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지식의 고고학 / 미셸푸코 / 42 시원적인 것과 규칙적인 것 / 2018.02.18.() / 닥홍

 

180218 지식의고고학 4장 2 닥홍.hwp

2 시원적인 것과 규칙적인 것

 

일반적으로 지성사는 언설들의 장을 두 종류의 가치를 지는 영역으로서 취급한다. 그 안에서 지표화 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은 오래된 것 또는 새로운 것으로, 아직 편집되지 않은 것으로 또는 반복된 것으로, 전통적인 것으로 또는 독창적인 것으로, 평균적인 유형에 부합되는 것으로 또는 평균을 벗어나는 것으로 특성화될 수 있다. 지성사는 그 수가 적은 처음으로 등장한 것과, 그 수가 많은 것의 무리에 지위를 부여한다. 이는 고립적인 점들로부터 계기적인 비약들로부터 출발해 진화의 연속적인 선을 되찾으려는 역사가에 속한다. 언표들은 한꺼번에 그리고 그 평균적인 측면에서 다루어진다. 언표들의 사건의 단일성은 중성화 될 수 있으며, 그들의 중요성으로부터 그들의 저자의 동일성 및 그들의 출현의 시공간적 동일성으로부터 길을 잃는다.

한 시대를 특성화함으로써 어떻게 다른 사유들로부터 그 사유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가: 지성사는 사유의 사건들의 계기를 기술한다. 지성사의 효과들의 간단없는 층들을 가진다.

역사의 경험적인 요소에 몰두하는, 시원의 문제들에 몰두하는 분석: 시원성들에 대한 기술은 매우 어려운 두 가지 방법론적 문제들을 제기한다. 유사성의 문제와 행정의 문제. 이러한 기술은 결국 각 언어표현들이 그 안에서 등질적인 연대기적 지표들에 따라 날짜를 취하는 일종의 유일한 거대계열을 수립할 수 있음을 전제한다. 그런데 선행이란 환원불가능한 최초의 소여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언설들을 평가하고 시원적인 것을 반복적인 것으로부터 구분하도록 해주는 절대적인 척도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선행들의 지표화는 그것만으로는 하나의 언설적 질서를 규정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반대로 사람들이 분석하는 언설에, 사람들이 선택하는 수준에, 사람들이 수립하는 계단에 복종한다.

언설의 질서에 있어, 동일성이란 무엇인가? 두 언표행위들이 정확히 동일하다는 것, 그들이 동일한 의미에 있어 사용된 동일한 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그들을 절대적으로 동일화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동일성은 결코 규준이 될 수 없다.

고고학적 기술은 계기하는 사실들이, 사람들이 그들을 원시적이고 소박한 방식으로 수립하고자 원하지 않는 한, 관련해야 하는 바의 이 언설적 실천들에 관련된다. 시원성-진부함의 대립은 적절하지 않는다. 고고학은 위계를 만들지 않고 극단적 차이를 만들지 않는다. 단지 언표들의 규칙성을 수립하고자 할 뿐이다. 규칙성이란 현존하는 의견들의 여백 속에서 또는 보다 빈번히 인용되는 텍스트들 속에서 이탈적인 언표를 특성화하는 불규칙성에 대립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언어적 수행들을 위해, 그의 실존을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또는 정의하는 언표적 기능이 수행되도록 해주는 조건들의 집합을 가리킨다. 빈도나 확률에 대한 지수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않고 출현의 현실적인 장을 특이화한다. 따라서 우리는 한 연표의 규칙성을 다른 언표에가 아니라 다른 언표들을 특성화하는 규칙성들에 대립시켜야 한다.

고고학은 발명을 추구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이 최초로 어떤 진리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된 이 순간에 무감각한 것으로 머무른다. 고고학은 이 축제의 아침들이 내뿜는 빚을 재건하고자 하지 않는다. 언표들의 장은 창조적인 순간들에 의해 분절화된 관성적인 시간대들의 집합이 아니라 그것은 철저히 활동적인 하나의 영역인 것이다. 언표적 규칙성들에 대한 이러한 분석은 아마도 언젠가는 보다 신중히 탐색되어야 할 다양한 방향들로 개방된다.

1 규칙성의 어떤 형태는, 새로운 것과 그렇지 않는 것 사이에 차이를 형성하는 것이 필연적이지도 가능적이지도 않은 방식으로, 언표들의 집합을 특성화 한다.

우리가 문제삼는 것은 구분적인 역사적 씨줄들 속에서 취해진, 상이한 유형들의 수준들과 사건들이다.

2 탐구의 또 다른 방향 : 언표적 규칙성들에 내재적인 위계들. 우리는 어떤 언표도 비능동적인 것으로, 최초의 언표에 대한 희미한 복사 또는 그림자로 간주될 수 없음을 보았다. 모든 언표적 장은 규칙적인 동시에 깨어있다. 이 규칙들은 하나의 언어표현 속에 주어지지 않으며, 언어표현들을 관통하의 그들의 공존의 공간을 구성한다. 우리는 언표적 파생의 나무를 기술할 수 있다. 그 가장 아래에는, 형성의 규칙들을 그들의 가장 넓은 외연 속에서 작동시키는 언표들이, 그 가장 위에는 그리고 일련의 분지화를 거친 후에는, 동일한 규칙성을 작동시키는 그러나 보다 섬세하게 분절된, 그의 외연에 있어 보다 제한된 그리고 국소화된 언표들이 자리잡은 나무. 고고학은 우선 뿌리 옆에, 주요 언표들로서 관찰가능한 구조들의 그리고 가능한 대상들의 장에 대한 정의에 관련되는 것들, 기술의 형태들과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지각적 코드들을 규정하는 것들, 특성화의 가장 일반적인 가능성들을 나타나게 하는 것들 그리고 그와 같이 해서 구성될 개념들의 모든 영역을 여는 것들, 마지막으로 하나의 전략적 선택을 구성함으로써 궁극적인 최대한의 선택에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들을 놓을 것이다. 그리고 잔가지들의 끝에 또는 적어도 여러 가지들의 얽힘에, 발견들, 개념적 변환들, 새로운 개념들의 출현, 기술들의 활용을 위치시킬 것이다. 주요 언표들로부터 이러한 편자는 공리들로부터 출발해 실행되는 연역과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또한 그 의미작용들이 경험들이나 정학한 개념화들 속에서 조금씩 전개될 철학적 핵의 또는 일반적 개념의 발아와 동일시되어도 안된다. 긔의 결과들을 조금씩 전개시킬 그리고 그의 가능성들을 조금씩 피어나게 할 발견으로부터 출발하는 어떤 심리학적 생성으로 간주되어도 안된다.

언설적 형성에 관한 분석 속에서 총체화적인 기간화의 시도를 보는 것보다 잘못된 것은 없을 것이다. 어떤 순간으로부터 출발해서 그리고 어느 시간 동안, 모든 사람들이 표면의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같은 방식으로 사유하리라는 것, 다형적인 어휘를 통해서 같은 것을 말하리라는 것, 그들이 그 모든 의미에서 무차별적으로 주파할 수 있을 일종의 거대언설을 생산해 내리라는 것. 반면 고고학은 그의 고유한 시간적 마름질을 지니는, 그렇지만 그 마름질에 의해 사람들이 언어 속에서 지표화할 수 있는 동일성과 차이성의 모든 다른 형태들을 실어나르지는 않는 언설적 등질성의 수준을 기술한다. 사람들이 시대라 부르는 이 혼동스러운 단위 속에서, 고고학은 개념들의 시간 위에서, 이론적인 단계들 위에서, 언어표현의 단계들 위에서, 그리고 언어학적 진화의 단계들 위에서 서로 연결되는 그러나 서로 혼동되지는 않는 언표적 기간들을 그들의 특이성과 함께,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