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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연 170503(수) / 가라타니 고진 세미나 / 세계사의 구조 / 3부 4장, 4부 발제 / 화니짱
인무연 2017. 5. 3. 18:40세계사의 구조 3부4장 - 5부(17.05.03).hwp
3부 근대세계시스템
전사연 170503(수) / 가라타니 고진 세미나 / 세계사의 구조 / 3부 4장, 4부 발제 / 화니짱
제4장 어소시에이셔니즘
1. 종교비판
1948년의 혁명(프랑스 파리 2월 혁명)이후 사회주의와 기독교의 연결은 사라지게 된다. 그 원인 중 하나는 1848년 이후 국가가 주도한 산업자본주의의 발전이 노동력의 상품화와 함께 사회를 근저에서부터 바꾸었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이전의 사회에서 기능하고 있던 종교적 사회주의를 무력화시켰다. 또 한 가지 원인은 프루동과 마르크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종교적 사회주의가 우세했던 1840년대에 프루동은 ‘과학적 사회주의를’ 최초로 주창한다. 과학적 사회주의란 사회주의의 근거를 종교적 사랑이나 윤리가 아니라 ‘경제학’에서 찾는 것이었다.(330) 프루동 이후 사회주의자는 종교를 부정하게 되었다. 종교라는 형태를 취하는 한, 그것은 교회=국가적 시스템에 회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종교를 부정하지 않으면, 사회주의는 실현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종교를 부정함으로써 원래 종교로서만 개시되었던 ‘윤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331) 칸트는 종교를 그것이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개시하는 한에서 긍정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도덕법칙은 종교에 의해 개시되었지만, 본래 ‘내부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외부적인’ 교환양식D이다. 교환양식D는 보편종교를 통해서 개시되기 때문에, 종교에서 유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환양식B와 교환양식C에 의해 억압된 교환양식A의 고차원적 회복에 다름 아니다.(332) 자유의 상호성이 왜 내적 ‘의무’로서 집요하게 따라다니는지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가 ‘억압된 것의 회귀’라고 부른 관점이 필요하다.(332)
요컨대 칸트가 말하는 ‘내적 의무’는 억압된 교환양식A가 의식에서 강박적으로 회귀하는 데에서 생기는 것이다. 칸트가 말하는 도덕법칙은 임금노동 그 자체, 자본제적 생산관계 그 자체의 지양을 함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칸트파 철학자 헤르만 코헨은 칸트를 ‘독일 최초의 진정한 사회주의자’라고 불렀다.(333)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다뤄라“라는 도덕법칙에서 타자는 살아있는 자만이 아니라 死者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타자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환경을 파괴하여 경제적 번영을 얻을 경우, 그것은 미래의 타자를 희생하는 것, 즉 그들을 그저 ‘수단’으로 다루는 것이다. 자유의 상호성을 이처럼 이해한다면,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자본주의경제에 대한 비판으로 이르는 것은 당연하다. 또 중요한 것은 칸트가 말하는 도덕성은 국가의 지양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는 세계사가 세계시민적인 도덕적 공동체 즉 ‘세계공화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칸트가 말하는 영원평화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적대감이 끝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국가가 무엇보다도 먼저 다른 국가에 대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국가가 끝난다는 것이다. 세계공화국이란 국가들이 지양된 사회를 의미한다.(334)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 차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국가 간에 경제적인 불평등이 있는 한,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영원평화는 일국만이 아니라 다수의 나라에서 교환적 정의가 실현됨으로써만 실현된다. 따라서 세계공화국은 국가와 자본이 모두 지양된 사회를 의미한다. 이성을 구성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자코벵주의자(로베스피에르)가 전형적인 것처럼, 이성에 기초하여 사회를 폭력적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경우를 의미한다. 그에 반해 이성을 규제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무한히 먼 일일지라도, 인간이 지표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것과 같은 경우를 의미한다. ‘세계공화국’이란 교환양식D가 실현되는 사회이다. 그것이 완전히 실현될 리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공화국은 규제적 이념이다. 그는 세계정부와 같은 것을 처음부터 만드는 것에 반대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대한 세계정부(제국)를 만드는 게 되기 때문이다. 칸트가 구상한 것은 국가연방이다. 그것은 국가의 지양을 다수 국가의 어소시에이션 형성에서 구하는 것이다.
오늘날 역사의 이념을 조소하는 포스트모니스트의 대부분은 일찍이 ‘구성적 이념’을 믿었던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이고, 그와 같은 이념에 상처를 이고 이념 일반을 부정한 후 시니시즘이나 니힐리즘으로 도망친 자들이다.(336) 그들은 사회주의는 환상이다, 거대서사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세계자본주의가 초래하는 비참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할 리가 없다. 현실적으로 1980년대 이후 세계자본주의의 중심부에서 포스트모던한 지식인이 이념을 조소하고 있는 사이, 주변부나 저변부에서는 종교적 원리주의가 확대되었다. 적어도 거기에는 자본주의와 국가를 넘어서려는 지향과 실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신의 나라를 실현하기는커녕 성직자=교회국가의 지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2. 사회주의와 국가주의
사회주의에는 크게 말해 두 가지 타입이 있다. 하나는 국가에 의한 사회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를 거부하는 사회주의(어소시에이셔니즘)이다. 엄밀하게는 후자만을 사회주의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자는 국가사회주의나 복지국가주의라고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혁명의 슬로건은 세 가지 교환양식의 결합을 보여준다. 즉 자유는 시장경제, 평등은 국가에 의한 재분배, 우애는 호수제이다. 여기서 보면, 프랑스혁명이 다음과 같이 진전된 것이 명확하다. 먼저 자유의 실현, 즉 봉건적 특권이나 제한의 철폐이다. 이어서 우애를 주창하면서 평등을 성급하게 실현하려고 한 것이 자코뱅파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공포정치에 빠져 몰락하고 말았다.(337) 프랑스혁명은 그것들의 통합을 상상적으로 실현하는 형태로 수습한 것이다. 그와 같은 통합을 가져온 것은 혁명을 방위하는 전쟁을 통해 인기를 얻은 군인,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혁명의 우애를 영국자본에 대항하는 내셔널리즘으로 변형시켰다. 이처럼 프랑스혁명에 존재했던 자유-평등-우애는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는 보로메오의 매듭으로 통합되었다. 나폴레옹은 모든 계급의 요구를 만족시킬 것 같은 환상을 부여하고, 그것을 통해 황제가 되었다. 1848년 루이 보나파르트는 2차 프랑스혁명을 통해 황제에 취임하였다. 루이 보나파르트는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위기 때 각지에서 나타나는 카리스마적 정치가의 원형이다.
교환양식D로서의 사회주의는 자유,평등,우애(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넘어설 때만 가능하다. 자유-평등-우애라는 슬로건에서 프루동은 평등보다도 자유를 우위에 두었다. 게다가 우애보다도 자유를 우위에 두었다.(338) 평등은 국가에 의한 재분배에 의해 실현되기 때문에, 많든 적든 그것은 자코뱅주의 또는 국가의 강화로 인도된다. 교환양식으로 말하면, 그것은 교환양식C가 초래한 자유를 희생하여 교환양식B를 회복하는 것이 된다. 주권자로서의 국민이란 주권자(절대왕정)에 속하는 신하로서 형성되었다는 점이 망각될 때 성립하는 가공의 관념이다. 루소는 개개인의 의지를 넘어선 ‘일반의지’를 들고 와 이것으로 모든 것의 기초를 삼는다. 하지만 일반의지란 개개인의 의지를 국가에 종속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루소가 말하는 사회계약이란 개개인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루동이 말하는 아나키란 쌍무적=호수적 계약에 근거한 민주주의를 말한다. 아나키는 통상 혼돈이나 무질서처럼 생각되지만, 프루동에 의하면 국가에 의하지 않는, 자기통치에 의한 질서를 의미한다.
둘째로 푸르동은 우애를 자유 위에 두는 것을 부정했다.(339) 우애가 진정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공동체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넘어선 세계시민적인 것이어야 한다. 프루동이 생각하기에 자유가 우위에 있을 때만이 공동체를 넘어선 우애가 성립한다. 바꿔 말해, 공동체와 한번 절연된 개인(칸트의 언어로 말하자면, 세계시민)에 의해서만 진정한 우애나 자유로운 어소시에이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교환적 정의를 주장했다. 그것은 불평등을 낳지 않는 교환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340)
3. 경제혁명과 정치혁명
프루동이 화폐의 왕권을 폐지하기 위해 구상한 것은 화폐를 대신하여 대체화폐와 신용은행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이 대체화폐에는 화폐와 같은 특권적인 힘이 없다. 따라서 이자도 없다. 경제적 불평등을 중앙집권적인 국가에 의한 재분배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정치혁명’이라면, 이것은 ‘경제혁명’이다. 이것은 불평등을 낳지 않는 시스템을 가져온다.(342) 포이어바흐가 말하는 ‘유적 본질적 존재’는 프루동이 말하는 ‘진실사회’와 닮아 있다. ‘유적’이란 말하자면 나와 너라는 관계성을 의미한다. 너와 나의 경제적 관계성, 즉 호수적 교환관계를 함의한다.(343) 마르크스 또한 국가를 지양해야 하고, 또 지양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에게 국가의 자립성에 대한 경계가 부족했던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것은 프루동과 다르게 국가주의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에 관해 프루동과 같은 형태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한다.
4. 노동조합과 협동조합
프루동이 자본주의경제에 있어서 유통과정을, 마르크스가 생산과정을 강조했다는 것은 피상적인 통념에 지나지 않는다.(346)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생산과정에서 생각한 고전경제학자에 반대하여, 역으로 그것을 유통과정에서 생각하려 했다. 즉 자본을 상인자본(M-C-M‘)으로 생각했다. 이와 같은 축적은 노동자를 소비자로 만들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자본에 대하여 어떻게 대항할 수 있을까?
노동조합은 자본이 노동자를 결합시켜 일하게 함으로써 얻은 잉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다. 협동조합은 노동자 자신이 노동을 연합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이윤은 당연히 노동자 자신에게 배분된다. 여기에 노동력 상품은 존재하지 않는다.(349) 노동조합은 자본제경제 내부에서 자본과 투쟁하는 것이고, 협동조합은 자본제 바깥으로 나가려는 운동이다. 바꿔 말해 전자는 생산과정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고, 후자는 ‘유통과정’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후자에는 대체화폐나 신용은행도 포함된다. 그런 의미에서 프루동의 시도와 공통된다. 이 두가지 대항운동은 분리할 수 없다. 그것은 협동조합의 창설자 로버트 오웬이 전국노동조합연합회를 결성한 인물이라는 것으로도 분명하다.(350) 마르크스는 협동조합을 매우 중시했다. 그곳에 임금노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자 자신이 경영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임금이 완전히 평등화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화폐-상품이라는 관계에 근거하는 지배-피지배관계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351) 마르크스는 그 한계를 지적했다. 로컬하게는 성립하고 유요하다 화폐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협동조합은 자본이 미치지 않은 영역이나 소비협동조합으로서는 충분히 유효할 수 있다. 단 그것을 통해 자본제기업을 압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352)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국가를 통해 협동조합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의 어소시에이션이 국가를 대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법적규제 외 국가에 의한 지원이 없으면, 생산자협동조합이 자본제 기업에 패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가 국가권력을 잡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보았다.(353) 라살레가 헤겔에게 배워서 국가를 이성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었다면, 마르크스는 국가를 소멸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는 끝까지 프루동파였다.(354)
5. 주식회사와 국유화
마르크스는 협동조합생산에서 사회주의, 즉 연합적 생산을 실현하는 열쇠를 발견했지만, 동시에 그 한계도 깨닫고 있었다. 그것은 확대될 수 없고, 따라서 자본에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마르크스는 그 한계를 넘어서는 열쇠를 주식회사에서 발견했다. 주식회사에서는 자본과 경영의 분리가 일어난다. 주주는 기업의 손실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주식회사는 자본을 대규모로 집적시킬 수 있다. 따라서 또 그것이 노동의 대규모 사회적 결합을 가져온다.(354)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주식회사가 달성한 것을 협동조합화, 즉 연합적인 생산양식으로 전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주식회사가 공산주의로 옮겨가기 위한 가장 완성된 형태라고 말한다. 경영자는 노동자를 조직하고 지휘하는 감독노동에 대해 임금을 받는 임금노동자(화이트칼라)이다. 마르크스는 여기에서 경영자와 노동자가 주주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립하여 어소시에시션을 형성할 수 있는 조건을 발견했다. 주식회사를 협동조합화하는 것은 용이하다. 주주를 포함한 전종업원이 1인1표 투표권으로 의결하는 시스템으로 바꾸면 된다.(355) 문제는 협동조합적 기업이 자본제기업 사이에서의 경쟁을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본제기업은 아무렇지 않게 해고를 하고, 또 뛰어난 기술자를 높은 급여로 고용하지만, 협동조합에서는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 실제 그런 것을 한다면, 더 이상 협동조합이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없게 된다. 협동조합은 그 원리를 유지하려고 하면 멸망하고, 애써 존속하려고 하면 자본주의적인 방식을 도입하게 된다. 따라서 이런 변혁은 개개의 기업 안에서의 투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적 규모로 법제도를 바꿈으로써만 가능하다. 개개 기업을 협동조합화해 가는 것이 곤란하다는 것은 프루동파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국가권력을 잡아 일거에 행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의견은 프루동파가 중심이었던 제1인터네셔널에서 승인되었으며, 실제 프루동파는 파리코뮌에서 이것을 실행하려고 했다.(356)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은 주식회사의 국유화가 아니라 주식회사의 법인소유를 노동자의 공동점유로 바꾸는 것이다. 국유화와 자본주의는 배반되는 것이 아니다. 그 증거로 현재도 대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국유화를 통해 붕괴를 회피한다. 그러므로 국영화하면, 사회주의로부터 점점 더 멀어질 뿐이다. 하지만 파리코뮌의 유산과 함께 마르크스의 협동조합론도 이후 무시되었다.(357) 엥겔스에게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경제 전체를 계획적인 것으로 삼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레닌처럼 사회주의란 사회를 ‘하나의 공장’처럼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나온다. 이후 마르크스주의에서 사회주의=국유화라는 사고는 의심된 적이 없다. 국유화는 노동자를 국가공무원, 즉 국가의 임금노동자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농업의 국영화는 오히려 아시아적 전제국가의 농업공동체로 되돌아가는 것이 된다. 이것은 소련이나 중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국유화와 국가통제에 의해 국가관료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358)
6. 세계동시혁명
프루동파가 파리코뮌에의 봉기를 기도했을 때, 마르크스는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사회주의자는 국가권력을 탈취하는 대신에 먼저 패전하의 혼란에 있던 파리와 프랑스를 다시 세우는 것에 전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가 예견한 대로, 파리코뮌은 프로이센군에 의해 2개월만에 분쇄되고,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이 사건에 의해 아나키스크나 고전적인 혁명운동은 종식되었다. 다른 국가가 있다면, 일국 안에서 국가를 지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꿔말해 사회주의혁명은 세계동시혁명으로만 가능하고, 또 그것은 세계자본주의에 의한 보편적 교통 하에서 가능하다.(359)
프루동파도 바쿠닌도 세계동시혁명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했다. 프루동파가 혁명을 강행한 것은 그것이 유럽세계혁명에 파급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자의적인 믿음에 지나지 않았다.(361)
7. 영구혁명과 단계의 ‘뛰어넘음’
1848년 혁명은 확실히 세계동시적이었다. 하지만 국민국가에 의한 대항혁명에 패했다. 그 결과 출현한 것이 사회주의운동 또는 프롤레타리아계급을 강하게 의식한 정치체제였다. 보나파르트는 제1인터네셔널 형성을 후원하기까지 했다. 비스마르크의 정책은 국가에 의해 산업자본주의를 진흥시키고, 동시에 노동문제의 해결을 지향하는 것이었다.(362) 다른 관점에서 말하면, 그것은 자본=네이션=스테이트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이면서 자본의 전횡을 규제하고 계급대립을 부의 재분배나 복지에 의해 해소하는, 그런 시스템이 아직 맹아적이지만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 1848년의 시점에서 혁명은 시대에 뒤쳐진 것이 되었다. 파리코뮌은 그 최후의 빛과 같은 것이었지 미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363)
러시아혁명은 1917년 제1차대전에서 러시아의 패색이 짙어질 때에 일어났다. 그 결과, 제정이 무너지고 의회가 성립함과 동시에 노동자, 농민의 평의회(소비에트)가 자연발생적으로 성립했다. 그리고 의회와 평의회라는 이중권력상태가 이어졌다. 그런데 10월에 트로츠키와 레닌은 다른 볼셰비키 간부(스탈린을 제외한)의 맹렬한 반대를 억누르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후 평의회는 명목적인 것이 되고 볼셰비키에 의한 독재가 시작되었다. 이 시점에서 그들은 유럽의 세계혁명이 러시아의 뒤를 이어 일어날 것을 기대했지만, 그러기는 커녕 곧바로 해외로부터의 간섭과 침략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 타국의 간섭으로부터 혁명을 방어하기 위해 강력한 국가기구를 재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당=국가관료의 전제적 지배체제가 형성되었던 것이다.(366) 이와 같은 쿠데타의 강행을 정당화하는 이론이 역사적 단계를 뛰어넘어 일거에 사회주의로 향한다는 영구혁명의 이론이었다.
마르크스가 영국혁명을 부정하고 또 역사적 단계의 뛰어넘음을 부정한 것에 대한 그런 도전은 전반적으로 실패로 끝났다. 즉 ‘뛰어넘은’은 결국 불가능했던 것이다. 실제 20세기에 일어난 혁명(모두 후진국에서 일어난)에서 권력을 잡은 사회주의자는 여러 가지 점에서 본래 부르주아가 이루어야 하는 것보다 오히려 절대왕권이 이루어야 하는 것을 대행하는 처지에 빠졌다.(모택동의 독재를 포함한) 유럽에서 절대왕권은 많은 봉건귀족을 제압하고 사람들을 모두 왕의 신하로 삼는 것에서 네이션이라는 동일성을 창출했다. 또 그것은 종래의 농업공동체를 해체하고 수탈하는 것을 통해 자본주의경제의 기반을 확립시켰다. 이것은 마르크스가 시초축적이라고 부른 과정이다. 절대왕정을 폭력혁명으로 무너뜨린 부르주아는 전자가 쌓은 기반위에 자본주의경제를 만들었던 것이다.(367) 마르크스가 말한 것처럼 이것들은 본래 사회주의자가 해야 할 사항이 아니다. 하지만 주변부 나라들에서 사회주의자가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칭찬받아야 하는 것이었다. 단 비판되어야 할 것은 그들이 실행한 것을 사회주의라고 부른 점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주의라는 이념이 회복불가능할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 원인은 영구혁명과 ‘단계의 뛰어넘음’이라는 관념에 있다.
8. 파시즘의 문제
마르크스는 네이션은 상부구조이기 때문에 계급적 구조가 해소되면 해소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네이션은 국가와는 별개의 자립적 존재로서 기능했고, 계속 기능하고 있다. 이미 서술한 것처럼 네이션은 공동체 또는 호수적 교환양식A의 상상적 회복이다. 그것은 평등주의적이다.(368) 따라서 내셔널리즘과 사회주의(어소시에이셔니즘)운동에는 헷갈리기 쉬운 유사성이 있다. 문제는 발달한 산업자본주의국가에서 내셔널리즘이 사회주의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파시즘이다. 파시즘은 나치스의 당명이 보여주는 것처럼 내셔널한 사회주의다. 즉 네이션을 통해 자본과 국가를 넘어서려는 시도이다. 물론 네이션을 통해 자본주의와 국가를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창출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국가를 넘어서는 ‘상상의 공동체’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파시즘이 강한 매력을 가졌던 것과 그것이 모든 모순을 ‘지금 여기서’ 넘어서는 꿈과 같은 세계의 비전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치즘은 교환양식A의 상상적 회복으로서의 네이션을 활용할 수 있었고 그것은 일견 사회주의, 즉 교환양식D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369)
내셔널리즘과 사회주의(어소시에이셔니즘)는 모두 자본주의적 경제 가운데에서 생겨난 계급분해와 소외라는 현실에 대해 교환양식A를 상상적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차이는 그 회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있다. 내셔널리즘은 과거의 존재방식을 노스탤직하게 능동적으로 회복하는 것이다. 한편 어소시에이셔니즘은 과거의 교환양식A를 회복하지만,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의식적으로는 미래지향적이다. 따라서 후자의 경우, 현상을 변혁하는 것이 되지만, 전자는 결국 현상의 긍정에 지나지 않게 된다.(371)
자본주의적 경제가 침투하고 농업공동체가 해체되어도 사람들의 국가에 대한 순종적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그로부터 태어난 아톰화된 대중은 어소시에이션을 낳기는커녕, 새로운 차르를 구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농업공동체로부터의, 자본주의화에 의한 것과 다른 형태의 어소시에이션적인 자립화가 필요하다.(373)
9. 복지국가주의
1990년 이래 선진국의 좌익은 옛날과 같은 혁명을 완전히 방기했다. 시장경제를 인정하고 그것이 초래하는 모순을 민주적 절차에 의한 공공적 합의와 재분배에 의해 해결하자는 생각에 도달했다. 즉 복지국가주의 또는 사회민주주의로 귀착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틀을 긍정하는 것이고, 그 바깥으로 나가는 사고를 방기하는 것이다.(374)
칸트는 영국의 경험론적 도덕이론을 비판했다. 그것은 선이 행복에 있고, 또 행복은 경제적인 부로 환원된다고 생각한 공리주의와 도덕을 동정과 같은 도덕감정에서 생각한 아담 스미스와 같은 사고, 이 두 가지다. 칸트는 그 양쪽을 비판하고, 도덕성을 자유에서 발견하려고 했다. 자유란 자기원인적(자발적, 자율적)인 것이다. 이익, 행복, 도덕감정과 같은 것은 감성적이기 때문에 자연원인에 의해 규정되어서, 그것에 근거하는 것으로는 자유가 존재할 수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희생하는 것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타인을 수단으로만이 아니라 목적(자유로운 존재)으로서 다뤄라”는 것이 선험적인 도덕법칙(지상명령)으로서 발견된다. 즉 그것은 ‘자유의 상호성’이다.
롤즈는 오히려 공리주의에 기초하여 선을 생각하고 분배에 의한 평등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유의 상호성이 사고되고 있지 않다. 바꿔 말해, 자본주의적 자본과 임금노동의 관계가 불문에 붙여지고 있다.(376)
4부 현재와 미래
제1장 세계자본주의의 단계와 반복
1. 자본주의의 역사적 단계
| 1750-1810년 | 1810-1870년 | 1870-1930년 | 1930-1990년 | 1990년~ |
세계자본주의 | 중상주의 | 자유주의 | 제국주의 | 후기자본주의 | 신자유주의 |
헤게모니국가 |
| 영국 |
| 아메리카 |
|
경제정책 | 제국주의적 | 자유주의적 | 제국주의적 | 자유주의적 | 제국주의적 |
자본 | 상인자본 | 산업자본 | 금융자본 | 국가독점자본 | 다국적자본 |
세계상품 | 섬유산업 | 경공업 | 중공업 | 내구소비재 | 정보 |
국가 | 절대주의왕권 | 국민국가 | 제국주의 | 복지국가 | 지역주의 |
세계자본주의의 단계는 자본과 국가의 결합 그 자체의 변화로서 나타난다는 것, 또 그것은 리니어한 발전이 아니라 순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388) 한편으론 생산력의 고도화에 의해 리니어한 발전을 함과 더불어, 다른 한편으로 자유주의적인 단계와 제국주의적 단계가 서로 번갈어가며 이어지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389)
2. 자본과 국가에 있어서 반복
제국주의를 부정해도 ‘제국으로의 회귀’라는 충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 차원의 반복성이 존재한다. 물론 이것은 세계자본주의의 동향과 분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본과 국가를 두 개의 능동적 주체로서 보는 시점이 필요하다.
3. 1990년 이후
1990년 이후는 소련의 붕괴에 의해 아메리카의 압도적 우위 하에서 자본주의의 글로벌리제이션이 진행된 단계이다. 그것은 또 신자유주의라고 불린다. 이 시기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전대의 헤게모니국가가 쇠퇴했지만 그것을 대신할 것이 존재하지 않아서 복수의 국가가 다음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사우는 ‘제국주의적’ 단계로 보아야 한다.(393) 네덜란드도 영국도 헤게모니국가였던 시기, 즉 자유주의적인 시기에는 국내의 사회복지에 충실했다. 아메리카가 이와 같은 자유주의를 버리게 된 것은 1980년대이다. 그것은 사회복지 예산을 삭감하고 자본에 대한 세금이나 규제를 삭감하는 레이건주의로 상징된다. 이것이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것이다. 레닌은 제국주의단계를 역사적으로 특징짓는 것으로서 ‘자본의 수출’을 들고 있다.(394) 그것은 자본이 국내시장의 포화에 의해 자기증식이 불가능하게 되었기에, 시장을 구하기 위해 해외로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해외에 나간 자국의 자본을 유지하기 위해 열강은 해외에 군사적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제국주의는 군사적인 측면보다 오히려 그것이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395) 국가=자본은 네이션의 평등주의적 요구에서 해방된 것이다. 국제경쟁을 위해서는 사람들의 생활이 희생되어도 어쩔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제국주의의 그것과 유사하다. 제국주의시대에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약육강식이라는 사회적 다원주의였지만, 신자유주의시대에도 그것의 신판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위너, 루저라는 말이 공공연히 이야기된 것이다. 실업자, 비정규직 등의 위계제는 자유경쟁에 의한 결과로서 당연시된다.(396)
4. 자본의 제국
1948년 혁명은 민족이나 국가의 무화는커녕 프랑스에도 독일에도 국가자본주의를, 그리고 영국의 경제적 쇠퇴, 게다가 제국주의시대를 초래했다. 같은 것을 1968년 혁명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아메리카 헤게모니의 쇠퇴는 달러태환 정지(1971년)가 보여주는 것처럼 바로 이 시기에 시작된 것이다.(400)
5. 다음 헤게모니국가
중국이나 인도가 경제적 대국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것이 기존의 경제대국과 싸울 것이라는 점도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가 될 것인가 하면, 의심스럽다 하겠다. 첫째로 일국이 헤게모니국가가 되기에는 경제적 우위 이외의 무언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중국이나 인도의 발전 그 자체가 세계자본주의의 종언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402) 중국이나 인도의 산업발전은 대규모이기 때문에 자원이 동이 나거나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또한 중국과 인도에는 세계의 농업인구 과반수가 존재했다. 그것이 없어지는 것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소비자를 가져다 줄 원천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이상 두 가지 사태는 글로벌한 자본의 자기증식을 불가능하게 한다. 국가는 무엇보다도 자본적 축적의 존속을 도모할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에서 가장 일어나기 쉬운 것은 전쟁이다.(403)
제2장 세계공화국으로
1. 자본에의 대항운동
파리코뮌 이후로 아나키스트는 일단 몰락하고 테러리즘으로 나아갔지만, 그 후 방향전환을 하여 되살아났다. 즉 노동조합을 거점으로 하는 생디칼리즘을 주창하고 사회주의혁명을 총파업에 의해 실현하려고 했다. 그러므로 파리코뮌 이후의 사회주의운동에서는 생산지점에서의 투쟁이 우위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 투쟁의 결과로서 노동조합이 합법화되고 확대되면, 노사의 투쟁은 그저 경제적인 것이 되고, 어떤 의미에서 노동시장의 일환이 된다. 그로부터 임금노동을 폐기하려는 혁명운동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산업자본주의국가에서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운동을 기대하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진다.(406)
산업자본주의가 발전하면, 교환양식C가 모든 영역에 깊숙이 침투하게 된다. 복지, 의료, 대학처럼 그때까지 상대적으로 자본주의경제의 바깥에 있었던 영역에서 자본주의화가 진행되었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 자본에 대한 대항은 가능할까. 생산과정을 중심에 놓은 입장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본의 축적과정을 총체로서 보는 관점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하지 않다.(408) 노동운동이 합법화된 후에 생산지점에서 노동자계급이 정치적-보편적인 투쟁에 서는 것은 곤란하다. 첫째로 그것을 위해서는 해고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로 생산지점에서는 자본과 같은 입장에 서기 쉽다. 개개의 자본은 다른 자본, 그리고 외국자본과의 경쟁 가운데에 있다. 그것에 지면, 기업이 도산되고 노동자도 해고된다. 따라서 생산지점에서 노동자는 어느 정도까지 경영자와 이해를 공유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이런 특수성을 넘어서는 보편적 계급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410)
노동자는 개개의 생산과 장에서는 예속된다 하더라도, 소비자로서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자본에 대항할 때, 그것이 곤란한 장이 아니라 자본에 대해 노동자가 우위에 있는 장에서 행하면 된다. 예를 들어 환경문제에 관해서는 소비자, 주민 쪽이 민감하고, 곧바로 세계시민의 관점에 설 수 있다. 즉 노동자계급은 제3국면에서 보편적 계급의식을 갖기가 용이하다고 해도 좋다.(411) 소비자란 프롤레타리아가 유통의 장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운동이든 마이너리티나 젠더 운동이든 그것들을 노동자계급의 운동과 다른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또 자본주의와는 다른 경제권의 창출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소비자=생산협동조합 및 지역통화-신용시스템 등의 형성이 그것이다.(412) 그것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사람들이 미리 실감하게 만든다. 자본은 자기증식을 할 수 없을 때, 자본이기를 멈춘다. 따라서 언젠가 이윤율이 일반적으로 저하되는 시점에서 자본주의는 끝난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으로 전 사회적인 위기를 분명히 초래할 것이다. 그때 비자본경제가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이 그 충격을 흡수하고 탈자본주의화를 돕는 일이 될 것이다.(413)
2. 국가에의 대항운동
트랜스내셔널한 운동은 아무리 긴밀히 제휴를 한다고 하더라도 국가 간의 대립에 의해 분리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각국 내부의 대항운동을 세계적으로 연합시켜는 일은 좌절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있다.(418)
3. 칸트의 영원평화
홉스에게는 폭력을 독점한 주권자(국가)야말로 평화상태의 창설을 의미한다. 칸트는 세계국가에 반대했다. 확실히 그것은 전쟁의 부재로서의 평화를 가져올 테지만 영원평화를 가져오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에게 있어 평화상태의 창설이란 바로 국가의 지양이다. 그에 반해 세계국가는 어디까지나 국가이다.(422)
4. 칸트와 헤겔
칸트는 인간의 본성에는 제거할 수 없는 반사회적 사회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세계공화국이라는 규제적 이념을 방기하지 않고, 서서히 그것에 가까워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국가연방은 그것을 위한 첫걸음이다.(424) 유엔은 무력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계속 조소하고 무시한다면, 세계전쟁이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새로운 국제연합을 형성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따라서 칸트의 관점에는 헤겔의 리얼리즘보다 더 잔혹한 리얼리즘이 숨어있다.
5. 증여에 의한 영원평화
칸트에게 있어 정의는 분배적 정의가 아니라 교환적 정의이다. 그것은 경제적 격차를 재분배에 의해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격차를 낳는 교환시스템을 폐기함으로써 실현된다.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국가 내부만이 아니라 국가 간에도 존재해야 한다. 즉 그것은 새로운 세계시스템으로서만 실현되는 것이다.(429) 보편적인 법의 지배는 폭력이 아니라 증여의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 세계공화국은 이렇게 해서 형성된다. 칼 슈미트는 국가사멸의 유일한 가능성을 소비=생산협동조합의 일반화에서 발견했다.(431)
6. 세계시스템으로서의 국가연방
세계동시혁명은 통상 각국의 대항운동을 일제히 일으키는 봉기라는 이미지로 이야기된다. 하지만 그것은 있을 수 없으며 있을 필요도 없다. 예를 들어, 일국에서 유엔에 군사적 주권을 증여하는 혁명이 일어난다고 하자. 이와 같은 혁명을 지향하는 운동이 각국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세계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하지만 비관적이 될 필요는 없다. 칸트가 생각하는 것처럼 세계전쟁은 보다 고도의 국가연방을 실현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동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433) 그것이 생겨나는 것은 각국에 국가와 자본에의 대항운동이 존재할 때뿐이다.(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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