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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제국, 돌아오다
4.1 실패한 쿠데타의 짧은 역사
지난 천년의 끝머리에 새로운 협치의 과정들을 가동시키고 전지구적 질서의 새로운 구조를 확립하기 시작한 진정으로 새로운 전지구적 상황이 출현했다. 주로 국민국가들의 힘에 기초했던 이전의 제국주의들과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제국이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지배적인 세력들, 특히 미국 정부는 제국의 형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보다는, 새로운 상황을 부정하고 억압하면서 과거에서 망령들을 불러내어 죽은 정치적 지배의 형상들로 하여금 비틀거리며 무대로 나가서 낡아빠진 위대한 꿈들을 재연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유령같은 형상들이 무너져 내려 생명 없는 무더기가 되는 데는 고작 몇 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21세기 첫 10년이 끝날 때쯤에는 일방주의가 군사적·정치적·경제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291, 292)
4.2 미국 헤게모니 이후
우리가 보기에 미국 일방주의의 붕괴는 미국의 기획이 실패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일방주의 자체의 실패를 나타낸다. 전지구적 질서의 형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오늘날 우리는 이행의 시기, 즉 낡은 제국주의는 죽었지만 새로운 ‘제국’은 아직 출현 중에 있는 공위기(空位期)를 살고 있다. (312)
조반니 아라기에 따르면 미국 헤게모니의 쇠퇴와 함께 하나의 국민국가가 전지구적 경제·정치·체제에 대하여 헤게모니―제국주의적 형태의 것이든 일방주의적 형태의 것이든 아니면 그 밖의 다른 어떤 형태의 것이든―를 쥐는 시대의 종말이 왔다고 한다. (313)
이전에는 미국 헤게모니에 헌신했으나 현재의 이행을 알아차릴 만큼은 영리한 이론가와 정책입안자들은 지금 또 다른 전지구적 질서의 패러다임을 발견하여 전지구적 무질서의 위협에 맞서야만 상황에 처해있다. 그러나 그들의 상상력은 너무나 제한적이어서, 전지구적 질서의 문제를 해결할 일방주의가 몰락하자 재빨리 다자주의, 즉 서로 협력하는 지배적 국민국가들의 제한적 집단이 지도하는 국제 질서로 되돌아가버린다. (314)
일방주의가 실패하고 다자주의가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 이후, 이 전에 존재했던 전지구적 질서의 형태들만으로 정치적 상상력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남아 있는 것은, 일종의 정글의 법칙이 전세계 시장들을 지배하는 무질서 상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뿐이다. 그러나 일방적·다자적 통제들이 약화된 상황 속에서도 지구화가 계속 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우리는 새롭게 등장하여 전지구적 체제에 질서를 부여하고 있는 관리·규제·통제의 새로운 형태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316)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경제적·정치적 통제의 제도적 형태들에 대한 사스키아 사센의 주장에 따르면, 새로이 출현하고 있는 전지구적 질서는 국민국가들의 외부에서 형성되고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그 내부에서도 형성되고 있으며, 국민국가의 일부 구성요소들을 점차 전지구적 의제와 시스템 쪽으로 향하게 만드는 ‘탈국민국가화’ 과정을 가동시킨다. 다시 말해, 일국적인 것이 전지구적인 것 내부에 있는 만큼이나 전지구적인 것도 일국적인 것 안에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센은 현재 출현하고 있는 전지구적인 정치적·제도적 질서를 “국민국가와 국가 간 시스템이 여전히 결정적인 구성요소로 남아있지만, 그것들이 홀로 떨어져 있지 않고 내부로부터 철저하게 변화되는” 배치의 관점에서 읽어낼 것을 제안한다.
매우 다양한 저자들이 국민국가의 안과 밖 모두에서 형성되고 있는 이 권력기관들과 배치들의 새로움을 탐구하기 위해 ‘통치’와 대비하여 ‘협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전지구적 협치’(글로벌 거버넌스)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 헤게모니 권력이나 국제 시스템처럼 전체를 관장하는 정치적 권위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종종 그때그때 가변적인 방식으로 기능하고 규범을 생산하는 규제구조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317)
전지구적 협치의 맥락에서 형성되고 있는 배치와 권력체들에 주목하면 다양한 국가적·초국가적·비국가적 힘들의 협력을 통해서만 기능할 수 있는 새로운 제국 형성체가 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미래의 정치는 이 제국과의 관련 속에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329)
4.3 반란의 계보
근대 정치운동사에서 분노에 기초한 자기 조직적 반란의 위대한 사례들은 종종 자크리로 불리어왔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자크리가 표현하는 (권력의 상징과 제도적 현실에 맞선) 멈출 수 없는 일련의 폭력, 탈취, 사보타주의 행위들을 윤리-정치적 분노와 연결하는 것이다. (336)
과거에 자본과 노동은 비대칭적이고 비동시적인 시간성―에른스트 블로흐의 말대로 현재에 잘 자리 잡은 자본주의적 시간성과 미래를 지향하는 프롤레타리아적 시간성―을 가지고 충돌했다. 그러나 이제 자본과 노동은 동일한 시간적 지평에서 두 가지 선택항을 제시한다. 사실 오늘날 혁명은 더 이상 우리와 분리된 미래의 사건으로 상상될 수 없고, 현재 속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자신 안에 미래를 담고 있는 ‘초과하는’ 현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혁명적 운동은 자본주의적 통제와 동일한 시간성의 지평에 있으며, 안에 있으면서 맞서는 혁명의 특성은 엑서더스의 운동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엑서더스는 자본주의적 명령의 예외성에 맞서 다중의 초과하는 생산성을 제시한다.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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