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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심리학 세미나. 『인간과 상징』 4부~5부
4부 시각 예술에 나타난 상징성 -아닐라 야페
현실로부터의 후퇴
프란츠 마르크 <미래의 예술은 과학적인 우리의 확신을 형상으로 표현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정말 예언적인 선언이다. 앞에서는 프로이드의 정신 분석과 무의식의 발전이 20세기 초엽의 예술가들에게 미친 영향을 추적해 봤다. 이제 우리는 현대 예술과 핵물리학의 연구 성과와의 관계를 추적해 볼 것이다.
핵물리학이 질량과 에너지, 파동과 입자가 서로 변환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버리면서 물질의 정체가 우리의 이해 가능한 범위에서 멀어졌다. 이제 인과의 법칙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물리학이 밝힌 상대성, 불연속성, 역설은 우리 세계의 극단에서만 통한다. 이러한 물리학적 개념의 혼란이 현실의 개념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즉 전체적으로 비합리적인 현실이 고전 물리학이 통용되던 우리의 세계 뒤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에 따라 마음의 세계에도 이에 상응하는 상대성과 역설이 발견되었다. 의식 세계에서도, 새 세계, 핵물리학의 법칙이 통하는 세계와 기묘하게 유사, 이 같은 핵물리학과 집단무의식의 심리학간의 대응관계는, 밖으로 드러난 현상의 배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현실의 외면과 내면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리학과 마음이라는 두 세계의 배후에 존재하는 이 단일한 세계의 특징은 그 법칙이나 작용과정이나 내용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상상할 수 없는 것을 현대미술의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물리현상과 심리 현상 양쪽의 공통되는 배경적 기반인) <하나의> 현실, <하나의> 생명을 표현한 것이다.(물론 물리학과 심리학, 자기가 표현하고 있는 예술의 삼각관계를 이해하는 예술가는 그리 많지 않다.)
칸딘스키, 프란츠 마르크, 파울 클레-이들은 물체 세계로부터의 유리 현상 경험하고, 모든 것의 배후에 숨은 비현실적 생명을 드러내고, 존재(being)와 얼굴을 맞대기 위해 삶의 거울을 부숴 버리는 것, 형태로 표현된 작품보다 형태를 부여하는 힘 쪽에 훨씬 더 관심을 기울인다. 즉 몬드리안에 따르면, 논리적 긍극, 추상화의 궁극은 주관적 감정이나 관념에 좌우되지 않는 <순수 형태의 창조>를 통해서만 달성된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끝없이 변천하는 자연의 형태 배후에는 불변하는 순수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추상 예술가들은 물체에 등을 돌려, 물체 자체의 구상과 비구상을 뛰어넘는, 생물이나 물체의 중심 그 배후에 있는 불변의 기반과 내적 확실성에 관심을 두었다. 이에 따라 예술은 신비한 정신에 사로잡혔다.
이 정신은 중세 연금술사들이 <메르쿠리우스Mercurius>라 부르던 세속적인 정신이다. 자연과 사물의 이면에서 찾고자 한 정신을 상징한다. 기독교와는 이질적인 -천상적인 것과 반대 되는 지상적이며 세속적인 것이었다. 이 세계의 부정적인 측면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 예술도 대지의 정신에 뿌리내린 신비주의 이다. 따라서 현대 예술이 기독교를 보완하여 우리 시대의 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예술가의 표현은 <은밀히 인지한 것을 시각화하는>과정이다. 클레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상과 대지를 잇는 고리는 자연의 모든 법칙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일과 살아 있는 것을 모두 사랑하는 일’이다. 잭슨 폴록은 ‘나는 그림을 그릴 때는, 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그림에는 저마다 생명이 있기....다만 내가 그림과의 관계를 상실하는 때에는 결과도 엉망이 된다. ...이렇듯 말을 주고받듯 편안한 교환관계가 이루어졌을 때 작품도 잘 나온다.’
현대 추상회화가 추상적인 그림에서 우리가 아는 세상이 완전히 소실되어 버린 순수한 추상으로 등장되었다. 그러나 이 철저한 순수한 추상이 어느 틈에 <자연주의적>이 되어 20세기 초에 떨어졌던 <위대한 추상>과 <위대한 사실성>이 다시 만나게 된다. 이것은 무의식 속에서 그렇게 된 것으로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 칼 융에 의하면 “정신의 심층은 어두운 곳으로 내려갈수록 개체적 독자성을 잃고 자율적인 기능체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집단적인 것으로 변모하다 마침내 육체의 물질성인 화학물질로 보편화하면서 그 특이성을 잃어버리고 만다. 마음도 그 최하층에 내려가면 곧 세계 자체이지, 더도 덜도 아닌 것이다.” 결국 예술가도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의 창작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예술가가 무의식에서 작품을 만든다면 그 작품은 자연의 법칙에 지배되는 것이며, 이 자연의 법칙은 심층적으로는 마음의 법칙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들도 자신이 지하계의 정신과 자연의 원초적인 지반으로 신비스러운 침강을 계속함에 있어 자신들이 얼마나 심각한 심리적 위험을 감수했던 것이지는 자각하지 못했다.
심리적 위험
빌헬름 보링거는 추상 예술을 일종의 형이상학적 근심이나 불안의 표현이라 해석했다. 즉 현실을 고통으로 여긴 이들에게 초자연적인 세계, 초 관능적인 세계를 열망하고, 이런 세계를 상상적. 추상적 예술로 표현한다는 것인데, 민담이나 신화에서 <영웅의 패배>가 사회를 통해 나타나며, 예술에서는 인간적 요소의 쇠퇴로 나타난다.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는 품페이 유적에서 발굴된 사해(死骸-죽은 사람의 몸, 시체)를 작품의 주제로 삼았는데 이를 <히로시마 양식>이라 부른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마리니가 예술이 세계의 종말론적 환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인데, 감각적 예술의 방향이 세계의 종말에 대한 불안으로 변용해 가는 경향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런 종말적 운명은 세계에 대한 절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종교적 요소, 즉 신은 죽었다는 데서 오는 불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내적인 고뇌의 바탕에는 ‘의식의 패배’가 깔려 있다. 신비스러운 경험 가운데서 사람들은 인간적인 세계나 대지, 시간과 공간 등에 묶었던 사슬이 끊어져버리는데, 이 대목에서 의식의 경험을 통해 무의식이 평형을 찾지 못하면, 길을 잃은 무의식은 무자비하게 의식과는 정반대되는, 부정적인 측면을 드러낸다. 이렇게 되면 전체를 조화시키고 원초의 지반을 이루던 풍부한 예술적 창조의 울림은 파괴와 절망의 날을 맞고야 만다. 무의식의 먹이가 되고 만다.
배후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세계는 물리학에서도 역설적인 성질을 드러냈다. 인간에게 절멸의 길을 터준 것이다. 지식의 끝과 자연의 파괴,
융 박사는 인간의 무의식이 위험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인류에게 파국에 대항하는 유일한 무기를 제공한다. 그 무기는 개인의 의식에 대한 의미를 환기하는 것으로 매우 단순하게 보이면서도 사실은 대단히 쓰기 어려운 무기이다. 통찰.
악덕은 무의식이 지니는 부정적이고 어두운 면이지만 긍정적인 의미에서 인간이나 물체의 세계에 창조적 생명을 불어 넣는 <자연의 정신>으로 나타난다. 연금술사들은 이 정신을 <메르쿠리우스의 정신>으로 파악하고, 기독교 용어로 부르자면 악마이다. 그러나 악마도 두 얼굴을 지닌다. 긍정적인 악마 <루시퍼-빛을 가져오는 자>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역설적 전개방식으로 비추어 볼 때 현대 미술도 양면성을 지닌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현대미술은 심원한 자연적 신비주의의 표현이다. 그러나 반대로 부정적 의미에서는 사악함, 혹은 파괴적인 정신의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런 두 가지 면이 서로 표리일체를 이룬다는 역설이 바로 무의식의 본질적 특성이며 그 내용인 것이다. 이러한 고찰은 작품의 예술적, 심미적 가치와는 관련이 없고, 현대 예술을 이 시대의 상징으로 본 데서 이런 고찰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대극(對極-반대의 극)의 합일
시대정신이라는 것은 부단히 변화한다. 20세기 중반, 회화에 하나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 이 변화는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자신들이 목적한 바를 공식화한 데서 온 변화이다.
구체적인 현실을 재현하려는 욕망,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포착하고자 하는 인간의 원시적 욕망은 프랑스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스위스의 베르너 비쇼프 등의 사진 예술을 통해 감각적인 구상 예술로 승화되었다. ?
이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젊은 예술가들은 가장 가까이 존재하는 것인데도 그때까지는 간과했던 것을 자연과 인간 가운데서 발견, 선배들처럼 회화로 자연을 재현하는 대신 자연에 대한 정서적 경험을 표현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프랑스 화가 알프레드 마네시는 자기 예술의 목적은 “우리가 다시 정복해야 할 것은 잃어버린 현실의 무게이다. 즉 인간으로서의 새로운 마음, 새로운 정신, 새로운 혼을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 예술가에게 진정한 현실은 추상주의나 사실주의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신의 중요성을 회복하는 일이다. 자신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고 이를 강화함으로써 세계의 외적 현실에 이르려면 먼저 자신의 위치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오늘의 예술가들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생각은 자기 자신의 내적 현실과 세계 및 자연의 현실을 의식적으로 재통합하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중요성을 합일시키는 일이다. 이로써 현대 예술을 둘러싸고 시작된 <위대한 추상성>과 <위대한 사실성>의 균열에 대한 의식화와 치유의 방향잡기가 시작되었다.
이런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추상적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에 대한 신념이 배어나오고, 형태와 색체는 평화롭고 조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제 악을 부정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악한 것 역시 승자나 패자로서의 적이 아니라 전체 속에서 함께 작용하는 하나의 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극의 합일을 이룬 현대 회화는 종교적인 주제를 다시 다루고 있다. 형이상학적 공허를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면서 교회는 현대 예술의 후원자가 되었다. 많은 현대 예술가들의 그림이 교회에 성당에 전시되어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는데 이것은 기독교와의 관계에서 현대 회화가 맡은 역할이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부터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런 대극의 합일 분위기가 적극적이고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지,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비극과 혼돈을 경험할게 될지 알 수 없다. 이 세계에는 너무나 많은 불안과 공포의 요소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이 요소는 여전히 지배적인 자리에 있다. 사람들은 예술에서 이끌어낸 결론을 수용하는 데는 인색하지 않은데도 자기 삶에 적용하는 데는 망설인다. 예술가들은 무의식적으로 표현하기에 사람들은 반발하지 않는다. 심리학자가 말하면 사람들은 도전을 받았다고 느낀다. 예술가는 개인의 영역에는 침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이 시대에 전제적이고, 보다 인간적인 표현 양식에 대한 암시가 두드러진다는 것은 중요하다.
5부 개인 분석에 나타난 상징 - 율란데 야코비
분석의 시작(472p)
융박사의 심리학 방법은 심리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채 중년을 맞은, 개성화 과정의 초기 부분을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 사람들이거나, 심각한 문제, 인생을 두려워하고 현실에 적응하기 어렵게 여기는 젊은이들이거나 모두 보살펴줄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 심리학이 나서면 무의식속에서 풍부한 광맥을 찾아내고, 이 광맥을 의식 세계로 도입하여 자아를 강화하고 성숙한 인간이 되는 데 필요한 정신적 에너지를 얻게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심리학이 발견해 내는 <꿈의 강력한 상징적 기능>이다. 고로 이장에서는 헨리라는 스물다섯 엔지니어를 예로 꿈 상징의 분석이 개성화과정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살펴본다.
<헨리>는 동부 스위스 전원지방 출신이고, 내향적이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큰 키의 날씬한 청년이다. 프로테스탄트 농민 집안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의사이며 엄격한 도덕 기준을 갖추었지만 폐쇄적이고 교제에는 서툰 사람이다. 어머니는 내주장(內主張)이 강하며, 엄격하지만 교양 있고, 정신적 시야가 넓고 충동적이고 로맨틱하다. 누나가 있고 사이는 좋은 편이다.
그는 자기 마음이 드러내는 어떤 요청에 따라 심리 분석자를 찾아 왔고, 나는 그의 내적 요청 이면에 어머니와의 관계와 인생에 대한 두려움이 은폐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카톨릭 처녀와 약혼했지만 결혼에 대한 확신도, 결혼을 미루고 학구적인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생각도,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감을 가지고 선택을 내리기 위해 좀 더 어른이 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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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는 어머니쪽 영향을 강하게 받았는데, 의식 세계에서는 자신을 이상이 높고 지적 야심이 있는 어머니의 현실과 동일시하는 반면, 무의식세계에서는 어머니와 밀착관계가 지닌 어두운 면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의 무의식이 헨리의 자아를 계속 장악하고 있어, <어머니의 감옥>에서 빠져나오려는 욕구가 무의식적 여성성인 <내적 어머니>에 대한 거부감으로 표현되어 외부세계에 나서려는 그의 기를 꺾고 계속 어린 시절의 상태로 되돌려 놓으려 했다. 그는 성장을 바라는 자신의 내적 충동 속에 어머니로부터 분리될 필요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헨리와의 분석은 9개월 동안 진행되었고, 꿈은 모두 50개였다. 분석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의식의 산출하는 소재와 그 무의식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내적인 진실을 알아내고자 하는 개인의 자세인데, 헨리의 생활이 단조롭고, 그의 꿈은 그 자신의 정신적인 발달을 호소하고는 했다.
헨리의 꿈 분석 초기에 중요한 상징의 의미를 지닌 어린 시절의 기억이 등장하는데, 달로 상징되는 <크로아상>이 지닌 <여성의 지배적인 힘>을 자각했고, 어린 시절 누나와 관련된 기억에서 무시와 불쾌한 느낌과 부당함을 잊지 못해 뒷날 그는 늘 남성다운 주장에 관련된 갈등과 합리적 가치와 공상적 가치 사이의 갈등을 느끼게 된다.
첫 번째 꿈
융박사는 첫 번째 꿈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것은 첫 꿈이 앞으로의 분석에 대한 예상을 가능케 하기 때문인데, 분석을 받으려는 결심은 원형 상징 연못이라 할 수 있는 마음의 심층 차원을 휘저어 전체 분석 과정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 분석가에게 꿈꾼 사람의 심적 갈등에 대한 통찰의 열쇠가 되는 <집단적 이미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헨리의 첫 꿈에서 <소풍으로 산을 오르는 표현>은 무의식에서 자아(의식의 강화)로 상승을 보여준다. 출발지로 상징되는 ‘조국을 해방 시킨자, 예치나’에게 자신을 견줌은 희망의 징조로 해석할 수 있다. 소풍의 목적지 치날로트호른산의 ‘붉다’라는 말은 미숙한 자신의 감정 기능 상태와 관련을 암시하고 있다. 산행 끝에 <연극을 보다>는 관객이 되어 동일시 경험을 통한 카타르시스, 즉 내적 성장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극에서 여성의 낭만적인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는데, 이 여성은 헨리의 무의식에 있는 여성적측면의 화신이라 볼 수 있다. 이 여성에서 「사자의 섬」의 인물을 떠올리는 것은 우울증적인 평소 기분을 나타내며, 이 인물에서 이중의 역설, 헨리의 마음이 지닌 양가감정으로, 이는 아직 구별도 될 수 없을 정도의 미분화상태이다.
이제 헨리는 꿈속에서 <산마루>에 오른다. <산마루>는 낡은 마음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전환의 계기로 상징된다. 헨리는 오직 누구의 도움 없이 시련을 겪으며 혼자 올라야 한다. 왜, 자아에게는 이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헨리는 산마루에 이르지 못하고 방향을 잃고 헤맨다. 즉 자아아닌 다른 정신적 요소는 수동적인 옛날의 상태에 머물며 자아를 거부한다. 궁지에 몰린 헨리에게 <노부인>이 길을 가르쳐준다. 이 도움은 지성의 희생-합리적인 사고-을 필요로 하지만, 헨리는 이 도움이 자기에게 결정적임을 직관적으로 알았던 듯하고, 이 <노부인>을 프리스틀리 연극의 품팔이 여자-도시 사람들이 이 여자가 도시로 오기만 하면 독방을 주기로 약속함-로 연상하는데, 이것은 헨리가 겨냥하고 있는 자존과 자립을 성취할 수 있는 상징이다. 즉 헨리와 같은 합리적인 사고방식의 젊은이가 자기 마음을 의식적으로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의 태도를 깡그리 뒤엎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따라서 헨리는 <노부인>의 충고에 따라야 만이, 그가 어느 정도 산길을 오른 후에 방향을 바꾸어야하는지를 직접 판단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한 그는 꿈속에서 <죽은 사람들이라고 했다>는 목소리를 듣는데, 융 박사는 꿈속에 들리는 목소리는 <자기>의 개인으로 해석, 보편적 지식을 대변하고 있다고 한다. 헨리는 이 목소리로 자신이 전념해 온 도식들이 죽었음을 깨닫는데, 꿈이 헨리에게 전환점을 마련해 준 것이다. 마침내 의식과 외계로 향하는 오른쪽으로 방향으로 전환, 이로써 그동안 자신이 알지 못하던 자기 개성의 다른 측면들을 의식화할 수 있게 되었다.
꿈은 이 대목에서 해결을 상징하는 <비>를 만나고, 산에서 내려온 헨리는 배낭이나 오토바이로 상징되는 보편적 가치를 다시 만난다. 꿈의 과정은 헨리는 자기의 독립심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자아의식을 강화하는 하나의 관문을 지난 것이고, 그렇기에 다시 사회와 접촉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대극의 통합을 이루기 위한 시련이었다.
무의식에 대한 공포
헨리가 첫 번째 꿈에서 당면한 문제-남성적 능동성과 여성적 수동성 사이에서 동요하는 문제와 지적인 금욕주의로 도피하려는 경향-은 그 뒤의 꿈에서도 나타난다. 세상을 겁내면서도 매력도 느끼는 양면적 감정은 청년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헨리의 네 번째 꿈의 전체 상황-군대-은 평범한 남성의 운명을 싱징 한다. 끝부분에서 꿈 내용이 바뀌는데, 헨리의 무의식적 본능의 세계가 여성적인 것으로 상징-숲-된다. 이곳에서 헨리는 의식세계에서 이상적이라 생각했던 낭만적인 소년의 모습을 한 암사슴과 미분화된 본능을 상징하는 기묘하게 생긴 세 동물이 출현- 성욕과 난교와 모성을 상징하는-하는데, 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이 세 동물은 원초적인 무의식의 덩어리로 상징된다. 바로 이 원초적인 무의식의 덩어리에서 개인의 자아가 출현하여 성숙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이 꿈에서 헨리는 새로운 균형국면에 이르게 된다.
헨리는 무의식의 심층을 두려워하는 꿈을 꾸는데, 내면에 있는 심층과의 교류를 두려워하는 남자는 현실의 여성에게 다가서기를 망설이는 것은 물론, 마음속에 있는 여성적 요소도 두려워하여 매료당하다가도 달아나려 한다. 이러한 모습은 어머니의 굴레를 강하게 의식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로 헨리도 한 여성에서 감정과 관능을 동시에 느끼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헨리의 의식 뒤에 있는 의혹의 증상들이다.
성자와 창부(娼婦)
본능적인 육욕을 두려워하고 일종의 금욕주의로 도피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헨리의 심리 상태는 성자의 꿈에서 잘 나타난다. ‘좁은 산길을 오르다 바람이 심해 동굴에 들어가는데-동물은 의식의 영역에 생긴 간극이자 어머니 대지의 자궁을 상징하는 곳이다. 때문에 변용과 재생이 이루어지는 신비스러운 곳이다-창부를 몰래 숨어서 보고 엉덩이를 만진다.’ 이 같이 창부를 금기하면서 가까이 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는 것은 모성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남성에게 흔히 볼 수 있다. 어머니와의 진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애정에서 동물적인 욕망을 분리시켜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직 뒤에서만 창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창부가 다음에는 남창으로 그 다음에는 성자로 변신한다. 이것은 관능의 세계에서 도피하는 방법은 육욕의 부정을 통해 금욕적인 삶을 사는 길밖에 없다고 헨리의 심리 상태는 암시하는 것이다. 헨리의 성자의 겉옷으로 성자의 페르소나를 입음과 동시에 두 여성의 외투로 성자에게 일종의 관능적 정신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육욕의 세계에서 도피하려는 이러한 성향은 젊은이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 못 된다. 사람은 인생 전반기에 본능을 누리는 것도 배워야 한다. 관능이라는 것은 종의 보존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꿈은 헨리에게 이점을 깨치려 한 듯하다.
분석의 진행 과정
처음 회의하고 저항하던 헨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기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강한 관심을 보였다. 꿈이 의미심장한 방법으로 자기에게 무의식적 생활을 보상하고 양면성과 마음의 동요, 수동적인 경향 같은 것을 깨우쳐주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헨리는 호수에 가라앉은 기관차를 태양 아래로 들어 올려지고, 호수가 푸른 풀밭으로 변하는 꿈을 통해 자신이 상당한 궤도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꿈은 헨리에게 사물이 헨리의 의식적인 삶 속으로 회복되고, 자기가 마음먹는 데 따라 강력한 힘을 지닌 것들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음과 적극적인 행동에 대한 그의 잠재 능력을 암시했다. 또한 꼽추 처녀를 만나 노래하고 입을 맞추는 꿈과 학교 건물에서 발각될까 숨은 자신을 찾아 밖으로 데리고 가는 꼽추처녀의 꿈은, 입맞춤으로 마법이 풀려지고, 어두움에서 빛으로 자신을 데리고 나가는 그녀가 자신의 유능한 안내자임과 동시에 약혼녀임이 암시되어 있는 꿈이다. 이제 헨리는 약혼자에게 꼽추처녀에게 소속될 수 있게 되었다.
신탁몽
전적으로 합리적 사고에 의지하면서 정신생활에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현상을 거부하거나 억압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온갖 미신에 함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이 신탁이나 예언에 귀를 기울이거나 점쟁이에게 잘 속는 경향을 보인다.
헨리도 이주 인상적인 방법으로 이러한 현상을 경험한다. 꿈이 대단한 상징과 압축된 내용으로 이루어지고-신탁몽일 때, 이러한 무의식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일 때 꿈의 작용을 직접 체험하게 할 필요가 있다-신탁서 『역경』을 따르라.
고대인들의 점술이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융 박사는 이를 <동시성의 원리>라 부른다. 동시성이란 우리 마음속에는 마음의 상태와 현상계의 일을 연결하는 <내부의 무의식적 지식>이 존재한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내부의 무의식적 지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우발적>인 것, <우연의 일치>인 것 같은 사건이 실제로 중요한 심리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 의미는 종종 외적 사상(事象-어떤 사정 때문에 일어나는 일)과 일치되는 꿈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헨리는 신탁의 괘사가 자신에게 붙어 다니는 사실을 깨달았고, <인격의 변용>을 암시하는 꿈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헨리의 꿈속 6명은 헨리의 내부적 인격으로 헨리의 정신적 특질의 화신으로 해석, 꿈꾼 당사자에게 대단한 영향을 미친다. 이런 꿈을 <인격변용의 꿈>이라 한다. 무의식의 영역은 헨리의 의식이 지배하는 지성의 세계, 스위스 청교도 신앙의 세계와는 정반대되는 세계, 오랫동안 헨리가 동경하던 본연의 <그림자 나라>이다. 그는 이 나라들이 있을 만한 곳이 아님을 깨닫는다. 역이 있는 정상으로 올라가 <집에 돌아가는 길을 찾으려>한다. 또한 중국인들은 헨리 자신의 무의식의 남성적인 측면을 상징하는데 이들과의 드잡이로 상처를 입음은 내적 자각을 획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더라도 이런 정도의 상처로는 헨리에게 어떤 변화도 일으키지 못한다. 변화는 세기의 종말을 전제 조건으로 요구한다. 젊은이가 입문의례를 통해 한 인간으로 홀로 서고,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 무리에 끼려면 상징적인 죽음의 고통을 체험해야 한다. 인생에 대한 새로운 태도가 출현하기 위해서는 헨리의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태도 또한 붕괴되어야 한다.
미개한 덫 사냥꾼이 자신을 대신해서 신탁을 받는 동안 헨리의 문명화한 자아는 옆으로 밀려난다. 헨리의 목숨은 신탁의 결과에 달려 있다. 자아가 고립될 때 그림자로 인격화한 무의식이 해결책을 구할 수 있다. 이것은 꿈꾸는 당사자가 무의식 내용을 인식하고 그 힘을 경험할 때만 가능한데, 헨리는 자신의 그림자인 덧 사냥꾼이 신탁 게임에서 이겼기에 구원을 받게 된다.
불합리한 요소와의 만남
그 뒤부터 헨리는 무의식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다. 신탁몽을 꾼 2주후 헨리는 자신을 괴롭히는 불합리한 요소와 대면하는 또 하나의 꿈을 꾼다.
검은색 풍뎅이를 마술을 부려 쫓다가, 더 이상 쫓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 풍뎅이 집에 불을 지른다. 또 다른 꿈에서 노인이 제대로 살지 못했다고 하자, 문화적 구속 탓인지, 도덕적 구속 탓인지 묻는 딸들의 말에 답을 하지 않는다. 딸들은 헨리에게 카드 패에서 9를 뽑으면 해답을 알 수 있을 거라며, 해답을 찾아보라고 한다. 헨리는 도덕적 구속 이라는 해답을 찾는다. 이 꿈은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인생은 죽음에 이르는 병과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헨리는 일상의 삶에서 생기는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 이성 외에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것, 마음의 심층에서 상징적인 모습으로 출현하는 무의식의 안내를 따를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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