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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고고학 / 미셸푸코 / 41.고고학과 지성사 / 2018.02.11.() / 닥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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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고학과 지성사

 

우리는 이제 탐구의 방향을 역전시켜 볼 수 있다. 고고학이라고 이름 붙였던 이 분석이 어디에 사용되는 것인지 보자. 우리는 일련의 개념들을 주조했고, 하나의 영역을 정의했고 형식적이지도 해석적이지도 않은 한 방법의 특이성을 나타나게 하고자 노력했다.

우리가 정의하고자 했던 개념들의 기술적인 효과를 측정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기계가 작동을 하는지, 그것이 생산해 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 고고학이 다른 기술들이 줄 수 없는 어떤 새로운 것을 제공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곧 최초의 물음이 도래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지성사라는 이름 아래 이해해 오던 공간 속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우리가 암묵적으로, 되풀이하여 그로부터 거리를 취하고자 했을 때조차도, 지시했던 것이 바로 이 공간이 아닌가? 지성사와 같은 분야를 특성화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불확실한 대상, 서툴게 그려진 경계선들, 좌로부터 우로부터 빌려온 방법들, 정확성도 고정성도 없는 방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두 가지의 역할을 식별해 낼 수 있다. 지성사는 지엽말단적이고 주변적인 역사를 논한다. 과학의 역사보다는 불완전한, 약한 기초를 가지고 있는, 엄밀한 방식으로 과학성의 형태에 도달할 수 없었던 인식들의 역사. 엄밀하고 개별적인 체계로 결정되지 못하고, 철학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한 단순한 철학을 형성시킨 이 오래된 테마들의 역사.

지성사는 하나의 주변적 영역보다는 어떤 분석유형을, 관점의 제시를 구성한다. 그것은 문학, 철학의 영역에서 궁극적인 언어표현들하에서 반성된 인식들이 아닌 경험적인 기초의 역할을 하는 인식들을 기술한다. 지성사는 시작과 끝의 학문, 애매한 연속성과 회귀에 대한 기술의 학문, 역사의 선형적 발전의 재구성에 관한 학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 영역으로부터 다른 영역, 교환과 매개의 모든 놀이를 기술 할 수 있다.

지성사는 그 가장 일반적인 형태에 있어, 끊임없이-그리고 그것이 수행되는 모든 방향에 있어-비철학으로부터 철학의, 비과학으로부터 과학으로의, 비문학으로부터 작품 자체로의 이전을 기술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외관적인 변화 아래에서, 수많은 맹목적인 공모성들을 이용하는 느린 형성들 아래에서, 점차 서로 얽히는 그리고 작품의 섬세한 정점 속에서 농축되는 거대한 윤곽들의 아래에서 완강하게 버티는 어렴풋한 탄생에 대한, 먼 상응에 대한, 존속들에 대한 분석이다. 탄생, 연속성, 총체성: 이들이 지성사의 위대한 테마들이며, 지성사는 이들을 가지고서 역사적 분석의 어떤 형태에 밀착된다.

그러나 고고학적 기술은 정확히 지성사에 대한 포기이며, 그 가설들과 과정들에 대한 체계적인 거부이며, 사람들이 말한 것과는 전혀 다른 역사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고고학적 분석과 지성사를 가르고 있는 분기점은 많다. 우리는 이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 네 가지의 차이만을 보여주고자 한다. 새로운의 부과에 관하여, 모순들에 대한 분석에 관하여, 비교적인 기술들에 관하여, 마지막으로 변환들의 지표화에 관하여.

 

1 고고학은 언설들 안에 숨겨져 있는 또는 드러나 있는 사유들, 표상들, 이마쥬들, 테마들, 고정관념들이 아닌 그 언설들 자체, 규칙들에 복종하는 실천들인 한에서의 언설들을 정의하고자 한다. 고고학은 언설을 그의 고유한 부피 속에서, 기념비로서 다룬다. 고고학은 해석적인 과목이 아니다. 그것은 보다 잘 숨겨져 있는 다른 언설을 찾지 않는다. 그것은 우의적임을 거부한다.

 

2 고고학은 언설들을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그들을 선행하는, 둘러싸는 그리고 뒤따르는 것에 연결시키고 연속적이고 감지하기 힘든 전이를 되찾아내고자 하지 않는다. 고고학은 언설들이 그들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바의 것에서 출발하여 그들의 현재상태에 이르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기다리지 않으며, 그들이, 그들의 고정성을 풀어버림으로써, 점차 그들의 동일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고고학의 문제란 반대로 언설들을 그들의 특이성 속에서 기술하는 것, 그들을 작동시키는 규칙들의 놀이가 어떤 점에서 다른 것들로 환원불가능한가를 보여주는 것, 그들의 외면적인 정지를 따라서 그리고 고들을 보다 잘 강조하기 위해서 그들을 뒤따르는 것에 있다. 고고학은 완만한 발전을 따라, 의견의 애매한 장으로부터 체계의 단일성이나 과학의 일정한 안정성으로 진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의견학이 아니다. 언설의 양태들에 대한 시차적 분석이다.

 

3 고고학은 작품의 지고한 모습에 좌표화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작품이 익명적 지평으로부터 떠오르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하지 않는다. 고고학은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결과적으로 전복되는 수수께끼 같은 점을 되찾고자 하지 않는다. 그것은 창조의 심리학도, 사회학도 보다 일반적인 인간하고 아니다. 작품의 통일성의 원리이자 그 존재이유인 한에서의 창조하는 주체의 심급은 고고학에서 낯선 존재이다.

 

4 마지막으로, 고고학은 사람들에 의해 사유될 수 있었고, 욕구될 수 있었고, 의도될 수 있었고, 감각될 수 있었고, 희망될 수 있었던 것을 재건하고자 하지 않는다. 고고학은 말해진 것을, 그를 그의 동일성 자체 안에 연길시킴으로써 반복하고자 하지 않는다. 고고학은 먼, 일시적인, 거의 시원으로부터 지워진 빛을 그의 순수성 속에서 다시 오게 할 독해의 애매한 경솔함 속에서 스스로 지워지고자 하지 않는다. 고고학은 다시 쓰기에 지나지 않는다. 즉 외재성의 지속적인 형태하에서의, 이미 씌워진 것의 규제된 변환. 이를 시원의 비밀 자체로의 회귀가 아니다. 언설-대상의 체계적인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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