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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고고학 / 미셸푸코 / 33 언표의 기술 / 2018.01.28.() / 닥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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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언표의 기술

 

우리는 언표를 언어학적 유형의 통일성으로서 정의하지 못했음을, 그러나 차라리 다양한 단위들을 가능케 함으로써 언표적 기능을 문제시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이 기능은 이 단위들에 의미를 주기보다는 그들을 대상들의 장과 관계 맺게 했으며, 그들에 주체를 부여하기보다는 그들에게 가능한 주체적 위치들의 집합을 열어주었으며, 그들의 한계들을 고정시키는 대신 그들을 좌표화와 공존의 영역 속에 위치지었으며, 그들의 동일성을 규정하는 대신 그들을 그 안에서 그들이 투자되고, 사용되고, 반복되는 공간 속에 살게 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두 가지 의문에 대답해야 한다. 최초로 제기되었던 언표를 기술한다는 과제를 이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언표의 이론은 앞에서 다루었던 언설적 형성들의 분석에 어떤 분석에 어떤 방식으로 편입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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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번째 과제 : 용어들을 정리할 것. 만일 자연적인 랑그로부터 효과적으로 생산된 모든 기호들의 집합을 언어학적 수행이라 부르는 것에 동의한다면 이 기호들의 집합을, 어떤 물질 위에서 그리고 어떤 규정된 형태에 따라, 나타나게 하는 개별적인 행위를 언어표현이라 부를 수 있다. 언설은 언어적인 수행들의 집합이다. 우리는 또한 그들 언어표현의 일련의 행위들로도, 어구들이나 명제들의 계열로도 이해했다. 계열의 법칙을 언설적 형성으로 이해하여 언설이라는 용어를 고정한다면 동일한 형성의 체계로부터 작성된 언표들의 집합이다. 임상의학적 언설, 경제학적 언설, 자연사적 언설, 정신의학적 언설을 예시로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의 기술적 가능성을 나타나게 하고, 그것이 적요될 수 있는 영역을 소묘하고, 그의 한계와 자율성을 정의하고자 한다. 우리는 잃어버린 총체성을 되찾고자 하는 것도, 침묵하기로 한것도, 로고스의 심오한 통일성을 회복시키려 하지 않는다.

2 따라서 언표는 문법이나 논리학에 의해 기술된 단위들에 덧붙여지는 단위가 아니다. 하나의 특이한 실존을 부여한 기능을 실행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조건들을 정의하는 것이다. 언표들에 관한 기술은 언어적 수행들의 뒤에서 또는 그들의 외관적인 표면 아래에서 어떤 숨겨진 요소, 그들 속에 숨어 있는 말 없이 그들을 통해 나타나는 비밀스러운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우회하지 않는다. 언표는 비가시적이면서 동시에 비은폐적이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생산된 기호들의 집합의 고유한 존재양식을 특성화하기에 비은폐적이다. 언표는 현실화된 언어적 수행들에만 관계하고 실재의 수준에서 다룬다. 말해진 것들에 대한, 정확히 그들이 말해진 한에서의 기술, 따라서 언표적인 분석은 역사적인 분석이다.

언표적 장의 기반 위해서 지표화될 수 있는 비언의 이 모든 다양한 양태들에, 하나의 결여를 덧붙일 필요가 있다. 결국 언표들의 출현조건들 속에는, 그들의 좌표계를 마름질하는, 양태들의 한 유일한 계열을 유효화하는, 공존의 집단들을 포위하고 가로막는, 사용의 어떤 형태들을 좌절시키는 배제들, 극한들, 간극들의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위에 있어서나 그 효과에 있어서나, 언표적 규칙성의 특징적인 결여를 그 안에서 공식화되는 은폐된 의미 작용들과 혼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3 언표가 은폐되어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시적이지 않다. 언표를 식별해 내고 그를 그 자체로서 직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시선과 태도의 어떤 전도가 필요하다. 언표적 수준은 그의 근접성 자체 내에서 소묘된다.

이유는 첫 번째, 언표는 어구나 명제와 나란히 놓일 수 있는 단위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 속에 주어지는 것 또는 그들을 제한하는 방식이 아닌, 그들이 주어진다는 사실 자체를 그리고 그들이 주어지는 방식을 특성화 한다. 우리가 그에 대해 이러저러한 사물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그것 자체 내에서 지워지는 것은 바로 존재한다의 이 의사비가시성인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언어의 의미작용적인 구조는 언제나 다른 사물에 연관된다는 것, 그곳에서 대상들이 지시된다는 것, 그곳에서 의미가 목표된다는 것, 주체가, 설사 그가 그곳에 그 자체로서 현존하지 않더라도 일련의 기호들에 의해 지시된다는 것이다. 언어는 언제나 다른 것, 다른 장소, 거리, 먼 거리에 의해 기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부재에 의해 비워진다.

언표의 의사비가시성에 대한 마지막 이유는 언표는 언어에 관한 다른 모든 분석들에 이해, 이들에 의해 분명한 것으로 제시됨 없이, 전제된다는 것이다. 언제나 유한한 방식으로 규정되는 언표적 소여가 있어야 한다. 언표적 수준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매번 중성화된다. 이 수준이 무한정 적용가능한 구조들로부터 해방시켜 줄 수 있는 대표적인 견본으로서만 정의되는 경우든, 그 뒤에 다른 파롤의 진리가 드러나야 하는 하나의 순수한 외관 속에서 흐려지는 경우든, 아니면 형식적인 관계들의 지지점의 역할을 하는 무차별적인 실체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경우이든, 분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매번 언표적 수준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사실이 그에게서 분석 자체를 위한 적합성을 빼앗아버린다.

언표로서 안어는 초험적이지도 인간학적이지도 않은 하나의 기술에 속하는 것이다. 언표적 분석은 언어학적인 또는 논리학적인 분석들에 그들이 그로부터 출발해 자신들의 무능력을 인식하고 탄핵해야 할 극한을 부여하지 않는다. 언표적 분석의 가능성은, 그것이 수립된다면, 어떤 형태의 철학적 언설이 이 언어의 존재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에게 시원을 부여하는 정초의 이름으로 언어에 대한 모든 분석들에 대립시키는 초험적인 축받이를 뽑아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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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두 번째의 문제군으로 행해야 할 것 같다. 위와 같이 정의된 언표들에 대한 기술은 우리가 앞에서 그 원리들을 소묘했던 언설적 형성들의 분석과 어떻게 일치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언설적 형성들에 대한 분석이 결국 언표들에 대한 기술이라고 어느 정도까지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말했던 것 그리고 우리가 말할 수 있었던 것을 찾느니보다는, 우리가 말했던 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을 그에 고유한 그러나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규칙성 속에서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다. 이론을 개발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정초로서 간주될 수 있은 언표들에 대한 정의로부터 언설적 형성들에 대한 분석을 이끌지 않는다. 단지 우리는 그 안에서 언표들과 그들의 분절원리, 그들이 구성할 수 있는 거대한 역사적 단위들, 그들을 기술할 수 있게 해주는 방법들이 의문에 부쳐지는 하나의 영역이, 균열이나 무손 또는 내적인 자의성이 없이, 어떻게 조직화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자 할 뿐이다. 선험적인 영역에서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동심원들에 의해 진행한다. 언설에 있어서의 불연속성의 문제와 언표의 단일성의 문제로부터 출발해, 우리는 원주 위에서 일련의 수수께끼와도 같은 분절의 형태들을 분석하고자 했다. 우리는 기술의 한 정합적인 영역을 해방시켰다고, 적어도 그 모델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정돈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이론을 권리상 정초지우기보다는 현재로서는 하나의 가능성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법적 연결들에 의해 어구들의 수준에서 묶이는 것이 아니라, 논리학적 연결들에 의해 명제들의 수준에서 묶이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적인 연결들에 의해 언어표현들의 수준에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언표들의 수준에서 연결되는 언어적 수행들의 집합들. 이는 그들의 대상들을 지배하는 일반적인 규칙성을, 그들이 말하는 바의 것들을 규칙적으로 분배하는 분산의 형태를, 그들의 좌표계들이 체계를 정의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이는 이 언표들을 지배하는 일반적인 규칙성을, 그들을 제도화하고, 받아들이고, 고용하고, 재사용하고, 서로 묶어주는 방식을, 그들을 전유의 대상들, 욕구와 관심을 위한 도구들, 전략을 위한 요소들로 만들어주는 양태를 정의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언표들을 기술하는 것, 그들이 담지하고 있는 어떤 언표적 기능을 기술하는 것, 이 기능이 실행될 수 있도록 해주는 조건들을 분석하는 것, 그 기능이 제시하는 상이한 영역들과 그들이 연결되는 방식을 답사하는 것, 이들은 언설적 형성처럼 개별화될 수 있는 어떤 것을 작동시키려는 시도이다. 언설적 형성이란 언어적 수행들의 어떤 집합을 지배하는 일반적인 언표적 체계이다. 언설적 형성들이 텍스트나 책의 거대한 수사학적 단위들에 대한 관계에 관련하여 자유롭다면, 그들이 연역적 건출물의 엄격함을 법칙으로서 가지지 않는다면, 그들이 한 저자의 작품에 동일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이 어구들의 문법적인 수준이나 명제들의 논리학적 수준 또는 언어표현의 심리학적 수준이 아닌 언표적 수준을 작동시키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출발해 우리는 이 모든 분석들의 심장부에 위치하고 있는 인련의 명제들을 개진할 수 있다.

1 우리는 언설적 형성들의 지표화가, 가능한 다른 분절원리들에 독립적으로, 언표의 특이한 수준을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표들에 대한 기술 및 언표적 수준을 조직화하는 방식에 대한 기술이 언설적 형성들의 개별화에로 이끈다는 것을 또한 말할 수 있다.

2 하나의 언표는 하나의 어구가 어떤 텍스트에 속하듯이 그리고 하나의 명제가 어떤 연역적인 총체에 속하듯이, 어떤 언설적 형성에 속한다. 그러나 한 어구의 규칙성이 한 랑그의 법칙들에 의해 정의되는 데 반해, 한 명제의 규칙성이 한 논리학의 법칙들에 의해 정의되는 데 반해, 언표들의 규칙성은 언설적 형성 그 자체에 의해 정의된다.

3 우리는 동일한 언설적 형성으로부터 생성된 한에서의 언표들의 집합을 언설이라 부른다. 그것은 하나의 수사학적인 단위를 형성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그를 위해 어떤 존재조건들의 집합을 정의할 수 있는 제한된 수의 언표들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그것이 어떻게 그리고 왜 나타날 수 있었는가가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역사적이다. 역사의 파편, 역사 자체에 있어서의 통일성과 불연속성.

4 언설적 실천이란 언표적 기능의 실행조건들을 정의했던 규칙들의 집합이다.

 

우리가 이 개념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 이들은 기술의 다른 방법들 사이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지성사의 영역을 어느 정도까지 수정하고 재분배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방향전환을 실행하기 전에 보다 안전을 기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이제 막 탐험했던 차원 속에 좀 더 머무르고자 한다. 그리고 언표적 장과 그를 분절하는 형성들에 대한 분석을 강요하는 것과 배제하는 것을 보다 명료히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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