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 아리스토텔레스 / 강상진, 김재홍, 이창우 옮김 / 19.09.22 / 화니짱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권(19.09.22).hwp
0.02MB

1장 좋음과 목적

p13 : 모든 기예와 탐구, 또 마찬가지로 모든 행위와 선택은 어떤 좋음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2장 최고선과 정치학

p14 : 만약 행위될 수 있는 것들의 목적이 있어서, 우리가 이것은 그 자체 때문에 바라고, 다른 것들은 이것 때문에 바라는 것이라면, 이것이 좋음이며 최상의 좋음(최고선)일 것이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런데 정치학이 바로 그러한 학문인 것 같다.

더 나아가 무엇을 행해야만 하고 무엇을 삼가야만 하는지를 입법하기에 그것의 목적은 다른 학문들의 목적을 포함할 것이며, 따라서 정치학의 목적을 인간적인 좋음일 것이다.

 

3장 논의의 방법

p16 : 젊은이는 자신의 감정에 따르기 쉬워서 강의를 들어 봐야 헛되고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 모자람은 세월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따라 살며 무엇이든 감정에 따른 추구하는 데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앎은 마치 자제력 없는 사람에게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4장 최고선에 관한 통념들

p17 : 정치학이 추구한다고 지적했던 좋음은 무엇인지, 그리고 행위를 통해 성취할 수 있는 모든 좋음들 중 최상의 것은 무엇인지 논의해 보자. (18)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제일원리들로부터 출발하는 논의와 제일원리들을 향해 나아가는 논의는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고, 다른 어떤 것들은 단적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19)다면 아마도 우리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5장 행복과 세 가지 삶의 유형

p20 : 가장 두드러진 삶의 유형은 세 가지인데, 향락적인 삶과 정치적 삶, 그리고 셋째로 관조적 삶이 그것이다.

교양있는 사람이나 실천적인 사람은 명예를 선택한다. 대개 이것이 정치적 삶의 목적이니까. 그렇지만 명예는 우리가 추구하기에는 너무 피상적인 것 같다. 명예는 명예를 받는 사람보다 수여하는 사람에게 더 의존하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 좋음은 고유한 어떤 것으로서 쉽게 우리에게서 떼어 낼 수 없는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자신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이다. 어쨌든 그들은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또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또 그들의 탁월성을 근거로 명예를 얻고자 한다.

 

6장 좋음의 이데아 비판

p23 : 좋음이 어떤 공통적이며 단일한 보편자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25) 좋다고 이야기되는 그 관점에서 서로 구별되고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단일한 이데아를 따라 공통적인 것으로서의 좋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혹시 그래도 좋은 것들 중에 인간적 행위에 의해 소유되고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을 위해서는 그것을 아는 것이 더욱 좋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26). 우리가 이것을 본(paradeigma)으로 가지고 있으면 우리에게 좋은 것들도 더 잘 알 수 있고, 또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알고 있으면, 그것들을 실제로 성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7장 우리가 추구하는 좋음과 행복

p27 : 언제나 그 자체로 선택될 뿐 결코 다른 것 때문에 선택되는 일이 없는 것을 단적으로 완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행복이 이렇게 단적으로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 (29) 행복은 완전하고 자족적인 어떤 것으로서, 행위를 통해 성취할 수 있는 것들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영양을 섭취하고 성장하는 삶은 갈라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감각을 동반하는 삶이 뒤따를 것이지만 이것 또한 분명 말과 소, 모든 동물들에 공통되는 삶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게 되는 이성(logos)을 가진 것의 실천적 삶이다. 이성을 가진 것의 한편은 이성에 복종한다는 의미에서, 다른 한편은(30)그 자체 이성을 가지고 사유한다는 의미에서 이성을 가진 것이다. 또 이러한 삶 역시 두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되기에, 우리가 여기서 찾고 있는 삶은 활동(energeia)에 따른 삶<능력(dynamics)에 따른 삶과 대비되는 삶.>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삶이 더욱 진정한 의미에서의 삶이라고 이야기되는 것 같으므로.

만약 탁월성이 여럿이라면 그중 최상이며 가장 완전한 탁월성에 따르는 영혼의 활동이 인간적인 좋음일 것이다. 더 나아가 그 좋음은 완전한 삶 안에 있을 것이다.

 

8장 정의된 행복과 통념의 부합

p32 : 좋음들은 통상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 왔다. 즉 외적인 좋음이라고 이야기되는 것, 영혼에 관계된 좋음, 육체와 관련된 좋음이라고 이야기되는 것이 그 세 유형이다. 우리는 영혼에 관계된 좋음이 가장 진정하고 으뜸가는 좋음이라고 말하고, 행위와 영혼의 활동을 영혼에 관계되는 좋음으로 규정한다. (33) 우리의 논의는 행복을 탁월성 혹은 어떤 탁월성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부합한다.

(35) 그럼에도 행복은 명백하게 추가적으로 외적인 좋음 또한 필요로 한다. 일정한 뒷받침이 없으면 고귀한 일을 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우선 많은 일들은 마치 도구를 통해 어떤 일을 수행하는 것처럼 친구들을 통해, 또 부와 정치적 힘을 통해 수행되기 때문이다. 또 이를 테면 좋은 태생, 훌륭한 자식, 준수한 용모와 같이 그것의 결여가 지극한 복에 흠집을 내는 것들이 있다. (36) 바로 이런 까닭에 다른 사람들은 탁월성을 행복과 동일시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행운(eutychia)을 행복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9장 행복을 성취하는 방법

p37 : 처음에 우리는 정치학의 목적을 최고의 좋음으로 규정했는데, 정치학은 시민들을 특정 종류의 성품을 가진 좋은 시민으로, 고귀한 일들의 실천자로 만드는 데 대부분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어린이 또한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나이 때문에 아직 그러한 일들을 실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행복하다고 이야기되는 어린이들은 행복에 대한 희망 때문에 그런 축복의 말을 듣는 것이다. 이미 이야기했던 것처럼 행복은 완전한 탁월성도 필요로 하지만 완전한 생애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솔론의 말대로 가장 성공적으로 살던 사람도 노년에 엄청난 불행에 빠질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불운을 당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는 사람을 누구도 행복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10장 행복과 운명

p39 : 만일 우리가 삶의 끝을 보아야만 하고 그때 각자를 지금 진정 지극히 복된 자로서가 아니라 이전에 그러했다는 이유로 지극히 복된 자라고 해야 한다면, 이 어찌 이상하지 않단 말인가?

만약 우리가 그때 그때 변하는 운을 따라가 본다고 한다면, 동일한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다가 다시 비참한 사람으로 부르기를 여러 차례 반복할 것이다. (40) 인간적인 성취 중에서 탁월성에 따르는 활동들만큼 안정성을 갖는 것은 없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은 우리가 추구하는 안정성을 갖게 될 것이며, 그의 일생 내내 행복한 사람으로 살 것이다. 그는 언제나, 혹은 다른 누구보다도 탁월성에 따르는 것들을 행하며 그것들을 사색할 테니까. 또 그가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며 어느 구석 빠지는 데 없이 반듯한 사람이라면 인생(41)의 갖가지 운들을 가장 훌륭하게, 모든 점에서 전적으로 적절하게 견뎌 낼 테니까.

누군가 크고도 많은 불운들을 침착하게 견뎌 낸다면 말이다. (42)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가 이야기 했던 것들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도 가질 사람들을 지극히 복된 사람이라고, 지극히 복된 사람이라고 부를 것이다.

 

11장 행복과 죽음 이후

p43 : 친구들이 잘하고 못(44)하는 것은 죽음 사람들에게 무언가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행복한 사람들을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거나 이런 종류의 어떤 다른 일을 만들어 낼 성질의 것도 아니며, 그럴 정도도 아니다.

 

12장 칭찬과 명예

p45 : 칭찬은 탁월성에 관련한 것이다. 사람들은 탁월성을 통해 고귀한 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니까.

행복이란 명예로우며 완전한 것들 중의 하나이다. 또 행복이 원리라는 사실로부터 사정은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는 행복을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행하며, 좋은 것들의 원리이자 원인인 것을 명예롭고 신적인 어떤 것이라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13장 영혼의 탁월성

p48 : 영혼에도 신체 못지않게 이성과는 별개의 무엇이 있어서, 이것이(49)이성에 대립하고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이 없는 부분 또한 두 부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부분은 식물적인 것으로 이성을 결코 함께 나누어 가지고 있지 않지만, 다른 한 부분은 욕망적인 것, 일반적으로 욕구적인 것으로 어떤 방식으로는, 즉 이성의 말을 들을 수 있고 설복될 수 있는 것인 한에서는 이성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것이다.

탁월성 또한 이런 차이에 따라 나뉜다. 우리는 탁월성 중 한 부분을 지적 탁월성으로, 다른 한 부분을 성격적 탁월성으로 부른다. 지혜나 이혜력, 실천적 지혜는 지적 탁월성으로, ‘자유인다움이나 절제는 성격적 탁월성이라 부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품성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그가 지혜롭다거나 이해력이 있다고 하지 않고, 온화하다거나 절제 있다고 말한다.

지혜로운 사람을 칭찬하는 것도 역시 영혼의 상태에 근거한 것이다. 영혼의 상태들 중에서 칭찬받을 만한 것을 우리는 탁월성이라고 부른다.

 

영혼

이성을 가진 부분

일차적인 의미의 이성

: 자체 안에서 이성을 가지고 있는 부분

지적 탁월성이 관계하는 영역

이성이 없는 부분

욕구적인 부분

: 이성에 설복/저항하는 부분

성격적 탁월성이 관계하는 영역

식물적인 부분

: 영양과 성장의 원리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