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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
4부 역사와 정치/ 발제 전난희
14장 인륜적 실체
1.
헤겔의 역사철학과 정치철학은 서로 섞여 있으며, 소위 ‘객관 정신’영역을 형성한다. 둘은 세 개의 구조틀로 이루어졌다. 첫째, 당대의 완전한 도덕적 자율성과 공동체의 회복을 어떻게 서로 조화시킬 것인가의 딜레마의 서술을 시도한다. 둘째, 정치철학을 존재론적인 구조틀에서 봐야한다. 셋째, 프랑스혁명과 그 후폭풍에 해당하는 정치적 사건들을 철학의 범주들을 통해 읽었다.(675) 존재론적 구조틀에서 보면 세계사의 목표는 정신이 진실로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 특히 정신이 이 지식을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이 지식을 현존하는 세계에 현실화하는 것이며, 자신을 객체로 산출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 정신은 인간의 삶에서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적절한 수단을 산출해야 하고 그래서 사회의 최고의 분절적 명료화인 국가는 절대자의 상에 필수적 구현체인 보편적 삶의 현실적 표현이다.(677)
헤겔이 ‘인륜성’이라 부른 것은 이념에 근거한 사회가 장려되고 유지되기 위해 우리가 가지는 일련의 책무들을 지칭한다. 일반적으로 ‘윤리’를 표현하는 독일어이며 보통 ‘풍속custom’,‘습속Sitte’과 어원적으로 동일하다. 헤겔은 도덕성과 대조되는 특별한 의미로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해 내가 가지는 도덕적 책무들을 지시한다.(695) 이 책무들은 확립된 규범과 관례에 기초해 있다. 중요한 인륜성의 특징은 우리에게 이미 존립하고 있는 것을 산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존재해야 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 사이에, 당위와 존재 사이에 아무런 간격이 없다.(696) 칸트는 인륜적 책무를 도덕성과 일치시키며 추상적·형식적 관념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도덕적 책무에 어떤 내용도 제공할 수 없고 개별자의 윤리학으로 남는다. 도덕의 완성은 현실화된 인륜성 속에서 이루어진다.(697)
2.
인륜성을 도덕적 삶의 최고 단계라는 것은 사람을 그 구성원으로 다루는 보다 큰 공동체적 삶으로서의 사회 개념을 규정한다. 이는 무게중심을 공동체로 옮긴다. 공동체는 정신의 구현체이며 개별자보다 더 완전하고 더 실체적인 구현체다.(700) 공동체는 ‘본질’이며 개별자들의 ‘최종 목적’이다.(701) 공동체의 부분들은 유기체의 부분들처럼 서로 관련되어 있다. 개별자는 자신과 분리된 목적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일성의 토대가 되는 보다 큰 목적에 봉사한다. 그는 보다 큰 삶 속에 존재하는 개별자일 뿐이기 때문이다.(703) 인간이 자신을 문화 속에 위치시키는 특수한 방식을 동일성[정체성]이라 부른다.(704) 우리 사회 속에 살아있는 문화는 우리의 사적 경험을 형성하고 공적 경험을 구성한다. 공적 경험은 사적 경험과 심오하게 상호작용한다.(706) 사회의 제도와 실천을 사회의 근본이념들을 표현하는 일종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언어는 사회에 공통적인 것이다. 그 사람의 집합적 삶이 사회와 분리될 수 없는 실천과 제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들 속에서 사회의 정신은 어떤 의미에서 객체화된다. 이것이 ‘객관 정신’이다.(707) 제도와 실천은 사회의 공적 삶을 형성하며 인륜성의 내용이다.(708) 사람들이 공동체적 삶과의 동일성에서 벗어날 때, 그들이 ‘반성할’ 때, 그들이 그들 자신에게 돌아올 때, 가장 중요하게는 그들 스스로를 개별적 목표를 가진 개인으로 볼 때 개별자가 등장한다. 이것이 인민과 인민의 삶의 해체의 계기다. 공적인 경험이 그에게 중심적인 의미를 가져야 한다고 하면 그 개인은 요청과 갈등 관계에 들어가며 요청과 싸워야 한다. 이런 패러다임 변화가 역사상 여러 번 나타났다. 그리스 도시국가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변화는(712) 소크라테스의 도전으로 공공의 삶과 스스로를 동일화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나타남으로 발생했고 원리상 공공의 삶이 아니라 보편적 이성과 관련을 맺기 시작했다. 그를 이끌어 간다고 느끼는 규범들은 어떤 현실에서도 결코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실재를 넘어가는 이념[이데아]들이며 반성하는 개별자는 도덕성의 영역에 존재한다.(713) 헤겔 사유에서 공동체의 의미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적 삶과의 관련 속에서 습득될 수 있다는 것, 최소한의 자기 충족적 인간 실재인 국가와 공동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 국가는 이념을, 즉 사물들의 존재론적 구조를 표현한다. 국가는 ‘절대정신’이라고 부른 의식 양태에서 다른 존재와 맺는 본질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하는 불가피한 도정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며 공동체적 삶을 통한 참된 관계는 절대자의 자기 동일성을 회복하는데 본질적이기 때문이다.(715) 철저히 합리적인 의지인 국가는 시민들이 인정하고 시민들이 자신과 동일화하는 가장 중요한 규범과 이상을 자신의 제도와 실천 속에 표현하는 국가다.(718)
15장 이성과 역사
1.
역사 속에서 발생한 것은 의미가 있고 정당하며, 최고의 정당성을 갖는다. 신의 계획이기에 ‘선’하다. 역사는 섭리에 따르며 참다운 역사철학은 신정론이다.(721) 역사의 진행은 공동체들의 연쇄의 과정으로 고찰된다. 헤겔은 정신을 체험하고 있는 구체적·역사적 공동체나 민족들을 ‘민족정신’이라고 부른다. 이념은 역사에서 실현된다. 이것은 단계별로 진행되며 단계들은 역사적 문명들, 즉 민족정신들이다.(723) 역사의 계획은 이념의 계획이며, 역사철학에 의해 전제된 철학적 이해다. 역사의 변증법은 이념의 자기 전개 과정에서 개념적으로 필연적인 단계들을 반영하고 있다.(724) 이성의 간지란 이성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인간의 열정을 ‘이용하는’자이다. 개별인간들과 그들의 목적은 서로 싸움을 하지만, 보편적 목적은 이 단계들을 넘어서서 안전하게 계속 수행된다. ‘이성의 간지’와 같은 범주는 무의식적 동기에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자 하는 어떤 역사이론에도 불가피하다.(729)
2.
역사철학의 주된 쟁점은 자신을 보편적 합리성으로 인식하는 개별자의 자유와 회복된 인륜성을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의 물음에 있다.(730) 그리스 신적인 것은 전적인 타자가 아니며, 유한한 주체는 이 타자 속에 위치한다. 그리스의 정체(政體)는 자유의 최초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륜성을 그리스인이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특성 때문이었다.(732) 공적 삶 속에서 시민들은 자신을 전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한된 자유였고 소수의 인간에게만 해당되었다.(733) 이 세계에서는 민주주의(직접민주주의)가 가장 자유스런 정부 형태다.(734) 공적 영역을 철저히 사적 관계에 의해 관철시키는 봉건제는 사적 관계를 국가와 분리할 수 없는 상위의 일반의지로 편입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헤겔이 근대국가의 본질적 형태라고 말한 것, 근대 국가는 군주에 의해 통합되어야 한다는 토대가 있다.(739) 신분제는 주권자의 의지와 특수 의지를 매개하는 필수적 요소다. 전체로서의 인민은 신분제를 통해 국가의 삶에 참여한다. ‘대표’ 개념에 있지 않고 동일화를 확립하는 문제다. 동시에 국가는 점점 더 비인격화된다. 제왕의 권력은 사적 성격을 상실하며 공적인 정부의 권력으로 간주된다. 점점 더 법의 합리성에 의지하게 된다.(740) 종교개혁은 정신성을 조야한 외적 사물의 감옥에서 해방시켰고 외부 세계에서 객관적이고 실제적으로 현실화하기 위한 길이 열렸다. 세계는 점차 이성에 기초한 국가를 준비해갔다.(741)
3.
합리적 의지의 규정에 따라 세계를 새롭게 형성하고자 한 노력은 절대적 자유에 대한 추구다. 종교개혁과 계몽을 단계로 담고 있는 전체 근대의 발전에서 발생한다. 절대적 자유의 사회는 구성원들의 창조물이어야 하며 모든 것이 인간의 의지와 결정의 산물인 그런 사회여야 한다.(748) 근대의 인간은 자기 나라의 시민일 뿐 아니라 스스로를 다른 모든 사람과 구별되지 않는 인간으로 생각한다. 인간 자체는 보편적 이성의 담지자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근대의 인간은 그의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가 된다.(757) 완전하게 발전한 국가는 개념의 서로 다른 계기들이 분리된 집단들로 현실화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즉 집단들 각자가 적절한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근대 사회의 신분을 개념으로부터 변증법적으로 인출한 것이다.(758) 평등과 총체적 참여라는 근대의 이데올로기는 사회의 동질화를 가져온다. 이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을 전통적 공동체에서 해방시킬 것이지만 정체성의 초점으로서의 공동체들을 대신할 수 없다. 오히려 다양성과 개별성을 무시하는 군사적 민족주의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촉진하는 초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근대 민주주의에 대한 헤겔의 딜레마다.(767) 헤겔은 민족주의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유대의 원리로서 받아들이기엔 충분히 합리적이지 않으며 순수한 감정에 너무 밀착되어 국가의 기초로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768) 근대 사회는 분화 공동성을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 사회적·정치적 분화를 우주적 질서의 표현이라 함으로써 분화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 질서를 자율성을 향한 근대의 열망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완성으로 고찰한다. 이 질서는 이성에만 기초한 질서이며 자유의지의 궁극적 대상이다.(769)
4.
공포정치, 파괴적 분노는 절대적 자유를 밀어붙이는데서 필연적으로 따라 나온다. 공포정치는 지속적인 구조를 용납할 수 없으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의지의 유출이 아니기 때문이다.(775) 프랑스 혁명이란 세계사적 전환을 진실로 체현하고 있는 국가는 복원되고 분화된 국가다. 구조는 재구성된 것이며 이성에 기초해 있다. 의식적인 인간의 계획에 의해 산출되지 않는다.(776) 역사철학의 이성, 즉 정신은 스스로를 실현하는데 이성의 행위였음을 지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위에서 도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행위자는 ‘거울로 보듯 희미한’상태에서 행위하지만 이성의 간지에 의해 인도되기 때문이다.(779)
5.
헤겔의 역사철학의 근본 원리는 역사는 이성의 자기실현이다.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수많은 단계를 거쳐 진행해 가는 것이 곧 실현이다. 물론 이전 단계들에서 이성이 불완전하게 실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783) 현실적인 것은 그 아래 놓인 필연성의 관계에서 이해된 현실이다. 이 현실은 이성적이다. 현실적인 것을 정립하는 것은 합리성이기 때문이다.(784) 헤겔은 인간은 거의 아무것도 계획할 수 없으며, 의식적인 개혁을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역사에서 작동하는 보편적 이성을 본다. 이 이성은 혁명을 이용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 목적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성의 진보는 혁명을 요구하기도 한다. 혁명은 필연적으로 파괴적이거나 퇴보일 필요는 없다.(756) 헤겔은 보수주의자, 반혁명주의자로 보는 이유는 그가 현실의 합리성을 인간의 합리성이 아니라 정신의 합리성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계몽과 혁명의 원리들에 무조건적인 최우선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몽과 혁명의 원리는 원자적 개별자의 사회 혹은 완전히 동질적인 일반의지의 국가로 이끌기 때문이다.(788) 혁명은 이성에 의해 사후에야 이해되고 정당화될 뿐이다. 인간 이성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실현된 것을 파악할 뿐이며 이성이 이미 성취한 것을 이해하는 것뿐이다.(789)
16장 실현된 국가
1.
인간은 본질적으로 합리적 의지의 담지자이기 때문에 사적인 권리를 지닌다. 인간은 사물들을 전용하고 이용해야 한다. 인간은 이성 혹은 정신의 현실화를 위한 본질적 담지자이기 때문이다. 헤겔은 소유권을 정당화한다. 사적 소유의 권리로 이해한다. 개인의 합리적 의지라는 측면에서 추상적 의지의 영역에 속한다고 본다. 인간이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물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자연과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또 인간은 인륜적 공동체의 일부다.(796) 공동체는 높은 수준에서 인간과 관계한다. 공동체는 인간이 자신의 삶과 소유를 포기하고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정체성과 정신적 삶에 관여한다. 소유의 영역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자로서의, 인격으로서의 인간의 의지다. 헤겔은 소유권과 관련해서 계약, 범죄, 형벌을 다룬다. 범죄는 사물의 근저에 놓인 목적 그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며, 범죄자의 목적 자체도, 그의 의지 자체도 공격한다.(797) 형벌은 사물의 목적에 대한 반란을 잠재우는 목표를 갖는다. 따라서 형벌을 예방, 억제, 개전으로 보는 자유주의 형벌이론에 반대한다. 잘못했을 경우 형벌도 받아야하는 의지의 담지자이므로 범죄자의 의지 자체가 형벌을 요청한다.(798) 인간은 의지의 담지자로서 자신의 의지를 보편적 이성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도덕적 행위자다. 도덕성의 주체로서의 인간은 여전히 개별자로 현상한다. 인간 존재라는 이유 때문에 보편적 이성에 의지해야 한다.(799) 헤겔은 도덕성의 본질이 의지의 순수성이라는 루소의 입장을 따르면서 이것은 도덕성 범주의 최고의 표현으로 간주하며 도덕성은 우리의 행위뿐 아니라 의도들을 다룬다. 그러나 불완전하므로 외적인 세계에서, 즉 도덕성이 실현되는 공적 삶과 실천의 세계에서 보충될 필요가 있다. 합리적 의지는 필연적 구조를 가진 공동체에서 자신의 구현물을 추구하는 존재론적 이성으로서만 존재하며 그런 합리성이 선의 기준을 산출한다. 공동체가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 의지의 내용이며(800) 합리적 의지의 담지자라는 인간 개념에 함축되어 있는 것은 공동체에서만 완전하게 실현된다. 『법철학』에서 권리와 도덕성은 인륜성 개념으로 이행해야 함을 시사한다. 법은 인간이 의지의 담지자라는 외적표현이므로 정치적 힘을 전제해야 한다. 도덕성을 공적 삶에서 실현시키는 공동체에 의해 보충해야 하므로 권리와 도덕성은 보다 큰 전체의 일부로서 위치를 가진다.(801) 인륜적인 것은 공적인 혹은 일상적인 삶에서 선을 실현시키는 공동체와 관계가 있다. 범주는 국가 이상의 것을 포괄한다. 그 영역은 가족, 시민사회, 국가이며 상승하는 질서로 배열된다. 가족은 감정에 기초한 무반성적인 직접적 통일이다. 시민사회는 상호 필요에 의해 서로 모여든 개인들의 사회다. 욕구의 주체인 인간들 사이의 생산과 교환의 경제로 드러난다. 가족의 반정립이다. 직접적 통일성이 존재하지 않고 인간을 외적인 끈으로 묶어 주는 의식, 즉 개별성을 최고로 치는 의식이 존재한다.(802) 국가는 이 삼자를 완성하기 위해 나타난다. 다시 한 번 보다 심오한 통일을, 가족과 같은 내적 통일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통일은 이성에 의해 매개된다. 국가는 보편적 주체들을 그 자체로 서로 인정하면서 묶어주는 공동체다.(803)
2.
가족과 시민사회는 부분적이며, 비자립적인 현실태다. 완전하게 실현된 국가는 완전하게 발현된 개별적 주체성과 보편자를 화해시킨다. 그것은 구체적 자유다.(815) 헤겔은 국가를 ‘유기체’로 간주한다. 필연적 계획에 의해 자신의 명료화를 산출하는 것으로 사유된 유기체다. 명료화는 개념에 의해 고착되며 국가의 헌법[체제]을 형성한다.
종교는 국가가 현실에서 표현하는 것과 동일한 진리를 포함한다. 따라서 참된 종교는 국가를 지지해야 한다. 종교는 국민이 국가에 복종,지지,동일성을 가져야 한다는 내적 확신을 진작시켜야 한다. 종교가 세속적으로 퇴각하거나 국가에 반하는 것으로 돌변할 때 그것은 일탈이다. 국가는 교회를 돕고 보호해야한다. 종교는 정신의 자기 인지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유기체처럼 상이한 구성 요소로 명료하게 나뉘기 때문에 권력 분립을 통제와 균형의 정신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816) 유기적 전체는 스스로를 분절하는 가운데 명료하게 하며, 일상의 삶의 모든 구성원을 관통해 간다. 통제와 균형의 원리는 국가의 파괴를 의미한다. 이것이 헤겔 국가철학의 중심이다. 국가는 유기적 전체로 생존해야하며 국가의 시민은 국가를 자신이 동일시 하는 보다 큰 삶의 요체로 간주하며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국가를 명료하게 하는 체제[헌법]는 세 구성 요소를 갖는다. 보편적 법을 규정하는 입법권, 특수자를 보편자로 포섭하는 행정권, 주관적 결단의 권력으로서 왕권이다. 국가는 일들을 결정해야 하며(818) 결정의 순간이 국가의 자기표현일 수 있기 위해 성숙한 체제를 가져야 하며, 단 한 사람의 인간 속에서 정점에 도달해야 한다. 이때 국가의 의지는 구체적 개별자의 의지 속에서 현실성을 얻게 될 것이다. 세습군주제는 국가의 의지를 직접적 개별자 속에서 표현한다. 이 개별자는 ‘자신의 다른 모든 특징을 추상한 채 본질적으로 바로 이 개별자로 특징지어지는’ 개별자다.(818) 자기 규정적 의지의 완전함은 사회의 결정이 단일한 하나의 의식 속에서 최고조에 이를 경우에 적절하게 표현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신뢰하기 어렵고 자의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819) 헤겔은 칙임을 어디선가는 최종적으로 져야 할 정치적 필연성으로 인식한다. 절대적 결정의 근대적 의미를 군주제와 접목시켰다. 개념에 근거한 분화라는 헤겔적 이념이 중요하다. 전체의 필연적 계기가 특화된 인격체에 의해 충족되고 인격체는 포괄적인 공동의 삶에 묶여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근대의 군주제는 입헌군주제다. 왕은 진실로 대리하는 개별자며 자유로운 주관적 결정의 계기를 표상한다.(820) 행정권은 왕의 권한에 종속된다. 법의 집행권이 사회의 이해관계와는 독립해 있는 공무 집행자의 손에 주어져야 하고 이가 행정요원이다. 공무를 직업화한 것은 독립성 보장, 기능에 헌신할 수 있게 보장, 사적 이해관계로부터의 자유, 효과적인 서비스 보증을 위해서다.(821) 국가의 삶이란 공적인 업무와 완전히 일치하는 삶을 산다는 것인데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집단의 생활양식이며 큰 유기체의 한 기관일 뿐이다.(822) 근대는 관료 신분의 도움을 받는 [민중을] 대표하는 군주제를 통해 고대를 넘어 진보해 갈 수 있을 뿐이다. 입법권은 왕, 장관들, 신분의회로 구성되어야 한다. 신분의회의 역할은 국가의 본질적 목표에 도달하는 것, 사적인 개인들을 공적인 힘에 통일시키는 것, 개별자들을 이 힘과 일치시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824) 시민사회는 정치적 표현의 장소이며 공동의 정치적 의지에 도달하는 장소다. 신분의회의 참된 요점은 시민사회를 국가의 공동의 의지에 포함시킴으로써 정치적인 것으로 규합해 낸다는 것이다. 이 의지는 정부와 대립되어서는 안된다. 대의제를 국가에 대항해 사회의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투쟁체로서 거부한다. 국가를 유기체로 보는 상을 중시하며 국가가 인륜성을 실현할 수 있으려면 모두가 그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공동의 삶을 구성해야 한다.(826) 헤겔은 보편적 직접 선거에 반대한다. 직접 선거의 이념은 인민이 개별자로 행위한다는 것이며 특정 신분이나 집단, 사회의 다른 분절이 그들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827) 신분 의회는 양원으로 명료화된다. 지주계층과 부르주아 경제를 대표한다. 이들은 보편자와 상이한 방식으로 관계 맺는다.(828) 상원은 사회와 국가를 매개한다는 의미를 지닌 신분 의회의 전 체제안에서 매개 기능을 수행하며 하원과 왕을 매개한다. 하원은 대표자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시민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연합체, 공동체, 조합들에 의해 지명된다. 분화된 집단의 특별한 계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관계 맺는다.(829) 대표들은 대리인이 아니다. 공동선에 기초한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 기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회는 논의란 공개, 자유로워야 한다는 공중의 견해를 통찰과 특수한 편견의 혼합물로 보며 존중되어야 하나 그 자체로 기준은 아니라고 본다.(830) 공중성은 정부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신분 의회의 매개 기능의 본질적 일부로서 공적·정치적 의지를 사적 의지로부터 순화하는 과정을 돕는 것이다. 군주제 옹호가 헤겔의 주장을 반동적으로 여겨지게 한다.(831) 그러나 그것보다는 근대민주주의 국가의 핵심적 토대를 국민투표에 있다는데 있다.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경시하게 되며, 대중들 스스로 정치적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깨우쳐 갈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헤겔은 자유주의의 (칸트의) 영구 평화와 세계 국가연합을 거부한다. 국가는 자기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보다 높은 삶의 장소여야 하며, 자신과의 동일성을 강력하게 느끼게 하는 대상, 인륜적 심정이라고 부른 애국심의 대상이어야 한다.(832) 국가가 우리의 정체성의 중심이 되는 유기적인 공적 삶의 장소라면 다른 국가들에 마주하여 하나의 개별자로 남아야 한다. 개별자로서의 국가는 모든 부분을 전체에 결합할 수 있고 전체의 선을 위해 희생시킬 수 있는 자신의 힘과 연결되어 있다. 전쟁은 국가와 사회의 참된 관계를 드러내는 계기이다. 평화 시에 국가는 구성원의 재산과 사적 이해관계를 유지하고 보호하는 것을 최고 목적 중 하나로 가진다.(833) 전쟁은 국가의 본질적 계기를 반성하게 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발생해야 한다. 이것은 무엇이나 그 외적 실존에 도달해야 한다. 전쟁 자체는 필연적이며 보편자의 우선성을 체현하는 것이다. 전쟁이 없다면 인민은 사적 이해관계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다.(834) 근대의 전쟁은 보다 큰 목적을 위한, 거리라는 비인격성을 가지는 보편적 갈등상황을 보기 때문에 특정한 집단에 체현된다. 군대는 이성의 필연성이며 전쟁과 외교 업무에 대한 힘은 왕의 손에 있다. 국제법의 규범들은 순수한 당위로만 머물러야 하며 실체적 삶이 자기 유지적인 공동의 삶의 일부가 될 수 없다.(835)
3.
헤겔은 자유주의적 전통에 강하게 반발했다. (자유,평등,인민주권) 이 세 원리에만 기초한 사회는 개별자로서의 인간이 최대한 자유로운 사회이며, 동질적이고 차이가 없는 삶의 양식을 가진 사회라고 보았다. 정부는 분화되지 않은 동질적 개별자들의 의지에 대해 반응하지만 이러한 국가는 ‘형태 없는 군중’일 뿐인 사회다.(838) 이 세가지 원리들의 완전한 현실화에 반대한다. 상이한 신분들이 정치적 권력에 상이한 방식으로 관계 맺도록 사회는 분화된 구조를 가져야 하며, 우주적 질서의 반영물로 정당화되어야 한다. 헤겔은 전근대적 원리처럼 보이는 것(사회란 왕을 머리로 하는 몸체)에 의지하여 혁명의 3원칙을 적용하는데 제한을 가했다. 자유는 경찰국가에 의해 정립된 한계를 넘어서서는 안된다. 평등은 동질화를 의미해서도, 신분들 사이의 차이를 파괴해서도 안된다. 투표로는 개인적 선택을 표현하는 개별자로 참여할 수 없다. 그들이 속해있는 협동체를 통해 참여해야 하며(840) 국가의 유기적 구조를 반영하는 숙고의 결과일수 밖에 없을 뿐이다. 그러나 헤겔은 전근대적 정치철학을 수용하지 않는다. 그의 유일한 토대는 이성 그 자체다. 이성과 자유로부터 새로운 분절적 명료화를 연역하며, 분절적으로 명료화된 국가를 그 원리들의 참된, 실로 유일하게 생동적인 완성으로 본다.(841)
전통주의 아니면 근대화의 이데올로기가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헤겔의 견해는 그 전망을 상실했다. 근대의 평등 개념은 개인들이 자기 앞에 가지는 기회의 장에서 어떤 차이도 인정하고자 하지 않는다. 차이들은 선택되어야 한다. 오늘날 평등의 원리에서 선택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자기 창조라는 급진적 자유개념과 결합되었다.(851) 새로 생겨난 사회는 자기 창조로 정의되는 자유의 원리를 강하게 주장한다. 개인들의 유동성을 훨씬 더 강화하며 개인들을 큰 사회와만 관계를 맺도록 영향을 미친다. 여러 가능성 중에서 어떤 것을 스스로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이런 선택을 필연적으로 공동의 집합적 행위로 간주한다. 헤겔은 이러한 발전 과정을 예견하지 못했을 뿐아니라 논의상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그는 예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발전의 역학에 대해 많은 것을 이해했다.(852) 근대 사회 속 구성원의 상호협력은 자유, 평등, 인민주권 등을 실현하는 것과 별 관련이 없었다.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만큼 원리들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 자유주의 전통의 근본신념이지만 사람들은 전통적 신뢰 관계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자유주의 사회도 다른 힘들-민족주의, 동원이데올로기-에 의지했다.(853) 헤겔은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문제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있었으며, 인간과 사회의 동일성을 다루는 인륜성의 문제를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했다.(856)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사회를 완전히 실현한다는 것은 소외와 분업[분열]의 문제를 모두 푼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을 생산자로 숭배하는 것은 환경 재난, 통제되지 않은 기술적 성장의 잘못된 우선성에 임박하여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우리와 동일화할 수 있는 사회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자원개발의 의미만을 갖지 않은 자연과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재인식을 자유롭고 평등한 근대 사회의 개인과 결합시켜야 한다. 자유뿐 아니라 탈산업적 인륜성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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