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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 1장 “광인들의 배” 발제
알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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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초기부터 십자군 전쟁 말까지 유럽 전역에서 저주스런 나환자 격리공간은 무수히 늘어났다. 그러나 중세 말에 나병이 서양 세계에서 사라진다. 이에 따라 마을의 변두리, 도시의 성문 근처에 넓은 빈터가 생겼는데, 이곳은 더 이상 역병이 엄습하진 않지만 사람이 살 수 없는 장소가 되었다.
15세기부터 나환자 격리시설이 텅텅 비게 된다. 16세기부터 프랑스의 생-제르맹은 나환자 대신 나이 어린 경범죄자를 수용하기 위한 시설로 전용된다. 1690년대 즈음 1,200군데의 수용시설에 흩어져 있던 몇몇 나환자는 오를레앙 근처의 생-메스맹에 집결했다. 그리고 원래 나환자 수용소였던 툴루즈의 시설은 폐질자(불치병 환자) 구빈원으로 넘어간다. 독일에서도 속도는 더뎠지만 나병이 물러가기는 마찬가지여서 나병 요양소는 점차 나병 환자가 아니라 다른 환자를 수용했다. 슈투트가르트의 한 사법관이 1589년에 작성한 보고서에 의하면 나환자용 요양시설에 더 이상 나환자가 없음을 알 수 있고, 리플링엔의 나병 요양소는 매우 일찍부터 폐질자와 광인으로 채워졌다.
나병의 기이한 소멸은 오랫동안 행해진 모호한 의료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격리로 인한 자연스런 결과, 십자군 전쟁이 끝나 감염의 근원지인 근동지방과의 교류가 단절됨에 따라 나타난 결과였을 것이다. 나병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병을 신성불가침 영역 안에 존속시키고 나병을 어떤 전도된 열광상태 속에 붙들어놓기 위해 마련된 비천한 장소와 의례는 그대로 남긴 채, 나병이 물러난 것이다. 나병보다 더 오랫동안 남아 있고, 나병 요양소들이 이미 텅텅 비게 됐음에도 존속하는 것은 바로 나환자라는 이미지이고, 사람들이 인물의 주변에 신성불가침의 원을 그린 후에야 비로소 떨쳐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축출의 의미, 이 인물이 사회집단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다.
나병이 사라지고 나환자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거의 사라져도, 이러한 구조는 계속 남아 있게 된다. 2~3세기 뒤에도 이상할 정도로 유사한 축출의 장치가 동일한 장소들에서 재발견되는 것이다. 예전에 나환자가 맡은 역할을 가난한 자, 부랑자, 경범죄자, 그리고 “머리가 돈 사람”들이 맡게 되면서, 우리는 이들과 이들을 축출하는 자들을 위해 이러한 축출에서 어떤 구원이 기대되었는가를 알게 된다. 사회적 축출이면서도 영적 재통합인 엄격한 분할의 그 주요한 형태는 아주 상이한 문화 속에서 전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띄고서 존속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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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병과 교대된 것은 광기가 아니라 성병이 먼저였다. 15세기 말 성병은 일시에 나병의 뒤를 이었다. 여러 나병환자 구빈원에 성병환자들이 수용됐다. “우리의 도심과 근교에서 이웃과 격리된 넓은 공간들을 찾아내서” 다른 건물을 지어 수용해야 할 정도로 성병환자들이 크게 늘어났다. 나환자들은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반감을 느꼈지만 인원이 몹시 적었다. 그래서 거의 도처에 퍼져 있던 성병환자들이 나병환자들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러나 중세문화에서 나병이 차지하던 역할을 고전주의 세계에서 성병이 떠맡은 것은 아니다. 성병은 초기의 배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오래지 않아 다른 질병들 사이에 자리 잡는다. 어쨌든 좋건 싫건 구빈원에 성병환자들이 수용된다. 성병환자들을 쫓아내려는 여러 시도가 행해지나 소용없었고 그들은 계속 남아 다른 환자들과 섞였다.
성병은 나병과 달리 일찍부터 의학의 대상이었다. 요컨대 16세기 동안 성병은 치료를 요하는 질병의 하나로 자리잡는다. 성병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난무했지만 성병을 의학적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이한 일은 17세기에 이루어진 바와 같은 수용의 영향 아래, 성병이 의학의 맥락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나가고 광기와 더불어 도덕적 배제의 공간에 통합된 것이다. 사실상 성병에서가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의학으로 편입될 매우 복잡한 현상에서 나병의 진정한 유산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 현상은 바로 광기이다.
-> ‘성병에서가’ 아니라는 말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앞 진술은 성병이 광기와 더불어 배제의 공간에 통합된 것이라 쓰였는데, ‘사실상 성병에서가 아니’라는 말은 왜 적은 걸까. 배제의 공간에 있어서 나병과 광기의 위치보다 성병의 위치가 더 아래에 있다고 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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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습들 중 가장 단순하고 가장 상징적인 것은 바로 ‘광인들의 배’이다. 도시에서 도시로 야릇한 승객을 실어 나른 그러한 배들이 실재했다. 당시에 광인들은 유랑의 삶으로 내몰렸다. 그들은 걸핏하면 도시에서 쫓겨났고 상인이나 순례자 집단에 내맡겨졌거나 아니면 외딴 시골에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다만 몇몇 광인은 구빈원에 받아들여져 광인으로서 치료를 받은 사례도 있다. 그러므로 광인이 그저 추방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은 광인들 중에서도 이방인만 추방될 뿐이지, 각 도시의 시민에 속하는 광인만큼은 각 도시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세 도시의 회계에는 광인을 위해 마련된 지원금이나 미치광이에게 주기 위한 증여물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하진 않은데 왜냐하면 집결장소들이 실재하고 그곳들의 광인은 다른 곳보다 더 많을 뿐만 아니라 본토박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해, 도시가 책임지는 광인보다 어딘가로 광인들을 보내버리는 일이 훨씬 많았다는 얘기다.
여기에서 광인들이 먹고 자는 문제는 시 예산으로 해결되지만, 그들은 결코 치료받지 못하고 그저 감옥에 내던져 있을 뿐이다. 시장이 서는 관계로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몇몇 주요 도시에서 상당한 수의 광인은 상인이나 선원에게 이끌려왔다가 원래 살던 도시의 정화를 위해 그대로 내버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광인들의 이러한 이동, 광인들을 쫓아내는 활동, 광인들의 출발과 승선은 사회적 유용성이나 시민의 안전이라는 층위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의례에 가까운 다른 의미들이 명백히 있다. 가령 교회법에 의하면 광인들의 성사 참여가 금지되어 있지 않으나 교회 출입은 금지됐다. 여러 징후에 비추어보건대 광인들의 추방은 다른 의례적인 유배조치 중의 하나인 것이 분명하다.
물의 속성으로서 여러 가지 모호한 의미가 덧붙여지는데, 물은 실어나를 뿐만 아니라 정화하고, 항해는 인간을 운명의 불확실성에 처하게 하며, 항해에서 각자는 자기 자신의 운명에 맡겨지고, 모든 승선은 잠재적으로 언제나 마지막 승선이게 마련이다. 광인이 물결 따라 흔들리는 작은 배를 타고 향하는 곳은 다른 세계이고, 하선할 때의 광인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다. 광인의 이 항해는 엄격한 분할이자 동시에 절대적인 통과이다. 어떤 관점에서 이 항해는 중세인의 관심지평에서 광인이 ‘최초로’ 등장한 상황이다. 광인의 추방은 광인을 가두게 마련이고, 광인에게 ‘한계’ 이외의 다른 감옥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면, 광인은 바로 이동과 통과의 장소에 유치되는 셈이다. 광인은 외부의 내부에 놓이고 역으로 내부의 외부에 놓인다.
여기에 물과 항해의 역할이 있다. 광인은 빠져나갈 수 없는 배에 갇혀, 모든 것 외부의 엄청난 불확실성에 내맡겨진다. 즉 끊임없이 이어지는 교차로에 단단히 묶여 있는 포로다. 광인은 여행자, 이동공간의 포로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이 그가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모르고 그가 닿을 지역을 알지 못한다.
광인과 승선 사이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서양인의 꿈속에서 물과 광기가 오랫동안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서양인의 상상력에서 광인들의 항해가 많은 태곳적 소재에 결부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 주제가 15세기 무렵 문학과 도상학에서 이렇게 갑자기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물과 광기의 오랜 결합에서 어느 날, 그리고 바로 그 날, 이 배가 탄생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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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는 중세 말 무렵에 유럽문화의 지평 위로 갑자기 떠오른 불안 전체를 상징한다. 광기와 광인은 위협과 경멸, 세계의 엄청난 비이성과 사람들의 하찮은 조롱거리 사이에서 성격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가운데 주요한 배역을 맡게 된다.
우선 설화와 교훈극에서 예전과 같이 악덕과 결점에 낙인을 찍으면서 기독교적 미덕의 망각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젠 정확히 누구의 죄는 아니지만 각자를 은밀한 자기만족으로 몰아가는 일종의 심각한 비이성에 결부시키는 광기들이 문학적으로 표현된다. 익살극과 풍자극에서도 어릿광대나 바보, 익살꾼으로 등장하는 인물 비중이 높아진다. 이들은 진실의 보유자로서 무대 중앙에 자리잡아 광기가 담당하는 역할의 보완적이고 전도된 역할을 맡는다. 광인은 각자에게 진실을 상기시키고, 희극을 희극적인 것으로 결말짓는 이성적 발언을 이성의 기미가 없는 바보의 언어로 말한다. 즉,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 사랑을, 젊은이들에게 삶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광인들의 축제에서도 종교 패러디 같은 것을 사회와 도덕에 대한 비판으로 조직한다.
또한 식자층에서도 광기를 문학으로 다뤘다. 브란트가 <광인들의 배>를 쓴 것은 1492년이고 15세기 마지막 몇 년에는 제롬 보슈가 <광인들의 배>를 그렸다.
15세기 후반이나 이보다 좀더 나중까지는 죽음의 주제만이 퍼졌다. 그러다가 15세기 마지막 몇 년에 이와 같은 불안이 더 이상 퍼지지 않고 죽음과 죽음의 엄숙성은 광기의 냉소성으로 대체됐다. 인간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필연성의 발견에서 아무것도 아닌 삶에 대한 냉소적 시선으로의 변화가 일어난다. 또한 광기는 죽음이 이미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면서 죽음의 노획품이 아주 초라한 전리품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이러한 나날의 징후들 속에서 정복되고 회피된 죽음의 현존이다. 죽음의 주제가 광기의 주제로 대체되었다는 것은 단절의 표시가 아니라, 오히려 동일한 불안의 내부에서 형성된 왜곡현상을 보여준다. 문제는 변함없이 삶의 허무이지만, 이 허무는 이제 위협과 동시에 귀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외적이고 최종적인 종말로 인정되지 않고, 내부로부터 실존의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형태로 체험된다. 그래서 예전에 광기는 죽음이라는 종말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데에서 기인하였고, 죽음의 광경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예지를 잊지 않게 할 필요가 있었던 반면에, 이제 지혜는 도처에서 광기를 드러내고 살아 있는 사람이라도 죽은 자보다 나을 것 없다는 것, 그리고 보편적이게 된 광기가 죽음 자체와 동일할 따름이고 이에 따라 종말이 가깝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세계의 파국이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은 광기의 증대, 광기의 은밀한 침입이며, 세계의 파국을 불러오고 세계의 파국을 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정신 이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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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본성의 반대편 극단에서 광기는 앎이기 때문에 매혹적인 것이 된다. 이 모든 부조리한 형상이 사실은 어떤 어렵고 폐쇄적이며 비의적인 앎의 요소이기 때문에 광기는 앎이다. 그토록 접근하기 어렵고 무서운 이 앎을 광인은 순진한 어리석음 덕분으로 보유한다. 이성과 지혜의 인간은 이 앎의 단편적이면서도 그만큼 더 불안하게 하는 형상들만을 인식하는 반면에, 광인은 이 앎 전체를 완전한 형태로 갖고 있다.
광인의 그러한 앎은 무엇을 알려주는 것일까? 그 앎은 금지된 앎이므로 그 앎을 통해 예언되는 것은 아마 사탄의 지배와 동시에 세계의 종말이고, 마지막 행복과 동시에 최후의 징벌이며, 이승에서의 전능과 동시에 지옥으로의 전락일 것이다. ‘광인들의 배’는 인간이 고통도 결핍도 겪지 않으므로 모든 것이 욕망대로 제공되는 열락의 풍경, 일종의 갱신된 낙원을 횡단하지만, 인간의 순결은 회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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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에 관한 문학적, 철학적, 도덕적 주제들은 동일한 시대의 것이긴 하지만 성격이 다르다. 중세에는 악덕들의 위계에 광기의 자리가 있었다. 13세기부터 광기는 악덕과 미덕의 싸움에서 사악한 병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르네상스 시대에선 광기가 악덕을 제치고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위그 드 생-빅토르에 의하면 악덕들의 계보에서 자만심이 뿌리를 이뤘다면 이제는 광기가 인간의 모든 약점의 우두머리가 된다. 광기에 절대적 특권이 부여된다. 게다가 광기는 정치적 현자를 육성하는 야망, 부를 증대시키는 근성, 철학자와 교양인을 고무시키는 경망스런 회심 등 인간의 사악함이 가져다줄 수 있는 이득을 간접적으로 지배한다. 물론 광기는 매력적이지만 현혹시키지는 않는다. 세계에 있는 쉽고 즐거우며 가벼운 것이 광기에 이끌린다.
광기는 앎의 기이한 경로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광기에서 앎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광기가 앎의 비밀을 보유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광기는 어떤 터무니없고 쓸데없는 지식에 대한 징벌이다. 광기가 앎의 진실인 것은 그러한 앎이 보잘것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앎이 경험이라는 위대한 책에 호소하지 않고 먼지 쌓인 책들과 쓸데없는 토론으로 귀착하기 때문이다. 잘못된 지식의 과잉으로 지식은 광기 속에 전복되어 버린다.
광기는 민간의 풍자에 친숙한 주제에 따라, 앎과 어설픈 앎에서 기인하는 무지한 자만에 대한 희극적 처벌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광기는 세계와 세계의 숨겨진 형태들에 연결되어 있다기보다 오히려 인간과 그의 약점, 인간의 꿈과 그의 환상에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보슈가 본 그러한 광기에서는 우주질서의 막연한 발현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에라스무스에게서는 그러한 것이 모두 자취를 감춘다. 이제 광기는 세계의 어느 곳에서건 인간을 위협하지 않고, 인간의 마음속으로 슬그머니 스며든다. 광기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인간은 자신을 상상적으로 찬양함으로써 자신의 광기를 신기루처럼 생겨나게 한다. 이제부터 광기의 상징은 거울일 것이다. 거울은 실제의 것을 비추지 않고 거울에서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자가 빠지는 자만의 꿈을 은밀하게 반영할 것이다.
따라서 광기는 도덕과 관련된 세계 쪽으로 열려 있다. 브란트의 시를 구성하는 116개의 노래는 배에 탄 미치광이 승객들의 묘사에 할애돼 있다. 그의 의도는 인간의 행동에서 자행될 수 있는 모든 비도덕적 행위를 알게 하자는 것이다. 문학과 철학의 표현 영역에서 광기의 경험은 16세기에 특히 도덕적 풍자의 외양을 띤다. 화가들의 그림 속에 빈번히 출몰하던 그 엄청난 병적 침입의 위협은 전혀 환기되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사람들은 광기를 멀리하려고 신경을 쓴다. 사람들은 광기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에라스무스가 “복수의 세 여신이 뱀을 풀어놓을 때마다 이 세 여신에 의해 지옥에서 솟아나오는” 그 광란상태를 보려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가 예찬하는 것은 엉뚱한 형태들이 아니라, 영혼을 괴로운 근심에서 해방시키고 영혼을 다양한 형태의 쾌락으로 인도하는 감미로운 환상이다.
보슈, 브뤼겔, 뒤러가 몹시 세속적인 구경꾼으로서 그들 주위에서 광기가 솟아나는 것을 보고 그 광기에 연루되었던 반면, 에라스무스는 광기를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거리를 두고 인식한다. 에라스무스가 광기를 예찬하는 것은 그가 신들의 억누를 수 없는 웃음을 터뜨리면서 광기를 일소에 부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의 광기는 신성의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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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하게 재구성되기는 했지만 대략 이것이 광기를 현혹적 형태들과 접하면서 우주적 질서로 경험하는 것과 냉소적 태도로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동일한 광기를 비판적으로 경험하는 것 사이에 있는 대립적 도식의 모습일 것이다.
여전히 눈에 띄는 많은 간섭 현상에도 이미 분할선이 그어졌다. 광기에 대한 두 가지 경험 방식 사이의 거리는 앞으로도 계속 넓어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보슈, 브뤼겔, 뒤러 그리고 말없는 이미지들이 있다. 광기의 영향력은 순수한 직관의 공간에서 행사된다. 이미지의 순간적 섬광이 세계를 세계의 어둠 속에 영속하는 음산한 형상들에 휩싸이게 한다는 직관적 인식, 그리고 세계의 현실성 전체가 언젠가는 환상적 이미지 속으로, 순수한 파괴의 미망 속으로 흡수될 것이라는 반대방향이지만 똑같이 고통스러운 직관적 인식의 원시적 힘을 보유하고, 세계는 이미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요와 어둠이 완전히 세계를 삼켜버린 것은 아니며, 실현의 단조로운 질서를 곧장 능가하는 무질서의 극단에서 마지막 광채에 휩싸여 동요한다. 이러한 줄거리 전체는 15세기의 회하에서 ‘세계의 비극적 광기’로 전개된다.
다른 한편, 브란트, 에라스무스, 인본주의 전통 전체와 함께 광기는 담론의 세계에 포획된다. 담론의 세계에서 광기는 정제되고 섬세하게 되며, 또한 무장해제를 당한다. 광기의 층위가 변하는데, 광기는 인간의 마음속에서 생겨나며,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고 문란하게 한다. 모든 인간이 광기에 예속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광기의 지배는 언제나 보잘것없고 상대적이다. 왜냐하면 현자의 시선에 광기의 초라한 진실이 못을 드러낼 터이기 때문이다. 현자에게 광기는 현자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므로 대상이 될 것이다. 그것도 최악의 방식으로. 설령 광기가 어떤 학식보다도 더 분별 있게 보인다 할지라도, 광기는 지혜 앞에 굴복해야 할 것인데, 지혜에 대해 광기는 어디까지나 광기이다. 광기는 결정적인 말을 할 수 있지만, 결코 진실과 세계에 대한 결정적 발언이 아니고, 광기를 정당화하는 담론은 단지 인간의 비판의식에만 관련될 뿐이다.
광기의 비극적 형상들이 점차 어둠 속에 묻히는 동안, 광기에 대한 비판의식은 끊임없이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다. 광기의 비극적 형상들은 오래지 않아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사드의 몇몇 대목과 고야의 작품에만 이와 같은 사라짐이 완전한 붕괴는 아니라는, 비극적 경험이 사유와 꿈의 어둠 속에 어렴풋이 존속한다는, 그리고 16세기에는 근본적 파괴가 아니라 은폐가 진행되었을 따름이라는 증거를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을 거친 광기의 근대적 경험은 마침내 광기의 실증적 진실에 이를 전체적 형상으로 간주될 수 없고, 결여되어 있는 모든 것 때문에, 다시 말해서 은폐되게 하는 모든 것 때문에 균형을 상실한 집합이다. 광기에 대한 비판의식, 그리고 이 의식의 철학적이거나 과학적인, 도덕적이거나 의학적인 형태들 아래, 은밀한 비극의식은 끊임없이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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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6세기에 비판적 반성의 특권적 지위는 어떻게 확립되었을까? 어떻게 광기의 경험이 마침내 비판적 반성에 의해 몰수되어, 그 결과로 고전주의 시대의 문턱에서 이전 시대에 환기되었던 모든 비극적 이미지가 어둠 속으로 흩어지게 되었을까? 아르토로 하여금 16세기의 르네상스는 어쩌면 초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러나 자연스러운 법칙을 갖는 실체와 단절되었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인본주의는 인간의 확대가 아니라 오히려 축소였다고 말하게 하는 이 흐름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광기에 대한 고전주의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을 이러한 변천의 관점에서 간략하게 요약해보자.
(1) 광기는 이성과 관련된 형태가 된다. 모든 광기에 이성이 있고 모든 이성에 광기가 있다. 광기의 이성이 광기를 판단하고 광기를 통제하며, 이성의 우스꽝스러운 진실이 이성의 광기 속에서 이성에 의해 발견된다. 이성과 광기는 각자 다른 하나의 척도이며, 이와 같은 상호조회의 움직임 속에서 둘 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지만 하나가 다른 하나의 존립근거로 작용한다.
지혜에 비하면, 인간의 이성은 광기일 뿐이고, 사람들의 얄팍한 지혜에 비하면 신의 이성은 광기의 본질적 움직임 안에 놓여 있다. 큰 차원에서는 모든 것이 광기일 따름이고, 작은 차원에서는 전체가 그대로 광기이다. 다시 말해서 이성에 준거해서만 광기가 있을 뿐이지만, 이성의 참모습 전체는 이성에 의해 거부되는 광기를 이성이 한순간 나타나게 한다는 점, 그 결과로 이번에는 이성을 이소하는 광기 속으로 이성이 사라진다는 점에 있다. 어떤 관점에선 광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이성의 이름으로 인간의 광기를 고발하지만, 사람들이 마침내 이성에 이를 때, 이성은 현기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고, 이와 같은 현기증 속에서 이성은 침묵하게 마련이므로, 이성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15세기에 고조되었던 극심한 위험은 이런 식으로, 기독교 사상의 도도한 영향 아래 해소된다. 광기와 이성은 서로를 긍정하고 부정한다. 이제 광기는 세계의 어둠 속에서 절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의 상관성 아래에만 실재할 따름이다.
(2) 광기는 이성의 형태들 가운데 하나가 된다. 광기는 어떤 때는 이성의 은밀한 힘들 가운데 하나를, 어떤 때는 이성발현의 계기들 가운데 하나를, 도 어떤 때는 이성이 이성 자체를 지각할 수 있는 어떤 역설적 형태를 구성하면서 이성에 통합된다.
인간이 갇혀 있는 비참한 처지, 인간으로 하여금 진실과 선에 다가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결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 이것이 인간의 가장 나쁜 광기이다. 인간조건의 특징 자체인 이러한 비이성을 부정하는 것은 일찍이 인간의 이성을 합리적으로 사용하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진정한 이성은 어떻게든 광기에 연루되어 있고, 광기가 내는 길로 마땅히 접어들게 되어 있다.
광기에 대해서는 진실을 경청하듯이 진지하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냉소와 자기만족, 안이함과 속아넘어가지 않는 은밀한 앎이 혼합된 가벼운 관심, 사람들이 흔히 장터의 구경거리에 기울이는 그러한 관심으로 충분하다. 즉, 광기에는 “거룩한 설교를 경청할 때”의 귀가 아니라, “약장수, 어릿광대, 익살꾼 앞에서 그토록 솔깃해지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혜의 본질은 감추어진 진실에 대한 오랜 탐색이기보다는 오히려 이 다채롭고 소란스러운 목전의 광경을 통해 인식되지 않는 거부인 이와 같은 수락을 통해 더 확실하게 실현된다. 이성은 광기를 맞아들임으로써 은밀하게 광기를 둘러싸고 포위하며, 광기를 의식하고 광기를 위치시킬 수도 있다.
정신의 위대한 침잠은 광기에서 연유하는 것으로서, 이성의 가장 날카롭기 때문에 가장 위험한 도구이다. 광기 속에서 위태롭게 되어 그 결과로 활동이 정지되지 않는 강한 이성은 없다. “광기가 섞여 있지 않는 위대한 정신으 없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현자들과 가장 정직한 시인들은 때때로 이성을 잃고 격정의 상태에 빠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광기는 이성의 노고에 난처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계기이다.
이성에 내재하는 광기는 발견되면서 곧 둘로 나누어진다. 이성에 고유한 광기를 거부하는 “어리석은 광기”가 있는데, 이것은 이성에 고유한 광기를 물리치면서 이러한 광기를 악화시키고 이와 같은 악화로 인해 가장 단순하고 가장 폐쇄적이며 가장 직접적인 광증으로 전락한다. 다른 한편에는 이성의 광기를 맞아들이는 “현명한 광기”가 있는데, 이것은 이성의 광기를 따르고 이성에 고유한 광기의 시민권을 인정하며 이성에 고유한 광기의 활기찬 힘을 흡수하지만, 이러한 방법을 통해 사전에 언제나 패배하게 되어 있는 고집스러운 거부보다 더 실질적으로 광기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다.
그리하여 이제는 광기의 진실이 바로 이성의 승리와 빈틈없이 일치하는 것이 되고, 광기에 대한 이성의 결정적 제어가 이루어진다. 왜냐하면 광기의 진실은 광기가 이성의 내부에 있다는 것이고, 광기가 이성의 한 형상일 뿐만 아니라 이성의 한 힘이며 이성이 자신에 대해 더 분명히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일시적으로 필요한 수단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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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광기의 고전주의적 경험이 탄생한다. 15세기의 지평에서 고조된 대대적 위협은 완화되고, 보슈의 그림에서 확연히 눈에 띄는 음산한 지배력은 격렬함을 상실했다. 광인들의 배는 이제 기이한 항해를 통해 세계의 이편에서 저편으로 나아가지도 않을 것이고, 결코 그 멀어지는 절대적인 한계이지도 않을 것이다. 마침내 광인들의 배가 사물들과 사람들 한가운데에 요지부동으로 정박하여 잡아매이고 움직이지 않게 고정된다. 이제는 배가 아니라 구빈원이 문제가 된다.
광인들을 태운 작은 배들의 운이 다한 후 고작 100여 년이 지나자, 곧 광인 구빈원이라는 문학적 주제가 나타나는 것이다.
“치료할 수 없는 광인을 위한 구빈원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광증과 정신의 질병이 철저하게 추론되는데, 이것은 유용할 뿐만 아니라 재미있고 참된 지혜의 획득에 필요한 활동이다. 거기에서는 광기의 형태들 각각의 자리가 조정되고 각 형태에 상징과 수호신이 지정된다. 가령 열광적으로 허튼 소리를 늘어놓는 광기는 의자에 새처럼 올라앉은 바보로 상징되어 미네르바의 시선 아래 분주하게 움직이고...”
이 무질서의 세계 전체도 완벽한 질서 속에서 이성 예찬을 행한다. 어느 새 이와 같은 구빈원에서의 수감이 승선의 뒤를 잇는다.
광기가 제어된 까닭에 광기의 세계는 모든 외양을 그대로 유지한다. 이제 광기는 이성에 따른 조치와 진실을 찾으려는 작업의 일부분이 된다. 광기는 감추고 드러내며, 진실과 거짓을 나타내고 말하며, 어둠이고 빛이다. 광기는 반짝거린다. 광기는 바로크 시대의 중심적이고 유순한 형상, 이미 불안정한 형상이다.
사회의 풍경에서 광기는 매우 친숙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있어온 바보들의 무리, 그들의 축제 등에서 새롭고 아주 강렬한 즐거움을 느끼고 열광한다.
17세기 초의 세계는 기이하게도 광기를 환대한다. 그 세계에서 광기는 진실과 공상의 기준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반어적 징후로서, 많은 비극적 위협의 기억, 이를테면 불안스럽다기보다 불투명한 삶, 사회에서의 사소한 동요, 이성의 유동성을 가까스로 간직하면서, 사물들과 인간들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제약이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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