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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연170413() / 가라타니 고진 세미나 / 세계사의 구조 3/ 화니짱

 

세계사의 구조 3부 1~3장(17.04.13).hwp

3부 근대세계시스템

서론 세계=제국과 세계=경제

교환양식C, 즉 상품경제는 고대부터 존재했지만, 아무리 확대되어도 교환양식B가 지배적인 사회구성체를 무너뜨린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유럽에서 그것이 일어났다. 마르크스주의자 사이에는 이것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라는 문제로 논의되어 왔다.(237) 세계=제국에서는 국가관료가 교육을 독점하고 식량 등의 가격을 통제한다. 한편 그와 같은 국가적 통제가 없이 교역과 로컬한 시장이 통합될 때, 세계=경제가 성립한다. 월러스틴은 이 경우 세계=경제가 16세기 유럽에서 생겨나 그것이 각지의 기존 세계=제국을 삼키고, 세계를 중심, 반주변, 주변이라는 구조로 재편성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브로델은 세계=제국에서 세계=경제로의 발전이라는 견해를 거부했다. 폴라니가 지적한 것처럼 그리스나 로마에도 세계=경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집권적인 국가가 성립하지 않고 왕이나 본건제후가 난립하여 항쟁하는 상태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런 만큼 국가의 통제 없이 교역이나 시장이 자유롭게 생겨났다.(239) 따라서 유럽에서의 봉건제와 세계상업은 분리할 수 없다.

세계=제국에서 중심과 주변이라는 공간적 구조는 주로 정치적-군사적 힘의 성질에 따라서 형성된다. 제국의 범위는 첫째로 로지스틱스(병참)에 의해 한정된다. 단지 영토를 정복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려고 한다면, 그 범위는 제한된다. 둘째로 제국의 범위는 경계의 확장을 통해 얻어지는 부와 그것을 위해 필요한 군-관료제 코스트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한편 세계=경제에는 한계가 없다. 상품교환은 공간적으로 어디든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국가에 의한 법과 안전의 확보가 없으면, 그것은 성립하지 않는다.(240) 그러므로 역사상 존재한 세계=경제는 세계=제국에 의해 파괴되거나 병합되어 왔다. 하지만 서유럽에서 확대된 근대적 세계=경제는 역으로 세계=제국을 삼켜버렸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세계=제국에는 중핵, 주변, 아주변, 권외라는 구조가 존재했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세계를 뒤덮은 상태에서는 더 이상 세계=제국은 중핵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그 주변, 아주변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한편 세계=경제에서도 중심과 주변이라는 지정학적 구조가 존재한다. 그것을 최초로 지적한 것인 안드레 군더 프랑크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세계=경제는 중심부가 주변부로부터 잉여를 수탈하는 구조였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부는 중심부의 발전에 대응하여 저개발되게 된다. 이에 대해 월러스틴은 반주변이라는 개념을 보탰다. 반주변은 중심부로 이동할 수 있고, 주변부로 전락할 수 있다. 이처럼 세계=경제는 중심, 반주변, 주변이라는 구조를 이룬다.

이것은 비트포겔이 보여준 세계제국의 구조인 중핵, 아주변, 주변과 유사하다. 하지만 세계=제국과 세계=경제의 구조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세계=제국에서는 중심부가 폭력적인 강제에 의해 주변부로부터 잉여를 수탈하지만, 주변부로 가면 갈수록 그것이 곤란하게 된다. 제국의 판도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중심부의 잉여를 주변으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241)

그런데 세계=경제에서는 직접적인 수탈보다도 오히려 단순한 상품교환을 통해 중심부가 주변부로부터 잉여를 수탈하는 구조가 존재한다. 또 세계=제국에서는 주변부가 원료를 가공한 생산물을 중심부에 보내는 데에 반해, 세계=경제에서는 주변부가 원료를 제공하고 중심부에서 그것을 가공-제조하는 구조이다. 이와 같은 국제분업에서는 가공-제조부분 쪽이 가치생산적이다. 그 때문에 중심부는 주변부를 국제분업에 편입시킴으로써 잉여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세계=제국에서는 부의 축적=수탈이 폭력적인 강제와 안도감이라는 교환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그것은 교환양식B에 근거하고 있다. 한편 세계=경제에서는 부의 축적=수탈이 상품교환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 그것은 교환양식C에 기초하고 있다. 유럽에서 시작된 이런 시스템은 그때까지의 세계시스템을 급격히 변화시켜 갔다.

1장 근대국가

1. 절대주의 왕권

서유럽에서 집권적인 국가가 시작되는 것은 절대왕정에 의해서다. 왕이 다수의 봉건제후를 제압하고 교회의 지배권을 빼앗음으로써 성립했다.(245)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파괴력을 가진 화기의 발명이다. 화기는 기존의 전력을 무효화하고 귀족=전사의 신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또 한 요인은 화폐경제의 침투이다. 왕은 도시의 상공업자의 계속 결탁하면서 봉건제후의 특권들을 폐지하고 토지세를 독점하고, 관세나 소득세를 얻기 위해 무역을 추진했다. 권력을 빼앗긴 봉건제후는 국가가 획득하는 조세로부터 분배를 받는 궁정귀족, 지주계급이 되었다. 이처럼 화폐경제는 관료나 상비군을 초래했다.(246) 아시아적 전제국가가 교환양식B가 지배적인 사회구성체인 데에 반해, 절대왕정 국가는 사실상 교환양식C가 지배적인 사회구성체이다. 그러므로 아시아적 전제국가는 붕괴되어도 바로 재건되는 데에 반해, 절대왕정이 붕괴될 때는 부르주아 사회가 된다.

절대왕정은 자신이 황제와 같은 위치에 서는 것을 부정한다. 바꿔 말해 그것은 다른 절대왕권의 존재를 승인하는 것이다. 그 결과, 제국으로서의 통합이 단념되고, 복수의 왕권국가가 공존하게 된다.(247) 요컨대 주권국가라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다른 주권국가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서유럽에서 시작되었지만 주권국가는 글로벌하게 주권국가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세계=경제가 유럽에서 시작되었지만, 글로벌하게 된 것과 같다.

 

2. 국가와 정부

절대왕정에서는 중상주의정책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것이 자본=국가인 것, 즉 국가와 자본주의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했다. 하지만 절대왕정을 무너뜨린 시민혁명 이후 이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이 분리되기 때문이다.(249)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절대왕조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가 옹호하려고 했던 것은 내전상태를 종결시키는 자로서의 주권자이다. 홉스가 보기에 절대왕정은 진정한 주권자가 아니다. 확실히 귀족이나 교회를 제압했지만, 그들은 아직 몽테스키외가 말하는 중간세력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교도혁명은 그와 같은 중간세력을 일소시켰다. 그러므로 왕이 없는 공화정에서야말로 리바이어던이 성립했다고 말할 수 있다. 홉스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것은 왕정이든 공화정이든 여하튼 주권자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에 의해 전쟁상태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홉스가 말하는 의미의 사회계약이다. 홉스가 생각하기에 공포에 의해 강요된 계약이 근원적이고 로크가 말하는 설립된 코먼웰스로서의 자발적 계약은 2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250) 로크나 시민혁명 이후의 사상가는 개인을 주체로 간주하고 그와 같은 개인들(국민)에게서 출발하여 사회계약을 생각했다. 하지만 홉스가 생각하기에는 주권자 이외의 모든 자는 그의 신민이다.” 즉 국민이라는 주체(subject)는 절대적인 주권자에 복종하는 신민(subject)으로서 형성되는 것이다. 절대왕정이 무너지면, 국민이 주권자가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권이라는 사고는 국내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권은 먼저 바깥에 대해서 존재한다. 따라서 절대왕정이 무너져도 다른 국가에 대한 주권의 성격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3. 국가와 자본

주권으로서 국가의 본질은 국가의 내부에서 보는 한 보이지 않지만, 전쟁에서 현재화된다. 그러므로 칼 슈미트는 주권자를 예외상태에서 보려고 했다. 국가는 정부와 다른 것이며, 국민의 의지로부터도 독립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절대왕정에서나 일반적으로 근대 이전의 국가에서는 명료히 가시적이었다. 다만 국민국가 이후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통상 국민은 국가라는 것이 끊임없이 전쟁상태에 있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전쟁은 장기적인 전망과 전략에 의해 준비되고 예상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 국가기구인 상비군과 관료이다.

절대왕정이 시민혁명에 의해 폐기된 후, 군과 관료기구는 오히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증대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특별히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다. 국민주권이라 하더라도 국가는 그 자신을 위해 존속하려고 한다.(252) 국가는 바깥에서 보았을 때 국민과는 다른 자립적인 존재로서 등장한다. 그것은 또 국가가 다른 국가와 관계하는 차원에서는 국내에서 낯익은 것과는 소원한, 소외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프루동도 초기 마르크스도 근대국가를 시민사회의 자기소외로서 파악했다. 즉 거기서는 공공적인 것이 국가로서 소외되고, 시민사회는 사적인 부르주아적 세계가 된다. 그렇지만 여기서 시민사회 그 자체에 공공성을 되돌려주면, 또는 시민사회에서의 계급적 모순을 해소하면, 국가는 소멸한다는 것이 된다. 하지만 국가를 용이하게 지양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다른 국가에 대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노골화되는 것이 전쟁이지만,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도 상관없다. 적국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절대왕정에서 명료했던 것은 자본과 국가의 결합이다. 그런데 시민혁명 이후의 부르주아국가에서 국가는 부르주아를 대변하는 기관 내지 시민사회의 이해관계가 표현되는 장으로서 간주될 뿐, 그 자체로 능동적인 주체로 고려되지 않는다.(253)

절대왕정에서야말로 부르주아 사회에서 보이지 않게 되는 국가의 자립성, 또는 자본=국가의 본질이 명료하게 존재한다. 국가가 행하는 것 가운데 산업자본주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산업프롤레타리아의 육성이다. 그들은 농민처럼 자급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노동을 통해서 얻는 돈으로 생산물을 사는 소비자이다. 자본은 이와 같은 산업프롤레타리아(노동력상품)를 생산할 수 없다. 그것을 만드는 것은 국가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학교교육이고 징병제에 의한 군대이다.(254) 시민혁명이 이후 관료는 의회를 통해 표현되고 결정된 국민의 의지를 실행하는 공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의회제민주주의는 실질적으로 관료들이 입안한 것을 국민이 스스로 결정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정교한 절차일 뿐이다.(255)

 

4. 마르크스의 국가론

브뤼메르 18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선취하고 있다.(259) 마르크스의 생각으로는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 사이에는 필연적인 연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 근대국가를 특징짓는 보통선거에 의한 대표제(의회)의 특질이 존재한다. (260) 나폴레옹의 조카라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보나파르트가 대통령이 되고, 또 황제가 되어간 이 사건에 존재하는 꿈이 가진 기괴한 특색, 이상함, 혼란’(프로이트)을 마르크스는 대표제의 위기를 통해서 본 것이다. 국가기구의 자립이 보나파르트가 의회를 넘어서 황제로 자립함으로써 가능했다.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가 모든 계급에 시원스럽게 증여함으로써 권위를 얻었다고 묘사한다.(261) 즉 국가기구에 의한 약탈-재분배에 증여-답례라는 호수교환의 외견을 부여함으로써 황제권력이 확립되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과정은 이미 제1차 프랑스혁명에서 일어난 것이다. 최종적으로 권력을 잡은 것은 부르주아가 아니라 황제 나폴레옹이었다. 바꿔 말해 나폴레옹을 통해 국가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세계가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이대계급의 결전이 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예견은 빗나갔다. 프랑스 보나파르트나 프로이센 비스마르크의 등장은 국가가 자립적인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262)

 

5. 근대관료제

부르주아혁명은 국민국가는 국가가 교환양식B에서 기인하는 주체라는 것을 은폐해버린다. 하지만 국민주권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위기적 상태에서는 주권자, 즉 절대주의적인 왕과 같은 절대주의적인 왕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국민의 갈채와 함께 출현한다. 그것은 반드시 왕이 아니어도 좋다, 사회 구성체 내의 분열을 정치적으로 통합하는 자라면. 예를 들어, 개발형 독재정권이나 사회주의적 독재정권은 절대주의왕권에 상당하다고 해도 좋다.

마지막으로 관료제의 문제에 대해 논해보자. 관료제는 지배의 가장 합리화된 형태이다. 그 특징은 규칙에 의한 권한의 명확화, 관직계층제, 자유로운 계약에 의한 임명, 규율에 의한 승진, 전문직 훈련, 화폐의 형태로 지불되는 급여라는 것에 있다. 근대관료제는 자본주의적 경영형태(분업과 협업)에 근거하여 형성되었다.(263) ‘자본론은 개개의 생산자가 횡단적으로 연합한 메뉴팩쳐 단계부터 자본에 의해 위계적으로 관리되는 공장단계로의 이행을 논하고 있는데, 그것은 기업의 관료제화에 대응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산업프롤레타리아는 그와 같은 관료제화 훈련을 받은 자를 가리킨다. 자본주의적 발전은 언제나 동시에 관료제적 발전이었다. 노동자계급은 기업 안에서 경영진, 정사원, 파트타이머라는 관료제적 위계제 하에 나뉘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계급투쟁론이 통용되지 않게 된다.

한편 국가의 관료제에 대해 말하자면, 네오리버럴리스트는 그것을 민영화나 시장경제원리에 의해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64) 하지만 민영화에 의해 관료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기만이다. 사기업 그 자체가 이미 관료제적이기 때문이다. 사기업이 관청보다도 목적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것이 덜 관료제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 목적이 자본의 자기증식(이윤의 극대화)이라는 단순명백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윤이라는 계산 가능한 목적을 가질 수 없는 공적 관료에게 그와 같은 목적합리성을 강조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공적 관료제만이 관료제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민영화에 의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와 같은 목적합리성의 강제에 의해 생겨나는 것은 관료제의 소멸이 아니라 그저 좀 더 철저하게 목적합리적이 된 관료제이다. 상품교환양식C가 아무리 확대되어도 국가나 네이션이 자동적으로 해소되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상품교환과는 다른 교환양식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고, 또 상품교환도 국가나 네이션을 불가결한 것으로 삼기 때문이다. 리버테리언이 지향하는 것은 단지 자본을 네이션=스테이트의 멍에에서만 해방시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란 그와 같은 정책이다.(265)

 

 

 

2장 산업자본

1. 상인자본과 산업자본

상품교환양식C는 옛날부터 존재했지만, 교환양식AB가 우위에 있는 사회구성체 속에서 그것들에 종속된 채로 있었다. 상품교환양식C가 지배적인 사회구성체는 산업자본주의와 함께 등장한 것이다.(267) 교역이나 시장의 발전이 반드시 상품교환양식C가 지배적이 되는 것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교환양식BA의 저항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생겨나야 한다. 많은 논자는 산업자본이 상인자본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해왔다.(268) 상인자본과 산업자본의 차이를 그저 유통과정이나 생산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는 명시할 수 없다.(271)

 

2. 노동력 상품

마르크스는 유통과정을 중시한 중상주의자와 생산과정을 중시판 고전파 양쪽을 모두 비판한다.(271) 상인자본의 가치증식 과정은 화폐->상품->화폐+a, M-C-M‘라는 공식으로 표시된다. 산업자본의 축적도 기본적으로 그것과 같다. 하지만 산업자본은 특수한 상품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상인자본과 다르다. 그 상품이란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생산과정인 상품, 즉 노동력이다.(272) 프롤레타리아는 자영농민이나 길드직인과는 다르다. 후자는 각각 공동체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그것에 의해 그들은 어느 정도 자급자족적 생활이 가능하다. 또한 임금노동자 일반과도 다르다. 산업프롤레타리아는 스스로 만든 것을 사는 자이다. 이를테면 프롤레타리아는 생활물자를 자급자족하지 않고 구입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노예는 자신이 생활물자를 사는 일은 없으며, 농노는 공동체에서 자급자족한다.(274) 산업프롤레타리아의 출현이란 동시에 그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상품을 사는 소비자의 출현이다. 이처럼 산업자본이란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하여 협력하게 하고, 그리고 그들이 만든 상품을 그들 자신이 다시 사도록 하여, 거기서 생기는 차액(잉여가치)에 의해 증식하는 것이다. 산업자본에서의 잉여가치는 이와 같은 특이한 상품 덕분에 생산과정에서 생겨남과 동시에 유통과정에서도 생기게 된다. 산업자본의 획기성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이 생산한 상품을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으로 재생산하기 위해 다시 산다는 autopoiesis적 시스템을 형성한 점에 있다.(275)

농민은 그저 농업만으로 생활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임금노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공동체의 구속에서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다. 가정에 속한 여성이 임금노동자가 되려는 이유도 같다. 노동력의 상품화는 이처럼 항상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개개인을 자유롭게 한다. 즉 교환양식A나 교환양식B에 의한 구속에서 해방시킨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력 상품의 소유자로서의 개개인은 새로운 구속이나 복종을 강요당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공동체나 가족에 종속되기보다도 노동력을 팔면서 사는 쪽을 좋아한다. 중요한 것은 자본에 노동력을 팔아서 일하는 존재방식(임금노동)이지, 그들의 생활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풍요로운가와는 관계가 없다.(276)

 

3. 산업자본의 자기증식

개별자본은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불하고 싶지 않지만, 생산물을 사줄 소비자는 원한다. 즉 다른 자본은 좀 더 임금을 지불해줬으면 한다. 또 개별자본은 노동자를 해고하고 싶지만, 다른 기업이 그렇게 하는 것은 곤란하다. 실업자가 증가하면, 소비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개의 자본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총자본의 관점을 취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위기와 만나면 개별자본의 의지에 반하여 총자본이 등장한다. 그것은 개별자본가의 합의로서가 아니라 국가라는 형태로 등장한다. 케인즈주의나 포디즘이 그런 것이다.

애당초 총자본의 관점에서 보면, 자본의 자기증식 즉 잉여가치의 실현은 부등가교환이나 부당한 착취에 의해서 달성될 수 없는 것이다. 총자본은 총노동에 대해 등가교환을 행하고, 또 그것에 의해서 다시 잉여가치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잉여가치는 총체로서 노동자에 의해 지불된 노동력의 가치와 그들이 실제로 만들어낸 상품의 가치 사이의 차액에 있다. 여기서 어떻게 차액이 생겨나는 걸까?(279) 자본의 자기증식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생산성 향상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프롤레타리아(노동자=소비자)를 편입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마르크스는 산업자본의 전제 조건의 하나로 산업예비군을 들고 있다. 이것은 국내 농촌이나 국외에서 참여하는 새로운 플롤레타리아라고 보아야 한다. 이처럼 산업자본은 근본적으로 그 규모를 확대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281) 자본은 M-C-M‘의 증식과정이다. 증식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산업자본은 이전 사회의 표면에 머물고 있던 상업자본과는 다르게 기존의 공동체를 심층에서부터 해체하여 상품경제에 편입시킬 수밖에 없었다.

 

4. 산업자본주의의 기원

산업자본의 발전에 의해 상인자본이나 대부자본의 형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본에게는 이윤율만이 문제이다. 그러므로 자본은 가능하면 불변자산(고정자본)에 투자가 필요한 산업자본보다도 상업이나 금융에서 자기증식을 시도하려고 한다. 이것은 산업자본이 중심이 되어도 변함이 없다.(282)

산업프롤레타리아는 근면하고 시간을 지키며 분업과 협업에 적응가능한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에토스는 학교와 군대의 집단적 훈련을 통해서 초래된다. 학교교육은 직인의 도제제 훈련과는 다르다. 산업자본주의에서의 노동력상품에는 특정한 기능이 아니라 어떤 직종으로 이동해도 적응가능한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계산능력이나 언어능력과 같은 일반적인 지식을 부여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게다가 산업자본의 가치증식은 기술혁신(생산성 향상)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노동만이 아니라 고도의 과학기술을 가져다주는 노동력을 육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불가결하다. 이와 같은 과제를 완수하는 것은 개별자본이 아니라 총자본 즉, 현실적으로 국가이다.(287) 국가와 자본은 이질적이지만, 상호의존을 통해서만 존속가능하다.

 

5. 화폐의 상품화

화폐의 상품화는 신용이나 금융과 관계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본래 상품교환이 갖는 본래적 곤란에서 발생한다. 신용제도는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형성된 것이다. 예를 들어, 상품매매에서 나중에 화폐를 지불하기로 하고 어음을 건넨다.(288) 역으로 말해, 상품교환의 확대는 화폐를 상품으로서 다루는 대부자본(M-M‘)을 증대시킨다. 산업자본의 우위가 확립된 후 상인자본이 산업자본의 일부분이 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상인자본이나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감싸게 되었다.(289) 고정자본에의 투자야말로 커다란 리스크였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주식자본, 즉 자본의 상품화를 통해 자본 자체가 시장에서 매매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자본가는 언제든지 생산과정에서 고정적으로 집적된 형태(현실자본)를 화폐자본으로 되돌릴 수 있었다. 즉 자본은 축적과정에서의 곤란을 주식화를 통해 피한 것이다. 금융자본은 산업자본과 같은 자유로운 가격경쟁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나 자원, 노동력을 독점하려고 한다. 이것이 19세기 말의 제국주의를 경제적으로 설명하는 논리였다. 그리고 그것이 초래한 세계전쟁 이후 금융자본의 활동을 국제적으로 규제하는 체제가 있었다. 그것이 해금되고, 화폐 및 자본의 상품화가 전면화된 것이 1990년대 이후의 글로벌리제이션에서다. (291)

 

6. 노동력의 상품화

신용의 위기를 우발적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초래하는 것은 노동력상품이다. 토지나 화폐, 자본의 상품화에 관해서는 시장의 자기조정적 시스템이 기능하지만 노동력상품에 관해서는 그와 같은 자기조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은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생산할 수 없다. 다른 상품과 달리 수요가 없다고 해서 폐기할 수도 없고, 부족하다고 해서 갑자기 증산할 수도 없다. 노동력상품의 이러한 고유한 특이성 때문에 경기순환이 불가피하다.(292) 불황과 호황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본의 축적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이루어진다. 신용에 의해 추진된 매매가 어떤 계기로 현실에서는 성립하지 않은 것이 판명될 때 공황이 생긴다. 모든 공황은 그런 의미에서 신용공황으로 나타난다.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왜 주기적인지에 있다.(293)

장기파동은 세계상품(기축상품)의 교대(: 모직물, 면직물, 중공업, 내부소비재...)에 대응한 형태로 일어난다. 세계상품의 이행은 기술수준, 생산-소비 형태의 변동이기 때문에, 전 사회적인 변동을 반드시 수반한다. 중공업단계에서는 국내수요가 감소하고 불황이 만성적이 된다. 자본은 활로를 해외시장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중공업에는 대규모의 자본이 필요하다. 이처럼 중공업 단계에서는 이전보다 더욱 경제에의 국가의 개입이 강화되며, 이렇게 하여 제국주의라고 불리는 시대로 들어간다.

다음으로 1930년대 대불황 이후 세계상품은 내구소비재(자동차, 전기제품)로 이행했다. 그것은 대량생산-대량소비에 의한 소비사회를 가져왔다.(295) 그런데 그것이 포화상태에 도달한 것이 1970년대로, 그 심각한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해졌던 것이 글로벌리제이션이다. 그것은 새로운 노동자=소비자를 발견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1991)였다. 하지만 그것은 인도나 중국의 거대한 인구를 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노정되어 있던 모순들을 폭발적으로 격화시켰다. 환경파괴도 위기적인 레벨에 도달한다.

 

7. 산업자본주의의 한계

첫째로 산업자본은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필요로 한다. 둘째로 그것은 끊임없이 값싼 노동력=새로운 소비자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농촌부-주변부에서 제공된다. 이상의 두 요소가 자본축적에서 불가결한다. 이것들이 없으면 자본주의는 끝나버린다.(296)

첫째와 관련하여, 세계상품의 시프트(예를 들어 면공업에서 중공업으로, 그리고 내구성소비재로와 같은)를 일으키는 기술혁신이 있을지 의문이다. 둘째의 조건에 대해 말하자면, 자본제경제의 외부는 더 이상 무진장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인간과 자연의 관계와 연결되어 있다.(297) 인간을 개발=착취하는 시스템(교환양식)이 인간과 자연간의 교환(물질대사)을 파괴한 것이다. 자본과 국가의 지양을 지향하지 않는 한, 환경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다.

 

8.세계경제

산업자본은 해외시장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영국에 면공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은 그저 국내시장 때문이 아니다. 이전까지의 중상주의적 경쟁 강운데에서 국제적인 패권을 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리카도는 자유무역이 비교생산비의 법칙에 의해 국제분업을 도모하게 해 상호이익을 가져온다는 점을 주장했다.(298) 하지만 이러한 자유주의는 산업자본이 발전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취하는 자유제국주의이다. 리카도의 비교우위와 국제분업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지지되고 있따. 이에 대해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은 아기리 에마뉴엘과 안드레 군더 프랑크였다. 그들은 세계시장가격에서 중추(core)와 식민지 사이의 교환은 필연적으로 식민지의 희생으로 중추에 이익을 부여한는 부등가 교환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299) 그리고 사미르 아민은 후진국이 후진성에 머무는 원인을 이런 부등가교환과 종속에서 찾았다. 후진국의 미개발성은 원래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주의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300) 영국의 노동자계급이 마르크스가 말하는 궁핍화 법칙과 반대로 풍요로울 수 있었던 것은 자본이 해외무역에서 잉여가치를 얻고, 그것이 영국의 노동자에게도 어느 정도 재분배되었기 때문이다. 궁핍화는 국내에서보다 오히려 해외사람들에게 생겼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일국 단위가 아니라 항상 세계=경제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된다.(301)

3장 네이션

1. 네이션의 형성

이번 장에서 살펴볼 것은 교환양식C의 우위 하에서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는 형태가 도출되는 과정에 대해서이다. 네이션=국가는 네이션과 국가라는 이질적인 결합이다. 하지만 그것이 성립하기 전에 실은 자본과 국가의 결합이 선행하고 있다. 이것이 절대왕권이다. 앞서 나는 절대왕권은 사회구성체 가운데서 그때까지 지배적이었던 교환양식B가 교환양식C의 우세 가운데서 변형되어 나타난 형태라고 서술했다. 네이션이 나타나는 것은 그 후, 즉 절대왕권이 시민혁명에 의해 무너진 이후이다.(303) 간단히 말해, 네이션이란 사회구성체 중에서 자본=국가의 지배 하에서 해체되어 가던 공동체 내지 교환양식A를 상상적으로 회복하는 형태로 등장한 것이다.

a. 주권국가의 레벨

통상 네이션은 시민혁명에서 등장한다. 예를 들어, 영국 명예혁명(1688)에서 인민주권이 확립되었을 때, 네이션=스테이트(commonwealth)가 확립되었다고 해도 좋다. 여기서 네이션(국민)이란 국가의 주권자이다. 하지만 당연히 이와 같은 주권자로서의 네이션(인민)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타도된 절대왕권(주권자) 하에서 그때까지 다양한 신분이나 집단에 속해있었던 사람들이 왕의 신하로서 동일한 지위에 놓임으로써 형성된 것이다. 이와 같은 절대왕권이 선행하지 않으면, 주권자인 네이션(인민)은 출현하지 않는다.(304) 다수의 부족이나 민족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독재적인 권력이 불가결하다. 유럽의 후진지역에서 절대왕권은 계몽군주라는 형태를 취했다. 군주 자신이 봉건적 세력을 억누르고 정치, 경제적 근대화를 성취하려고 한 것이다. 비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절대왕권이 행한 역할이 오히려 독재적인 리더에 의해 수행되었다. 그 후에 독재자가 쓰러지고, 주권자로서의 인민이 출현했다. 식민지지배국가가 절대주의적 국가의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타도하는 투쟁(민족해방)을 통해 네이션이 확립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족적 공동체가 네이션의 기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그것은 네이션으로서의 동일성의 기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부족 간의 끊임없는 불화와 싸움, 다른 나라와의 결탁이나 배신을 불러온다. 이와 같이 집권화가 불가능했던 지역에서는 네이션이 형성될 수 없었다. 또 그와 같은 지역에서는 국가를 넘어서는 종파가 강고하게 남아 네이션으로서의 통합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았다.(306)

b. 산업주의의 레벨

이어서 네이션을 교환양식C에서, 즉 산업자본주의에서 살펴보자. 어네스트 겔너는 내셔널리즘의 기원을 산업사회에서 보려고 했다. 이 사회의 특징은 직업적인 유동성과 급속히 변천하는 불안정한 분업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빈번하고 정밀한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난다는 데에 있다.(306) 겔너가 말하는 것은 바로 네셔널리즘이 산업자본의 노동력상품이 형성됨과 함께 등장했다는 것이다. 산업자본주의에서는 분업화와 함께 끝없이 새로운 기술이 발명되고 새로운 일이 생겨난다. 산업프롤레타리아는 그런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의 업종에 숙련되는 것보다는 끝없이 새로운 일에 적응할 수 있는 기초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간을 엄수하고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일하는 태도, 그리고 모르는 타인과 협동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타인과 협동하기 위해서는 공통의 언어나 문화를 갖는 것이 불가결하다.

하지만 이런 노동력 상품은 산업사회나 산업자본보다도 오히려 근대국가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해야 한다. 후발적 자본주의국가가 제일 먼저 행하는 것이 징병제와 의무교육이다. 그것은 내셔널리즘을 육성하는 것과 노동력 상품을 육성하는 것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307)

 

2. 공동체의 대리보충

하지만 네이션은 그저 자본=국가의 수동적인 산물이 아니다. 네이션은 노동능력이나 경제적 이익이라는 차원만으로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에 대한 반발을 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네이션은 말하자면 감정이라는 차원에 근거하고 있다. 네이션의 구성은 시민혁명 이후의 자유와 평등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개인들 사이의 연대가 필요하다. 그것은 가족이나 부족공동체 안의 사랑과는 다른, 오히려 그와 같은 관례로부터 이탈한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연대의 감정이다.(308)

베네딕트 앤더슨이 보기에 네이션은 계몽주의, 합리주의적 세계관의 지배 속에서 종교적 사고양식이 쇠퇴한 것에서 발견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네이션은 종교를 대신하여 개개인에 불사성, 영원성을 부여하고 그 존재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었다.(309) 기독교든 불교든 보편종교는 공동체에 대항하여 출현하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면, 그 요구를 만족시켜야 했다. 즉 보편종교는 농업공동체의 종교와 융합한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해체와 함께 오히려 보편종교는 그 본래적 성격을 되찾았다고 해도 좋다.

다시 말해, 계몽주의를 단순히 종교비판으로서만 볼 수는 없다.(310) 계몽주의는 오히려 절대왕권의 이데올로기이고, 그것이 추진한 것은 자본=국가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농업공동체를 해체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었다. 이것이 계몽주의라고 한다면, 그것에 대한 반발로서 나온 낭만주의가 자본=국가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것에 의해 해체되어 가던 공동체와 그 호수원리의 회복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던 것은 당연하다.

자본=국가에 의한 공동체의 해체는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영원을 보증하는 세대적 시간성의 소멸이기도 했다. 농업공동체의 쇠퇴와 더불어 자신의 존재를 선조와 자손 사이에 둠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영속성이란 관념도 사라진다. 보편종교는 개인의 영혼을 영원하도록 만들지만, 공동체의 이런 시간성을 회복시키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상상적으로 회복하는 것이 네이션인 것이다. 따라서 국민이란 현재 있는 자들만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성원을 포함하는 것이다. 내셔널리즘이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311) 인도에서의 힌두내셔널리즘과 같이 상상적으로 회복되는 네이션이 종교적 형태를 취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네이션은 말하자면 자본=국가에 결여된 감정을 거기에 불어넣는 것이다. 헤겔은 법철학 강의에서 홉스적인 국가를 오성적 국가라고 불렀다. 그것은 거기에 감정이, 따라서 네이션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이 생각하기에 자본=네이션=스테이트야말로 진정한 이성적 국가인 것이다.(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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