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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고고학 / 미셸푸코 / 46 과학과 지식 4-6 / 2018.02.25.() / 닥홍

 

180225 지식의고고학 4장 6 후반부 닥홍.hwp


4 상이한 문턱들과 그들의 연대기

 

하나의 언설적 형성에 관련하여, 우리는 다수의 구분적인 출현들을 기술할 수 있다. 언표들의 유일하고 동일한 형성체계가 작동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순간, 이 체계가 변환되는 순간을 <실증성의 문턱>이라 부를 수 있다. 한 언설적 형성들의 놀이 속에서 언표들의 한 집합이 마름질 되고, 검증의 규범들과 정합성을 두드러지게 할 때 그리고 지식에 관련해 지배적인 기능을 실행할 때, 우리는 그 언설적 형성이 <인식론화의 문턱>을 넘어 섰다고 말할 것이다. 그와 같이 그려진 인식론적 윤곽이 일련의 형식적인 규준들을 복종할 때, 이 언표들이 형성의 고고학적 규칙들에만이 아니라 명제적 구축의 어떤 법칙들에게까지도 복종할 때, 우리는 그것이 <과학성의 문턱>을 넘어섰다고 말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과하적 언설이 그에 필수적인 공리들을, 그가 사용하는 요소들을, 그에 정당한 명제적 구조들을 그리고 그것이 받아들이는 변환들을 정의 할 수 있을 때, 그것이 그와 같이 해서 그 자신으로부터 출발해 구성하는 형식적 구축물을 전개시킬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이 <공식화의 문턱>을 넘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상이한 문턱들의 시간적 배분, 그들의 계기, 그들의 어긋남,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의 일치, 그들이 서로서로에 대해 명령하고 함의할 수 있는 방식, 그들을 차례차례 수립시키는 조건들은 고고학의 주된 영역들 중 하나를 이룬다. 결국 그들의 연대기는 규칙적이지도 등질적이지도 않다.

과학 속에서 진리들의 선형적인 축적과 이성의 정향진화만을 읽어낸다면, 과학 속에서 그의 수준, 문턱, 다양한 비약들을 가진 하나의 언설적 실천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시간을 관통해서 그리고 어떤 형태의 지식에 대해서도 그 모델이 계속 적용되는 유일한 역사적 배분만을 기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직 과학적이지 못한 것과 결정적으로 과학적이 된 것 사이의 배분, 풀어짐의 모든 두께, 비약들의 모든 분산, 그 효과들의 모든 어긋남 그리고 그들의 상호의존의 놀이는 언제나 반복되어야 할 한 기초의 단선적인 행위로 환원된다.

물론 그 상이한 문턱들을 구분할 수 없고 그들 사이에서 어긋남들의 유사한 집합을 기술할 수도 없는 하나의 과학이 존재한다: 수학은 실증성의 문턱, 인식론화의 문턱, 과학성의 문턱 그리고 공식화의 문턱을 단번에 넘어서 버린 유일한 언설적 실천이다.

 

5 과학사의 상이한 유형들

 

우리가 지표화할 수 있었던 복수적인 문턱들은 역사적 분석의 상이한 형태들을 가능하게 해준다.

공식화 수준에 있어서의 분석: 수학이 그의 고유한 정교화의 과정에 있어 그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말한 것이 이 역사이다. 수학은 그들의 실제 역사적인 관통을 이웃관계들의, 의존들의, 복종들의, 점진적인 공식화들의, 스스로 감싸는 일반성들의 어휘 안에 다시 써넣는다.

또 하나의 분석은 과학성의 문턱에 위치하는, 그리고 그것이 다양한 인식론적 문턱들로부터 출발해 쇄신될 수 있었던 방식을 탐구하는 역사적 분석이다. 이는 하나의 개념이 어떻게 순수화되고 과학적 개념의 지위와 기능을 취할 수 있었는가를 아는 문제이다. 과학이 어떻게 공식화되었는지를 논할 필요도 없는바, 왜냐하면 이러한 역사는 과학이 무엇에 의해 변환되었으며 어떤 것들을 버림으로써 과학성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것이 논하는 역사는 진리와 오류의,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의, 장애물과 다산성의, 순수함과 비순수함의,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의 대립에 의해 분절된다. 이는 과학들에 대한 인식론적 과학사이다.

역사적 분석의 세 번째 유형: 이는 분석의 초점으로서 인식론화의 문턱-실증성에 의해 정의된 언설적 형성들과 아직 과학에 도달하지 못한 인식론적 구조물들 사이의 분기점-을 취한다. 과학성은 이 수준에 규범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 고고학적 과학사에 있어 우리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 그것은 하나의 지식을 발생시키는한에 있어서의, 그리고 이 지식이 과학의 지위와 역할을 취하는 한에 있어서의 언설적 실천들이다. 이러한 수준에서 과학사를 시도한다는 것은 인식론적 구조들을 간주하지 않고서 언설적 형성들을 기술함을 뜻하지 않는다. 이는 한 과학의 수립이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식화로의 그의 이행이 어떻게 하나의 언설적 형성 속에서 그리고 그의 실증성의 수정들에 있어서 그의 가능성과 굴절을 찾을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언설적 형성들, 실증성들 그리고 지식을 그들의 인식론적 구조물들과 과학들과의 관계들 속에서 분석하는 것은 우리가 그를 과학사의 다른 가능한 형태들로부터 구분하기 위해서 에피스테메의 분석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에피스테메라는 말에 의해 사실상 우선 한 주어진 시대에 있어 인식론적 구조물들을, 과학들을, 경우에 따라서는 공식화된 체계들을 발생시키는 언설적 실천들을 묶어줄 수 있는 관계들의 집합을 뜻하며, 다음으로 그에 따라 이 언설적 형성들의 각자에 있어, 인식론화로의, 과학성으로의, 공식화로의 이행들이 자리잡고 수행되는 바의 방식을 뜻하며, 서로서로 일치할 수 있고, 복종될 수 있는 또는 시간속에서 어긋날 수 있는 이 문턱들의 배분을 뜻하며, 인식론적 구조물들 사이에 또는 과학들 사이에, 그들이 서로 이웃하기는 하지만 상호 구분되는 언설적 실천으로부터 떠오르는 한에 있어, 존재할 수 있는 측면적인 관계들을 뜻한다. 에피스테메란 다양한 과학들을 관통함으로써 한 주체의, 한 정신의 또는 한 시대의 지고한 통일성을 드러내는 인식의 한 형태 또는 합리성의 유형이 아니다. 그것은 한 주어진 시대에 있어서, 과학들 사이에서, 그들을 언설적 형성의 수준에서 분석할 때, 발견할 수 있는 관계들의 집합인 것이다. 에피스테메란 어느날 나타나서 홀연시 사라질 부동의 도식이 아니다: 그것은 수립되었다가 파괴되는 분절들의, 어긋남들의, 일치들의 무한히 동적인 집합인 것이다. 그것은 언설적 실천들의 실증성 안에서, 인식론적 윤관들과 과학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에피스테메 분석을 인식에 대한 모든 철학들로부터 분리시키는 점은 그것이 이 사실을 초험적 주체 속에서 사실과 권리를 기초 지을 시원적인 부여의 순간이 아닌 한 역사적 실천의 과정에 관계시킨다는 점이다.

 

6 다른 고고학들

 

하나의 물음이 남아있다: 한 지식의 규칙성을 나타나게 할 그러나 그를 인식론적 구조물들과 과학들의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분석할 고고학을 생각할 수 있는가? 고고학은 과학들만을 다루는가? 고고학이 기술하고자 하는 것은 그 특이한 구조에 있어서의 과학이 아니라 지식의 전혀 상이한 영역이다. 고고학이 인식론적 구성체들이나 과학들과의 관계 안에서 지식에 몰두한다면, 그것은 또한 상이한 방향에 있어서의 지식을 탐구할 수 있고 그를 관계들의 또 다른 망 속에서 기술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의심할 바 없이 우리의 문화를 특성화해 주는 속도에 의해, 언설적 실천들이 계속 인식론화되기 때문이다. 실증성들의 영역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과학들, 그들의 역사, 그들의 낯선 통일성, 그들의 분산과 비약들을 탐구함으로써이다. 이러한 조건들하에서라면 가장 다산적인 그리고 고고학적 기술에 대해 가장 개방적인 구역이 르네상스에서 19세기까지 그렇게 많은 실증성들의 인식론화가 전개된 이 고전시대였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또한 언설적 형성들과 지식의 특이한 규칙성들이 과학성의 그리고 공식화의 수준들이 가장 도달하기 어려웠던 그곳에서 소묘되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상대적으로 분석의 보다 흥미로운 부분일 뿐이다. 고고학이 이 부분을 의무적으로 다루어야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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