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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역사1 지난 세미나 복습

 

 

 

 

반종교개혁과 트리엔트 공의회

 

교회생활의 세속적 타락, 종교적인 의무의 불성실한 이행, 각종 미신행위와 그로 인한 폐해 등이 1517년 마르틴 루터에 의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촉진했다. 이에 대해 가톨릭 교회가 교회 자체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가톨릭 개혁운동을 추진한다. 이 운동이 일반적으로 반종교개혁이라 불리는 것은 19세기 사학자 랑케와 고타인이 종교개혁에 대한 반동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Gegenreformation) 불렀기 때문이다.

사실상 가톨릭 개혁운동은 종교개혁의 반동이라기보다 이미 그 이전에 이탈리아스페인수도회에서 일어났다. 1517년경에 이미 로마수도회 오라토리오회에서 불붙기 시작하고, 타락한 성직자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극단적 청빈생활과 엄격한 사제직 수행을 주창했던 테아치노회 등이 있었다. 그중에도 예수회의 활동은 이 운동을 이탈리아 전역을 너머 유럽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로욜라에 의해 교황의 군대가 조직되어 약화된 교황권을 강화하였고, 교육시설을 강화하여 세계 전도를 강력히 추진했다. 특히 1534년 교황이 된 바오로 3세는 트리엔트 공의회를 소집해 종교적 삶의 제반 측면들을 대대적으로 재검토하는 소임을 수행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1545년에서 1549년까지, 1551년부터 1552년까지, 1562년에서 1563년까지 3차에 걸쳐 열렸다. 공의회에서는 교리교회 규칙을 심의 하였고 성전(聖傳)의 범위와 권위, 원죄(原罪), 성사(聖事), 연옥(煉獄), 성인 공경 등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을 천명하혔다. 이러한 기본입장을 기초로 성직자교회생활을 정비하고, 혼인제도의 개혁, 신학교의 설립, 수도회의 설립, 금서의 열독 등의 일을 추진해 나갔다. [참고문헌] J. Scheuber, Kirche und Reformation, 1917 / H. Gille, Das Zeitalter der Gegenreformation, 1930 / H. Hermelink, Reformation und Gegenrefation, 1911.

 

 

푸코의 담론화

 

17세기는 고해성사를 포함한 종교적 요청이 '전반적 속박의 형태'로 뚜렷이 부각되는 시기. 즉 성욕망의 담론화를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규칙으로 만들었던 시기.

 

p. 27 "나는 전통적 고해성가가 요구한 것과 같은 의무, 즉 성에 관한 법의 위반을 고백할 의무에 관해서가 아니라, 영혼과 육체를 가로질러 성과 어떤 친화력을 갖는 무수한 쾌락, 감각, 사유의 상호작용에 관련될지 모르는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자주 말하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거의 무한한 책무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p. 28 "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고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모조리 담론으로 늘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기독교의 교서에는 성과 관련된 모든 것을 발언의 끝없는 물레방아로 향하게 하는 것이 기본적 의무로 포함되었다."

 

 

18세기 및 19세기는 인구관리, 청소년 교육 등 교육학, 의학이 출현하면서 조정, 예방 조치, 처벌과 책임의 상호작용에 의해 부단히 성이 고려되는 시기. 매우 심사숙고된 성의 통제와 교육이 실행된 시기. 그 외에도 정신 의학, 형사 재판소 등의 사회적 통제가 성에 관해 말하기를 종용하며 담론을 퍼트리는 시기.

 

p. 31 "어떻게 이성의 담론으로 '그것'에 관해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프랑스어로 ḉa이며, 성이나 개인의 본능적 충동을 뜻하고, '이드'라는 의미도 함축한다. 가령, 들뢰즈의 <안티오이디푸스>의 첫문장은 "그것(ḉa)은 도처에서 기능한다......도처에서 그것은 기계들"이다.

 

p. 32 "요점은 그 모든 거리낌, 그것이 드러내는 "도덕 지상주의" 또는 그것의 배후에 놓여 있다고 의심되는 위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필요의 인정에 있다."

 

p. 36 "이 제도, 18세기의 프랑스 중등학교 내부의 담론, 즉 이 제도에 의해 충실히 이행되고 이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통하는 담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은 대부분 그 조숙하고 활발한 성생활이 항구적으로 실재한다는 확증과 맞물려 있다."

 

p. 37 "이 모든 대책에서 어린이는 분명히 어른들 사이에서만 사전에 조율된 배려의 말없고 무의식적인 대상일 뿐만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 성에 관한 합리적이고 진실하며 교회법에 합치하는 어떤 제한된 담론, 일종의 담론 정형술이 어린이에게 부과되었다."


 

2번째 세미나 발제

3. 스키엔티아 섹수알리스

 

 

ars eroticascientia sexualis

: 성애의 기술과 성의 과학

 

  푸코가 성의 역사를 저술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 그는 무엇을 위해 펜을 놓지 않았을까. 3장에서는 어쩌면 그가 '성의 역사' 기획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일부를 알 수 있다. 1, 2장에서 설명했듯이 서양에서의 성의 담론화는 17세기부터 18, 19세기를 거치면서 오히려 증가했고 "더 근본적으로 잡다한 성생활 전체의 공고화와 확립"(63)을 가져다 주었다. 서양에서의 성 담론은 성애 기술을 강조했던 동양이나 로마, 아랍권과 달리 대게 과학으로 이어졌고, 이 때 과학은 공중보건이나 진화론적 신화를 들먹이며 성에 관한 불안과 공포를 조장했을 뿐 아니라 생물학이나 역사와 같은 다른 이성 담론들과 은밀히 공조하여 국가 차원의 성적 인종차별을 정당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성생활에 대한 담론을 이어받은 '성의 과학'은 동식물 생식에 관한 생리학과 비교해볼 때 담론의 내용이 빈약했다고 푸코는 설명한다. 생식의 생리학과 성생활의 의학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차이, 단절 때문인데, 서양에서의 성에 관한 지식은, '서양에서 과학 담론의 확립을 뒷받침한 그 막대한 지식의 의지''끈질긴 비-지식의 의지'(66)의 차이를 극복하기보다 '성의 진실을 말하려는 기획'(68)에 의한 비상식적이고 순진하며 교묘한 담론 속에서 오랫동안 길을 잃어왔다.

 

  가령 서양 특유의 '진실을 지향하는 의지의 결과'로 샤르코 등의 의학자들은 사실 몰이해, 인정하려 들지 않는 고집적인 태도 등을 보이며 공개 진찰, 임상 강의 등을 통해 성에 대한 '진실'을 강박적으로 추구해서 명성을 얻었다. 물론 이들은 환자들을 부추기거나 감시하고, 요청하고 기록하면서 또는 삭제하면서 막대한 서류를 축적했지만 정작 푸코는 "중요한 것은......무엇보다도 성을 중심으로 성에 관한 진실을 마지막 순간에 감출지언정 막무가내로 생산하는 거대한 장치가 구축되었다는 점"(67-8)이라고 말한다.

 

  푸코는 성의 진실을 생산하는 주요한 두가지 방식 '아르스 에로티카''스키엔티아 섹수알리스' 중에 서양 문명은 후자를 실천했다고 주장하면서 "입문의 기술 및 스승에 의해 전수되는 비밀"(70)의 방식이 아닌 "권력-지식의 형태에 의거하는 방식"을 발전시켰다고 강조한다.

 

 

고백 관행

 

p. 71-2 "누구나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고백하고 자신의 과거와 몽상을 고백하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백하고 자신의 질병과 빈곤을 고백하고, 누구나 가장 말하기 어려운 것을 최대로 정확하게 말하려고 열심이고 누구나 자신의 부모, 교사, 의사, 사랑하는 사람에게 공개적으로나 사적으로 고백하며......서양에서 인간은 고백의 짐승이 되었다."

 

  서양에서 특히 두드러지는 고백 관행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고백은 해방하고, 권력은 침묵으로 몰아넣"(72)는 것처럼 여겼다고 말하면서 푸코는 고백이 자유의 성취와 연결된다는 명제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전도된 권력의 표상'(73)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푸코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지배의 심급은 '말하는 쪽'에 있는데('성애의 기술' 역시 스승의 지고한 의지에 의해 위로부터 담론이 형성됨) 그에 반해 고백은 필연적으로 "고백을 요구하고 강요하고 평가하고 개입하여 파난, 처벌, 용서, 위로, 화해"(74)하는 상대방이 있어야 하고, 강압적 속박에 의해 아래로부터 담론이 형성되며, 사실상 고백 담론의 "지배 심급은 말하는 사람 쪽이 아니라 듣고 침묵하는 사람 쪽에, 알고 대답하는 사람 쪽이 아니라 알고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 질문자 쪽에 있다"(75)는 것이다.

 

  이 사실을 통해 푸코는 "이러한 진실의 고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쾌락으로의 오묘한 입문(아마도 성애의 기술), 이 입문의 기술과 비의성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76)고 결론짓는다.

 

  푸코는 고백 담론이 당시의 성의 과학과 어떻게 밀접한 관계를 맺었는 지 덧붙인다. '속내 이야기의 더딘 증대'의 기록들은 19세기에 이르러 의학, 정신의학, 또는 교육학에 의해 수집되었다. 일례로 당시 고백의 관례와 내용에 의존하는 과학-고백(고백-과학이 더 맞지 않나?)이 제도화된 과학 담론을 이끌었다. 심지어는 이에 대한 반동으로 제기되었던 주체의 과학, 자기 성찰, 의식의 자기 현전과 같은 담론들조차 "고백이라는 오래된 사법적-종교적 모델에 따른 진실의 생산과 과학 담론의 규칙에 따른 속내 이야기의 강요를 맞물리게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대응"(79)이었을 것이라고 푸코는 추측한다.

 

p. 79 "고백의 방식과 과학 담론의 구성방식 사이에는 결핍이 아니라 과잉, 중복, 충분히 많지 않다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많은 담론, 아무튼 간섭이 실재했다."

 

  푸코는 성에 대한 지식의 의지가 어떻게 고백 관행을 과학적 규칙성의 도식 속에서 작동하게 했는지를 설명한다. 그것은 1)'말하게 하기'의 임상적 체계화에 의해', 2)'확산된 일반적 인과율의 가설에 의해'(성을 모든 질환, 질병, 장애의 원인으로 취급), 3)'성생활에 내재하는 잠복성의 원칙에 의해'(단지 성이 우리로부터 감추어진다는 이유로), 4)'해석의 방법에 의해'(진실한 담론을 최종적으로 구성하는, 듣는 사람의 해석과 판독이라는 권력의 정립), 5)'고백 효과의 의학화에 의해'(고백과 그 효과를 치료 활동의 형태로 코드화) 이루어졌다. 성생활은 위와 같은 광범위한 조절 메커니즘 속에 '본래'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성의 역사는 '담론의 '경제''(83) 안에서 작동하는 '담론의 역사'(84)란 관점에서 기록되어야 한다.

 

  이러한 가설에 따라 푸코는 여태껏의 모든 성 담론들이 사실상 "성 자체의 어떤 고유한 자연적 속성 때문이 아니라, 담론에 내재하는 권력의 책략에 따라 그렇게 되"(85)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지점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과연 성 담론이 주체에 관한 지식을 성취하는 데 그쳤는지 따져 물을 수 있다. 푸코의 해석에 의하면 우리에게 (감춰진) 성은 일종의 진실에 대한 징후이며, 주체(인식 혹은 의식)를 벗어나 우리의 진실을 드러내는 요소란 점에서, 그리고 마땅히 고백의 진실을 판단하는, 곧 주체의 지식에 대한 판정권을 듣는 자인 타인이 가졌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성의 과학' 담론은 외려 주체를 분할해왔고 주체를 주체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에 관한 지식을 구상해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세기부터 '스키엔티아 섹수알리스'는 점잖은 실증주의의 겉치레 아래 몇몇 국면에서는 '아르스 에로티카'처럼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자문할 필요가 있다."(86) "진실의 의무에 의해 추문이 상쇄되는 그토록 많은 속내이야기, 누구나 그토록 비싼 대가를 치르고 들을 줄 아는 사람에게 속삭일 권리를 얻는 은밀한 환상의 범람, 요컨대 여러 세기 전부터 서양이 교묘히 조장한 엄청난 "분석으로부터 기인하는 즐거움,"(87) 이 모든 것은 고백과 성의 과학이 은밀히 파편화된 '성애의 기술'을 모방하며 그 속에 섞여버린 결과이다.

 

p. 88-9 "권력과 지식, 진실과 쾌락의 장치, 억압과는 너무나 다른 이 장치......이 장치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분석의 방향을 바꾸는......우리의 작업은 이러한 지식의 의지에 내재하는 권력의 전략을 명확하게 규정하는 것이다."

 

 

 

4. 성생활의 장치

1. 쟁점

 

 

-담론(권력-억압의 관념)과 그에 대한 푸코의 분석론

 

  이전의 욕망에 대한 담론들을 살펴보면, 권력을 이해한다기보다 충동의 성격과 역학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다소 단순화된 '공통된 권력의 표상'(98)이 포함되어있다. 즉 권력은 욕망에 대해 '해방'이거나 ''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자세히 말해, 푸코는 이 표상의 주요한 특징을 '부정적 관계', '규범의 심급', '금기의 순환'(99), '검열의 논리', '장치의 단일성'(100)으로 꼽는다. 이는 권력과 성의 관계를 '본능의 억압'이나 '욕망의 법'과 같이 보는 이전의 방식들이 '동일한 권력의 기계론'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상하게 제한적으로 규정'되었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미셸 푸코의 반反-마르크스'(에티엔 발리바르)에서 발췌한 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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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는 이처럼 "권력이 금기의 부정적이고 황량한 형태로만 인식되는 경향"(101)의 원인을 중요한 권력 메커니즘을 은폐하려는 권력 자체의 특성으로 설명한다. 파렴치함의 은폐, 온갖 비밀의 감춤, 동시에 "자유에 그어지는 소박한 한계"(102) 정도로 자기를 피할하면서 권력은 이 일반적 형태로 사회에 수용되었다.

 

p. 106 "권력의 법적이고 부정적인 표상을 벗어던지려고 시도하자. , 금기, 자유, 주권의 관점에서 관력에 관해 사유하기를 단념하자 (...) 근대 사회에서 권력이 실제로 성생활을 법과 주권에 입각하여 규제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자. "금지"의 효과 하나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더구나 훨씬 더 실증적인 진정한 성의 "기술"이 엄존한다는 것이 역사 분석에 의해 드러났다고 상정하자."

 

 

첨부 자료: '미셸 푸코의 반-마르크스'(에티엔 발리바르)에서 발췌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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