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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부
<자기>와의 관계와 <자기>의 사회적 측면
by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
1. <자기>와의 관계
현대인에게 아직도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모험이 하나 남아 있다면 그것은 무의식에 대한 탐험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요가 등의 동양의 수양법을 흉내내기도 하지만 그건 의미있는 탐험이 되지 못한다. 인도인과 중국인들이 알고 있던 것을 섭렵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 (324)
융 박사는 혼자서 내적인 중심에 도달해 무의식의 신비와 접촉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자기>라고 하는 것에 날마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동시에 두 세계를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사람은, 외부적인 임무를 다하면서 <자기>가 스스로를 나타내기 위해 꿈과 외부적인 사건에서 양면적으로 사용하는 암시나 신호에 주의를 기울여 평범한 외적 일상에서 돌연히 흥미진진한 내적 모험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것은 개인의 고유한 것. (325)
인간이 그 영혼의 통제 본부와의 접촉을 잃는 이유
어떤 단일한 본능적 동력이나 감정적 이미지가 당사자를 한 방향으로 고정시킴으로서 평형을 깨는 경우.(325)
예시) 안전과 허기도 잊어버리고 성에 탐닉하는 숫사슴. 미개인들이 경계하는 <영혼의 상실>
2. 반대로 자아의식이 과잉 강화될 때. 문명화된 의식이 마음 속 충동과 메시지를 감철하지 못한다. 문명인들이 꾸는 꿈은 그 수용성을 회복코자 하려는 것.(326)
예시) 만다라 그림. 회복에 대한 예.
만다라
미개인이나 아시아권에서 내적 평형을 회복하기 위해 쓰이는 그림. 그런데 만다라가 없는 현대인도 ‘자생적인 만다라’를 만들어 의식적 자각과 <자rl>와의 거리가 가까워지곤 한다.
예시) 62살 부인의 꿈. 비탈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는 정사각형판. 갑자기 보이는 둥근 탁자.
(328-329)
실제로 사람이 순수하게 내적인 세계를 향하면 <자기>는 언젠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자아는 새로운 재생을 가능케 하는 내적인 힘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자아는 새로운 재생을 가능하게 하는 내적인 힘을 발견하게 된다.(329, 330)
<자기>의 양면성
과대망상과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하면서 모든 인간적인 현실과의 접촉을 잃어버린다.(330)
예시) 바자드 온천의 비밀 이야기
→ 무의식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자아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기능을 계속하는 것이 뭣보다 중요하다.(330)
2. <자기>의 사회적 측면
무의식의 명령에 따르는 일이 늘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의식이 입안한 계획이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각오해야 한다. 개성화 과정에 부수되는 의무는 짐이 되곤 한다. 무의식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물론, 타인이 좋아하는 일만 시키지도 않는다.(336) 무의식은 꿈속에 타인을 등장시켜 집단적인 측면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꿈속에 타인이 등장하는 이유
1. 꿈꾸는 사람의 투사
2. 순수하게 타인에 대한 정보를 전하는 경우
→ 이 중 어떤 경우로 꿈을 해석하는 것이 옳은지 알아내기 위해선 대단히 솔직하고 주의 깊은 태도와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338)
<자기>를 통한 개성화
주의사항: 외계만을 겨냥한 행위나 의무감은 무의식의 은밀한 작용에 장해를 준다.(338)
해법: 무의식을 점진적으로 변화하게 하는 일은 오랜 과정을 통해 꿈을 해석하고, 꿈의 경고에 직면함으로써만 가능하다. 더불어 의식적인 태도 역시 바꿔나가야만 한다.(339)
개인과 집단의 무의식에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상당히 비판적임)
개인은 자기의 꿈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338p) 무의식에 의도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는 지금껏 한번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낳은 적이 없다. 집단의 무의식은 개인의 무의식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자율적이기 때문.(339) 때론 일시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무의식적 반응을 억압하는 것일 뿐.(340) 광신적 정치활동은 개성화와 어울리지 않는 듯.(341)
예시) 조국 해방에 헌신하던 사나이가 꾼 X여사에 대한 꿈.
종교에서의 개성화 과정
세계 모든 종교 속 개성화 과정 중 최소한 몇 단계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종교에 몸담은 사람들은 종교적 상징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고 삶을 조정해 나간다.(344)
예시) 기독교: <자기> → 그리스도(제2 아담)
불교: <자기> → 크리슈 & 석가
기독교도 몇몇 여신도들의 꿈을 보면 개인의 무의식이 의식적인 종교의 표상을 수용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344) 융은 현대 기독교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무의식 표현에는 삼위일체 교리에 여성적이고 어둡고 악마적 요소까지 깃들어 있는 제4의 요소를 추가시켜 그 요소를 완성시키고자 하는 어떤 무의식적인 경향이 작용하고 있음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고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제 4 요소의 무의식은 빛과 어둠의 재통합을 시도하려 한다.(345)
개인에게 찾아온 집단적 계시로서의 만다라
집단의 심리적 평형에 동요가 일었을 때나 특정 개념이 아직 종교적 교리에 포함돼 있지 않아 표현할 길을 찾아야만할 때 개인의 상상이나 환상으로 ‘만다라’가 생겨났다. 보수적인 목적과 새로운 것을 표현하려는 창조적 목적 두 개가 생기는 것인데, 이것은 상승하는 나선으로 표현된다.(345-347) 대단히 새롭게도, 이 나선형 만다라는 기독교인의 꿈에서도 발견되곤 한다.
예시) 개신교 환경에서 자란 소박한 부인의 꿈(347, 348)
만다라가 촉구하는 것
기독교 교단에 드리워질 어둠을 예언하기도 개혁의 방향까지도 암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신도들에게 두려움을 야기, 분석 심리학과 무의식 전체를 거부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348)
꿈의 해석을 거부하는 종교인들의 유형(거의 기독교인들을 지칭하는 듯)과 이에 대한 반론
1. 자신의 종교의 교의를 아직 순수하게 믿고 있는 인간.
2. 신앙을 완전히 잃은 대신, 의식적 합리적 견해를 발전시킨 인간.
3. 머리로는 종교를 안 믿지만 속으론 믿는 딜레마에 빠진 인간. 자신이 뭘 바라는지 모름.
신학자들의 <계시론>에도 불구, 모든 종교 교의가 실제로는 집단의식에 속하고 있고 오래 전에 무의식에서 솟아나온 것.(350)
예시) 블랙 엘크의 이야기, 독수리제의 기원
이런 결정작용의 단점
대물림을 통해 원체험에 대한 지식은 점점 희박해지고 기억은 희미해진다. 그래서 낡을 대로 낡은 이런 종교 전통은 무의식에 의한 창조적 변화를 거부하기 마련. 하지만 신학자들은 자기네들이 지키려고 하는 가치가 무의식의 기능에서 연유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351) 그 무엇도 마음이라는 존재에서 절대로 동떨어질 수 없다.(352)
무의식 발견의 의미와 결론
이것은 하나의 문을 영원히 닫아 버렸다. 영적 실체 그 자체를 알 수 있다는 환상을 단호하게 부정한다. 하지만 이것의 발견은 환상의 상실을 보충하고 객관적 과학적 탐색이 불가사의한 새로운 방법으로 개인의 윤리적 모험과 손을 잡는 그런 마당이다.(352) 또한 <자기>의 사회적 기능을 통해 서로 분리된 개개인은 자신의 동류와 연결되기에 이른다.(353)
시각 예술의 상징성 by 아닐라 야페
신성한 상징 – 돌과 동물
돌, 동물, 원. 모든 시대를 통해 되풀이해서 세 가지 모티프.
돌
1. 자연석까지도 원시 사회에서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358, 359)
예시) 구약성서의 야곱이 베고 잤던 돌베개 베델 & 선종 불교의 석정
→ 신의 계시를 통괄하는 완전한 형태이자 중재자, 고도로 세련된 정신의 표현
2. 현대조각에서도 이런 경향이 발견.
예시) 막스 에른스트의 편지(360) “기본적인 작업은 자연에 맡기고 우리는 돌에다 기호만”
→ 그가 말한 <신비>는 <돌의 정신>을 알고 있던 옛날의 <신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동굴화 속 신령은 수세기를 초월해 그 힘을 간직해 왔다. 통로 뒤에서 불쑥 나타나는 예기치 못한 광경으로 위압적인 인상을 선사했을 것이다. 또한 과녁으로 쓰여 수렵 주술의 역할을 맡았다. 이는 실물과 이미지와의 동일시 현상. 이미지는 실물의 영혼이 된다.(361)
동물
오늘날 아프리카에서는 국왕의 즉위식에까지 동물의 가장을 등장시켜 중요한 역할을 맡긴다. 과거로 갈수록 이는 가장을 넘어서 동물 그 자체가 <된다>.(363)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 그 역할은 가면으로 대체되고 그 변장을 완성시키기 위해 춤을 춘다.(364) 동물의 모티프는 인간의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성질을 상징한다. 무의식에서 분출된 난폭한 본능적 충동. <동물 악마>는 이런 충동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그 이미지를 자기의 압도적인 충동의 표현으로 삼아 그것과 친화할 길을 모색하는 것.(366) 실제로 거의 모든 민족의 종교와 종교 예술에서는 동물의 속성이 바쳐지거나 신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도,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시) 어린 양이나 물고기로 표현되는 그리스도
동물에 쫓기는 꿈을 꾸는 이유는, 의식에서 단절되어 있던 본능이 삶 속으로 통합되고자 하기 때문이다.(368) 문명인에게나 원시인에게나 동물의 영혼을 수용하는 일은 전체성을 실현하고 생명을 자유롭게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문명인은 내부의 <동물>이 입은 상처를 치료하여 친구로 삼아야 한다.(369)
2. 원의 상징
폰 프란츠 박사는 원을 <자기>의 상징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원시인의 태양숭배나 현대 종교, 신화나 꿈, 티베트 불교의 만다라, 심지어 도시 계획도에도 나타나고 천문학자가 생각했던 구형 개념에서도 발견된다. 즉 생명의 궁극적인 전체성을 나타내 왔다.(370)
만다라 등장의 양상
예시1) 인도의 천지창조 신화에서의 4점, 석가가 탄생한 순간 피어난 연꽃에서 나타난 10방
→ 의식의 네 가지 기능(사고, 감정, 직관, 감각)이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
예시2) 얀트라 → 대극성의 통합
모든 종교가 목표로 삼고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바가 이런 신과 영혼의 합일.(371)
예시3) 교회의 둥근 장미창, 그리스도와 성자들의 후광(372)
→ 일륜. 태양바퀴의 이미지. 신석기 암벽 조각에도 나타남.
예시4) 로마의 건설. 원 안에 있는 <4각 도시> 예루살렘. (373)
만다라를 사용하는 이유
도시를 하나의 질서 정연한 우주로 바꾸고 중심부가 피안의 세계와 연결되는 신성한 장소로 변용시키기 위함. 도시, 성관, 사원은 마음의 전체성을 상징.(375)
기독교에서의 만다라에 역행하는 현상: 더 높은 하늘로
처음에는 병원 표시 같은, 만다라가 있는 등변형 십자가였지만 가로선이 점점 위로 올라간다. 대지에서 정신적 영역으로 <상승>, <내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다>라고 한 그리스도의 말을 구현하려는 데서 비롯. 이런 현상은 중세의 신비주의에 이르면서 절정에 다다른다.(375, 376)
르네상스, 다시 땅으로
외계를 파악하는 방법이 혁명적인 변화를 맞아 땅으로 내려온다.(376) 자연과 육체의 아름다움을 재발견. 종교적 비합리성은 논리적 사고에 밀려 점차 자취를 감추고 화풍도 사실적, 심미적 색채를 띠기 시작. 교회건축도 원형의 평면도 도임. 원이 라틴 십자가를 대체.(377)
하지만 오늘날까지 그렇듯 그리스도는 여전히 라틴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이다. 그리하여 마음 속 기독교 정신과 합리적 마음 사이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378)
기독교의 대위법적 동반자, 연금술사
정신과 육체의 양면을 지닌 인간의 전체성을 추구. 이들이 생각해낸 상징 중 하나가 원적법이다. 이것은 진정한 만다라와 다르지 않다. 그들은 불가해한 그림을 그리곤 했지만 그만큼 심원한 상징을 나타내는 것들이기도 했고 자연의 어두운 면에서 영감을 받았다.(379)
극단적으로 다른 예술의 두 가지 표현 양식
1. 감각적 양식: 소재가 되는 것을 직접 재현하고 묘사하는 것
2. 상상적 양식: 비현실적이고 몽상적이고 추상적인 것.
기원전 3000년 지중해 지역까지 거슬러 올라감. 종교적 정신적 심성의 작용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것. 여기서 나오는 원은 현대 예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380)
대개 현대 예술에서는 뿌리내림을 상징하는 사각형과 마음을 상징하는 원은 대체로 엉성한 배치 속에서만 등장한다. 이것은 20세기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인의 영혼은 뿌리를 잃고 분열의 위험에 직면한 것이다. 이 분열은 ‘냉전’으로 보여지는 오늘날의 세계정세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383)
3. 상징으로서의 현대 회화
상상적 회화, 추상화, 비구상화
50년 동안 현대예술은 계속해서 일반적인 논쟁거리가 되어 왔고 그 열기는 아직도 식지 않았다.(386) 비구상적 예술 작품에는 그 세계를 바라보는 관람객의 경험과 시선이 전혀 고려되어 있지 않지만 이게 오히려 더 강렬하게 감정과 정서에 대해 호소할 수 있다.(387) 현대 예술가의 희망: 인간의 내적인 환상이나 생명의 바탕이 되고 있는 정신과 세계를 표현하는 것.
→ 이를 위해 감각 세계는 물론 개인의 영역까지 버려가며 고도의 집단성에 집착해 감동시킨다.(387, 388)
위대한 추상성과 위대한 사실성, 그리고 균열
말레비치의 사각형 가득한 그림, 뒤샹의 술병 건조기는 예술과 상관없는 상징적인 몸짓에 지나지 않지만 이건 예술의 양극, 위대한 추상성과 위대한 사실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정신의 균열을 반영하며 이 균열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미 나타났던 것. 현대 회화가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양자의 대립에 따른 정신의 상황인 것이다.(389, 390)
4. 사물의 내밀한 혼
현대예술에서 드러나는 연금술적 교의, <물질 속의 정신>
버려진 물건에 소재로 쓰는 현대 예술가들
예시1) 버려진 것들을 주워 조합하는 호안 미로. 피카소와 브라크의 <콜라주 기법>(391)
칸딘스키가 “모든 사물에는 혼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 것처럼 하찮은 물질도 종교적 명상의 촉매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한 연금술사들의 전통.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사물이나 무생물에 투사되고 있다는 심리학적 사실을 알지 못했다.(393) 이른바 <물질 속의 정신> (394)
예시2) 기독교회에 대항하는 슈비터스의 작업.(391-393)
→ 사물에 편집증적으로 매달렸지만 그럴수록 역설적으로 그게 사물 고유의 의미를 박탈해 버리게 하고 사물 자신의 실체성을 방기하고 해체하기 시작함. 물체의 절대적 <구체성>이 현대 원자 물리학에 의해 은연중 침윤당하는 우리 시대를 상징적으로 표현.
<물질 속의 정신>은 무의식에 다름 아니다.
무의식과 관계맺기에 관해 두 현대 예술가들 비교
1. 키리코: <무서운 공허>를 그리고자 노력했다. 그의 작품(397)을 보면 소름끼칠 정도의 정신적 붕괴 직전의 모습. 녹색 공이 없었다면...영혼을 박탈당한 인간의 모습(398)
→ 그가 말하는 <무서운 공허>는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이다. 키리코가 <무서운 공허>를 <마음을 혼란케 하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변용시키는 데 성공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지만, 현대인의 실존적 딜레마의 핵심을 찌른 것은 분명해 보인다.(396) 현재 종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이제는 인간에게 비인격적이기는 하더라도 새로운 형태의 위엄과 책임을 부여할 때이다.(398)
2. 샤갈: <언제나 자기를 그 문턱에까지 데려다 준 대지에 한 발을 대고 있다>. 무의식과 진정 <올바른> 관계 맺음을 나타냄.(399) 풍부하고 따뜻하며 생기가 넘침.(397)
현대 예술 작품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창시한 <초현실주의> 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생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꿈이 도움을 주고 초현실 가운데서 해결될 거라고 믿는다.” → 하지만 그가 채택한 방법인 프로이트의 <자유연상법>과 <자동기술법>은 의식의 역할을 무시하여 미로 속에서 길을 잃게 만든다.(399, 400)
무의식은 의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야 자체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고 무의식 자체만의 공허의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의식을 방치하기만 하면 파괴적인 측면만을 노출시키고, 대단히 위험해진다.(401)
현대 예술에서의 <우발성>
우발적 그림 그리기. 브르통: <한 마리의 말이 토마토 위를 달리는 모습을 떠올릴 수 없는 사람은 백치와 마찬가지이다>(401) 우연이란, 우리로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능동적인 질서와 의미의 원리를 가리킨다. 이 원리는 <대상> 속에서 <숨겨진 영혼>으로 나타난다. 그 바탕에 깔린 것은 <우연을 본질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것>(402)
예시) 다빈치와 보티첼리의 말. 에른스트가 타일을 보다가 홀연히 나타난 환상. 자연물을 표현했던 19세기 낭만파 화가들.
→ 여기서 자기 충족의 정신적 전체성 상징(원이나 고리)을 배치함으로써 이미지가 지닌 혼미한 자연 언어의 위험성에 대항하거나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무의식적 충동을 읽을 수 있다.(402) 심리학자들은 여기에 깃들어 있는 <암호>를 탐구하고 이것을 해명하려고 한다.(404)
현대 예술과 정신분열증
대부분의 현대 미술 작품은 퇴행적이라고 비판받고, 작가는 미친 예술가로 취급하기도 한다. 정신병에 걸린 사람의 의식과 자아 개성은 무의식에서 흘러나온 내용물에 빠져 익사해 버리는 특징을 갖는 때문. 오늘날 분열증적 상태와 예술가의 환상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 되었다.(404)
Q1: “무의식에 의도적으로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는 지금껏 한번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낳은 적이 없다. 집단의 무의식은 개인의 무의식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자율적이기 때문이다.(339)” 과연 그럴까? 지나치게 개인적인 것 아닌가? 사회구조는 무의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아니면 이 책에서 말하는 ‘무의식’은 보다 넓은 범위의, 절대적인 것인가?
Q2: 376 페이지에 나와있는 점점 만다로로부터 멀어지는 십자가, 점점 높아져만 가는 교회는 퇴행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때의 교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이의 빌딩들이 즐비한 현대는 퇴행이 극대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Q3: 저자들은 죽 현대미술에 관해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듯한 뉘앙스를 내비치고 있다. 특히 정신적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샤갈을 제외하고 건강의 예술의 또다른 예시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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