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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연170524() / 헤겔 세미나 / 헤겔 - 탈스 테일러 / 5(17,18,19)6/ 화니짱

 

헤겔-찰스 테일러(17.05.24).hwp


5부 절대정신

17장 예술

1. 절대정신은 세 가지 형태를 취한다. 그 형태는 예술, 종교, 철학이다. 이 배열은 상승의 관계이다. 따라서 절대정신은 완전한 자기 인식에 아직 도달하지 않은, 객관적 실재라는 옷을 입고 있는 객관 정신보다 고차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정신이 국가 이후에야 비로소 역사에 등장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국가와 절대 정신의 형태들은 역사적 과정을 통해 가장 저속한 단계에서 최고의 단계까지 진행해 간다. 각각의 진보는 다른 것의 진보를 전제한다.(862)

 

2. 예술은 절대자, 즉 이념을 직관, 즉 감각적 비춤과 이미지의 방식으로, 종교는 표상, 즉 서사 혹은 이야기라는 말의 방식으, 철학은 개념이라는 말의 형식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예술은 감각 대상을 가진다는 점에서 가장 낮은 단계의 표현 양식이며, 종교와 철학은 말이라는 내적 매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보다 정신적이다. 그런데 종교의 서사적 혹은 여전히 예술적인 이미지적 방식은 철학의 개념적 방식에 비해 불명료한 표현 양식이라는 점에서 철학보다 열등하다.(864, 옮긴이 각주) 헤겔에게 예술은 존재론적 사유의 담지자이다. 칸트는 대체로 대상의 아름다움을 우리가 대상 속에서, 혹은 대상을 통해 보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고자 한다. 예술은 이념의 의식양태이지만 이념의 재현이 아니다.(870) 헤겔은 표현주의적 이론의 본질적 관념들을 받아들여 그 위에 자신의 철학을 구축했다. 게다가 그는 철학은 완벽한 명료성을 얻을 수 있고 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880)

 

3. 예술은 더 이상 정신의 최고의 욕구가 아니다. 사람들이 철학 속에서 이념에 대한 완전히 적절한 표현 수단을 발견하게 될 때 예술의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예술은 결국에는 철학의 명료성에 의해서만 종결될 수 있는 무한한 변방지대를 남겨둔다. 그러나 현대인의 정신적 삶에서 결코 종속적 지위만을 취하지 않은 예술은 우리 시대 많은 사람의 삶에서 종교의 지위를 넘겨받았다. 이것은 우리가 헤겔의 종합의 영역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887)

 

18장 종교

1. 종교는 두 가지 차원을 갖는다. 즉 신의 표상과 신앙인이 극복하고자 하는 그와의 강력한 분리감. 하지만 역시 세 번째 차원이 있다. 제의가 그것이다. 종교는 이러한 의식과 갈망의 바로 그 장소일 뿐 아니라 또한 인간이 이런 분리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방식을 포괄한다. 이것이 바로 제의의 본질이다. 제의 가운데 인간은 신과의 분리, 자신의 협소한 주관성, 그리고 자신을 무한자와 분리시키는 유한한 측면 등을 극복한다. 특정한 것이 실제로 바쳐져서 태워진다.(892)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분리된 주관성을 포기하기 때문에, 그리고 희생 가운데서 스스로 유한자와의 접촉점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신은 그 안에서 실제적 존재가 된다. 즉 희생은 공동의 식사로 끝난다. 이 식사 속에서 인간은 마침내 신과 통일된다.(893) 간단히 말해서 제의는 종교를 객관 정신의 영역에 올려놓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객관 정신이란 그러한 집합적 삶의 형식과 실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고대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근대 세계에서도 객관정신은 인민에 위치한다.(895)

내적 통찰의 형식으로서의 철학은 사실상 끝없는 제의이다. 인간이 삶의 실천에서 보편자와 하나가 된다는 의미에서 인륜성은 사실 가장 참다운 제의라고 말할 수 있다.(897) 하지만 칼뱅주의에 대항하여 그는 신은 실제로 현재하게 되며, 과거에 대해서만 생동적인 뿐인, 하지만 비정상적인 상기의 형태로만 기억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헤겔은 여기에서 과거 어떤 종교의 제의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개혁 이후의 교회의 제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종교의 시대는 결코 지나가지 않았다.(905)

 

2.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발전시켜야 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자연에 대립시켜야 한다. 따라서 인간을 짐승과 구별시키는 것, 즉 그의 유한성을 의지 속에서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은 그를 보편자와 단절시키는 것이며, 이것이 악의 기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사실은 인간을 정신적 존재의 범주에 놓는다. 여기서 이 정신적 존재는 신의 자기 인식의 담지자이며, 그의 의지의 관철은 신의 적합한 담지자가 되기 위한 과정의 첫 번째 단계이다.(908)

화해가 일어나기 위해 인간은 무한자와의 거리를 고통스럽게 느껴야 하며, 이로부터 그 자신이 즉자적으로 무한한 주체와 통일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 다음에 그는 이러한 통일이 인간 공동체에서 즉자대자적으로 실재가 되도록 스스로를 형성해야 한다.(910) 기독교에 대한 헤겔의 새로운 해석은 사실상 기독교 신앙의 바로 그 본질 내지 아브라함의 신과 관계가 있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떠난다. ‘정신으로서의 신의 삶의 유일한 장소는 인간이며, 이 정신적 삶은 개념적 필연성의 전개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그의 철학의 중심적 가르침은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의 근본적 자유를 배제한다. 헤겔 체계에서 신은 스스로 인간이 될 수 없다.(913) 따라서 헤겔의 존재론은 궁극적으로 기독교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 헤겔의 철학은 기독교의 본질을 포기하는 대신 기독교의 현상(즉 교리)를 구출하는 독특한 변형물이다.(916)

 

3. 헤겔은 종교철학 강의에서 그리소 종교를 아름다운 개별성의 종교, 필연성과 아름다움의 종교라고 부른다. 그리스인은 신을 자유로운 주체로 보는 관점을 획득했다. 이 신적 주체 속에서 인간은 완전히 자기 자신에게 머물렀으며, 이 신과 하나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이를 위해 지불한 대가로 인해 이 신들은 유한한 존재가 되었다.(923) 헤겔은 국지적 신과의 통일성을 발견하는 것과 운명이 있다고 믿는 신앙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음을 본다. 국지적 신이 아니라 만유의 주인인 절대자와 연합되어 있다는 느낌이 생겨날 때 불가해한 운명 개념은 사라질 것이다.(926) 이로부터 헤겔은 고대의 의식과 근대의 의식의 차이점들을 이끌어 낸다. 고대인은 스스로 특수한 결단을 내릴 수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에 반해 근대인은 주체로서의 절대자 개념에 기초해 있다.(927)

기독교의 첫 번째 시기는 세계와 대립하는 시기이다. 두 번째 시기에 세계를 보호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시기에 사람들은 세계가 정신성을 스스로 자유롭게 실현해야 한다고 보게 된다. 이것이 완전히 이뤄지면 우리는 계몽에 이르게 된다.(935) 참된 객관성을 발견하기 위해 계몽은 인간이 더 위대한 정신, 즉 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재발견해야 한다. 즉 계몽은 순수한 종교와 화해해야 한다. 이러한 화해가 철학의 임무이다.(936)

 

4. 낭만주의자들은 신앙인과 철학자라는 두 대립자를 결합시킨다. 왜냐하면 그들은 헤겔의 철학이 신앙에 대해 과도한 합리화라고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들은 직관적인 헌신과 신앙에 호소한다.(940) 낭만주의자들은 신 인식에 도달할 수 잇다는 희망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계몽과 똑같이 타락했다. 그들에게 신은 인식될 수 없고 초월적이다.(941) 철학은 두 개의 전선에서 싸워야 한다. 하나는 경건주의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계몽주의자들이다. 그리고 철학은 이것들이 실제로 동일하며, 동일한 진리의 상이한 측면일 뿐임을 보여 준다. 그것들은 개념 속에서 화해되어야 한다.(943)

 

19장 철학

1. “철학은 무엇보다도 자기 시대의 현실에 대한 사유일 뿐이다. 철학은 자기 시대를 넘어설 수 없으며 단지 그 시대의 사유 속에서 생산할 뿐이다.” 그러나 한 시대의 철학이 그 시대의 다른 표현들과 전적으로 동시적이지는 않다. 왜냐하면 사유는 반성적이기 때문이다.(946) 따라서 한 철학은 한 시대가 그 정점에 있을 때, 젊음이 만개했을 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늙어가기 시작할 때 발생한다. 그리고 철학은 반성적 입장을 취함으로써 현실 참여의 직적성을 약화시키고 쇠락의 과정을 돕는다.(947) 우리는 이러한 사실의 예를 자신의 나라가 페르시아의 통치에 떨어지게 되었을 때 철학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이오니아의 철학자들에게서 볼 수 있다. 그리스 철학의 위대한 시기는 폴리스의 쇠락과 함께 온다.(947)

 

2. 동양의 정신은 미발달의 상태에 있으며, 이 정신이 파악한 보편자는 모든 것을 삼킨 절대적 추상의 상태에 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철학은 그리스에서 시작한다. 물론 그리스에서도 폴리스가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쇠퇴하기 전까지는 철학이 정상 궤도에 있지 않았다.(951) 근대의 합리주의적 전통에 반해 헤겔은 수학적 사유를 합리성의 정점으로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수학적인 것은 오성의 영역, 함축된 결과를 전개할 뿐인 고정된 구별과 연역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수학적인 것은 질적 사유의 구별들을 결하고 있으며, 질적인 대립을 표현하는, 즉 사변적인 것을 표현하는 힘을 결하고 있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대립자들이 질적인 술어들로 드러날 때에만 우리는 대립자들의 상호 이행을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952)

고대 세계의 1기는 추상적 원리에 의해 구축되었다(엘레아학파), 2기는 주체성의 원리, 자기 의식의 원리를 생성했다.(959) 3기는 구체적인 것이 되며, 사유에서 발생한 세계를 본다. 하지만 그 세계는 여전히 초감각적이며, 유한한 주체성 안에 있는 무한한 주체성에, 절대적 자유에, 인간 안에 있는 신에 도달하지 못했다. 육화가 일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신플라톤주의는 참된 대립자를 통합하는 지점을 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신플라톤주의는 지성 세계를 외부의 실제 세계, 즉 참된 특수자인 이것’, 현실성의 계기와 통합시키는 지점을 결하고 있다. 지성 세계는 육화된다. 즉 기독교 공동체가 건립된다. 이 공동체는 인간에서 새로운 종교적 발전을 강요한다.(960) 중세는 결코 철학사의 공백기가 아니다. 인간은 여기서 주어진 전제에서, 철학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은 계시에서 출발했다.

 

3. 근대세계에 도달해 철학은 독립적 활동으로 다시 태어났다. 스피노자는 헤겔 사유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칸트에 버금가는 비중을 갖는다. 헤겔은 언제나 무신론자라는 비난에 저항해서 스피노자를 방어한다. 오히려 신만이 모든 규정을 포섭하는 실체이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그 반대인 무우주론으로 기소해야 할 것이다. 스피노자와 헤겔의 갈등은 그가 절대자를 주체가 아니라 단지 실체로 간주한다는 점에 있다.(968)

칸트는 또 다른 위대한 진보를 이뤄낸다. 그는 자유를 원리로 삼는 계몽의 노선에 철저히 서있다. 사유는 완전한 자율성 속에서 발전해야 하며, 어떤 외적 권위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따라서 칸트는 독일의 라이프니치와 볼프에 의해 대표되는 두 번째 단계의 위대한 형이상학적인 구조를 거부하면서 흄의 입장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칸트는 비록 자기 의식에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사유의 참된 본성을 활동성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엄청난 진보를 이뤘다. 개념은 경험에서 추상된 것이 아니라 경험을 형성한 것이다. 따라서 칸트는 사유의 참된 본성을 발견했다.(979)

칸트의 치명적인 약점은 의식 밖의 실재, 즉 사물 그 자체가 개념의 영역을 넘어서 있다는 것을, 즉 개념이 형성한 현상과 구별된 채 머물러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구별이 그의 철학의 모든 오류의 원천이 된다. 칸트가 우리의 기본 범주들에서 심오한 모순들을 본 것은 불멸의 장점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모순들이 우리의 사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이라는 것을 보지 못한다.(981)

오로지 자기 의식으로부터 인출된 윤리는 아무런 내용도 만들지 못한다. 그러한 윤리는 순수하게 형식적인 기준에 제공한다. 왜냐하면 세계 안의 어떤 구체적인 내용도 모두 자의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982) 우리는 이러한 기준이 공허하다는 것을 보았다.(983) 칸트의 사유를 넘어서고자 하는 충동이 나타났다. 이것은 두 방향에서 이뤄졌다. 하나는 사유의 범주들을 일관되게 질서 짓는 임무를 완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형식과 질료라는 칸트적 이원론을 극복하는 것, 즉 실재를 사유로부터 도출하는 것이다. 첫 번째 열망은 피히테에 의해 대답되었고, 두 번째 것은 셸링에 의해 대답되었다.(984)

피히테의 출발점은 자아이다. 이 모든 것은 자아로부터 전개되어야 한다. 피히테는 자아를 비아, 즉 대립적 실재를 정립할 필연성 아래 있는 것으로 본다. 이것들 각자는 타자와의 관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의식의 관점, 개별적 의지의 관점에 머물러 있음으로 인해 피히테의 정치철학은 루소와 칸트의 정치철학만큼이나 불만족스럽다. 피히테의 자아 숭배는 이성 대신 내적 감정을 숭상하고 외적 권위와 역사 안에서의 행위를 도외시하는 낭만주의의 어떤 측면과 일치한다.(985)

셸링에게 이념의 최고의 표현은 예술 작품속에 있다. 여기에서 이념은 직관에 개방되어 있다. 그러나 헤겔에게는 사유가 더 고차적이다.(986) 무한한 주체성인 살아 있는 총체성 속에서 주체성과 객체성의 통일을 봄으로써 셸링은 피히테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그 통일의 자리를 사유에 부여하지 않았기에 그것을 증명할 수 없었다. 헤겔은 절대자가 사유임을 보여 준다.(987) 절대정신은 대상적인 것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산출된 것임을 보았다. 이제 우리는 그 정점에 도달한 것 같다. 정신이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정신에게 객체로 있는 것은 모두 정신 자신의 산물이며, 정신 자신의 권력 속에서 평화롭게 유지되고 있다. 유한한 자기 의식이 절대적 자기 의식과 벌이는 투쟁은 끝났다. 유한한 자기 의식은 더 이상 유한하지 않으며, 절대적 자기 의식은 자신에게 결여되어 있던 현실을 가진다. 세계사는 그 목표에 도달한 것 같다.”(988)

6부 결론

20장 헤겔과 현대

1. 낭만주의 세대는 칸트적 주체의 합리적이고 자기 입법적인 자유를 인간 내부에서 표현적 통일과 결합하고자 했으며 그 자유를 자연과 결합하고자 했다. 헤겔은 이러한 종합을 완전히 합리적인 형식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이것은 그를 계몽의 상속자로 만들었으며, 낭만주의자와 구별시켰다. 그러나 그는 또한 계몽의 주된 흐름을 넘어섰고 또 그 흐름에 저항했다. 나는 이 문제를 1장에서 자기규정하는 정체성이라는 개념으로 해명하고자 했다.

합리적 자율성이라는 칸트의 견해는 부분적으로 인간을 오로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는 견해에 대한 반박을 내포한다. 칸트의 견해는 선과 악 사이를 단순히 보다 크거나 작은 욕망의 만족으로 환원하는 것에 대해 반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합리적 존재로서의 자기규정과 타율성 사이에 근본적인 질적 구분이 있다는 사실이었다.(995) 그러나 18세기 이래로 성장한 합리화된 산업적, 기술적 문명은 계몽의 주된 흐름에 속하는 인간관을 실제와 제도에서 확고히 했다. 낭만주의는 이런 흐름에 적대적이었는데, 왜냐하면 낭만주의는 계몽에 대한 반발로서 이런저런 형식으로 표현주의적 조류와 자율론적 흐름을 결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산업문명이 효율성과 보다 높은 생산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와 인간의 삶의 양식을 완전히 새롭게 재편했다. 공리주의적 관점은 우리의 실제와 제도에 깊이 각인되어 있으며, 우리 시대의 사유 양식이 되었다. 상이한 삶의 양식은 추정되는 어떤 내적 가치나 어떤 표현적 의미에 의해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개인들에 의해 소비되는편익을 생산하는 효율성에 의해 평가된다. 이런 문명에서는 자연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실천도 객체화된다.(996) 선구에서 자본주의 경제의 냉혹한 결과들을 완화하고자 촉발된 많은 보완적 사회 개념들은 계몽의 분파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개인들 사이의 평등과 재분배, 약자에 대한 휴머니즘적 방어 개념 등이 그렇다. 오늘날 정치 구조는 대개 투표행위를 통해 집합적 결정을 산출하도록, 그리고 집단들 사이의 절충을 산출하도록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발전된 산업 사회의 거대한 집합적 구조들은 기껏해야 생산이나 결단의 도구로(최악의 경우 억압자들을 위협하는 도구로) 등장하는 경향이 있다.(997)

근대사회는 사적 삶과 상상적 삶의 영역에서 낭만주의적이었으며, 공적이고 효율적인 삶의 영역에서는 공리주의적이고 도구주의적이었다. 이 집합적 구조들은 날마다 사적인 낭만주의를 압도해 가는데, 이러한 사실은 우리 시대의 광고들에서 드러나듯이 산업의 바퀴를 계속 돌아가게 하기 위해 완성이라는 낭만주의적 상들을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하는 데서 명백히 드러난다.(998) 가장 위엄있는 지적 성취물인 과학과 그 진보의 결과였다. 그리고 이것은 왜 헤겔의종합이 19세기 중반에 몰락했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 이유는 헤겔의 종합이 표현주의적 흐름을 부차적인 방식 그 이상으로 통합하고자 한 데 있었다.(999) 헤겔적 국가의 합리성은 관료주의적 구조의 합리화와 다른 것이었다. 사적 낭만주의와 공적 공리주의의 근대적 혼합은 오히려 시민사회가 야만적으로 흘러가도록, 그것을 하나의 덩어리에 불과한 사회로 만들었다.(1000) 만약 헤겔이 옳다면 인간은 합리적인 국가 구조에서 스스로를 인식해야 할 것이고, 산업 사회는 자신이 취하고 있는 도정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1000) 과학의 발전은 자연철학 전체의 프로젝트를 무익하고 잘못된 것으로 만들어 버린 듯하다. 근저에 놓인 의미 있는 구조에 대한 탐색은 과학적 지식이 확장되고 다변화되면서 아주 자의적인 것으로 드러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근대적 문명은 우리 모두를 자연과 사회적 삶에 대해 객체화하는 입장을 취하도록 하는 자기 규정적 주체로 바꾸었다.(1001) 18세기말 이래로 근대 문명을 속물이라 비난하는 지속적 흐름이 있었다. 즉 근대 문명은 평범함과 순응을 만들어 내고 저질의 이기적 존재를 만들어 내는 데 그 원본성이 있으며, 자유로운 표현과 모든 영웅적 덕들을 한심한 안락으로 치부해 버린다는 것이다. 니체와 조르주 소렐과 같은 비평가들은 근대사회를 표현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죽은 것이라 생각했다. 표현 가능성은 순응의 힘에 의해 혹은 유용성이라는 완고한 요청에 의해 질식되었다고 한다. 표현주의적인 심각한 불만족으로 인해 파시즘이 발흥하게 되었고, 오늘날 서구 사회의 체계에 대항한 당내 젊은이들의 혁명이 가시화되었다.(1002)

따라서 헤겔의 종합은 더 이상 어떤 추종자도 가질 수 없다. 그 이유는 그 종합이 부분적으로 현대 문명이 보호하고자 하는 근대의 정체성에 대한 표현주의적 반동 위에 구축되었다는 데만 있지 않다. 그것은 또한 그 종합이 이런 반동의 이전의 철지난 형식 위에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종합은 근대적 동일성에 대립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이성의 승리라는 상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것은 더 이상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은 이런 대립의 단계에 속한다.(1005)

 

2. 헤겔은 실재를 숙고한다고 말하는 반면, 맑스는 실재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 두 사상가를 구별해 주는 잘 알려진 공식인데, 이것은 그들 존재론의 차이에 기초해 있다. 헤겔에게 주체는 정신이기 때문에 화해는 인식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여기서 전체 우주의 변형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반면 맑스에게 화해는 변화를 통해 오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의 주체는 유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신과 달리 인간은 자신을 노동(작품)을 통해 자연 안에 각인시키기 전까지는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없다.(1014) 그래서 맑스는 헤겔의 국가관에 대해 급진적 계몽의 분노를 드러낸다. 맑스는 헤겔이 추상적 사유에만 관심이 있고 다른 종류의 실천의 옹호자가 아니라는 듯 헤겔을 왜곡한다.(1015)

테일러는 완성과 화해를 인식이 아니라 노동을 통한 자기 창조에서 본 맑스의 철학이 프로메테우스의 운명과 유사한다고 한다. 노동을 통한 자기 창조와 이를 통한 화해는 언제나 다시금 연기되기 때문이다.(1015, 옮긴이 각주) 이후의 주석가들은 정당하게도 맑스 이론에 내재한 표현주의와 과학주의 사이의 간극을 지적했다. 이것은 단순히 청년 맑스와 성숙한 맑스의 차이가 아니다.(1022) 세련된 형식의 과학주의를 추구하는 가운데 맑스에게서 헤겔적인 관념을 제거하고자 했던 루이 알튀세르의 작품에서처럼 이러한 모순이 해결되었을 때, 그 결과는 주석으로서 확신을 주지도 못하고 정치적 비전으로서 매력적이지도 않다.(1024)

맑스에 의하면 인간은 자유의 조건을 창조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조건들이 현실이 되고 나면 맑스주의적 자유 개념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소외와 분열의 극복은 인간을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로 남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절대적 자유의 공허함을 지적한 헤겔의 요점이 역사의 종말인 이 단계에 적용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절대적 자유의 맑스적 버전은 역사의 최종적 정당화에 강력히 의지한 채 자신의 도정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잔인하게 뭉갠, 그리고 헤겔이 뛰어난 통찰로 서술했던 공포정치를 다시 불러일으킨 볼셰비키적 주의주의의 토대에 놓여있다.(1028)

 

3. 절대적 자유의 딜레마는 헤겔이 생각했던 문제이고, 우리 시대 사람들이 계속해서 헤겔을 검토하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1030) 완전히 자유로운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방해되는 모든 것이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행위를 요청하는 상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한 자유는 상황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그와 동일하게 그런 자유는 공허하다. 와벽한 자유는 그 안에서는 어떤 것도 행해질 가치가 없는 공허이고, 어떤 것도 무언가를 위해 고려될 필요가 없는 공허이다. 모든 외적인 장애물과 난관을 제거함으로써 자유에 도달한 자아는 특성도 없고 목적도 없다.(1033)

 

4. 헤르더에 따르면 우리의 상황에 대한 무반성적 경험은 완벽하게 설명될 수 없다. 헤겔은 헤르더에서 이어지는 이 전통에 본질적으로 귀속되면서도 동시에 거리를 두고 있다.(1048) 만약 자유를 상황화하려는 철학적 시도가 특정한 인간 개념, 혹은 자유로운 행위를 자연으로부터, 혹은 자연을 넘어선 곳에 있는 신으로부터 우리에게 다가온 부름에 대한 응답으로 여기는 그런 인간 개념을 얻는 데 그 본질이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체현된 정신에 대한 끈질기고 정열적인 숙고를 수행한 헤겔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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