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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05. 성의 역사1. 4장 발제. 풍경



제4장. 성생활의 장치
관건은, 입이 가벼운 보석의 주제를 역사로 옮겨 적는 일이다. 말하는 성의 상징은 우리 사회를 나타내는 많은 상징 중에서도 주도적인 것이다. 어떤 메커니즘에 어느 날 성이 사로 잡힌 것이다. 이 메커니즘은 성으로 하여금 쾌락과 무의지적인 것 , 동의와 심문이 서로 섞이는 상호작용 속에서 자기와 타인의 진실을 말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우리는 우리의 성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에 시달리고, 성을 검토하는 데 집요하고, 성의 말을 듣고 성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듣는 데 지칠 줄 모르고, 성의 무거운 입을 강제로 열게 할 수 있는 온갖 마법의 반지를 재빨리 만들어 냈다.

 그래서 우리의 현재의 모습에 관한 물음을 성과 자연 즉 생물학의 대상이거나 생체의 구성요소로 보는 것 보다 성-역사, 성-의미, 성-담론과 관련하여 제기하도록 유도하는 어떤 경향이 수세기에 걸쳐 지속되었다. 또한 우리를 거의 전적으로 (육체. 영혼. 개성. 역사를 ) 감정적 쾌락과 욕망의 논리에 휩싸이게 했다. 또한 수많은 이론가와 실무가는 과학적이지 않을 방식으로 인간을 전체적으로 관념적인 성의 산물로 만들었다. 성, 모든 것의 근거.

 성에서의 진실에 대해 이 광범위한 추구는 무엇 때문일까? 진실을 지향하는 이 의지. 우리는 성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쾌락 이외에 또 무엇을 요구하려는 것일까? 성의 비밀, 전능한 원인, 감춰진 의미, 끊임없는 공포로 만들려는 그러한 탐욕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결국 금기의 해제와 질곡의 제거에 대한 권유로 뒤바뀌었을까? 아니면 그 지식이 각자를 예속시키기 위해, 역설적인 ‘자신의 해방을 발견할 것’임을 보장해야 할 정도로 정치. 경제. 윤리의 측면에서 중요성을 띠게 된 것일까?

1.쟁점
 왜 이러한 연구를? 서양사회는 지난 수세기 동안 역사가 본질적으로 억압적 권력의 작용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본질적으로 억압적 권력의 개념’은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
 다음에 이어질 탐구의 관건은 권력의 분석론 쪽으로, '권력 관계가 형성하는 특수한 영역의 규정과 그 영역을 분석하게 해주는 도구의 결정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첫째, 나의 권력 분석론은 "법-담론"적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표상에서 벗어나는 조건에서만 성립된다. (*법-담론은 본능의 억압과 욕망의 법칙이라는 견지에서 분석을 행하기 때문에 충동의 성격과 역학을 이해하는 방식이지 권력을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다. 이 두 가지 분석은 공통된 권력의 표상을 내세우는데, 권력이 욕망에 대해 외부적 영향력만을 지닐 뿐이라면 "해방"이 약속되고, 권력이 욕망자체를 구성한다면 '당신들은 여전히 덫에 걸려있다'고 단언된다. (92페이지4째줄~6째줄)

2.방법
 둘째, 그러므로 억압이나 법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권력의 관점에서 성에 관한 어떤 유형의 지식이 형성된 과정을 분석해야 한다.
내가 말하는 권력은 시민의 복종을 보증하는 제도와 기구 전체로서의 "권력"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권력은 우선 작용영역에서 내재하고 조직을 구성하는 다수의 세력관계, 끊임없는 투쟁과 대결을 통해 다수의 세력관계를 변화시키고, 강화하고, 뒤집는 게임, 이 다수의 세력관계가 연쇄나 체계를 형성하게끔 서로에게서 찾아내는 거점, 이와는 반대로 세력관계들을 서로 분리하는 괴리나 모순, 끝으로 세력관계들이 효력을 발생하고 국가 기구, 법의 표명, 사회의 주도권에서 일반적 구성이나 제도적 결정화가 구체화되는 전략으로 이해해야 할 듯하다.
 권력은 제도도 아니고, 구조도 아니며, 몇몇 사람이 부여 받았다고 하는 어떤 역량도 아니다. 권력은 어느 한 지점에 대한 다른 한 지점의 모든 관계(불평등하고 유동적인)에서 생산되기에 (모든 것의) 도처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자기 재생산적 측면을 갖는 “그”권력은 이 모든 유동적인 것으로부터 점점 뚜렷해지는 전체적 효과, 이 유동적인 것들 각각에 기대면서도 이 유동적인 것들을 고정시키려고 애쓰는 연쇄일 뿐이다. 어느 주어진 사회의 복잡한 전략적 상황에 부여되는 이름이다. 그렇기에 권력관계는 유형의 관계에 내재하고, 생겨나는 분할, 불평등, 불균형의 직접적인 결과이고, 역으로 이러한 차별화의 내부적 조건이고, 단순한 금지나 추방의 역할에 힘입어 상부구조의 위치를 점하는 것이 아니라 작용하는 거기에서 직접적으로 ‘생산적 역할’을 맡는다. 권력은 권력관계 전체를 뚫고 지나가는 폭넓은 ‘균열 효과’를 낸다. 균열 효과는 대결상황을 가로지르고 세력선(재배치, 정렬, 균질화, 계열별 조정, 집중화)을 형성한다. 이러한 강력한 지배는 모든 대결 상황의 강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주도권’의 효과이다.

 일련의 목표와 목적 없이 행사되는 권력은 없다. 그러면서 권력을 주재하는, 즉 권력망 전체를 관리하는 참 본부는 없다. 권력의 합리성은 전략의 합리성으로 명료히 드러난다.(p104)
거기에서 논리는 해독할 수 있지만 전술을 구상한 사람도, 전술을 표명한 사람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즉 익명의 광범위한 전략들에는 암묵의 성격이 깃들어 있다.

 권력이 있는 곳에는 저항이 있다. 저항은 권력의 외부에 놓이는 것이 아니다. 저항지점에 따라 권력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항지점은 도처에 있으며 ‘한’장소라는 것은 없다. 또한 일반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저항은 전술적 권력관계의 영역에서만 존재한다. 저항은 권력관계에서 다른 항이고, 요지부동의 맞은편으로서 권력관계에 편입된다. 그러므로 저항도 역시 배치가 불규칙하다. (p105.16~106.5) ....저항지점들이 문젯거리로 떠오르면서, 사회의 여기저기에 균열이 생기고 통일성이 무너지고 재편성이 초래되고 개인에게 자국이 나는 개인이 재단되고 개조되며 개인의 마음속에, 개인의 육체와 영혼에 축소할 수 없는 영역이 그려진다. ...

 바로 이 세력관계의 영역에서 권력의 메커니즘을 분석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토록 오랫동안 정치적 사유를 현혹시킨 군주-법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성으로 돌아가, 성을 떠맡은 진실의 담론을 재론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왜 “그”권력이 성에 관한 지식의 확립을 필요로 하는가?’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성에 관한 이런저런 유형의 담론에서, 역사적으로 일정한 장소(어린이의 육체, 여성, 산아제한 등)에서 나타나는 이런저런 진실의 강요에서 작용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국지적인 권력관계가 무엇일까, 어떻게 권력관계가 그러한 종류의 담론을 가능하게 하고, 어떻게 담론이 권력관계에 대해 매체의 구실을 하는 것일까,...
 요컨대 성에 대해 행사되는 아주 미세한 온갖 폭력, 성을 수상쩍은 듯이 바라보는 모든 시선, 성의 가능한 인식이 말소되는 모든 은닉 장소를 광범위한 권력의 독특한 형태와 연관시키는 것보다는 오히려 성에 관한 담론의 풍부한 생산을 다양하고 유동적인 권력관계의 장 속에 잠그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네 가지 규칙을 제시하도록 유도하는데

 1)내재성의 규칙
성생활이 인식의 영역으로 성립된 것은 성을 가능한 대상으로 정립한 권력관계로부터이고, 역으로 권력이 성생활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지식의 기술, 담론의 절차가 성생활을 에워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해하는 사람과 고해를 듣는 신부 그들 사이의 관계에서 통제해야 할 “육신”의 영향 아래 갖가지 담론-자기성찰, 심문, 고백, 해석, 대담-은 서로의 왕복 운동 속에서 복종의 형태와 인식의 도식을 전달한다. 이것들이 18세기부터 권력-지식의 또 다른 “국지적 중심”이었다.

2)끊임없는 변이의 규칙
성생활에서 살펴야 할 것은 권력을 누가 가지고 있고 빼앗겼는가가 아니다. 세력관계들의 상호작용이 함축하는 변화의 도식을 찾아야 한다. “권력의 배분”과 “지식의 전유”는 순간적 절단면을 나타낼 뿐, 권력-지식 관계는 배치의 형태가 아니라 “변화의 모태”이다.

 3)이중 조정의 규칙
 “국지적 중심”도 “변화의 도식”도 연쇄에 의해 전체적 전략에 편입되지 않는다면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4)담론의 전술적 다가성의 규칙
담론을 전술적 기능이 한결같지도 항구적이지도 않은 일련의 불연속적 선분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양한 전략에 작용할 수 있는 다수의 분산된 요소로 생각해야 한다.
 재구성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배치이자, 또한 말해지는 것과 감추어지는 것 중에서 이 배치에 포함되는 것, 요구되고 금지되는 언술,.....말하는 사람이 놓여 있는 제도적 맥락에 따라 이 배치에 전제되어 있는 변이형과 갖가지 효과이며, 또한 이 배치가 내포하는 상호 대립적 목적들을 위한 똑같은 방책의 이동과 재활용이다. 담론은 권력의 도구이자 동시에 결과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장애물, 제동자치, 저항지점, 대립적 전략을 위한 거점일 수 있는 복잡하고 불안정한 작용을 한다. 담론은 권력을 전하고 생산하고 강화하고 서서히 잠식하고 노출시키고 약화시키고 가로막게 해준다. 침묵과 비밀은 권력을 보호하고 권력의 금기를 정착시키고 권력의 강압을 느슨하게 하고 다소간 막연한 관용을 마련한다.(담론 효과)
예) 남색-에 관한 말하기 꺼림은 이중의 작용을 가능하게 했다. 지극히 엄중한 형벌과 매우 폭 넓은 관용의 발휘이다. 동성애, 성도착, 소년애, 심리적 양성구유의 갖가지 모든 담론이 19세기 정신의학과 법 해석 뿐만 아니라 문학에서 출현한 현상은 “성적 도착”의 영역에서 사회적 통제의 강력한 진전을 가능하게 했지만, 이와 동시에 “반발”담론도 형성할 수 있게 했다. 이 과정에서 동성애를 의학적으로 폄하하는 어휘와 범주가 이용되었다. 한쪽에 권력의 담론이 있고 맞은편에 권력의 달론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또 다른 담론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성에 관한 담론에 대해서도 그것이(담론이) 어떤 암묵적 이론에서 파생하는가, 그것이 어떤 도덕적 분할을 연장하는가, 또는 그것이 지배하는 것이건 지배되는 것이건 어떤 이데올로기를 나타내는가를 먼저 물을 필요는 없다. 성에 관한 담론의 전술적 생산성과 성에 관한 담론의 전략적 통합성이라는 두 가지 층위에서 성에 관한 담론을 검토해야 한다.

요켠대
법의 특전을 전략적 목표의 관점으로,
금기의 특권을 전술적 유효성의 관점으로,
주권의 특전을 전반적이지만 결코 전적으로 안정된 것은 아닌 효과를 낳는 세력관계의 복잡하고 유동적인 영역의 분석으로 대체하는 권력의 이해 쪽으로, 법적 모델보다는 전략적 모델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사변적 선택이 아니다. 실제로 구체적으로 표현된 세력관계가 정치권력의 영역으로 조금씩 투자되었고, 이것이 실제로 서양사회의 기본 특징들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3.영역
 권력관계에서 성생활은 가장 은밀한 요소가 아니라, 가장 많은 활동에 이용될 수 있고 가장 다양한 전략에 대해 거점 또는 연결 지점의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가장 큰 도구성을 갖추고 있는 요소의 하나이다. (성생활은 남자와 여자, 젊은이와 노인, 부모와 자녀, 교육자와 학생, 성직자와 세속인, 공무원과 주민 사이의 권력관계에서 유별나게 밀도 높은 통로지점으로 나타난다.-요소일 수 있는 특징)

 처음 접근할 때, 18세기부터 ‘네 가지 커다란 전략의 집합’에 의해 지식과 권력의 특수한 장치가 성에 적용된다. 이것들은 그 시기에 한꺼번에 생겨나지는 않았지만, 당시에 일관성을 띠었고, 권력의 영역에서 실효성을, 지식의 영역에서 생산성을 갖게 되었고, 이것에 힘입어 이것들의 상대적 자율성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성 육체의 히스테리화’, ‘어린이의 성의 교육화’,  ‘출산의 사회화’, ‘도착적 쾌락의 정신의학화’,

 이 전략들의 관건은 무엇일까? 성생활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성의 교류는 모든 사회에서 ‘혼인관계의 장치’-친족의 확대, 성씨와 재산의 계승에 관한 제도를 낳았다.-경제 과정과 정치 구조가 이 장치의 중요성을 상실하자 이 장치의 중요성을 축소하는 새로운 장치를 고안 ‧ 배치했다(18세기). 이 성생활의 장치는 (116p 9줄~117p15줄) 존재이유는 생식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급증하는데, .....인구를 통제하는 데 있다. 이제 성생활은 새로운 권력의 장치와 깊은 관계가 있고, 17세기부터 확산되었으며, 그때부터 성생활은 생식이 아닌, 애초부터 육체의 강화, 즉 육체가 지식의 대상 겸 권력관계의 요소로서 가치를 갖는 현상과 연결된 것이다. 즉 성생활의 장치는 혼인관계의 장치로부터 자리를 잡았고, 고해의 실천, 자기 성찰과 영성 지도의 실천은 성생활 장치를 형성하는 핵심이었다. (고해실에서의 고해에서 관계의 문제의식은 자취를 감춘 반면, “육신”의 문제의식-감각, 쾌락의 성격, 정욕의 은밀한 움직임, 환희와 동의-은 더 두드러지게 되었다. )

 18세기 사회의 기본 단위로서 가치를 부여 받은 가족은 성생활의 장치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남편과 아내의 축과 부모 자식의 축-위에서 전개되는 것이 가능해졌다. 가족은 혼인관계의 제도에서 그때까지 무시되어 온 새로운 권력의 전술이 혼인관계의 제도에 스며드는 것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혼인관계의 특권과 동질적이지 않은 성생활을 새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보장한다. 가족은 법과 법적인 것의 차원이 성생활의 장치로, 쾌락의 경제와 감각의 강도가 혼인관계의 체제로 퍼져 나가는 공간이다.
 
 성생활의 특권적 개화지점은 가족이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생활은 ‘근친상간’적인 것으로 생겨난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해준다. 혼인관계의 장치가 압도적인 사회에서 근친상간의 금지는 기능적으로 불가결한 규칙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처럼 가족이 성생활의 활기찬 중심이고 아마 성생활의 요구가 가족의 존재를 유지하고 연장하는 듯한 사회에서는 근친상간이 전혀 다른 이유 때문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중심의 자리를 차지하며, 강박관념과 소환의 대상, 두려운 비밀, 불가결한 접합부로서 끊임없이 환기되고 거부된다. 즉 근친상간은 가족이 혼인관계의 장치로 작용하는 한, 가족 안에서 엄격하게 금지되는 것으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가족이 성생활의 영속적 선동의 중심이기 위해 부단히 요구되는 것이기도 하다.

우여곡절
 가정장치는 외부적으로는 의사, 교육자, 나중에는 정신과 전문의에 기대고, 내부적으로는 혼인관계를 이중화하여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끌어들인다. 성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이제 가족은 19세기 중엽부터는 스스로 성생활의 흔적을 추적하고, 더없이 곤란한 고백을 끌어내고, 모르는 사람에게 청취를 간청하고, 한없는 검증에 거리낌 없이 내맡긴다. 샤르코는 성생활로 포화된 가족을 치료하면서, “환자”를 가족과 격리하는데, 이는 성생활의 영역을 혼인제도에서 떼어내서는 신경학적 모델화하여 의학적 방법으로 취급했다. 정신분석은 이 공간에 자리 잡게 되면서, 가족의 통제권 밖에서 개인의 성생활을 속속히 검토하고자 했으며, 분석을 통한 가족관계를 문제 삼기도 했다.   
  
   
4. 시대구분
 억압의 메커니즘을 성생활의 중심에 놓고자 한다면, 이러한 성의 역사는 두 가지 단절을 전제로 한다. 하나는 17세기 동안에 일어난 금지의 출현, 결혼한 성인의 성생활만이 중시되는 경향, 품위에 대한 절대적 요청, 육체에 대한 회피의 의무, 침묵의 강요와 절대적으로 조심스러운 언어의 사용이며, 다른 하나인 20세기에 일어나는 단절이라기보다는 곡선의 굴절로, 이 방법들을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① 중세 기독교의 고해성사, 정확히는 라테라노 공의회에 의해 강요된 고백 14세기에 전개된 금욕, 심령수업, 신비주의라는 방법에 의해 구성된 이중의 계열에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선 종교개혁, 다음으로 트렌토 공의회의 카톨릭교회는 “전통적인 육신의 기술”이라 불릴 수 있는 것에서 일어난 중요한 변화와 분열의 표시이다 즉 “정욕”에 관한 분석 및 담론화의 방법이 다양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결정되는, 풍부하고 세련된 기술이 16세기부터 확대되고, 18세기 말에 ‘알폰소 데 리구오리’의 완화된 엄격주의와 ‘웨슬리’의 교육학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의례적 표현으로 굳어진다. 이것과 동일한 18세기 말에 이러한 이유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성의 기술이 출현, 그것이 죄의 주제와는 실질적으로 무관한 까닭에 성직자제도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새로운 기술이다. 이로 인해 성은 교육학, 의학, 경제를 매개로 하여 세속차원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차원의 문제, 사회체 전체와 거의 모든 개인이 감시당하는 처지로 전락하는 사태가 되었다.
 이 새로운 기술은 또한 세 가지 축 첫째 어린이의 특수한 성을 겨냥하는 교육학의 축, 둘째 여성에 고유한 성적 생리를 겨냥하는 의학의 축, 셋째로 자연발생적이거나 계획된 출산 조절이 목적인 인구통계학의 축을 따라 전개된다.
 이 새로운 기술은 기독교에 의해 이미 형성된 방법들을 단순화하면서 다시 채택된다. 대체로 18세기부터 의료제도, 정상성의 요구, 죽음과 영원한 징벌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생명과 질병의 문제가 성의 기술에서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육신”에서 유기체 쪽으로 급선회가 일어난 것이다.

 이 같은 급격한 변동은 18세기가 끝나고 19세기가 시작되는 전환기의 현상으로서 다른 많은 변화를 촉발시켰다. 우선, 의학이 일반적인 신체의 의학으로부터 떨어져 나왔고, 성적 “본능”이 따로 분리되었다. 육체에 대한 성의 상대적 자율화, 성을 전문적으로 진료할 의학 및 “정형술”의 상관적 출현, 한마디도 무절제의 낡은 도덕적 범주를 대체하게 되는 “성도착”이라는 의학-심리학의 영역이 열리고, 동일한 시기에 유전의 분석은 성을 종으로서 인류에 대해 “생물학적으로 책임”이 있는 위치에 올려놓았다. 즉 성은 충분히 통제하지 않으면 질병에 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래의 시대에까지 괴롭게 할 수 있는 성이 출현은 결혼, 출산, 생존의 국가적 관리를 조직화하려는 의학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인 기획이 유래하게 된다. 즉 인간 종의 온전한 병리학적 자본의 원천에 성이 출현한 것이다.

 성의 기술에서 성도착의 의학과 우생학(종의 형질을 인위적으로 육종하여 우수한 종을 만들려는 학문)의 계획은 19세기 후반기의 두 가지 중요한 혁신적 조처였다. 유전적 퇴화의 이론은 어떻게 성도착자를 낳는지 설명해주었다. 도착-유전-퇴화의 연쇄는 새로운 성의 기술을 위한 핵이었다. 이 연쇄는 확산면이 넓고 뿌리가 깊었다(국가 차원의 인종차별). 정신의학뿐 아니라 법률학, 법의학, 사회적 통제의 심급들, 위험하거나 위험에 처해 있는 어린이의 감시가 이루어지게 했다.
 19세기 성의 의학화를 시도한 기술에서 정신분석은 1940년대까지 이러한 유전적 퇴화 이론체계의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결과와 전적으로 대립하는 것이었다.

②성의 기술의 확산을 억압의 견지나 노동력의 확보나 활용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경제적 특권층이자 정치적 지도층인 계급을 대상으로 가장 엄밀한 기술이 고안되어 가장 강도 높게 적용되었다(영성지도, 자기성찰, 육신의 죄에 대한 오랜 구상, 정욕의 빈틈없는 탐지). 또한 부르주아나 귀족 가족은 성이 정신의학의 영역으로 편입되는 현장이었다(성적과민증. 부르주아지는 자기 계급의 성을 중요한 인식해야 할 불가결한 비밀로 간주). 이와 대조적으로 서민층은 오랫동안 “성생활”의 장치와 무관했다. 성적 특성 부여의 메카니즘은 세 단계를 걸쳐 서서히 스며들었다. 우선 출생률의 문제와 관련하여, 도시 프롤레타리아의 예속화-빈민 계급의 선도-를 위한 대대적 캠페인에 정치적 통제와 경제적 조절의 수단으로, 19세기 말 성도착의 사법적이고 의학적인 통제가 사회와 종족의 전반적 보호를 명분으로 전개될 때 사회체 전체로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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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의 주기라는 관념, 다시 말해 성생활에 대한 제약의 시대는 필시 없었을 것이고, 사회의 모든 차원과 모든 계급에서 이 과정이 동질적이었다는 주장도 결코 확실한 것이 아니다. 단일한 성생활 정책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생활 장치를 지도층은 자기 계급을 대상으로 시험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금욕주의라기보다는, 피착취 계급의 성에 대한 억압보다는, 오히려 “지배”계급의 육체, 활기, 수명, 자손, 가계가 먼저 문제되었다. 나중에 경제적 통제와 정치적 예속화의 수단으로 다른 계급으로 확장된 것으로 추정해볼 필요가 있다.

*부르주아지는 스스로 창안한 권력과 지식의 기술에 의해 자기 계급의 성을 이처럼 에워쌈으로써 자기 계급의 육체, 감각, 쾌락, 건강, 존속의 높은 정치적 가치를 내세운 것이다. 즉 타자의 노예화가 아니라 자기 확인을 통해 구성된 생명의 정치적 배치이다. 

P135-성은 부르주아지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근심에 싸이게 했다. ~자기 육체의 특수성을          단언했다. 귀족은 ‘피’였고, 부르주아지는 ‘성-가족’이었다.

*부르주아지의 패권의 증대와 확립과정에 육체의 중시가 있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지의 지배는 경제 또는 이데올로기의 문제였을 뿐 아니라 “인체”문제였다. 18세기 말에 위생, 장수의 비법, 건강한 자녀에 대한 책이 많이 출판되었고, 그 책들은 육체와 성에 대한 근심이 인종차별과 맺고 있는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부르주아지에게 프롤레타리아 건강과 성과 생식은 결코 배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것이 문제되기 위해서는 오염, 전염병, 매춘과 같은 갈등이 필요했고, 인구의 흐름을 통제하고 조절해야 하는 경제적 긴급 사태가 필요했고, 그들을 계속 감시할 수 있게 해주는 통제의 기술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부르주아지의 성생활 장치는 패권을 유지하는 수단일 뿐이다.

*따라서 19세기 동안 성생활의 장치가 패권의 중심으로부터 일반화되었다. 부르주아지는 이에 자기 자신의 성생활을 차이의 견지에서 재검토 한다. 이러한 분할선은 성생활을 가로막는 것이 되고, 구별을 짓는 금기나 엄정성이 된다. 그러면서 성생활 전체를 일반화된 금기의 의미를 이 장치에 부여하게 되는 억압의 이론은 여기에 그 출발점이 있다.

*억압의 이론은 모든 성생활이 법을 따라야 한다는, 법에 예속시키는 성생활만을 영위하는 원칙을 세움으로써, 이 장치의 권위적이고 강제적인 확대를 정당화하게 된다.

*이제 사회적 차별화는 육체의 “성적”특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육체에 대한 억압의 강도에 의해 명백히 드러나게 되고, 이지점에서 정신분석이 끼어든다.

*정신분석은 법과 욕망이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이론이면서 동시에 가혹한 금기로 인해 병이 생기게 되는 곳에서 금기의 효력을 없애려는 기술이다. 즉 정신분석은 혼인관계의 제도에 성생활을 고정시키는 메커니즘이고, 유전적 퇴화 이론에 반대의 입장이며, 일반적인 성의 기술에서 차별화 요소로서 구실한다. 오랫동안 요구된 고백은 정신분석을 중심으로 억압을 제거하라는 명령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띤다. 진실의 책무는 이제 금기를 문제시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이로 인해 상당한 전술 변화의 가능성, 즉 성생활의 장치 전체를 억압에 입각하여 재해석하고 이 억압을 일반적 지배와 착취 메커니즘에 결부시키며 한편으로는 억압, 다른 한편으로는 이 장치 및 메커니즘, 이 둘의 별개의 것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을 서로 연결할 가능성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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