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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심리학 입문 / 캘빈 s / 김문성 옮김

 

p39 : 이드의 유일한 기능은 원시적 또는 초보적인 생활의 원리를 만족시킨다. 프로이트는 이 원리를 쾌락원칙이라고 불렀다. 이 쾌락원칙의 목적은 긴장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있다. (40) 생명체는 반사 기구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들 기구는 자극이 어떤 신체적 에너지를 발생시킬 때 그 에너지를 자율적으로 방출함으로써 전반적인 자극의 제거를 가져올 수 있다. (42)배고픈 즉시 유아에게 음식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배고픔으로 인한 긴장은 그와 결부된 음식을 기억 속에 떠올리게 된다. 이와 같이 이드 속에는 배고픔으로 인한 긴장을 해소시킬 수 있는 대상, 즉 음식에 대한 심상이 강하게 자리 잡게 된다.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해 어떤 대상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과정이 바로 1차 과정이다. 이른바 제1차 과정이란 프로이트가 말하는 지각의 동일성을 수집함으로써 긴장을 완화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지적한 지각의 동일성이란 이드가 지각 그 자체와 기억 심상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뜻(43)이다. 이드에게는 음식물을 기억하는 일이 곧 어떤 음식을 먹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드는 실재하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지각과 주관적인 기억 심상을 구별하지 못한다. 1차 과정이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예로 꿈을 들 수 있다. 꿈은 보통 가시적인 특성을 지닌 상상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과거의 사건이나 대상을 기억 속에 떠올림으로써 긴장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긴장을 완화시키는 대상에 대해 어떤 상상을 형성하는 것을 소위 소망 성취라고 한다. 꿈을 꾸는 사람이 소망하는 대상이나 어떤 상건에 대한 꿈을 꾸는 목적은 잠을 깨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프로이트는 믿어왔다.

 

p45 : 이드는 자아의 영향에 복종하거나 아니면 행동 또는 소망 성취를 통해 표출되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자아의 영향에 복종하는 경우에는 그 에너지가 곧바로 방출되지 않고 묶여있게 된다. 이드는 긴장을 참지 못하며 무엇이든지 즉각적인 만족을 요구한다. 이드는 매우 충동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반사회적이며 또한 이기적이며 쾌락을 사랑한다. 이드는 이성에 비반해서 버릇없는 개구쟁이인 것이다. (46) 이드는 결코 사고하지 않는다. 다만 소망하고 행동할 뿐이다. (47) 사실상 충동적인 행동은 외부 세계로부터 처벌을 야기함으로써 오히려 긴장(고통)을 배가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오기도 한다. 인간과 세상과의 이러한 상호교류는 새로운 심리 체계, 자아를 필요로 한다. (48) 자아가 집행 기능을 현명하게 수행하면 조화와 적응이 두드러지게 될 것이다. 자아가 이드나 초자아 또는 외부 세계에 그 기능을 양보하거나 조금이라도 포기한다면 즉각 보조화와 부적응이 나타난다. 자아는 쾌락원칙 대신에 현실원칙에 의해 지배된다. (48) 현실원칙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이른바 2차 과정에 의해 지켜진다. 2차 과정은 이드의 제1차 과정 이후에 전개되며, 또 그것을 압도한다. (49) 1차 과정은 욕구를 만족시킬 대상이 무엇인지 그 연상 작용을 하는 단계까지는 이끌어 올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는 대상을 찾거나 만들어내는 과정, 즉 그 대상을 현실적 존재로 만드는 과정이다. 이 단계가 바로 제2차 과정을 성취하는 단계이다. 2차 과정은 사고와 이성(인식)을 통해 완벽한 행동을 취함으로써 현실을 발견하거나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p58 : 한동안 고조된 간장된 상태에서 어느 순간 벗어나는 것은 무척 기분 좋은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긴장을 고조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본능은 언제나 그 이전의 상태로 퇴행하려고 한다. 본능이 흥분 상태에서 휴식 상태로 되돌아오는 순환을 계속하려는 경향을 가리켜 반복강박이라 한다. (59) 요약해서 말한다면 본능의 목표는 지극히 보수적이고 퇴행적이며 반복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p67 : 대상의 심상 형성에 에너지를 투자하거나 본능을 충족시킬 수 있는 대상에 작용하기 위해 에너지를 배출하는 것을 대상 선택혹은 대상 집중이라 한다. 이드에 내재된 모든 에너지는 바로 이 대상집중에 사용된다. 그런데 이드의 에너지는 (68) 어떤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쉽게 전이한다. 이러한 에너지의 움직임을 전위라고 한다. 이드의 에너지는 전위되기가 매우 쉽다. 왜냐하면 이드는 대상들을 구체적으로 세심하게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상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이드의 이런 경향을 술어적 사고라고 부르는 왜곡된 형태를 낳기도 한다. 두 개의 대상, 다시 예를 들자면 나무와 남자의 생식기처럼 돌출한 형태의 서로 유사한 자연적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머릿속에서 동일한 것으로 여겨질 때, 인간들은 술어적 사고를 하고 있다.

 

p69 : 이드로부터 에너지가 배출되어 자아를 형성하는 잠재적 과정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사실상 자아는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 (71) 2차 과정은 외부 세계의 모습을 성실하고 완벽하게 묘사하여 내면의 모습으로 정립시키는 일을 수행한다. 대상에 대한 관념이 대상 자체와 일치할 때 그 관념은 대상과 동일시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동일시 작용의 결과 이드는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사실상 현실이라는 개념조차 갖고 있지 않은 자신의 심상 속에 에너지를 유입시켜 현실 세계를 내면에 완벽하게 재현시키게 된다. 바로 이 시점에서 논리적 사고가 소망성취를 대신하게 된다. 이드로부터 인식과정으로 에너지가 이동하는 것이 자아 발달의 첫 단계이다. 이렇듯 인격의 새로운 적응은 주관(마음)과 객관(물질)의 구분에 달려 있다.

 

p73 : 자아의 합리적 기능은 본능을 충족시키는 데 매우 성공적이므로 이드 속에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가 점차 자아 속으로 더 많이 유입된다. 자아의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이드는 약화된다. 그러나 자아가 이드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실패하면 자아 충당은 다시 본능적 대상 집중으로 환원되고 미성숙의 소망 성취가 지배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74)자폐적 사고 혹은 소망적 사고라 한다. 어떤 일이 진실이기를 바라는 사람은 흔히 그 일을 진실이라고 착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는 몇 번이고 실험과 관찰을 반복해야 한다. 소망적 사고가 끊임없이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75) 흥분이 최종적인 방출을 향해 가지 못하게 저지하기 위해 에너지가 사용될 때, 이 막는 힘을 가리켜 반집중이라고 한다. 자아의 반집중은 이드의 집중에 반대되는 힘이다. 이드의 집중은 즉시 긴장 해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양심은 이드와 자아 두 체계에 반대하여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의 작용을 보류시키려고 한다. 굳센 양심을 지닌 사람은 끊임없이 부도덕한 충동을 경계한다. 그는 이드를 저지하는 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정작 쓸모 있고 만족스러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해진다. 그 결과 변화 없고 융통성 없는 인생을 살게 되고 만다.

 

p78 : 자아 이상이 윤리적 대상 선택과 동일시되면 자아는 커다란 자부심을 느낀다.

반대로 초자아가 무가치하게 여기는 대상과 동일시되면 초자아는 자아에게 벌을 내린다. 곧 자아로부터 수치심과 죄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자부심은 2차적 나르시시즘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자아는 스스로 도덕적인 일을 함으로써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낀다. 덕은 그 자체로 하나의 보상이다. 마찬가지로 죄는 그 자체가 일종의 처벌이라고 할 수 있다.

p79 : 때로 이드가 본능을 만족시킬 목적으로 초자아를 조작하기도 한다. 매우 고상한 사람의 초자아도 부도덕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공격함으로써 이드를 만족시킬 수 있다. (80) 초자아는 자아를 강요하여 사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이상화된 상태로 보게 만들고, 이드는 자아를 강요하여 이드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보게 만든다. 어느 경우에나 제2차 과정, 현실검증, 현실원칙은 비합리적인 강요로 인하여 왜곡된다.

인격의 어느 한 체계가 에너지를 저장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두 체계로부터 에너지가 배출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자아가 강한 사람은 초자아가 약하게 된다.

 

p82 : 프로이트는 외면적 욕구불만이 내면적 욕구불만의 근거를 마련해 줄때까지는 내면적 욕구불만(반집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간은 내면적 통제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우선 결핍 혹은 박탈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도덕적 금지와 동일시되는 기회를 가질 때까지는 자신의 초자아에 대한 규율을 발달시키지 못한다. 스스로의 행동을 규제하는 내면적 힘을 기르기 이전에 우선 처벌을 받음으로써 무엇이 나쁜지 습득해야 하는 것이다.

 

p85 : 이드와 초자아 간의 대립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드와 초자아 사이의 대립이란 자아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환언하면 이드와 초자아는 상호 나름대로의 목적에 자아를 이용하려고 들기 때문에 대립을 일으킨다.

 

p97 : 인간은 부끄러운 행동을 한 결과 자살하고 싶은 추동을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 이때 초자아가 자아를 붕괴하려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98)자아는 생명의 대행자이므로 자아를 파괴하려면 초자아는 이드의 원초적인 죽음의 소망과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초자아는 죽음 본능의 대행자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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