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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여론
2부 증여체계의 발전-후한 인심, 명예, 돈 발제 전난희
1. 후하게 주는 규칙(안다만 제도)
선물교환은 도덕적이며 우호적인 감정을 생기게 한다.(92) 터부와 영속적으로 선물을 교환해야 하는 의무로 나타난다. 만남의 의식, 감정과 인격 등 여러 종류의 혼합이다. 물건 속에 영혼을 섞고 영혼 속에 물건을 섞으며 생명과 생명을 섞는다. 섞인 인격과 물건은 각각 자신의 영역을 떠나서 서로 혼합된다. 이것이 계약과 교환이다.(94)
2. 선물 교환의 원칙, 동기 그리고 강도(멜라네시아)
멜라네시아인들에게서는 폴리네시아에서보다 훨씬 더 분명하게 화폐관념이 나타나고 있다.(94) 쿨라는 일종의 거대한 포틀래치이다. 모든 지역에서 간접적으로 모든 부족과 관계가 있다. 쿨라 교역은 사심없이 겸손한 태도로 행해지며 귀족적이다. 추장들을 위한 것이며 추장은 선대(船隊)와 카누의 대장이며 교역자, 가신들을 대신한 수증자, 우두머리이다.(98) 쿨라는 김왈리(단순상품 경제적 교환)와 구분된다. 김왈리는 쿨라와 별도로 행해지며 두 당사자가 집요하게 흥정한다. 쿨라는 한 쪽에서 주는 것과 다른 쪽에서의 받는 것으로 이루어지며 오늘의 수증자는 다음번의 증여자가 된다.(99) 증여 자체는 매우 엄숙한 형태를 띤다. 받은 물건은 경멸, 경계를 받는다. 물건은 땅에 내던져진 후에야 받아들여진다. 증여자는 극도로 겸손한 체한다. 거기에 작용하는 것은 의무의 메커니즘, 심지어 선물을 통한 의무의 메커니즘이다. 교환-증여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은 바이구아라는 일종의 화폐다.(100)
<화폐> 현 화폐사회에 선행하는 모든 사회에서는 돌과 조개, 귀금속 같은 물건이 교환과 지불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것들은 경제적인 성질과 가치, 주술적인 성질도 지녔으며 특히 호부(護符)로서 ‘생명을 주는 것’이다. 여러 사회 안에서 매우 일반적으로 유통되고 있으며 본래 소유자의 개성 또는 법인간에 맺어진 계약에 얽매여 있다. 그것들의 가치는 주관적이고 사적이다. 가치는 불안정하며 표준과 측정될 수 없다. 귀중품들은 화폐와 똑같은 기능을 갖고 있으며 구매력을 지니고 계산된다. 수의 관념도 있다. 구매력은 공적으로 정해져 있으며 공식적이며 고정되어 있다. 화폐는 인류가 오랫동안 모색해왔다. 첫 번째 단계는 주술적이며 귀중한 물건들이 사용으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들에 구매력을 부여하였다. 두 번째 단계에서 물건들을 부족 안팎에서 멀리 유통시키는데 성공한 뒤 이 구매도구가 부의 계산 및 유통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단계이다. 세 번째 단계는 귀중품들을 집단과 씨족에서 떼어내고 더 좋은 것을 기대하면서 가치측정의 항구적인 수단으로 만들려고 하는 방법을 생각해낸데서 시작되었다.
바이구아에는 두 가지가 있다. 조개껍질 팔찌인 음왈리는 소유주나 친척이 중요한 기회에 착용한다. 술라바는 예쁜 붉은국화조개의 자개에 가공한 목걸이다.(101) 이 바이구아는 원운동에 따라 움직인다. 음왈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일정하게 전해지며, 술라바는 언제나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한다. 원칙적으로 이 부의 상징물들의 순환은 끊임없으면서도 정확하게 행해진다. 한 쿨라에서 다음 쿨라까지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동안 공동체 전체는 바이구아를 자랑한다. 받은 선물에 대해 소유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특수한 성질의 소유권이다. 소유물·점유물·담보물·차용물인 동시에 매매·위탁·위임·신탁된 물건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되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방’에게 양도되는 조건에서만 주어지기 때문이다.(105) 진정으로 전형적인 경제적·법적·도덕적 복합체이다. 또한 신화적·종교적·주술적인 면을 지니고 있다. 단순한 화폐 이상의 것이다. 가장 귀중하고 갈망되는 것, 그 밖의 동일한 위세를 가지며 각각은 이름·개성·내력과 전설을 갖고 있다.(106) 또 계약 자체가 바이구아 성질의 영향을 받는다. 그것들 자신도 계약에 참가한다.(107)
바이구아의 최조 증여는 바가, 즉 ‘개시의 증여(opening gift)’라고 불린다. 거래를 시작하고 수증자에게 답례의 증여, 즉 요틸레(거래에 빗장을 지르는 증여)를 하도록 결정적으로 의무를 지운다. 요틸레는 의무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기대한다. 바가와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이어야만 하고 강제로 불시에 받을 수도 있다.(112) 답례할 수 없을 때에는 부득이 ‘바시’를 제공할 수 도 있다. 연체이자 같은 것으로서 채무자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는 못한다.(113)
쿨라는 급부와 반대급부의 광대한 체계 중에서 가장 엄숙한 한순간에 불과하다. 생활과 대원정의 목적 중 하나이며 몇몇 해안부족 추장들만이 참가한다. 쿨라는 다른 많은 제도를 구체화하고 결집시킬 뿐이다. 바이구아의 교환 자체도 다양한 교환 중의 하나다.(114) 모든 쿨라는 김왈리, 즉 평범한 교환의 기회인데 상대방과 긴밀한 협력관계 외에 동맹을 맺은 부족들의 개인 간에도 자유로운 거래가 있다. 또 간청하거나 선물을 받는 방식이 관례가 되어 있다.(115)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협력관계를 맺고 싶거나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는 의향을 나타낸다. 선물은 대개 윤이 나는 큰돌도끼, 고래뼈로 된 숟가락 등으로 귀중한 것이며 이것을 받는다는 것은 바가를 준다는 약속이다. 엄숙한 인도가 행해져야 비로소 완전히 협력관계가 성립된다.(117) 선물의 중요성과 성질은 협력관계 당사자들 사이가 씨족관계를 형성하기 때문에 원정대의 성원들 사이의 경쟁에서 나온다. 경합·경쟁·과시·이익추구 등의 동기가 기초해있다. 그것들은 도착선물이다. 이에 보답하는 것으로서 증여는 출발선물, 즉 작별선물이다. 언제나 도착선물보다 더 좋다.(117) 급부와 반대급부의 순환과정이 쿨라의 주변에 완성된다. 바이구아와 물건들은 친척이나 가신, 자식들로부터 증여하는 형태로 추장에게 전달되고 원정에서 돌아온 후 원정에 참가한 사람 누구에게나 양도됨으로써 보상받는다.(119) 쿨라와 유사한 것은 와시 관계이다. 농경부족과 어로부족 사이에 규칙적이며 의무적인 교환을 확립한다.(120) 사갈리라는 전시의 모습을 띤 교환형태도 있다. 수확기, 추장의 오두막집 건축, 새 카누 건조 등의 경우에 행해지는 음식물의 대분배이다. 물건과 봉사 등 모든 종류의 급부의 답례는 모두 이 범주에 들어간다. 간청의 선물인 포칼라, 임금(賃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카리부투나 바카푸타, 마풀라 등으로 다양하다. (122)
- 그밖의 멜라네시아 사회
피지 제도에는 케레 케레라는 시기가 있는데 이 기간에는 누구에게든 뭔가를 주지 않으면 안 된다. 피지섬의 화폐는 향유고래 이빨로 만든 탐부아라고 하는데 돌과 부족의 장신구, ‘복을 가져다 주는 것’으로 보충되며 그것을 보여주는 것은 요청하는 것이며 그것을 받는 것은 약속하는 것이다. 파푸아족의 타우타우라는 화폐는 교환-증여 외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멜라네시아 부족들은 국외 경제와 고도로 발달한 교환체계를 갖고 있으며 강렬하고 빠르다. 광범위한 경제활동을 하고 있고 지리상·언어상의 제약을 넘어서 상당한 교역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매매체계 대신 증여와 답례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127) 물물교환의 관념은 멜라네시아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형식과 이유로 막대한 물건의 교환을 행했으며, 또 오늘날에도 행하고 있다.(129)
3. 북서부 아메리카
가. 명예와 신용
북서부 지방의 인디언 사회의 끊임없이 행해지는 부의 상당한 이전도 포틀래치라는 의식적인 형태로 행해진다. 증여-교환의 체계이며 멜라네시아와 다른 점은 그것에 의해 야기된 격렬함·과장이고 또 법적 개념의 빈곤이다. 인디언 사회는 실제로 전체적 급부에 더 가깝다. 법 개념과 경제 개념은 명료함도 의식적 정확함도 갖고 있지 못하나 신용 즉 기한관념과 명예 관념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135) 신용거래의 출발점은 관습의 범주이며 전체적인 급부형태의 복합적인 현상인 증여이다. 증여는 필연적으로 신용 관념을 초래한다. 경제발전이 물물교환에서 판매로, 현금거래에서 신용거래로 이행한 것은 아니다. 주고 일정한기한 후에 답례되는 증여체계 위에, 한편으로 따로 떨어진 두 시기를 접근시키고 단순화하는 것에 의해 물물교환이 세워졌으며 매매와 대여가 세워졌다. 인디언들의 거래에서 명예 관념의 역할은 크다. 추장과 그 씨족의 위세는 소비 및(138) 은혜를 베푼 사람들(채권자)을 은혜 입은 사람들(채무자)이 되게끔 받은 선물보다 더 많이 답례하는 의무와 크게 결부되어 있다. 소비와 파괴는 실제로 한계가 없다. 가진 것을 모두 소비하고자 하는 대항과 경쟁의 원리가 기초이다. 개인의 지위나 위계는 ‘재산전쟁’에 의해 획득된다.(139) 상대방을 압도하기 위한 소비와 파괴행위로 자기와 가족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진다. 이런 종류의 법과 경계 체계에서의 교역은 예의와 후함으로 가득 찬 귀족적인 것이다. 직접적 이득을 얻기 위한다면 경멸의 대상이 된다. 포틀래치는 법률적인 현상 그 이상의 것이며, 종교적, 신화적, 샤머니즘적인 현상이다. 포틀래치에 참가하는 추장은 조상과 신을 대표하며 그 화신이 되기 때문이다.(147) 포틀래치는 경제적인 현상이며 사회형태학상의 한 현상이기도 하다. 대규모 교역과 끊임없는 시합 속에서 서로 친하게 지내면서도 서로 대립한다.(148) 법적인 관점에서도 계약 당사자의 법적 지위 외에 교환되는 물건도 역시 물건이 주어지게 하고 특히 그 물건에 대해서 답례하게 하는 특별한 효력을 갖고 있다.(149)
나. 세가지 의무: 제공·수령·답례
주어야 하는 의무는 포틀래치의 본질이다. 추장은 정령과 재산에 대해 그것들의 비호와 소유를 증명할 때만 권위를 가지며 지위를 유지한다.(151) 이들 사회의 어디서나 사람들은 주려고 안달한다.(153) 얻은 모든 것들은 재분배하며 선물로써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한다. 초대의 의무에서는 특히 명백하다.(155) 재화의 분배는 군사적·법적·경제적·종교적인 ‘인정’의 근본적인 행위이다. 받아야 하는 의무도 주어야 하는 의무 못지않게 강제적이다. 포틀래치를 거부할 권리는 없다. 거부한다는 건 자기가 먼저 졌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이거나 자기가 승리자이며 무적이라고 선언하는 것이기도 하다.(159) 이 경우도 포틀래치를 행해야 하는 의무가 생겨난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모든 선물은 항상 받아들여지고 칭찬된다.(160) 선물을 ‘짊어지는 귀찮은 것’으로 받아들이며, 이득 이상의 것 즉 그것의 도전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에 못지않다는 것을 증명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161) 답례의 의무가 포틀래치의 전부이다. 상당한 정도로 답례를 하는 의무는 절대적이다.(163) 답례의무에 대한 제재는 채무 때문에 노예가 되는 것이다. 빌린 것을 돌려줄 수 없거나 답례할 수 없는 사람은 그의 지위와 심지어 자유인으로서의 신분도 잃어버린다. 그러나 포틀래치는 북서부 아메리카 연안 사회에서는 선물제도의 일종의 기형적인 산물에 불과하다.(165)
다. 물건의 힘
포틀래치에서 교환되는 물건 속에는 선물이 순환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효력이 있다. 재화는 소비되고 평범하게 분배되는 물건과 호부, 문장이 그려진 동판 등 가족의 귀중품이 있다. 후자는 판매나 양도의 대상이라기보다 ‘대여’의 대상이다. 모든 부족에게 귀중품은 언제나 영적인 기원과 개성·이름·특성·귄위를 가지고 있다.(175) 또한 생산적인 효력을 지니고 있다. 생명의 표시이자 부의 증거이며,(179) 지위와 풍요의 주술적·종교적 원리이기도 하다.
라. ‘명예화폐’
특히 문장이 새겨진 동판은 포틀래치의 근본적인 재물이며, 아울러 중요한 신앙이나 심지어는 숭배의 대상이다. 형이상학적이며 기술적인 신화적 요소 외에 동판 모두는 각각이 개개의 특별한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183) 동판은 부가 부를 끌어당기고 위엄이 명예·정령의(185) 소유와 만족스런 동맹을 가져오는 것처럼 다른 동판들을 끌어당기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186) 종종 신화는 동판을 주는 정령, 동판의 소유자, 동판 자체 이 모두를 동일시하고 있다. 그것은 제공되고 파괴되기를 요구한다.(189) 한편, 이전되는 것은 재물인 동시에 부와 행운이다.(190) 또한 지위를 획득한다. 부를 획득함은 정령을 획득함이며 그 정령은 추장을 영웅으로 만든다. 그러면 이 영웅은 샤머니즘적인 황홀상태, 의식상의 춤과 지도의 봉사로 보답한다. 모든 것은 서로 관련이 있으며 혼동된다. 사물은 인격을 갖고 있으며, 인격은 씨족의 영속적인 물건이다.(191) 물건이 주어지고 이에 답례하는 것은 ‘존경’을 서로 주고받기 때문이며 물건을 주면서 그 자신을 주는데 이는 그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은혜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192)
마. 첫 번째 결론
교환은 증여와 답례증여의 교환이다. 재화의 순환이 권리·사람의 순환과 동일시 된다. 이 제도는 오랜 변천과정 동안 인류 대다수의 제도였으며 아직도 존속되고 있다.
교환-증여의 원리는 ‘전체적인 급부’의 단계를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순수한 개인적인 계약, 돈이 도는 시장, 화폐 개념에 도달하지 못한 사회의 원칙이었음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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