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포스트 모던의 조건 / 리오타르 / 유정완 옮김 / 2018년8월 개역판 / 민음사
9. 지식을 정당화하는 서사들
p117 : 두 가지 주요 정당화 서사를 검토해 보자.
첫 번째 서사의 주체는 자유의 주인공으로서의 인류이다. 모든 국민들은 과학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사회적 주체가 과학 지식의 주체가 아니라면 그 까닭은 과학지식이 성직자들과 폭군들에 의해 금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과학에 대한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118) 따라서 나폴레옹 제국의 정책이 고등교육 기관을 일차적으로는 국가 관료의 양성소로, 그 다음으로 시민 사회 경영자의 양성소로 지정했다 해도 그것은 새로운 지식 영역을 대중에게 전파함으로써(119)민족 전체가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진보의 길로 이끌기 위해 ‘민족’의 이름으로 ‘국민’의 교육을 직접적으로 통제할 때 국가는 언제나 자유의 서사에 의존한다.
정당화의 두 번째 서사는 1807년부터 1810년 사이 베를린 대학교의 설립과 함께 나타났다. (121) 홈볼트의 계획은 개인의 지식 획득뿐 아니라 완전히 정당화된 지식과 사회의 주체도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123) 지식의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사유하는 정신이다. 그것은 혁명 이후의 프랑스처럼 국가에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체계에 구현된다.
철학은 실험실의 개별 학문과 대학 이전의 교육기(124)관에 흩어져 있는 지식의 통일성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 (124) 헤겔의『백과사전』은 이 같은 총체화 작업을 실현하려는 시도였다. (125) 메타 주체는 사유하는 대학에 깃들어 있다. 실증과학과 국민은 메타 주체의 조잡한 변이에 불과하다. (126) 독일 관념론은 하나의 메타원리에 의존하는데, (...) 이 관점에서 보면 지식은 일차적으로 자기 지식 속에서 정당성을 발견하며, 국가가 무엇이고 사회가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도 다름 아닌 지식이다. 그러나 지식이 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127)것은 차원을 바꿈으로써, 다시 말해 대상(자연, 사회, 국가 등)에 관한 단순한 실증적 지식이기를 그만두고 그에 덧붙여 지시 대상에 대한 지식의 지식, 즉 사유적 지식이 되면서이다.
p128 : 오늘날 지식의 지위에 불균형이 일어나고 그 사유적 통일성이 깨지면서 정당성에 대한 첫 번째 해석이 새로운 활력을 얻고 있다. (134) 메타 담론의 본향인 대학은 국민에게 빚을 지고 있는데, 국민의 역사적 사명은 일하고 싸우고 앎으로써 그 메타 담론의 결실을 맺는 것이다. 이 같은 국민-주체의 소명은 인류를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진정한 정신세계’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 세계는 ‘국민의 대지와 피의 힘 속에서 발견되는 가장 심오한 보존의 힘’이다. 이처럼 지식과 그 제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인종과 노동의 서사를 정신의 서사에 끼어 넣는 것은 이중적으로 불행하다.
10. 탈정당화
p136 : 포스트모던 문화인 오늘날의 사회와 문화에서 지식의 정당화 문제는 이와 다른 양상을 띤다. 이제 거대 서사는 어떤 통합양식을 사용하든 관계없이, (...) 그 신뢰성을 상실했다.
기술발전은 강조점을 행위의 목적에서 수단으로 이동시켜 버렸다.
(137) 우리는 먼저 19세기 거대서사에 내재해 있던 탈정당화와 허무주의의 씨앗을 찾아내야 한다. (138) 무엇보다도 우선 사유 기제는 지식과 애매한 관계를 유지한다.
사유는 실증과학의 억압 위에 유지된다.
자신을 정당화하지 못한 과학은 진정한 과학이 아니다. 만약 과학을 정당화하려는 담론이 ‘저속한’ 서사(139)같은 과학 이전의 지식 형태를 띠고 있다면, 그 담론은 가장 낮은 단계, 다시 말해 이데올로기나 권력의 도구 단계로 떨어진다.
“하나의 과학 진술은 보편적 발생 과정에서 제 위치를 차지할 경우에 한해서만 지식이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진술 자체는 이 진술이 정의하는 그런 지식인가?
이 진술이 해야 할 일은 그러한 보편적 발생과정(정신의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과 이 진술 자체가 그 과정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뿐이다. (140) 니체는 과학의 진리 요구가 자기 자신을 향할 때 생긴 결과가 ‘유럽 허무주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141) 우리에서 여기에서 얻는 것은 정당화 자체에 대한 요구에서 야기되는 탈정당화 과정이다.
p142 : 낡은 학과들은 여러 종류의 연구소나 재단들로 분할되며 대학은 사유적 정당화의 기능을 상실한다.
이것과 다른 정당화 과정, 즉 계몽주의에서 유래된 해방기제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 침식도 사유적 담론에서 작동하는 침식 못지않게 광범하다.
해방기제의 두드러진 특징은 과학과 진리의 정당화 근거를 윤리적, 사회적, 정치적 실천에 참여하는 대화자들의 자율성 속에 둔다는 점이다. (144) 과학은 사유가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정당화할 능력이 없다. (146) 어느 누구도 이 언어들을 전부 다 말할 수 없으며, 이 언어들을 묶어 줄 보편적 메타 언어도 없다. 체계-주체의 기획은 실패했으며 해방의 목표는 과학과 무관하다. 우리는 모두 이러저러한 학문 분과의 실증주의에 갇혀 있다.
(148) 비트겐슈타인의 강점은 빈 학파가 발전시킨 실증주의를 선택하는 대신 언어 게임이론을 탐구하면서 수행성에 근거하지 않는 정당화 모델을 확립했다는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포스트모던 세계에 관계된 모든 것이 오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실한 서사에의 향수를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그들이 야만으로 전락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이 야만에서 구제되는 것은 자기 자신들의 언어적 실천과 상호 의사소통에서만 정당화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이다.
11. 연구와 수행성을 통한 그 정당화
p150 : 각각의 언어는 자기 나름의 규칙을 형성해야 하며 수신자가 그 규칙들을 수용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하나의 공리가 정의되는데, 이 공리는 제시된 언어에서 사용되는 상징의 정의(...) 수행될 수 있는 작용의 열거를 포함한다.(151)하지만 하나의 공리가 무엇을 포함해야 하고 또 실제로 무엇을 포함하고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아는가?
특정한 언어가 공리의 형식적 조건들을 충족하고 있는지를 결정해줄 메타 언어가 있어야 한다. 그 메타 언어는 논리이다. (155) 보편적 메타 언어의 원칙은 지시적 진술의 진리성을 주장할 수 있는 형식적, 공리적 체계의 다양성 원칙으로 대체된다. 이들 체계는 보편적이지만 일관되지는 않는 메타 언어에 의해 기술된다. 고전 과학과 근대 과학에서 역설로, 심지어 배리로 치부되는 것들이 이들 일부 체계에서는 새로운 설득력을 얻게 되고 전문가 사회에서 받아들여진다. 내가 여기에서 이용하는 언어게임방법은 이러한 사상적 흐름 속에서 적절한 지위를 주장할 수 있다.
p166 : 과학과 기술의 관계는 역전되었다. 여기에서 논증의 복잡성이 문제가 되는데, 그것은 특히 논증이 더 세련된 증거 확보 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며 그 결과 수행성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연구 기금은 이와 같은 권력 강화의 논리에 따라 국가, 기업, 그리고 국영 기업에 할당된다. 간접적으로라도 체계의 수행성 최적화에 기여한다고 주장할 수 없는 연구 분야들은 자본의 유통에서 버림받게 되며 쇠퇴할 수밖에 없다.
12. 교육과 수행성을 통한 그 정당화
(170)탈정당화의 문맥에서는 대학과 고등 교육 기관들이 더 이상 이상이 아니라 기술을 양성을 할 것을 요구받는다.
지식의 전수는 이제 더 이상 민족의 해방을 지도할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삼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요구하는 화용적 지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적절하고 충분하게 수행할 수 있는 게임 참여자들을 사회 체계에 공급해 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174) 이 경우 지식 전수의 목적은 이들의 기술과 승진 기회를 증대시켜 주거나, 아니면 그들이 직업 지평을 넓히고 동시에 기술적 윤리적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정보나 언어, 그리고 언어 게임을 습득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180) 데이터 뱅크는 포스트모던 인간의 자연이다.
(지식생산)능력이 똑같다면 여분의 수행성은 결국 상상력에 달려 있게 된다. 상상력은 게임 참여자가 새로운 수를 두게 할 수도 있고 게임규칙을 바꾸게 할 수도 있다. (186) 탈정당화 과정과 수행성 기준의 지배가 대학 교수의 시대에 조종을 울리고 있다. 한 명의 교수는 확립된 지식을 전수함에 있어 메모리 뱅크 네트워크보다 뛰어나지 못하며, 새로운 수나 새로운 게임을 상상하는 데 있어서도 학제 간 팀들보다 뛰어나지 못하다.
13. 불안정성 추구로서의 포스트모던 과학
p187 : 우리는 다소 익살스럽게 과학지식이 ‘위기 해결’, 즉 결정론의 위기 해결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결정론은 수행성을 통한 정당화가 기초해 있는 가정이다. (188) 과학은 실증주의적 효율성을 통해 전개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새로운 이론과 가설, 그리고 새로운 진술과 관찰에 언제나 반드시, 그것도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정당성의 문제이다. (...) 과학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과학 자체이기 때문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것은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정의인지 묻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실증주의적으로 이해하면서 독일 관념철학자들처럼 과학을 정당화되지 않은 지식 혹은 불완전한 지식으로 격하하는 태도이다. “당신의 주장과 증거는 어떤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은 과학 지식의 화용법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제기된 주장과 증거의 수신자를 새로운 주장과 증거의 발신자로 바꾸어 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과학 담론의 쇄신과 과학자 세대의 교체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199)자연과학에서 ‘자연’이란 (말은 없지만 무수히 많이 던져진 주사위처럼 예측 가능한) 지시 대상으로서, 과학자들은 그 지시 대상에 관해 서로 지시적 발화(상대방과 겨루는 수)를 교환한다. 인문과학에서는 이와 반대로 지시대상(인간)이 게임의 참여자로 말을 하며 과학자의 전략에 맞서 나름대로의 전략(아마도 복합적 전략)을 개발한다. 인문과학에서 과학자가 대면하는 우연은 대상이나 무관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행동이나 전략에 의한 것, 다시 말해 경기적인 것이다. (205) 포스트모던 과학은 결정 불가능한 것, 정확한 통제의 한계, 불완전한 정보로 특징지어지는 갈등, ‘프랙타’, 파국, 화용적 역설과 같은 것들에 관심을 가짐(206)으로써 스스로의 전개를 불연속적이며 파국적이고 교정 불가능하며 역설적인 것으로 이론화한다.
포스트모던 과학은 알려진 것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것을 생산한다. 그것은 또 수행성 극대화와 아무 관련이 없으며, 우리가 배리라고 이해하는 차이에 기초한 정당화 모델을 제시한다.
“게임이론의 유용성은 (...) 아이디어의 생산자로서 유용하다.”
(207) 과학적 방법이란 없으며, 과학자란 그 무엇보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유일한 차이는 과학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검증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14. 배리에 의한 정당화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거대 서사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러나 방금 살펴본 것처럼 작은 서사는 여전히 상상적 발명의 본질적 형태로 남아 있다.
(209) 합의가 갖는 유일한 정당성은 실질적 목표, 즉 체계를 정당화해 주는 권력을 성취하기 위해 이용되는 수단으로서일 뿐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전적으로 배리에 기초한 정당화 형식의 가능성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다. 혁신(210)과 배리는 구별되어야 한다. 혁신은 체계의 통제 아래 놓여 있거나 적어도 체계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데 이용될 뿐이다. 배리는 지식의 화용론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수이다. 어떤 수의 중요성은 흔히 한참 뒤에야 인식된다. 실제로 배리가 혁신으로 바뀌는 경우가 필연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아주 흔히 일어난다는 사실이 우리의 가설에 어려움을 발생시키진 않는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이제 이견이다. 합의는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평이다. (212) 복잡성의 축소는 체계의 권력 행사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 만약 모든 메시지가 개인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다면, 올바른 선택을 내리기 전에 고려해야 할 엄청난 양의 정보가 결정을 상당히 지연시킬 것이고 따라서 수행성을 저하시킬 것이다. 요컨대 속도는 체계의 권력요소이다. (213) 행정절차는 원활한 수행을 위해 체계가 필요로 하는 것을 개인들이 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서 텔레마티크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할지는 눈에 뻔하다.
p213 : 수행성 기준은 나름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원칙적으로 형이상학 담론에 대한 집착을 배제한다. (214) 수행성 기준은 또 모든 언어 게임, 심지어 기존 정규 지식의 범위에 속하지 않는 게임까지도 자기 지식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다. 그것은 일상적 담론을 일종의 메타 담론으로 끌어올리는 경향을 보여준다. (215) 나는 또 가혹성이 체계의 한 가지 장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권리는 곤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곤궁의 완화가 체계의 수행성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216) 기술관료들은 사회가 자신의 욕구라고 지적하는 것들을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들은 욕구가 새로운 기술로부터 독립된 변수들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가 자신의 욕구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218) 테러는 언어 게임에서 함께 게임을 하는 참가자를 제거하거나 제거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획득하는 효율성을 의미한다. (220) 과학이 변별적인 한, 과학의 화용법은 안정된 체계의 반대 모델을 제공한다.
p222 : 현대 과학 화용법이 갖는 변별적, 상상적, 배리적 활동들의 기능은 이들 메타 규범적 발화들(과학의 전제들)을 지적하고 게임 참여자들에게 다른 게임도 받아들일 것을 요청하는 일이다. 이 같은 요청을 허용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유일한 정당화는 그것이 아이디어, 다시 말해 새로운 진술들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회의 화용법은 과학 화용법이 갖는 단순성을(223)갖지 않는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이형적 발화범주들(지시적, 규범적, 수행적, 기술적, 평가적 발화 등의) 그물망이 서로 얽혀 만들어진 하나의 괴물이다. 이 모든 언어 게임에 공통되는 메타 규범적 발화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어떤 특정 순간의 과학 공동체에 작동하는 것과 같은 수정 가능한 합의가 사회 전체에 유통되는 진술의 총체를 규제하는 메타 규범 전체를 포괄할 수 있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우리가 하버마스의 입장을 따르는 것은 가능하지도 신중하지도 않은 것 같다. (225) 합의는 토론의 목표가 아니라 토론의 특정 상태에 불과하다. 반대로 대화의 목표는 배리이다. 이 두 가지 관찰(규칙의 이질성과 이견의 추구)은 아직도 하버마스의 작업 밑에 깔려 있는 하나의 신념을 파괴한다.
(226) 이것은 명백히 테러의 포기를 의미한다. 테러는 언어 게임이 동형적이라고 가정하고 또 그렇게 만들려고 애쓴다.
합의는 현재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궁극적으로 철회될 수 있어야 한다. (227) 체계는 유동성이 크고 비용이 적게 들 뿐 아니라 그에 수반되는 동기의 창조적 혼란 때문에 잠정적 계약을 선호한다.
어쨌든 여기에서 체계를 대신하는 하나의 순수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잠정적 계약을 지향하는 경향이 모호한 쪽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한다. 그것은 체계의 목표에 전적으로 복속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계는 그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체계 내에 또 다른 목표가 있음을 입증한다.
이 목표의 가장 큰 효과가 바로 규칙의 채택을(228) 타당하게 하는 것, 즉 배리의 추구이다.
사회의 컴퓨터화가 이 방향을 취할 수 있도록 우리가 택해야 할 노선은 원칙적으로 아주 단순하다. 대중에게 메모리 뱅크와 데이터 뱅크에 접근할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 언어 게임은 어떤(229)주어진 순간에 완벽한 정보 게임이 될 것이다.
판돈은 지식(아니면 정보라고 해도 좋겠다.)이고 지식의 보유량인 언어의 가능한 발화는 무진장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의에 대한 욕망과 미지의 것에 대한 욕망을 모두 존중하는 정치학의 윤곽을 제시해 준다.
'세미나 발제문 > 랑시에르 & 포스트모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드리야르와 시뮬라시옹 - 배영달 (0) | 2018.10.17 |
---|---|
시뮬라시옹 / 보드리야르 / 18.10.17 (7) | 2018.10.17 |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포스트모더니즘을 구하라 /사이먼 말파스 / 2008년 1월 윤동구옮김 /18.10.03모임용 (0) | 2018.10.10 |
지식인의 종언/리오타르/이현복 편역/ 93년11월 출간/ 발제:18.10.10세미나용 (1) | 2018.10.10 |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 르네 지라르 /18.10.03모임용 (0) | 2018.10.03 |
- Total
- Today
- Yesterday
- 검은 소
- 이데올로기
- 계급투쟁
- 공화국
- 개인심리
- 마키아벨리
- 생산양식
- 루이 알튀세르
- 브루스커밍스
- 집단심리
- 한국전쟁의기원
- 옥중수고
- 안토니오그람시
- 레비스트로스
- 그람시
- 옥중수고이전
- 생산관계
- 신학정치론
- virtù
- 루이알튀세르
- 딘애치슨
- 야생의사고
- 로마사논고
- 헤게모니
- 스피노자
- 무엇을할것인가
- 프롤레타리아 독재
- 알튀세르
- 의식과사회
- 이탈리아공산당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