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9. 0313. 인무연 『공통체』 세미나. 풍경
5부 자본을 넘어서?
“전쟁후에 우리를 장악한 국제적이면서도 개인주의적인 퇴폐한 자본주의는 성공적인 것이 아니다.
지적이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으며, 정당하지 않고, 도덕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재화를 가져다주지도 않는다.
요컨대 우리는 이 자본주의를 싫어하며, 경멸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 대신 무엇을 놓을까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우 당혹스러워진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국가의 자급자족』
5.1경제적 이행의 조건들
신자유주의 좀비들
미국 일방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는 결합-1973년 피노체트. 칠레 쿠데타와 함께 시작되었고, 1979년 영국 대처가 수상이 되면서 심각해졌고, 1980년 미국 레이건대통령 당선으로 완성되었다.
신자유주의란 공공재와 산업의 철저한 사유화라는 경제 정책, 노조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 자유무역의 이데올로기가 미국의 전지구적인 정치적. 경제적 지배와 병행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였다. 다른 대안이 없는 것처럼 되었다. 물론 유럽 국민국가의 다자주의적 구도가 미국과 경합했다. 그러나 이 선택항은 국가통체와 사유화, 복지국가와 자유시장을 신자유주의와는 다른 식으로 혼합했다. 이 경합의 실상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의 이윤과 연속성을 어떤 정치체제가 더 잘 보장할 수 있느냐를 둘러싸고 벌어진 것이었다.
미국 일방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결합을 정치적으로 결정한 것은 전지구적인 경제적 이행-포디즘에서 포스트 포디즘으로 이행, 산업생산에서 삶정치적 생산에 중점을 둔 페러다임으로 이행-을 통제하기 위해 자본주의적 명령을 더 강화시키기고 집중시키는 효과를 낳고자 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이행을 관리할 능력이 없는 미국 일방주의의 붕괴로 일방주의와 신자유주의 결합의 문제적 측면들이 명확히 시야에 들어왔다. 첫째로는, 삶정치적 노동의 새로운 존재론이 위기를 야기한다는 것이다. 즉 현재 경제(전지구적인 경제적 이행)에서 출현하고 있는 지적. 정동적. 인지적 노동형태들은 공장사회 시대의 훈육과 명령으로는 통제될 수 없는 것이었음에도 자본주의적 경제전략을 일방주의와 연결시킨 것은 세계전역의 증권시장들과 부유한 자들로, 이들은 자본시장에서 이윤을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항상 강한 중앙집권적인 정치 권위에 의존한다.
둘째로는, 신자유주의 자체의 무능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주된 특징은 “신자유주의화의 주된 실질적 성취는 부와 소득을 생성하기보다는 재분배하는 것”으로 강한 사유재산권과 약한 노동권, 고통체와 공공재의 사유화, 자유시장, 자유무역은 모두 교역과 재분배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주로 공적인 것과 빈자를 강탈함으로써 부자들을 위한 축적을 이루는 전략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자유주의는 그 바탕에서는 계급권력을 복구하기 위한 기획이다. 자본주의의 생산방식의 본질은 부를 생산하는 것이다. 즉 신자유주의 위기의 본질은 일방주의의 실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을 자극하고 조직하는 도식을 제시하지 못한 신자유주의 무능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가 지속 가능할 경제프로그램으로 보이는 이유는 탈산업경제에서 생산이 가지는 성격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삶정치적 경제에서 우세하게 된 비물질적 생산물들은 가치를 창출하는 수단이 아니라 ‘가치’ 자체를 창출하며, 자본이 이러한 ‘가치화’를 추구하면 할수록 생산은 자본의 통제를 벗어나는 역설적 상황이 발생, 그래서 삶정치적 생산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형태들만이 아닌, 자본 그 자체가 처한 딜레마도 건드린다.
신자유주의는 삶정치적 생산력을 포착하고 활용하지 못하며, 생산을 양성하고 부의 창출을 증가시키는 도식도 제출할 수 없다. 즉 오늘날 경제에 퍼져 있는 삶정치적 생산이 자본에 제기하는 문제에 신자유주의는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사회주의적 환상들
일방주의가 실패하자 신자유주의자들은 이제는 사회주의 혹은 정부가 경제를 관리. 통제하는 형태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삶정치적 경제에서는 둘 중 어느 것도 생산을 통제하고 촉진할 수 없다.
삶정치적 생산은 관리, 훈육, 자본 등 외부로부터 제공되지 않더라도 생산과정 내에서 협동을 생성, 그 결과물은 직접적으로 존재론적인 차원을 가지고, 과정에서 가치를 생성하며, 그래서 측정 불가능하다.(초과한다. 넘쳐 흐른다) 이러한 자율성과 생산된 가치의 측정 불가능성을 포획하기 위해서 사적인 손에서 이루어지든 정부 통제로 이루어지든, 생산하는 특이성을 소외시키고 생산적 협력의 통제권을 쥐며, 가치의 비물질적이며 초과적인 성격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삶정치적 생산의 순환이 위축되고 부패 되고 만다.
경제학자들이 제안하는 ‘사회적 자본’도, ‘사회민주주의’도, 산업 패러다임의 개념 체계 안에 머물러 있기에 삶정치적 생산으로의 이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즉 사회주의를 ‘부’를 분배하는 메커니즘으로만 보고 부의 생성과는 연관시키지 않는다면 삶정치적 경제의 과제를 수행할 수 없다.
오늘날 어떤 정치체제가 생산을 양성하는 동시에 제어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우리는 사회적 생산과 사회적 부가 의미하는 바를 경제적 관점에서 더욱 탐구해야 한다.
사적인 것이 자본주의의 기반이고, 공적인 것이 사회주의의 기반이라면, 코뮤니즘의 기반은 공통적인 것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공통적인 것에 기반을 둔 제도와 정부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우리의 남은 과제이다.
전지구적 귀족층과 제국의 협치
전지구적인 정치, 경제를 지배할 세력이 모두 실패했음-삶정치적 생산력에 관여하고 그것을 발전시킬 능력이 없음-에도 전지구적인 자본주의 경제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생산이 조절. 관리되고 있을까? 온전한 경제체제는 수립되어 있지 않다. 많은 층위를 가진 복잡한 형태의 제국적 협치가 현재 공위기의 지배를 수립, 경제기능을 지탱하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전지구적 자본을 규제할 국가는 없다. 대신 ‘정치적 상호의존’이 경제적 관리. 통제 메커니즘들을 규정한다. 제국적 협치는 전지구적 경제의 관리와 규제라는 기능을 제국체제의 피라미드 배열 내에서 구조적으로 파악, 자신들은 전지구적 귀족으로서 힘 있는 국가들은 자신의 의지를 강제하고, 종속적인 국가들은 패거리를 지며, 군주와는 더 많은 이익이 되는 관례를 협상하기 위해 강제하고, 피라미드 아래 ‘민중’에게는 그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며 협상하고 협력한다. 그들을 대의 하려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더 많은 몫의 권력과 이윤의 배분을 요구하며 내부적으로 항상 갈등 관계에 처해 있다. 제국을 구성하는 세 층위는 서로를 필요로 할 뿐 자립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 그러나 제국에 가해지는 위협은 이 내적 갈등과 모순보다는 다중의 저항에 있다.
5.2 자본주의가 남긴 것
공통적인 것의 삶정치적 순환
오늘날 경제적 생산을 이해하는 열쇠는 생산하는 힘인 동시에 부가 생산되는 형태이기도한 공통적인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만으로 분리한다. 공통적인 것은 ‘외부성’으로 인식, 그러나 현재의 삶정치적 생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점을 전도시켜 공통적인 것을 경제적 삶의 중심으로 가져올 필요가 있다. 그러면 현재의 이행과정에서 경제적 가치화 과정이 점점 더 사회적 삶의 구조 내부로 진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이전의 사유재산은 공적 통제의 자유의 장소였다면, 이제는 공통적인 것이 사적재산의 행사로 인해 통제되기에, 공통적인 것은 이에 대항하는 자유의 장소가 된다.
이렇듯 공통적인 것의 관점에 서면 가치화와 축적은 개별적 성격보다는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된다. 광범위하고 개방적인 사회적 네트워크들 안에 존재하는 공통적인 것들은 사회적 생산의 힘들을 확대한다. 즉 더 많은 아이디어, 더 많은 이미지, 더 많은 정동이 일어나는 속에 우리의 힘과 감각이 증가함으로써 사유하고, 서로 관계를 맺고, 사랑하는 힘이 증가시킨다. 즉 생산적 능력이 증가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삶정치적 생산은 우리로 하여금 ‘경기순환’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상승-정점-후퇴-침체-상승이라는 과정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자본주의는 이러한 순환의 원인을 인플레이션, 실업률,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 맞추며,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으로 해결책을 처방한다. 완화되지만 부정되지 않는다. 삶정치적 순환은 성장과 후퇴가 공통적인 것의 질(質)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5.3 단층선을 따라 일어나는 전진
공화국으로부터의 엑서더스
생산력의 새로운 확대와 공통적인 것의 자유로운 생산을 위해서는 ①다중의 자유와 평등 ②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정치가 필요하다.
①삶정치적 생산에서는 생산적 주체성들로서의 다중을 조직하는 데 필요한 협력과 소통이 다중 내부에서 창출. 다중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생산할 자유를 부여받을 때에 만 효과적으로 생산하고 더 나가 새로운 생산력을 발전시킨다. 이 자유는 사적인 모습과 공적인 모습을 모두 가진 통제 기제인 소유 공화국으로부터의 탈출을 필요로 한다.
②위계는 공통적인 것을 수직으로 구획하고 협력과 소통이 형태를 방해. 대화가 생산적인 것은 차이들 때문이며, 평등은 통일성이나 동질성의 의미하지 않는다. 삶정치적 영역에서 사람들이 서로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자유롭게 생산 네트워크에 참여할 때 공통적인 생산이 더 효율적이 되며, 참여는 생산력을 확대하는 일종의 교육으로 생산에 포함된 모든 사람들이 참여를 통해 능력을 키운다.
공통적인 것의 생산과 생산력의 확장을 촉진하기 위해, 자본의 삶정치적 위기를 치유하기 위해 민주주의, 즉 생산자들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다중의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내진보강-자본을 위한 개혁주의 프로그램
자본이 지구환경과 타자, 자기자신까지 파괴하는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자본의 비극적 결말을 막을 대안은 없다. 오늘날 자본주의 위기는 객체적 측면에서만 아니라 생산적 주체성을 방해하는 장애물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긴급한 것은 공통적인 것의 기업가 정신을 발전시키고 협력적인 사회적 네트워크의 혁신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들을 제공할 개혁이다. 그러나 경제적 관계를 지배하는 전지구적 귀족층은 이 개혁을 시행할 의지나 능력이 없다. 따라서 개혁은 오직 투쟁을 통해서만, 자본이 개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에만 이루어질 것이다.
두 저자의 견해는 “사적통제와 공적통제 모두로부터 다중이 점점 더 자율적이 되는, 협력과 소통, 사회적 마주침을 유지하려는 가운데 생산적 다중의 힘과 자율을 점점 더 증가시킬 수밖에 없는, 그러한 힘을 축적이 어떤 문턱을 넘을 때, 다중은 공통의 부를 자율적으로 다스릴 능력을 가지고 출현할 것”이라 한다.
'세미나 발제문 > 공동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교육론 외 / 빌헬름 폰 훔볼트 / 국가 활동의 한계 규정 시도를 위한 생각들(p. 49-146) (0) | 2021.06.06 |
---|---|
인간교육론 외 / 빌헬름 폰 훔볼트 / 2021.5.16. (0) | 2021.05.16 |
공통체 4부 발제문_망고(19.03.06) (0) | 2019.03.09 |
공통체 1부 / 19.01.30. 모임용 발제문 죠스 (0) | 2019.01.30 |
공통체 1부/ 19.01.30.모임용 아카이브 (0) | 2019.01.30 |
- Total
- Today
- Yesterday
- 생산양식
- 개인심리
- 한국전쟁의기원
- 집단심리
- 루이알튀세르
- 옥중수고이전
- 무엇을할것인가
- 마키아벨리
- 계급투쟁
- 루이 알튀세르
- virtù
- 신학정치론
- 레비스트로스
- 브루스커밍스
- 공화국
- 검은 소
- 이탈리아공산당
- 안토니오그람시
- 스피노자
- 딘애치슨
- 헤게모니
- 옥중수고
- 프롤레타리아 독재
- 이데올로기
- 로마사논고
- 의식과사회
- 생산관계
- 알튀세르
- 그람시
- 야생의사고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