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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철학인가?
/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이 ‘지혜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는 어원적인 의미를 제외하고 나면 사실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일은 상당히 까다로워진다. 그 이유는 물론 철학이라는 말의 의미 역시 수 세기에 거려 다양하게 변화했기 때문이다.(p. 8)
인류가 고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에 의존해 온 반면 과학이 마련해 줄 수 없는 질문들이 존재하며(예를 들어 선이나 정의는 무엇인지, 혹은 기존의 것에 비해 더 훌륭한 국가 개념은 존재하는지, 왜 악이 존재하고 죽음을 피할 수 없는지 등등의 문제들) 이것들이 바로 철학적 탐구의 대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p. 9)
철학적인 성격을 지닌 질문을 제기 하기 위해 모두 철학 교수가 될 필요는 없다. 철학적 질문들은 오히려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p. 11)
역사가 흐르는 동안 이 ‘부적절한’ 질문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떠나 정말 중요한 것은 철학을 실천하는 것이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사실이다. 옳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만족감을 선사한다. 비록 그것을 통해 현실적인 이득을 추구하기가 힘들다 하더라도 실제로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생각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p. 12)
철학적 사고의 훈련을 통해 우리는 추상적인 사고방식에 좀 더 익숙해질 수 있다. … 철학자는 무언가의 개념뿐만 아니라 개념의 개념, 즉 우리가 개념들을 활용하는 이유에도 관심을 가진다. 바로 이러한 특징 때문에 철학은 우리의 즉각적인 이해를 뛰어넘는 추상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우리는 철학자가 현실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세계를 구축한 많은 중요한 업적들이 굉장히 추상적인 차원의 사고를 통해 현실화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p. 13)
/ 철학이 우주에 관한 다양한 질문과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인가?
철학사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은 문화적인 이유 때문이다. 서구 세계가 사고하는 방식을 구축한 것이 그리스 사사이었고 우리는 그리스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해해야만 대략 300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해 왔는지 깨달을 수 있다.(p. 15)
서양 철학은 사물이나 물질, 혹은 어떤 특성을 지닌 객체에 대해 말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물질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태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현대물리학이 이를 문제 삼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점이다. 서양철학사상이 아예 전적으로 틀렸다고 해도 이를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우리가 누구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p. 16)
/ 환경
모든 철학가들이 어떤 구체적인 정치적‧사회적‧문화적 환경 속에서 살았고, 따라서 이들이 철학하는 방식도 철학과는 무관한 종류의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Ⅰ.철학적 이성의 탄생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활동했던 그리스 철학자들의 사상을 다루면서 우리는 이들을 ‘철학자’로 규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로 서술하는 데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로 분류되는 모든 소피스트 철학자들은 물론 데모크리토스까지도 실제로는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인이었다.(p. 21)
말레토스에서 그리스 철학이 탄생한 것은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리스의 ‘기적’ 때문이라기보다 고대 도시국가들이 분명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일어난 또렷한 역사적, 문화적 변화 때문이다. 도시국가의 모습은, 정권의 다양한 형태와는 무관하게, 다양한 지식 분야 간의 수준 높은 경쟁을 토대로 하는 다수의 결의 내용과 이에 대한 비판적 저변의 점차적인 확대를 통해 구체화 되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은 무(無)에서 탄생하지도, 한 도시국가 내부에서 탄생하지도 않았다. 그리스 철학은 상이하지만 활발한 교류 관계를 유지하던 여러 도시들, 밀레토스와 콜로폰(크세노파네스), 에페소스(헤라클레이토스), 아울러 ‘메갈레 헬라스’와 시칠리아(피타고라스학파, 엘레아학파, 엠페도클레스)의 여러 도시에서 탄생했고 아테네를 중심으로 꽃을 피웠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은 나름대로 다양한 표현 방식을 통해 특정 계층의 관심을 모으고 의도적으로 혁신을 꾀하면서 전대미문의 학설들을 내놓았던 상당히 다양하고 이질적인 성격의 인물들에 의해 탄생했다.
1. 이오니아의 우주론
이오니아(지금의 터키 남서부)의 나무 해안에 위치한 밀레토스는 당시에 서방과 동방을 연결하는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고, 따라서 메소포타미아, 페니키아, 이집트의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우주론 모형들과 전격적인 비교를 자극하던 다양한 전통문화와의 충돌에 노출되어 있었다.(p. 24)
1.1 철학의 ‘선도자’ 탈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물을 만물의 원리이자 기원으로 봄으로써 변화의 물질적인 원인을 탐색하는 연구의 ‘선도자’ 역할을 했고 이와 함께 자연에 대한 탐구 및 철학 자체가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탈레스에게 가장 분명했던 것은 ‘태초의 바다’를 우주의 기원으로 보는 우주관이었다. ‘태초의 바다’라는 표현은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처럼 강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명권의 문헌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고, 가장 오래된 그리스 시에 등장하는 우주의 강 오케아노스가 상징하는 것도 ‘태초의 바다’였다.(p. 25)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또렷하게 자연을 주제로 철학적 견해를 피력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탈레스가 목표로 삼았던 것은 어떤 구체적인 문제의 해결이었다. 다시 말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레스가 생체 현상을 관찰하면서 액체가 담당하는 역할에 주목했고, 이어서 자연의 원리는 어떤 신성한 존재가 아니라 물과 같은 하나의 물리적인 요소라고 주장했다고 보았다.(p. 25-26)
1.2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 자연의 신성함
아낙시만드로스는 신들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인 불멸성을 비인격적이고 추상적이며 동시에 물리적인 존재에 부여하면서 이 존재를 변화하는 우주의 원리, 즉 아페이론과 일치시켰다. 아페이론은 규모에서 뿐만 아니라 내부에 어떤 차이도 없다는 차원에서 ‘한계 없는’ 원리를 의미했다.(p. 25) … 아낙시만드로스가 바라보는 세상에는 창조주의 개임이나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신적 존재의 간섭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러한 조건의 부재 자체는 그리스 문화가 일찍이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같은 작품을 통해 표방했던 신화적인 우주 생성론에 대한 상당히 강렬하고 혁신적인 메시지를 안고 있었다.
“존재하는 것들이 탄생한 곳은 동시에 이들이 소멸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사실상 불의에서 비롯된 암울한 의무와 고통을 감내하며 존재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이 단상에서 조화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우주의 법칙을 역사상 처음으로 제시했다는 사실이다.(p. 28)
아낙시메네스는 공기 중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변화의 원리를 제시하기 위해, 공기와 다를 바 없는 우리의 영혼이 우리를 지탱하듯이 공기가 우주를 ‘에워싸고’ 모든 변화를 지탱한다고 설명한다. “바로 공기와 같은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지배하듯 공기가 온 우주를 에워싸고 있다.”
아낙시메네스가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을 특징짓는 동일한 불멸의 위상을 공기에 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의미심장한 것은 아낙시메네스의 문장이 아울러 인간 영혼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설명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아낙시메네스의 사상 역시 탈레스나 아낙시만드로스와 같은 이오니아 철학자들의 공통된 특징으로 확인된 요소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현실 세계의 물리적 요소들을 또렷하고 구체적으로 의식하는 경향, 우주의 질서에 대한 신화적 접근 방식을 거부하고 자연이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원리들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는 경향, 아울러 비교 중심의 방법론에 치중하는 경향 등이다. 그러나 우주의 질서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이미지의 발전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사회의 형성과 정착 과정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고대 사회 역시 사회 질서의 기반이 초자연적인 것에 있다는 신화적 견해에서 벗어나 경제와 사회의 법적 제도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p. 29)
2. 신들의 탄생과 세계의 질서
2.1 우주론에서 ‘계승 신화’로
헤시오도스는 우주의 기원과 불멸하는 신들의 역사를 다루면서 전통적인 사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대기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현실을 묘사하고 제우스 치하의 질서를 칭송했다. … 오랜 기간의 생성 과정과 분쟁 끝에 신들의 세계는 인간세계와 함게 안정을 되찾았고, 이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증명해 보인 뒤 여러 신들의 요청으로 왕위에 오른 신이 바로 제우스였다. 따라서 제우스의 패권은 어떻게 보면 선거와 업적을 토대로 획득한 패권이었다. 헤시오도스는 이러한 신들의 과거사를 제우스의 왕국이라는 영원한 현재적 관점에서 들려준다.(p. 30)
2.2 계보학적 언어와 영예의 재분배
신들의 계보는 단순히 복잡한 구조를 지닌 서사 혹은 다신주의의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원시적인 사상의 표현이라고 볼 수 없다. 이 계보는 오히려 신들의 역사를 추적하고 이들이 세계에 행사하는 권력의 지도를 그리면서 신들의 혈연관계나 탄생 경로를 토대로 이들의 본질을 묘사하는 아주 복잡한 인식 도구에 가깝다.(p. 33)
계보의 구조 외에도, 신들의 계보를 노래하는 서사시의 또 다른 핵심은 바로 ‘영예’의 재분배다. 이는 신들의 사회에서 모든 신에게 그들의 ‘운명’에 상응하는 영예를 인정했던 그리스 다신주의의 핵심 개념이다. 헤시오도스의 서사시는 신들이 탄생과 결합과 동맹과 분쟁을 통해 어떻게 세상을 나누어 가졌고 어떤 식으로 그들에게 할당된 운명을 받아들였는지 이야기한다.(p. 35)
2.3 고대 그리스와 근동의 문화에 비친 헤시오도스의 모형
현대인들은 신들의 계보학과 철학을 자연스럽게 구분하고 이들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인식하지만 고대인들은 이들을 구분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파르메니데스나 엠페도클레스 같은 철학자들의 우주에 관한 견해를 헤시오도스와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p. 36)
우주의 기원론과 신들의 계보학이라는 장르는 그리스 문화만의 특징은 아니다. 일찍이 기원전 2000년부터 근동에서도 우주의 기원과 신들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구전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야기들 중 몇몇은 그리스의 전통적인 기원론 및 계보학과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밖에 없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그리스 신들의 계보학, 더 나아가서 그리스신화 자체의 기원이 동방에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활용되곤 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 못지않게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차이점들을 통해 우주와 신들의 세계를 표현하는 그리스 문화만의 전형적인 특징이 모습을 드러낸다.
3. 신화와 운명
3.1 삶의 ‘부분’으로서의 운명
인생이 ‘운명’에 좌우된다는 생각, 다시 말해 사람은 태어나기 전에 그의 생애를 두고 이미 내려진 결정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는 생각은 시대와 문화마다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인들의 ‘운명’은 로마인들의 ‘운명’과 같지 않았고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운명’과도 전혀 닮지 않았다. 로마인들이 ‘운명’을 무언가 ‘말해진’ 것, 즉 신들이 천명한 것으로 이해했다면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운명’은 ‘연결되어’ 있거나 ‘고정되어’ 있다는 것과 연관된다. 반면에 그리스인들의 ‘운명’은 무엇보다도 ‘분배’라는 독특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은 자신에게 할당된 ‘부분’을 부여받으면서 태어나고, 바로 이 ‘부분’이 한 인간의 존재를 특징짓게 될 일련의 사건들을 결정지을 분만 아니라 죽음의 의미와 순간까지 결정하게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p. 39)
3.2 신화학과 신화들
그리스에서 ‘신화mythos’라는 단어는 실제로 ‘말’이나 ‘담론’, ‘이야기’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 그리스 문학의 태동기, 즉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시대에 ‘신화’는 허구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사건들로 가득한 ‘담론’ 혹은 ‘이야기’가 아니라 ‘의심할 여지없이 권위 있는’ 이야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p. 43)
플라톤이 등장하고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가 나타난 후에야 신화라는 용어는 비로소 환상적인 이야기를 가리키는 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 신화적인 담론의 신빙성 문제에 주목하면서 그리스 지식인들은 신화를 읽는 해석학적 전략을 통해, 예를 들어 알레고리를 통해 때로는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하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굳이 받아들이지 않고서도 신화를 수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냈다.(p. 44)
18세기 이후로 신화라는 용어는 다난한 변신의 길을 걷게 된다. 이제 ‘신화’는 더 이상 환상적인 이야기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복잡하고 세련된 동시에 매력적인 의미를 내포하거나 상징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신화적 담론은 철학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존재해 온 문명이 후세대의 보다 이성적인 문화로 대치된 뒤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이 되었다.(p. 44-45)
이러한 변신을 계기로 신화는 또 한번의 변화를 겪는다. 첫 버째 변신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두 번째 변신을 통해 신화는 원래 가지고 있던 웅변의 의미, 담론으로서의 가치, 무엇보다도 시적인 가치를 완전히 잃고, 근대인의 사고와는 전적으로 다른 고대인들의 사유 양식, 즉 자기 역사에 대한 기억 혹은 우주론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를 매혹적인 ‘신화’를 통해 표현할 줄 알았던 고대인들만의 ‘생각하는 방식’으로, 고대적 이성의 발현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p. 45)
현대 문화에서 신화라는 범주가 다양하기 짝이 없는 의미와 가치를 표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신화가 다양하게 정의된다는 점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p. 46)
역사학자 발터 부르케르트는 신화를 이렇게 정의했다. “신화는 하나의 특별한 유의성을 가진 전통적인 이야기다.”(p. 47)
신화는 결국 하나의 ‘효과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효과적인가? 신화는 사회 혹은 사회의 일부, 사회의 지도자들, 또는 단순히 신화적인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효과를 발휘한다.
일찍이 모리스 알박스가 주목했던 것처럼 집단 기억은 전통이나 신화의 내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토대로 유지된다. 이러한 고정관념들이 변화하면 과거에 대한 기억도 변하게 마련이다. 사회 공동체는 진행 중인 현재의 사회 구조와 설계 중인 미래의 구도에 어울리도록 천천히 자신의 과거와 전통문화를 재구성한다.(p. 48)
4. 피타고라스와 피타고라스 학파
4.1 스승과 그의 공동체
피타고라스의 전기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정보들은 두 지역, 이오니아와 이탈리아를 기준으로 비교적 명확하게 ㄱ분된다. 이오니아에서 피타고라스는 밀레토스 철학자들의 발달된 과학지식을 접했고 이탈리아에서는 전설의 시인 오르페우스와 관련된 종교의례 등을 통해 강렬한 성향의 종교적 경험을 하게 된다.
이탈리아의 크로톤에서 피타고라스는 제자들을 모아 플라톤의 아카데미처럼 전적으로 지적활동에만 전념하는 공동체를 만들었다.(p. 57)
크로톤은 물론 메타폰토나 티란토와 같은 메갈레 헬라스의 다른 도시들에 세워지기 시작한 피타고라스 공동체들은 도시국가의 정치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귀족정치 체제의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p. 58)
4.2 전설의 현자
사실상 모든 학문적 발견의 공로를 학파의 창시자 피타고라스에게 돌리려는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의 변함없는 성향은 고대인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피타고라스만의 독창적인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이에 비해 후세대 철학자들이 이루어 낸 발전된 면모는 무엇이었는지 구분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피타고라스가 직접 주장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상들은 모두 다름 아닌 영혼의 불멸과 이 육신에서 저 육신으로 움직이는 영혼의 이주와 관련된다. 이러한 사유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바로 금식 규칙, 현자의 도덕적 정화를 보장할 수 있는 삶의 양식적인 규율, 현자의 사망 후에 그가 자신의 신성한 기원으로 돌아간다는 이론 등이다.(p. 59-60)
4.3 모든 것은 숫자다
“모든 것은 숫자다”라는 원칙을 중심으로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은 기원전 5세기 전반에 걸쳐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이론적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어떤 성과도 특정 인물의 공로라고 규정하기는 힘들다. …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은 사물들이 숫자를 모방한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와 같은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유가 감각적인 사물과 이데아의 관계를 모방관계로 이해했던 플라톤의 생각에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았다.(p. 61)
피타고라스 주의자들은 자연철학자들의 원칙과는 거리가 먼 원칙들을 사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철학자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원칙을 감각적인 사물이나 현상에서 찾지 않고 수학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접근 방식이 생성의 ‘형식적’ 원인을 찾아낼 수 잇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고 자연 현상의 원인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 아낙사고라스나 엠페도클레스처럼 물질에서 원리를 발견하고자 했던 철학자들에 비해 좀 더 진보한 면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p. 63)
5. 파르메니데스와 제논
5.1 엘레아의 파르메니데스
전통적으로 엘레아의 파르메니데스는 감성이 이상과 달라서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지적 도구로서 유효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한 최초의 그리스 철학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감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현실의 차원을 뛰어넘는 또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던 최초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파르메니데스는 영원한 현실, 불편하고 부패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성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현실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p. 75)
파르메니데스는 자연을 주제로 하는 6보격의 서사시 한 편을 남겼다.
5.2 부재의 길
이 서사시의 서두에 등장하는 여신이 파르메니데스에게 철학적 탐구의 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계시하는 장면을 보자. “먼저, 존재할 분만 아니라 존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천명하는 길은 설득의 길이며, 사실상 진실을 추구한다. 하지만 부재할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부재해야 한다고 천명하는 길이 있다. 네게 말하지만, 이 길은 결코 알아볼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너는 알아볼 수도, 표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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