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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법과 경제에서 증여 원칙들의 잔재

(마르셀 모스, 증여론3.)

 

마스터 한

 

지금까지 다룬 사례들이 이른바 원시사회에 국한된 것이었다면, 이 장에서 모스는 고대 로마, 게르만 등 문명사회의 법률 및 경제 자료를 다루고 있다. 이에 의하면 세계 각지의 주요 문명들 사이에도 사람과 물건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는 증여 원칙의 잔재는 남아 있다.

 

1. 로마법

 

후대에 기록된 로마법은 사람에 관한 법과 물건에 관한 법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모스는 12동판법(12표법)에 반영되어 있는 초기 로마법에는 원시사회의 규범이 어느 정도 남아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넥숨(Nexum)이라는 개념이다. 12동판법의 5번째 조항에 등장하는 이것은 게르만법의 바디움(wadium)에 해당되는, 계약을 맺을 때 주어지는 담보물이다. 특이한 점은 이 물건 자체는 특별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넥숨은 생명(영혼)이 있는 물건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고대 증여제의 잔재로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은 가족(familia)의 일원으로 간주되는 물건인 레스(res), 그런 귀중한 물건을 다른 이에게 양도할 때 이루어지는 의례적 행위인 만키파티오(mancipatio) 등의 개념에서도 나타난다. 모스는 이런 관념이 초기 로마법에서 나타나는 증여 원리의 증거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증여의 형태가 역사에 기록된 시대 이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가? 이에 대해서 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주 오래된 로마법에 관한 이 가설들은 오히려 선사시대에 속하는 것이다. 라틴민족의 법·도덕·경제가 그러한 형태를 취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러나 그 형태는 그들의 제도가 역사 속에 들어왔을 때에는 잊혀졌다. 왜냐하면 바로 이 로마민족과 그리스민족은아마도 북방·서방의 셈족을 따라서사람에 관한 법과 물건에 관한 법의 구별을 생각해냈고, 판매를 증여 및 교환과 분리시켰으며, 도덕적인 의무와 계약을 격리시켰고, 특히 의례··이익 사이의 차이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실로 크고 존경할 만한 혁명을 통해 이 낡은 도덕 전체와 증여의 경제, 즉 너무나 모험적이고 비용이 많이 들고 사치스러우며 사람에 대한 배려 때문에 거북스럽고 아울러 시장·거래·생산의 발전, 요컨대 시대와는 양립되지 않는 반()경제적인 증여의 경제를 넘어섰다. <215-217>

 

이 가설은 흥미롭지만 이 혁명의 계기에 대해서는 아마도 북방, 서방의 셈족을 따라서라는 설명 이외에는 제시되지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원시적이고 순수한 사회체계를 유지하고 있던 인도유럽어족을 셈족의 문화가 오염시켰다는 당시의 일반적인 선입견을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 고전 힌두법

 

모스는 인도 북동부에 이주한 아리아족이 인도유럽어족의 증여제도를 인도에 전해주었으며, 이것이 토착적인 제도와 합류하여 서로를 보충하였다고 보고 있다. 인도인들은 시장, 상인, 가격, 화폐, 판매 등의 제도를 알고 있었지만, 증여의 정신 또한 알고 있었다.

이는 특히 브라만과 관련된 법률들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첫 번째 요소는 선물이란 주고받는 사이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는 자에게 이 세상이 아니면 저 세상에서라도 돌아오며, 증여자는 결국 똑같은 것을 더 많이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의하면 부는 브라만에게 주기 위해서 모으는 것이다. 나누어주지 않는 음식은 독이 된다. 그리고 브라만의 재산에는 브라만의 힘이 담겨 있어서 훔쳐 가면 독이 된다. 모스는 이런 점에서 브라만법이 앞에서 다룬 폴리네시아, 멜라네시아, 아메리카의 관습과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도시·시장·화폐가 있는 국가경제에서도, 브라만은 인도이란어족의 고대 유목민과 광대한 평원의 타종족 농민이나 토착농민의 경제 및 도덕에 여전히 충실하다.”<232>

흥미로운 점은 브라만은 다른 계급이 주는 선물에 의해 살아가면서도, 스스로는 증여를 거부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 “왕들에게는 받는 것은 처음에는 꿀처럼 달지만 마침내는 독이 된다.” <232> 이것은 선물은 주지 않으면 안 되지만 받지 않아도 안 되며, 동시에 받는 것은 주는 자에게 종속될 수 있는 위험한 행위라는, 증여 경제에서 널리 나타나는 관념이다.

 

 

3. 게르만법

 

이 책의 첫머리에 에다가 인용되어 있는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게르만 사회 역시 선물주기, 받기, 답례하기를 포함하는 발달한 증여 체계가 있었다. 그 첫 번째 제도는 가벤(Gaben)으로, 세례식, 결혼식 등에 사람들을 초대하고 초대받은 사람들은 후한 선물과 축복을(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은 저주를)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계약을 할 때 사용되는 담보(wadium, gage). 로마의 넥숨과 마찬가지로, 이는 그 자체로는 큰 가치가 없는 물건이지만 주는 사람의 생명을 담고 있기 때문에 받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 번째는 선물이 한편으로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관념이다. 이 또한 증여 체계에서 자주 발견되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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