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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역사》 5장 “정신이상자들” 발제
알료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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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 시대에 서로 나란히 놓이는 두 가지 커다란 광기의 경험에는 제각기 고유한 연대기적 지표가 있다. 하나는 치밀한 경험이었을 것이고 다른 하나가 일종의 거칠고 적절하게 표명되지 못한 의식이었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두 형태는 각각 일관성 있는 실천으로 구현되지만 하나는 서양 비이성의 가장 근본적인 여건을 이어받았고 다른 하나는 고전주의 시대의 고유한 창안물이라는 것이다.
정신이상자를 감금한 명분을 일관성 있는 질병학에 따라 분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실 수용의 명분으로 내세워진 문구들에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질병의 전조를 알아보기는 어렵다. 등록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피수용자들에 대한 언급은 “집요한 소송광”, “심술궂고 트집잡기를 좋아하는 사람”, “격문 부착자” 등이다. 이 문구들로 지시되는 것은 질병이 아니라, 극단적 ‘결함’으로 인식되었을 광기의 형태다. 광기에 대한 이해방식은 광기가 장애로만 나타나는 어떤 도덕영역에 연결돼 있는 듯하다.
사례 1) 1704년 바르주데라는 신부가 수용되는데, 그는 70살로서 다른 정신이상자들처럼 취급하기 위해 가두어졌다. 고리대금을 하는 그는, 성직과 교회의 명예에 추악하고 극단적으로 훼손했다. 그가 정신이상자인 것은 이성의 사용법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성직자로서 가져야 할 도덕 영역의 바깥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판단에서 드러나는 것은 질병 규정의 명령을 최종적으로 내릴 수 없는 무능함도 아니고 광기를 도덕적으로 정죄하는 것도 아닌,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를 윤리의 형태로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합리주의는 도덕생활이 바르지 않고 의지가 사악하다는 점에 비추어 인식될 그러한 광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듯하다. 결국 광기의 비밀은 이성의 온전한 상태가 아니라 의지의 질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사례 2) 사드로 인해 루아예-콜라르의 의료의식에 문제가 제기되기 한 세기 전인 18세기 한 여성의 사례를 보자. “남편의 이름이 보두앵인 16살의 여자가 남편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규제할 법은 없다고, 누구라도 자신의 마음과 몸을 자유롭게 소유할 수 있고, 마음과 몸 중에서 어느 하나만 주는 것은 범죄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리관 아르장송은 이 여자를 다른 정신이상자들처럼 취급한다. 우리는 19세기에 도덕성 장애(정상적인 도덕 관념의 부재 또는 문란)라 불릴 것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다.
사례 3) 에스파냐 왕위계승 전쟁 시기에 알퓌테르 백작이라는 사람이 바스티유에 갇혔는데, 그의 실명은 두슬랭이었다. 그는 카스티야 왕위의 계승자로 자처했다. “그러나 그의 광기가 아무리 지나친다 해도, 그의 교활함과 냉혹함은 훨씬 정도가 더 심하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가 일주일마다 자기에게 나타나고, 하느님이 자주 자기 자신과 얼굴을 맞대고 말을 한다고 맹세하듯 단언한다. 생각건대 이 수인은 가장 위험한 정신이상자처럼 평생 동안 구빈원에 감금되어야 하거나 바스티유에 갇혀야 한다.”
광기와 범죄 사이에 배제관계가 아니라 광기와 범죄를 묶는 내포관계가 엿보인다. 광기와 범죄는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취급하게 되는 의식의 내부에서, 그리고 감옥이나 구빈원에 의해 강요되는 상황에 따라 서로 관계를 맺는다.
수용의 세계에서는 이성이 광기에 의해 실질적으로 해를 입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수용에 의해 드러나는 그러한 광기의 경험에서 의지가 이처럼 문제시된다는 것은 보존될 수 있었던 문서들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수용의 동기와 방식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광기와 악 사이의 모호한 관계, 르네상스 시대처럼 세계의 모든 은밀한 힘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라는 개인적 역량을 가로지르는 관계 전체이다. 이런 식으로 광기는 도덕 세계에 뿌리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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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가 회의의 체계에 끼어들지 못하는 것은 광기가 언제나 현존하고 이와 동시에 의심하려는 의도와 처음부터 이 의도를 북돋우는 의지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이성에 관한 애초의 기획에서 학문의 첫 번째 토대로 이르는 과정 전체는 광기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면서,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는 단호한 의지, “오직 진리 탐구에만” 열중하려는 의도와 다른 것이 아닌 윤리적 결의에 의해 광기에서 끊임없이 벗어난다. 잠과 망상에 빠져드는 것의 영속적 유혹이 있는데, 이것은 이성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지만, 진실을 찾고자 하는 언제나 반복되는 결심 때문에 사라진다.
고전주의적 이성은 진실이 완전히 밝혀진 끝에 도덕규범의 형태로 윤리와 마주치는 것이 아니다. 윤리는 비이성에 반대하는 선택으로서, 미리 준비된 모든 사유의 시초부터 현존하고, 성찰을 따라 한없이 연장되는 그 표면은 이성의 주도권 자체인 자유의 경로를 나타내는 것이다.
18세기에 헌신적으로 유행을 쫓는 여자나 자비심의 기미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제가 정신이상자로 수용될 때, 이런 방식으로 광기를 정죄하는 판단은 도덕적 전제를 감추고 있지 않다. 단지 이성과 광기의 윤리적 분할만을 드러낼 뿐이다. 19세기에 통용되는 의미의 “도덕” 의식으로 무장하게 되는 사람들만이 이전 시대에 광인들에게 가해진 비인간적 취급에 분노한다. 피넬의 시대에 이르러 이성과 윤리의 근본적 관계가 도덕과 이성의 부차적 관계로 뒤바뀌고 광기가 외부로부터 이성에 초래된 무의지적 재난에 지나지 않게 될 때에야, 구빈원에서 광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분명히 밝혀지게 되고 이러한 상황에 대해 사람들은 두려움 섞인 혐오감을 내보이게 된다. 사람들은 무고한 이들이 죄인으로 취급되었다는 사실에 분개하게 되지만, 이는 광기가 인간의 구성요소라는 지위를 결국 인정받았다거나 정신병리학이 역사상 처음으로 야만적 선사시대에서 벗어나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광기에 대한 본래의 관계를 변화시켰고 인간 자신의 사회적 능력에 비추어서만, 그리고 인간에게 일어나는 질병이라는 사고로만 이 관계를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고전주의 시대의 인간이 이성을 구성하고 따라서 인간 자신을 구성하는 선택과 광기의 가능성이 동시대의 현상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광인들을 교도소에 방치하는 것을 비인간적 처사로 판단한다. 그래서 17세기나 18세기에 광기를 인간적으로 다루는 것이 전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광기는 인간으로 하여금 합리적 본성의 자유로운 실천을 시작하게 만드는 선택의 이면을 형성하는 당연히 비인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광인들이 경범죄자들 사이에 놓이는 현상에는 무분별도 혼동도 없다. 거기에는 광기로 하여금 고유한 언어를 말하도록 하려는 확고한 의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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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문란, 정신이상, 실질적 광기, 가장된 광기, 섬망과 거짓말은 사실상 동일한 곳에서 탄생하고 당연히 동일한 취급을 받는다. 그렇지만 정신이상자들은 수용의 세계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지위는 경범죄자와 같은 취급을 받는 것으로 귀착되지 않는다.
사례 4) 15세기에 질 드 레는 “이단자, 다시 이단에 빠진 자, 마술사, 남색가”였고, 이러한 죄목으로 고발된 자로서, “만 명의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한” 이 죄들을 결국 재판이 아닌 고해를 통해 자백한다. 그는 재판관들 앞에서 라틴어로 이 자백을 되풀이한다. 그리고나서 방청객들에게 들려준 다음 그에 의해 저질러진 죄들을 고백한다. 17세기까지 가장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죄악은 확연하게 드러날 경우에만 상쇄되거나 억제될 수 있다. 빛 속에서 고백과 처벌이 실행되는 것만이 악을 생겨나게 하는 어둠을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악은 극치에 이르러 사라지기에 앞서 반드시 대중 앞에서 고백되고 표명되어야 한다는 악의 순환적 실현과정이 있다.
반대로 수용은 비인간적인 것이 수치만을 유발한다는 식의 의식을 보여준다. 전염력을 갖고 추문을 퍼뜨릴 수 있는 악의 양상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공개되면 될수록 한없이 증가할 것이다. 망각만이 이것들을 일소할 수 있다. 한 독살 사건에 대해 퐁샤르트랭은 공개재판소가 아니라 은밀한 보호시설을 권장하는 것이 그 예다. 본보기가 될 위험은 차치하더라도, 가문의 명예와 종교의 명예를 고려해 환자에게 수용시설을 권하는 것이다.
추문의 위험이 사라지고 가족이나 교회의 명예가 더 이상 손상되지 않을 때 석방명령이 내려진다. 바르주데 사제가 늙고 병들어 추문의 가능성이 사라졌을 때, 아르장송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는 마비상태가 계속 되고 있고, 글을 쓸 수도 서명할 수도 없다. 그를 풀어주는 것이 정의와 자비에 합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비이성에 가까운 모든 악의 형태들은 철저하게 감추어져야 한다.
이러한 은폐의 대상에 예외가 하나 있는데 바로 광인의 경우가 그것이다. 정신이상자를 보여주는 것은 아마 중세부터 매우 오래된 풍습이었을 것이다. 1815년 베들리헴 구빈원은 일요일마다 일 페니를 받고 난폭한 미치광이를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수입이 거의 400파운드에 달했다.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의 시기까지도 일요일이면 비세트르에서 산책하면서 심한 정신이상자들을 구경하는 것은 부르주아의 소일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광기는 조용한 보호소에서 구경거리로 떠오르고 모든 이의 즐거움을 위한 추문이 된다. 비이성은 수용시설의 폐쇄성으로 인해 감추어져 있지만, 광기는 계속해서 무대 위로, 찬란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19세기 초까지, 루아예-콜라르가 분개하는 시기까지, 광인들은 여전히 괴물로, 보여질 가치가 있는 존재자 또는 사물로 남아 있게 된다.
수용은 비이성을 숨기고 비이성이 불러일으키는 수치를 드러내지만, 광기를 명백히 보여주고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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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포르트는 <정신병자 담당부서에 관한 보고서>에서 비세트르의 숙소들을 18세기 말에 실재했던 모습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가구라 할 만한 것은 밀짚이 깔린 초라한 침대밖에 없어서 머리, 발, 몸통을 벽면에 밀착하고 누워야 하는 불우한 사람은 잠을 잘 때마다 그 돌무더기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물에 축축이 젖지 않을 수 없었다.”, “밤이 되면 쥐들은 거기에 갇혀 있는 불행한 사람들에게로 달려들어 여기저기를 조금씩 물어뜯었다. 광인들은 발, 손, 그리고 얼굴까지 물어뜯긴 자국으로 뒤덮었다.”
정신이상자들이 위험하게 처신하는 경우에 그들은 속박체계에 들어가게 된다. 그들은 통상적으로 벽과 침대에 사슬로 묶인다. 베들리헴에서 흥분한 광녀들은 쇠고리에 의해 긴 회랑의 벽에 묶인 상태로, 거친 모직으로 된 겉옷만을 걸치고 있었다.
이러한 관행들은 극단적인 폭력성을 띠게 될 때, 실행해야 할 처벌에 대한 의식에 의해서도, 교정의 의무에 의해서도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신병자들의 폭력행위와 광포한 발작에 대비한 안전체계는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그러한 발작은 우선 사회적 위험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발작이 동물적 방종의 모습으로 상상된다는 점이다. “광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매우 실증적 내용을 갖고 있다.
광기에 동물성이 현존한다는 생각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질병의 징후, 질병의 본질로 여겨지게 된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에 이러한 현존은 특이한 섬광을 발하면서 “광인은 병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광인은 동물성으로 인해, 인간에게 있을 수 있는 연약함, 불안정, 병약함으로부터 멀어진 존재다.
그리하여 광기는 예전보다 더 의학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 것이 되고, 교정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폭발한 동물성은 엄격한 조련과 우둔화를 통해서만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광인-동물의 주제는 18세기에 때때로 정신병자들에게 강요하려고 한 교육에서 실질적으로 구현되었다. 프랑스 남부에 자리 잡은 수도원 시설에 입원한 정신이상자는 “변하라는 분명한 명령”을 통지받고, 잠자리에 들려고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탈선의 태도를 버리지 않는 탓에 이튿날 쇠힘줄 채찍으로 10번 내리치는 형범을 받게 될 것이라는 통고가 그에게 전해졌다.” 반면에 굴복하고 순종할 경우 “구내식당에서 교육담당자들과 식사를 하는” 은전을 베풀 터지만, 조금이라도 잘못할 경우 “손가락을 막대기로 칠 것”이라는 경고가 덧붙여졌다. 이처럼 수용의 모든 비인간적 관행을 설명해주는 야릇한 변증법을 통해, 광기의 자유로운 동물성은 짐승 같은 것을 인간적인 것으로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순전히 동물적인 것으로 인간을 되돌리는 그러한 조련에 의해서만 제어될 뿐이다.
광기의 이러한 동물성에서 기계론적 심리학, 그리고 광기의 형태들을 동물계의 커다란 구조에 따라 분류하거나 판단할 수 있다는 주제를 연역하게 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러나 17~18세기에, 광기의 모습을 결정하는 동물성은 결코 광기의 현상들에 대한 결정론적 태도를 낳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그러한 동물성은 광기를 광포함이 거세게 닥치는 ‘예측 불가능한 자유의 공간’ 안에 자리 잡게 만든다. 결정론이 광기를 좌우할 수 있다 해도, 이것은 속박, 처벌 그리고 엄격한 조련 형태 아래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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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을 통해 비이성적인 것의 부도덕성에서 추문을 면하게 하려고 애쓴 시대에 수용에 의해 고양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광기의 동물성이다. 광기와 비이성의 다른 형태에서 뒤섞이거나 동화된 것은 사실이라 해도 이 양자 사이에서 고전주의 시대에 확립되는 거리는 여기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17세기부터 가장 일반적 의미에서의 비이성은 더 이상 교훈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기독교 체험에 그토록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십자가의 광기라는 커다란 주제는 17세기에 장세니즘과 파스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기 시작한다. 희생이라는 위대한 비이성을 통해 이성이 상실되도록 인간의 이성에 대해 오만과 확실성의 포길 요구하는 것은 이제 문제로 대두되지 않는다. 고전주의 시대의 기독교가 십자가의 광기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단지 거짓 이성만을 모욕하고 참된 이성의 영원한 빛을 분출시키기 위해서이다.
광기와 기독교의 타락으로 인한 추문은 파스칼이 여전히 단호하게 비판하고 용감하게 반대한 바로서, 오래지 않아 기독교 사상에 대해, 그만큼 많은 맹목적 영혼을 보여준다는 의미를 제외하고는 어떤 의미도 갖지 않게 된다.
기독교도들은 기독교의 비이성을 강생한 신의 지혜와 동일하게 된 이성의 주변부로 밀어낸다. 그리스도가 광기에서 비롯된 영광을 되찾도록 하기 위해서는, 추문이 또 다시 신을 현현케 하는 힘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비이성이 더 이상 이성의 공공연한 수치가 아니도록 하기 위해서는, 포르-루아얄 이후로 두 세기를, 도스토예프스키와 니체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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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가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비이성과 관련해서일 뿐이다. 비이성은 광기의 매체이다. 오히려 비이성은 광기의 가능공간을 규정한다고 말하자. 고전주의 시대의 인간에게 광기는 비이성의 자연적 조건, 심리적이고 인간적인 뿌리가 아니라, 단지 비이성의 경험형태일 뿐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결정론 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둠 쪽으로의 열림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합리주의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어쨌든 우리의 실증주의보다는 더 능숙하게 비이성의 은밀한 위험, 절대적 자유의 그 위협적 공간을 인식할 줄 알았다.
니체와 프로이트 이래 현대인은 인간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서 허약함의 징후, 비이성의 위협이 나타나는 징후를 읽어낼 수 있음으로 해서 모든 진리에 대한 비판지점을 밑바닥으로부터 찾아내는 반면에, 17세기의 인간은 이성이 최초의 형태로 표현되는 확실성을 사유의 자율적이고 직접적인 현존에서 발견한다.
우리가 정신병 환자라고 부르게 되는 사람들이 방종한 사람, 신성모독자, 방탕자, 낭비벽이 심한 사람과 뒤섞인 것은 광기, 달리 말하자면 광기의 독특한 결정론과 광기의 무구한 상태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이 아니라, 충만한 권리가 여전히 비이성에 부여되었기 때문이다. 광인들을 구제하는 것, 광인들을 이와 같은 연루 상태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낡은 편견을 요령있게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고 고전주의 시대의 합리주의에 가장 첨예한 의미를 부여했던 비이성의 감시를 포기함으로써 ‘심리의 정지 상태’로 빠져드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정신의학도 마찬가지겠지만, 19세기의 정신의학은 18세기의 관행을 폐지했다 해도, 고전주의 시대의 문화 전체에 의해 새롭게 정립된 비이성과의 그 모든 관계를 은밀히 이어받아 변모시켰고 변위시켰다. 19세기와 우리 시대에 정신의학을 담당한 이들은 정신의학의 병리학적 객관성에 입각해서만 광기에 대해 말할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비이성의 윤리와 동물성의 추문이 여전히 깃들여 있는 광기를 대상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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