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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 / 미셸푸코 / 12장 대감호 / 2018.03.18.() / 닥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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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에 목소리는 풀려 나왔지만 이미 폭력성이 제어된 광기가 고전주의 시대에는 이상한 강제력에 의해 곧 침묵으로 귀착하게 된다. 광기로부터 사유를 보호하는 것은 진리의 영속성이 아니라, 미칠 가능성의 부정이다. 광기의 불가능성은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생각하는 주체의 본질이다. 누구나 회의의 어떤 근거를 찾기 위해, 자신이 꿈을 꾼다고, 또는 자신이 꿈꾸는 주체와 동일하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진리가 여전히 꿈의 가능조건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사유를 통해서조차 미쳤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광기는 사유 불가능 조건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회의체계에는 광기와 꿈과 오류 사이의 근본적 불균형이 있다. 꿈이나 환각은 진리의 구조 자체 속에서 극복된다. 그러나 광기는 회의하는 주체에 의해 배제된다. 회의의 주체가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과 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기획에서 광기는 배제된다. 데카르트의 회의에 의해 광기는 비이성적인 말을 하는 것이 생각되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것으로 취급되어 의심하는 자의 이름으로 추방당한다. 인간이 어느 때건 미칠 수 있다 해도, 사유는 진리를 인식해야 할 입장에 놓인 주체의 절대적 실천으로서 무분별할 수가 없다. 하나의 분할선이 그어지는데, 그것은 사리에 어긋나는 이성, 이치에 맞는 비이성의 경험, 르네상스 시대에 그토록 익숙해진 그 경험을 이윽고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라시오의 도래와 관련되는 어떤 것이 발생한다. 그런데 비이성은 우리의 땅 속에 파묻혀 사라지게 된 것일지는 모르지만, 동시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이제 밝혀야 할 것은 바로 고전주의 시대에 일어난 이 사건의 다른 측면이다.

 

§

 

17세기에 거대한 수용시설들이 새로 건립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파리 시의 주민 중에서 1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몇 달에 걸쳐 거기에 갇혀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한 세기 반 동안 광인이 이러한 수용체제에 놓여 있었다는 것, 그리고 어느 날 그들이 구빈원의 거실에, 형무소의 감방에 갇히게 되리라는 것을 피넬, 튜크, 바그니츠 이후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거기에서 광인의 법적 자격이 무엇이었는가, 가난한 사람과 무직자, 경범죄자와 미치광이에게 동일한 고향을 지정하는 듯 하는 이 근접관계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도 결코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았다. 17세기 중엽부터 광기는 감금의 영토와 연결되었고 또한 이 지역을 광기의 본래적 장소로 지정하는 활동에 꼼짝없이 연루되었다.

1656년이라는 연대가 이정표 구실을 할 수 있다. 이 해에 왕은 파리에 구빈원을 설립하라는 칙령을 내린다. 성별, 거주지, 나이, 사회적 신분과 출신을 막론하고 어떤 직업에 있건, 몸이 성하건 불구이건, 환자이건 회복기에 있는 사람이건, 치유될 수 있건 회복 불가능이건 파리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들어간다. 구빈원은 의료기관이 아니다. 이미 구성된 권력기관들과 나란히, 재판소 밖에서 결정하고 판결하며 집행하는 반()사법조직이자 일정의 행정단위이다. 구빈원은 왕이 통치와 사법 사이에, 법의 한계지점에 세우는 기이한 권력기구, 즉 제3의 탄압 기관이다. 프랑스 전역에 구빈원이 확대된다.

교회는 왕권과 부르주아지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면서, 매우 의도적으로 구빈원의 조직화에 대해 거리를 두긴 했지만, 무관심할 수 없었다. 구빈원의 관리는 부르주아지의 몫이었다. 시설에서는 기도등 신앙 실천이 이루어졌다. 기구들에서는 교회가 오래 전부터 누려온 특권과 빈곤의 세계에 질서를 확립하려는 부르지아지의 관심, 구제하려는 욕망과 규제해야 할 필요, 자선의 의무와 징벌하려는 의지가 뒤섞이게 되고, 흔히는 이 양자 사이에 갈등이 생겨난다.

중세에 나환자 격리가 이뤄진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하게, 고전주의 시대에는 수용이 구상된 것이다. 유럽 세계에서 나환자가 사라짐에 따라 비게 되는 장소는 새로운 인물의 차이였다. 수용은 유럽 전체의 현상이었다. 대규모의 구제기관, 수용시설, 종교활동과 공공질서의 유지, 구제와 처벌, 자선과 통치계획은 바로 고전주의 시대에 진상이다. 누구나 마음대로 구빈원이나 교도소를 설립할 수 있게 된다. 구빈원이 병원으로 변하지 않도록 전염병 환자들을 완전히 내쫓을 것이 권고되기도 한다. 나날이 또는 거의 수시로 나환자보다 더 가혹하게 유폐되고 내쫓기는 그 모든 사람을 가로질러 목표로 삼은 현실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수용장소에 거주할 운명에 놓여 있는 그 부류의 사람들을 단번에 격리시킨 것은 바로 사회적 성향이다. 빈곤과 구제의 의무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 실업과 무위도식이라는 경제문제 앞에서의 새로운 반응현태, 새로운 노동윤리, 그리고 속박의 강압적 형태 아래, 이 활동은 도덕적 의무가 민법과 일치할 삶의 공간에 대한 꿈을 하나의 복합적 단위 안에서 조직해내는 것이다.

 

§ p130

 

수용방안의 실천은 빈곤에 대한 새로운 처방이자 새로운 각오이고, 더 넓게는 인간의 삶에 있을 수 있는 비인간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또 다른 관계설정을 가리킨다. 중세에는 가난한 사람, 지참한 처지의 사람, 자기 자신의 생활에 책임을 질 수 없는 사람이 특별한 모습으로 취급되지 않았는데, 그것이 16세기에는 달라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빈곤의 신비로운 특성이 제거되어버렸다. 이는 가난의 절대적 의미를 없애자는 것과 가난을 구제했다는 데에서 자선에 가치를 부여하던 관행을 없애자는 두 가지 사상적 흐름 때문이다. 루터나 칼뱅의 세계에서 가난은 징벌을 가리킨다. 가난한 사람의 삶에는 주님의 저주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내를 권고해야 한다.

자선활동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하느님안에 뿌리를 내린 신앙심에서 나온다. 교회의 재산을 세속의 자선활동으로 전용하려는 경향, 모든 종교개혁 운동에 공통된 그 경향이 생겨난다. 구제 과업을 맡게 되는 것은 이제 교회가 아니라 도시와 국가이다. 새로운 세금이 도입되고 조사가 이루어지며, 기부가 권고되고 유증(유언에 따라 재산을 돌려줌)이 촉구된다. 영국에서 16세기에 구빈세가 일반화되고 교도소나 구빈원 운영을 위한 특별세금을 걷으며 치안판사는 이 자금을 관리하고 이 자금에서 생기는 수익을 분배할 관리인, 곧 빈민구제위원을 선임한다.

이제부터 빈곤은 굴욕과 영광의 변증법적 관계가 아니라, 무질서를 죄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질서와 무질서의 어떤 관계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루터와 칼뱅 이래 이미 영원한 징벌의 표지를 지니고 있던 빈곤은 국가가 관리하는 자선의 세계에서 국가의 순조로운 통치에 거슬리는 자기 만족과 과오가 된다. 사람들은 빈곤을 신성화하는 종교적 경험에서 빈곤을 정죄하는 도덕적 이해로 슬그머니 넘어간다. 거대한 수용시설들은 아마 자선의 세속화 현상일 것이지만 또한 어렴풋이 빈곤에 대한 도덕적 징벌인 이러한 변화의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빈민구제의 이 집단적 형태가 거부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개인적 행위에 따르는 특별한 가치와 가난에 내재하는 높은 존엄성이 빈민구제의 집단적 형태에 의해 없어지는 듯하기 때문이다. 자선은 법에 의해 뒷받침되는 국가적 책무로, 가난은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범법행위로 변화하는 것이 아닐까?

신의 현현을 증거 할 힘이 빈곤으로부터 빠져나간다. 기독교도에 대해 빈곤이 여전히 자선의 계기라 해도, 기독교도는 이제 국가의 질서와 예측에 따라서만 빈곤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 빈곤에 의해서는 빈곤 자체의 결함만이 입증될 뿐이며, 빈곤이 나타나는 것은 죄의식의 범위 내에서이다. 빈곤을 줄이는 것은 무엇보다 빈곤을 회개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18세기 말에도 여전히 우리는 광기를 구빈원의 벽들 사이에서 발견하게 된다. 광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방식이 생겨났다. 이 이해방식은 더 이상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중세의 인간적 풍경 안으로 광인이 친숙하게 나타난 것은 광인이 다른 세계로부터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 광인은 도시민들의 질서에 관련된 통치 문제의 바탕 위에서 뚜렷하게 부각되는 존재가 된다. 예전에 광인이 사회에 받아들여진 것은 그가 다른 곳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광인이 배제되는 까닭은 그가 바로 이곳에서 생겨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광인을 받아들이는 환대는 새로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광인을 회로 밖으로 내모는 숙정 조치가 될 것이다. 사실 광인은 떠돌아다닌다. 그러나 이제는 광인이 기이한 순례의 길 위에 있지 않다. 광인은 사회공간의 배치에 혼란을 일으킨다. 이제부터 광기는 빈곤의 권리와 영광을 잃고 가난 및 무위도식과 더불어 아주 무미건조하게 국가의 내재적 변증법의 논리 속에서 출현한다.

 

§ p142

 

17세기 전 유럽에서 공통된 징후가 발견되는 대대적인 수용현상은 통치의 문제인데, 고전주의 시대에 통치라는 이 낱말은 매우 구체적인 의미, 다시 말해서 일하지 않고 살아나갈 수 없는 모든 이에게 노동을 가능하고 동시에 불가피한 것으로 만드는 조치들 전체라는 의미를 띤다. 수용은 우리가 부여하거나 적어도 추정하고 싶어 하는 의학적 의미를 갖기 이전에, 치유에 대한 관심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요청되었다. 수용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은 노동의 절대적 필요성이다. 단지 무위도식에 대한 정죄만이 강조되는 곳에서 우리는 인류애에 입각하여 질병을 퇴치하려는 온정의 징후를 읽으려 한 것이다.

실업자는 내쫓기거나 처벌받지 않는다. 국가가 비용을 들여, 실업자의 개인적 자유를 희생시켜 실업자를 떠맡는다. 실업자와 사회 사이에 암묵적 채무체계가 확립된다. 실업자는 생계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지만, 수용이라는 물리적이고 정신적인 속박을 받아들여야 한다.

1656년의 칙령이 목표로 삼은 사람들은 어느 정도 불분명한 그 무리 전체, 말하자면 돈도 사회적 연줄도 없는 주민, 버림받았거나 새로운 경제발전으로 인해 일정한 기간 동안 생활이 불안정하게 된 계급이다.

위기의 시대가 아닐 때에는 수용의 의미가 다르다. 수용의 탄압기능에 새로운 유용성이 덧붙여진다. 실업자를 감금하는 것이 아니라 감금된 이들에게 일거리를 주고 그들로 하여금 모든이의 번영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이 문제된다. 교대의 반복현상이 뚜렷이 감지된다. 즉 완전고용과 높은 임금의 시대에는 값싼 노동력의 확보가 문제이고, 실업의 시대에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의 단계적 흡수, 그리고 소요 및 폭동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는 것이 문제된다.

영국에서 최초의 교도소가 문을 열었을 때에는 경제 침체가 한창이었다. 1610년의 조례에는 단지 모든 교도소 안에 제분기, 직조기, 양모 솔질 작업장을 설치하여 수용된 사람들에게 일거를 줄 것만이 권고되어 있다. 경제적 동기로 말하자면 수인들의 기묘한 일거리에서 아무 근거를 찾아낼 수 없다. 노동을 통해 무위도식을 막기 위해서이다.

 

§ p153

 

수용시설의 기능적 가치만을 고려할 때 수용시설의 설립은 실패로 인정될지 모른다. 극빈자들의 수용기관 겸 빈곤의 감옥으로 기능한 수용시설이 19세기 초에 거의 유럽 전역에서 사라짐으로써 이 시설들의 최종적 실패는 공식적으로 확인될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생산과 물가의 어설픈 변증법으로 보이는 것이 당시에는 노동의 어떤 윤리의식과 관련된 실질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윤리의식에서는 가치의 확립이 우선적인 것이 되어 경제 메커니즘의 문제는 절박한 것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노동에 고유한 것으로 여겨지는 빈곤 퇴치의 효과로 말하자면, 고전주의적 사유에서는 그것이 노동의 생산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노동의 어떤 도덕적 매력에서 기인한다. 노동의 효율성이 인정되는 것은 노동의 토대가 윤리적 선험성에 있기 때문이다. 아담의 타락 이래 노역-징벌에는 회개의 가치와 대속력이 부여되어 왔다. 인간으로 하여금 일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저주의 결과이다. 만일 인간이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면 대지는 불모의 상태가 될 것이고 대지는 무고하다.

자연의 층위에서가 아니라 도덕적 층위에서 노동은 불가피하다. 대지를 괴롭히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하느님이 공중의 새들을 먹여 살리기로 약속했으므로 하느님이 도우러 오기만을 기다리는 가난한 사람은 너의 주 여호화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성경의 위대한 율법에 불순종하는 꼴이 된다.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능력을 지나치게 시험한 것이다.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은 기적이 날마다 인간의 노고에 대한 무상의 보상으로 주어지는데도 하느님에게 기적을 조르는 꼴이다. 따라서 무위도식은 반항, 어떤 점에서는 가장 나쁜 반항이다.

수용시설에서 노동은 윤리적 의미를 띈다. , 게으름이 반항의 절대적인 형태로 여겨졌기 때문에,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노동은 유용성도 이득도 없는 노역으로, 막연한 여가활동의 형태로 강요된 것이다. 나병의 대대적 배제의 자리를 대신하여 하나의 분할선이 노동과 무위도식 사이에 그어졌다. 무위도식의 장소, 노동의 율법에서 어떤 윤리적 선험성을 읽어내던 사회에 의해 창안된 이와 같은 공간에서 출현하여 오래지 않아 이러한 장소들을 병합할 정도로 증가하게 된다. 다른 세계에서 광기는 현재 우리가 광기에 대해 인정하는 그 지위를 갖게 될 것이다. 다른 곳과 다른 것에 관해 말하는 어떤 것이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에 있다면, 이는 더 이상 광인이 다른 하늘, 미치광이의 하늘에서 오거나 광인이 다른 하늘의 징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광인이 저절로 부르주아 질서의 경계를 넘어서고 부르주아 윤리의 신성한 한계 밖으로 소외되기 때문이다.

 

§ p157

 

실제로 수용의 실천과 노동의 요구 사이의 관계가 경제상황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영국의 상무성에서 가난한 사람들에 관한 보고서(가난한 사람들을 국민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도록 유도할 수단)을 발표했을 때, 가난의 근원은 물품의 부족이나 실업이 아니라 규율의 약화와 풍기의 문란이라는 점이 분명하게 적시 되었다. 구빈원은 윤리적 지위를 갖는다. 노동의 의무는 윤리의 실천과 동시에 도적의 보증이라는 의미를 띠게 된다. 노동은 금욕, 처벌, 마음가짐의 표지와 같은 가치를 갖게 된다. 일할 수 있고 일하고 싶어하는 수인은 석방될 것이다. 이는 그가 또 다시 사회에 유용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인간생활의 위대한 윤리계약에 또 다시 속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도덕률은 사회의 종합적 차원에서 시행될 수 있다. 도덕이 상업이나 경제처럼 관리된다.

가톨릭 교회의 입장이건 개신교 국가의 입장이건 수용은 통치의 영역이 종교의 원리와 전혀 어긋나지 않을 것이고 통치의 규칙과 토치에 수반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약을 통해 종교의 요구사항이 전적으로 충족될 행복한 사회의 신화를 권위적인 본보기의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기관들에서는 질서가 미덕에 꼭 들어맞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 같은 것이 있게 마련이다. 감호에는 국가 형이상학과 동시에 종교 정치학이 감추어져 있다. 감호는 종합적 압제의 노력으로서, 하느님의 동산과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이 자력으로 건설한 도시들 사이에 자리 잡는다. 고전주의 시대에 수용시설은 완벽한 국가의 건설을 위한 세속의 종교 등가물로 이해되었던 그러한 통치 개념이 가장 치밀하게 형상화된 상징이다. 수용과 관련된 모든 도덕적 주제가 통치론이라는 문헌에 나타나 있지 않은가? 이 문헌에서 들라마르는 종교를 통치 임무를 수행하는 분야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중심적 분야로 여긴다.

 

§ p164

 

수용제도는 17세기의 고유한 제도적 창안물이다. 수용은 경제적 조치 겸 사회적 예방책으로서 창안물의 값어치가 있다. 그러나 비이성의 역사에서 수용은 결정적 사건, 말하자면 광기가 가난, 노동 불능, 집단 속으로의 통합 불가능성이라는 사회적 지평 위에서 지각되는 계기, 광기가 국가문제와 함께 짜여지기 시작하는 계기를 보여준다. 가난에 부여된 새로운 의미, 노동의 의미에 주어진 중요성, 그리고 노동의 의미에 연결된 모든 가치가 멀리에서 광기의 경험을 결정하고 광기의 의미를 굴절시킨다. 선이 그어졌고 문턱이 높아졌으며 추방을 위한 선택이 결정되었다. 맹위를 떨치는 비이성에 대한 이성의 승리가 사전에 마련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성이 순수한 상태로 군림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하늘로까지 광기를 팽창시켰던 그 상상력의 자유로부터 광기는 이처럼 뿌리 채 뽑혀나간다. 광기는 갇히고 고립되었으며 수용의 요새에서 이성에, 도덕규범에, 그리고 도덕규범의 획일적 어둠에 묻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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