생, 연속성, 총체성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스레 이는 ‘이행’이라는 것에 포커스를 맞춘 기술이 된다.
고고학은 관념사의 이런 방식들을 포기한다.
①고고학은 담론을 오직 기념비, 곧 일회적인 것, 자기만의 논리를 갖는 것, 그 자체의 수준에서 충분한 것으로서 다룰 뿐이다. 이처럼 고고학은 ‘해석학적’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숨겨진’ 의미를 찾지 않는다. ②또한 ‘연속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대신 담론 자체의 특이성, 고유성에 천착한다. ③고고학은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전복되는 수수께끼 같은 지점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개체’와 ‘전체’의 상호 작용을 파악하는 데에 주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과 같은 이분법적인 것도 일반적인 시선이 아니라 상호 형성하는 시선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④ 고고학은 잠재적인 것을 실현하려고 하지 않는다. 차라리 고고학은 다시쓰기, 즉 ‘이미 쓰인 것의 규칙화된 변형 작용’이다.
2)기원적인 것과 규칙적인 것
관념사를 거부하는 고고학은 대립되는 두 항 사이의 연속성, 유사성, 동일성, 유비, 위계를 탐색하지 않으며 오직 언표들의 규칙성과 조건들의 집합을 추적한다. 고고학은 창조적 언표와 모방적 엄표 사이의 ‘질적 혹은 존재론적 위계’를 설정하지 않으며 오직 양자를 가로지르면서 양자 모두를 탄생시킨 출현의 조건‧규칙을 추적할 뿐이다.
고고학은 ‘절대적 기원’ 혹은 ‘총체적 혁명’의 지점을 추구하지 않는다. 고고학이 추적하는 것은 오직 분절된 역사의 씨줄 속에서 취해진 다양한 유형 및 수준으로 이루어진 사건들 그리고 이런 사건들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 연관 관계이다. 이러한 고고학적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상이한 수준의 배치들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고학은 모든 개별적 상황에 들어맞는 하나의 ‘일반 원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연역하는 ‘원리’는 피해야 한다. 그런 결과 고고학은 연대기적 시간의 편차를 재생하는 연역적 도식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3)모순
관념사는 ‘정합성’, 곧 담론을 조직화하고 숨겨진 ‘통일성’을 복원시켜 주는 ‘응집성’의 원리를 가정한다. 응집성의 원리는 모순을 필요 이상으로 확장하지 않는 것을 기본 태도로 삼는다. 그러나 고고학은 ‘모순’을 우발적인 것, 따라서 없애야 할 것 혹은 이해되어야 할 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개별 담론이 실존하기 위한 조건의 하나로 바라본다. 담론을 차라리 모순으로부터만, 오직 모순과 함께만 나타난다. 그리고 모순이란 그 자체로 분석되어야 할 제거 불가능한 담론의 조건이다. 고고학은 우리가 사물을 매번 특정 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는 신은 죽었다는 입장을 가진다. 그런 점에서 신을 알고 있다는 그 인간도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 인간의 종언인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고고학은 다양한 불화의 공간들을 기술하고자 한다. 때문에 고고학에서는 모순의 다양한 ‘유형들’이 존재할 수 있다. 또한 모순은 다양한 ‘수준들’이 있는 것이고 그것들은 다양한 ‘기능들’로 존재할 수 있다. 결국 하나의 담론 형성이란 복수의 ‘불화의 공간’, 다양한 ‘대립의 집합’을 지칭한다. 고고학은 세계의 이질성을 보존하고자 한다.
4) 비교적 사실
고고학은 담론 형성을 개별화하고 분석한다. 고고학적 연구는 늘 복수적이다. 복수적이라고 하지만 이 작업이 ‘비교’라고 불리는 일반적인 이해와는 같은 것은 아니다. 고고학적 분석은 ‘일반 형식’을 만드는 ‘비교’를 하는 것이 아니다. 고고학은 주어진 특정 시공간에 존재하는 특정 장이 빚어내는 상호 담론적 집합, 상호 담론적 배치, 상호 실증성의 지역을 추적한다. 고고학이 추구하는 지평은 이러한 다양하고도 복수적으로 존재하는 상호 실증성들의 얽힘이며, 이러한 얽힘의 교차 지점과 한계는 결코 ‘단번에’ 규정될 수 없다. 그리하여 고고학적 비교는 통일화가 아닌 복수화의 효과를 가진다.
고고학은 다양한 담론 형성들이 보여 주는 특이성 및 거리 안에서 형성 규칙의 수준에 출현하는 대로의 유비와 차이의 놀이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리하여 고고학은 고고학적 어긋남을 지시해야 한다.
고고학은 담론적 형성 작용 및 비담론적 영역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드러낸다. 고고학은 매 담론 형성 작용의 규칙이 비담론적 체계에 어떤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를 규정하고자 노력한다. 푸코는 이를 발전시켜서 1970년대 초중반 이후로는 담론적 영역과 비담론적 영역을 장치라는 보다 포괄적 개념 아래 함께 묶는다.
5) 변화와 변형
그런데 고고학이 이러한 실증성 혹은 지층의 탐구에만 집중한다면 공시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아닐까? 그것은 정태적인 것에 치우쳐져서 운동, 시간, 역사도 포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염려와는 달리 고고학은 담론을 사건들의 특정 지표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운동성’을 인정한다. 고고학은 오히려 이러한 ‘사건적 연결 장치’라 부를 수 있는 운동성이 작동되는 수준을 해방하고자 한다. 고고학은 하나의 실증성이 부여된 모든 형성 규칙들인 ‘일반성’을 갖지 않지만 시간적 이어짐에 대하여 무관여적이지도 않다. ‘일반성’에 대한 거부와 마찬가지로 계기적‧연속적인 것의 법칙에 묶일 수 있는 ‘이어짐의 절대성’은 거부한다. 대신에 파생의 시간적 벡터들을 지표화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고고학은 차이들을 복수화하고 소통의 선들을 엉클어지게 하고 이행들을 더 어렵게 만들고자 노력한다. 차이들을 복수화한다는 말 역시 양자 사이의 관계를 단선적 인과와 같은 방식으로 ‘일원화‧단순화’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처럼 고고학은 습관적 가치들을 전복시키고 차이 안에서 더 작은 차이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 하지 않고 차이와 혹은 미분화를 추구한다. 이런 고고학은 어떤 방식으로 차이를 조작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담론의 두께 안에서 가능한 사건들로 이루어진 다수의 평면이 있다고 보면서 가능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건을 포괄하면서 사건들의 이어짐에 관련된 추상적 원리로 기능하는 ‘변화’에 대한 무차별적 지시를 ‘변형’들에 대한 분석으로 대체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고고학은 ‘보편적 법칙의 우위’ 및 그것의 ‘일반 효과라는 지위’를 박탈한다. 그리고 하나의 변형이 다른 변형으로 대체된다고 말할 때 이는 모든 것이 ‘완전히 확립된 상태로 단번에’ 변형된다는 말이 아니다. 고고학은 주어진 시공간 내에서 관찰되는 바로서의 불연속과 연속의 얽힘을 기술하고자 한다. 고고학은 이처럼 상호작용하는 연속과 분산이 어떻게 동일한 일련의 형성 규칙들에 의해 구성되었는가를 기술한다. 이런 관점에서 ‘대체의 놀이’는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동질적 과정이 아닌, 매번 달라지고 또 실제로 다른 복수의 과정들만을 생산한다. 이에 따라 고고학적 절단에 대한 분석이 이뤄질 수 있는데 이 분석은 불연속성들 자체의 분산 작용을 기술하는 것이다.
6) 과학과 지식
푸코는 제도화된 분과 학문의 존재가 실증성 체계의 지층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분과 학문은 하나의 새로운 실증성 체계, 고고학적 장이 수립된 이후 발생한 효과이다.
그리고 고고학은 시대를 달리하는 두 학문 사이의 필연적 이어짐, 진화론적 연속성을 가정하는 형이상학적 목적론 혹은 진화‧발전‧진보의 관념을 인정하지 않는다. 더욱이 고고학은 각 학문의 고유한 규칙과 각자의 이질성을 발견‧보존하려 한다. -> 통섭?
푸코는 하나의 담론 실천에 의해 규칙적 방식으로 형성된 요소들의 집합을 지식이라고 부른다. 지식은,
①하나의 특정 담론 실천 안에서 우리가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바의 무엇, 곧 과학적 지위를 얻거나 얻지 못하는 상이한 대상들에 의해 구성되는 하나의 영역이다.
②주체가 자신의 담론을 통해 관련되어야 하는 대상에 대해 말하기 위해 자리잡는 공간이다. ③개념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적용되고 변형되는 언표들의 배치와 복종의 장이다.
④담론에 의해 제공되는 사용 및 전유의 가능성에 의해 정의된다.
그리고 고고학적 탐구의 대상은 지식이다. 과학과 독립적인 지식은 존재할지언정 정의된 담론 실천이 없는 지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담론 실천은 자신이 형성하는 지식에 의해 정의 가능하다.
지식은 자신을 실천하는 과학 안에서 사라지고야 마는 인식론적 작업대가 아니다. 과학은 늘 특정한 지식의 장 안에 위치하며 그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고고학은 어떤 과학이 지식의 요소 안에 어떻게 기입되고 기능하는가를 실증적인 방식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제 과학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관계가 확립되고 구체화되는 것 역시 이러한 놀이의 공간 안에서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의는 ‘관념에 대한 학’ 정도의 뉘앙스) 과학적 이데올로기는 기존의 과학으로부터 자신의 모델을 취하며, 현대과학이 취하는 주장보다 더 큰 주장을 실재에 대해 취한다. 과학은 결국 자신의 전항으로서의 이러한 ‘과학적 이데올로기’들을 요구할 것이다. 결국 과학적 이데올로기는 과학의 구성을 위해 동시에 장애물/가능성의 조건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캉길렘) 그리하여 이데올로기는 과학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마르크스적 진리(과학)/이데올로기(허위의식)의 이분법은 거부한다. 모순‧간극‧이론적 결함을 특정 과학이 갖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알려 주는 표지일 수 있다. 이데올로기의 역할은 엄밀함이 증가하고 오류가 감소함에 따라 감소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과학이 이데올로기와 맺는 관계 혹은 기능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주어진 특정 이데올로기의 담론 형성 기능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푸코는 하나의 담론 형성에 대하여 다수의 구분 가능한 출현을 기술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실증성의 문턱, 인식론화의 문턱, 과학성의 문턱, 형식화의 문턱이라고 보았고 이 문턱들의 연대기는 규칙적인 것도 동질적인 것도 아니며 오직 이질적이며 분산적이다. 푸코에게 이 모든 문턱들을 단번에 넘은 학문은 수학이다. 이 네 가지 문턱은 그에 상응하는 역사적 분석의 새로운 형식을 제공한다. 회귀적 분석/인식론적 역사/고고학적 역사/에피스테메적 분석이 그것이다. 이런 분석의 관건은 어떻게 담론 실천의 기술에서 출발하여 과학의 역사를 윤곽을 지을 것인가. 하나의 특정 담론실천이 어떤 규칙성을 따라 어떤 수정을 거쳐 인식론화의 과정에 의해 대체되고 과학성의 규범에 도달하며 나아가 형식화의 문턱에 도달하는가를 정의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후 『말과사물』의 에피스테메 개념이 『지식의 고고학』에서는 언표와 담론의 개념 아래 포섭되어 새롭게 정의된다. 구조주의와 언어학의 시대가 끝나고 니체적인 ‘권력-지식의 고고학-계보학’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5. 결론
① 푸코는 담론의 초월성을 무시하고 담론을 주체성에 연관시키기를 거부한다. 담론 분석은 한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하나의 ‘거대 담론’을 추적하는 행위가 아니다. 주체의 문제를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담론들의 다양성 안에서 취할 수 있는 위치와 기능을 정의하고자 했다.
② 푸코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만드는 모든 당연함의 이유/이성, 곧 조건을 끝까지 추적할 것이다. 이 역사적이고도 정치적인 조건은 ‘역사적 초월성’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지키며, 자신의 견고한 성채에 접근하려는 이들에게 “나를 건드리지 말라”고 한다. 그럼에도 푸코는 이 명령을 거슬러 앞으로 나가고자 한다. 그것은 초월적 예속으로 구성된 사유의 역사를 뛰어넘는 것이다.
③ 푸코의 담론은 담론들의 담론이다. 그것은 탈중심화를 목적으로 한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철학이 상기하는 것이라면, 푸코의 작업은 ‘철학’이 아니며 반쯤 사라진 존재에 다시금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역사’라면 그것도 아니다. 그의 담론은 차이를 만들어 내는 담론, 현재의 이질성을 보존하려는 진단학이다.
④ 당신은 당신이 명확히 의식하지 못하는 일련의 규칙들에 전적으로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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