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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체 /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 정남영, 윤영관 옮김 / 1

 

1. 공화국 그리고 빈자 다중

1.1 소유 공화국

p29 : 권력에 대한 오늘날의 견해들에서는 새로운 제국주의와 새로운 파시즘을 경고하는 일종의 묵시록적 분위기가 우세하다. 모든 것이 주권권력과 예외상태로 설명된다. (30) 이 그림의 문제는 초재적 권위와 폭력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오늘날 우리를 계속해서 지배하는 주된 권력들-소유와 자본에 구현된 권력, 법에 뿌리를 두고 법에 의해 전적으로 뒷받침되는 권력-을 가리고 신비화한다는 것이다. (31) 그러한 권력을 민주적인 경로를 따라서 변형할 희망은 없다. 권력에 대립하고 권력을 파괴해야 할 뿐이다. (53) 우리는 앞으로 소수자 칸트의 방법을 발전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소수자 칸트에게 과감하게 알기는 과감할 줄 알기를 동시에 필요로 한다. 이 또한 계몽의 기획이지만, 유물론과 변형의 방법론이 저항, 창조, 발명의 힘들을 불러내는 대안적 합리성에 기반을 둔 기획이다. 다수자 칸트가 오늘날까지도 소유 공화국을 지탱하고 방어할 도구를 제공하는 반면에, 소수자 칸트는 어떻게 그 공화국을 전복하고 다중의 민주주의를 구축할지를 알려준다.

 

1.2 생산적인 신체들

p63 : 현상학은 칸트주의의 복합적 유산과 생기론의 폭력적 귀결에 대해 성찰하면서 비판을 초월적 추상에서 떼어내어 체험에 관여하는 것으로 다시 정식화하였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존재에의 이러한 몰입이 20세기 현상학의 위대한 강점인데, 이는 우리가 앞서 추적했던 마르크스주의의 변형(소유 비판에서 신체 비판으로의 변형)에 상응한다. (65) 우리는 신체성과 타자성의 근본적 관계를 다른 무엇보다도 강하게 부각시키는 철학적 경향이 현상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6) 푸코에게서 신체의 현상학은 그의 삶정치 분석에서 정점에 이르는데, 핵심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자면 여기서 그의 연구과제는 단순하다. 1공리는 신체들이 존재의 삶정치적 짜임새를 구성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삶정치적 지형에서 (여기서 권력들이 계속적으로 만들어지고 또 사라진다) 신체들은 저항한다. 이것이 제2공리이다. 신체들은 존재하기 위해서 저항해야 한다. 따라서 역사가 단지 삶권력이 지배를 통해 실재를 형성하는 지평으로서만 이해될 수는 없다. 역사는 오히려 삶정치적 적대와 삶권력에 대한 저항에 의해 결정된다. 3공리는 신체들의 저항이 주체성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는 고립되거나 독립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다른 신체들의 저항과의 상호작용이라는 복합적인 동학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저항과 투쟁을 통한 주체성의 생산은 (우리의 분석이 진행되면서) 기존 권력 형태의 전복뿐 아니라 대안적 제도의 구성에도 핵심적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푸코가 소수자 칸트-과감하게 알려고 할 뿐 아니라 과감하게 행동하는 법을 아는 칸트-의 기치를 이어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p75 : 사적 소유로부터 해방된 노동에는 우리의 모든 감각과 능력, 요컨대 보기, 듣기, 냄새 맡기, 맛보기, 만져보기, 사유하기, 명상하기, 느끼기, 원하기, 활동하기, 사랑하기 등 인간이 세계와 맺는 관계들모두가 동시에 관여하게 된다. 노동과 생산의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이런 식의 확대된 형태로 파악된다면, 신체는 결코 사라질 수 없을 것이고 어떤 초재적인 척도나 권력에도 종속될 수 없을 것이다.

 

1.3 빈자 다중

p78 : 빈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질서나 재산과 무관하게 사회적 생산 메커니즘에 편입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구성하는 광범한 다양체를 지칭한다. 이러한 개념적 갈등은 또한 정치적 갈등을 의미한다. 빈자 다중은 그 생산성으로 인해서 소유 공화국에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위협이 된다.

 

p84 : 랑시에게 정치의 온전한 기반이 되는 것은 빈자와 부자 사이의 투쟁이다.” 혹은 그가 계속해서 말하듯이, 더 정확하게는 공통적인 것의 관리에서 아무런 몫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 공통적인 것을 통제하는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다. 랑시에르의 말처럼, 중요하게 고려될(계산에 넣어질) 권리가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고려될 만하게 만들 때 정치는 존재한다. 몫 없는 자들, 즉 빈자의 무리는 다중에 대해 내릴 수 있는 훌륭한 첫 번째 정의이다.

 

p93 : 홉스는 왕이 곧 국민이라고 선언한다. 국민은 다중과 반대로 통일된 신민을 의미하며 따라서 한 사람에 의해서 대표(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표면상 그의 구분은 단순히 기하학적이다. 국민은 하나이고(따라서 주권이 될 수 있고) 반면에 다중은 복수적이다(따라서 지리멸멸하고 스스로 통치할 수 없다).

바꾸어 말하자면, 국민을 한데 묶어주는 아교풀-그것의 결여가 다중의 복수성을 규정하는 것-은 바로 재산인 것이다. (96) 스피노자는 항상 가난의 상태를 변형(사회성과 사랑의 구축을 통해 고독과 허약함을 벗어나는 것)의 논리를 위한 출발점으로 제시한다. 이러한 다양한 형태들 속에서 스피노자가 포착해내는 힘은 공통적인 것의 추구로 요약될 수 있다. 인식론에서 (합리성을 구성하고 우리에게 더 큰 사유의 힘을 부여하는) ‘공통관념에 초점을 맞추고 윤리학에서 행동을 공통의 선을 향하는 것으로 제시하듯이, 정치학에서도 스피노자는 특이한 신체들이 함께 모여 공통적 힘을 이룰 수 있는 메커니즘을 구축한다. 다중이 가(97)난과 싸우고 공통의 부를 창출하는 이 공통적 힘이 스피노자에게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지탱하는 주된 힘이다.

 

p98 : 지역에 따라 상이한 맥락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이동성, 유연성, 불안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삶과 노동의 양태가 자본주의적 생산, 착취의 체제에 의해서 점점 더 심하게 부과됨에 따라, 임금노동자와 빈자가 더 이상 질적으로 상이한 조건에 종속되지 않고 공히 생산자들의 다중으로 동등하게 흡수된다는 사실에 상응한다. 빈자는 임금을 받든 받지 않든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적 기원 혹은 지리적 변경에만 위(99)치해 있지 않고 점점 더 그 심장부에 놓여 있게 되며, 따라서 빈자 다중은 혁명적 변형을 위한 기획에서도 그 중심부에서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신체에 관하여1-사건으로서의 삶정치

p101 : 푸코가 일괄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은, 삶권력과 삶정치의 용어상의 구분이다. 여기서 전자는 삶을 지배하는 힘(권력)으로 (다소 거칠게)정의될 수 있고, 후자는 저항하는 그리고 주체성의 대안적 생산을 낳는 삶의 힘으로 정의될 수 있다. (103) 우리의 독해는 삶정치를 통해 국지화된 생산적 힘들-즉 사회적 협력과 신체들, 욕망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정동과 언어의 생산, 자신과 타자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관계의 발명 등등-과 동일시할 뿐 아니라 (저항인 동시에 탈주체화로 제시되는) 새로운 주체성의 창조를 그 핵심으로서 긍정한다.

 

p109 : 삶정치적 사건은 사실 항상 퀴어적인 것이며, 지배적인 정체성들과 규범들을 분쇄하고 힘과 자유 사이의 연결을 드러내며 그럼으로써 대안적 주체성을 생산하는 전복적 주체화 과정이다.

따라서 삶정치적 사건은 모든 형태의 형이상학적 실체론 혹은 개념론과 단절한다. 존재는 사건 속에서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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