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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6. 덴마
1. 정신요양원 공간과 규율적 질서
여러 산들로 둘러싸이고 낭만적인 무대장치에 의해 보호받는, 복잡한 정치를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는, 그 외관만으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라게 할 이 성 안에서는 우선 단순히 하나의 질서가 지배합니다. 그것은 시간, 활동, 몸짓 등의 항구적이고 항상적인 규제라는 단순한 의미에서의 질서입니다. 그것은 신체를 포위하고, 침투하며, 작동시키는 질서, 신체의 표면에 적용될 분만 아니라 신경 속에까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뇌의 말랑말랑한 섬유”라고 부른 것 안에까지 각인되는 질서입니다. 이 질서는 신체에 기생하고 신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지시명령의 잎맥같은 것으로서의 질서인 것입니다.(18)
다음의 두 가지 것들에는 신체의 내부에까지 적용되는 일정한 질서, 일정한 규율, 일정한 규칙성이 필요합니다. 1) 한편으로는 의학적 지식의 구축 자체에 이런 질서, 규율, 규칙성이 필요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규율과 질서 없이, 또 규칙성의 명령적 도식 없이는 정확한 관찰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의학적 시선과 그 대상이 맺는 관계, 요컨대 객관적 관계, [즉] 규율적 질서로 구성된 일차적 분산효과로서 제시되는 관계 같은 어떤 것이 가능하기 위해 근거가 되는 영역은 바로 이런 규칙화된 분산 내에서 발견됩니다. 2) 두 번째로 피넬의 텍스트에서 정확한 관찰을 위한 조건으로 등장하는 이 규율적 질서는 동시에 항구적인 치료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다시말해 치료적 조작 그 자체, 요컨대 병자로 간주되는 어떤 사람이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기준이 되는 이 변화는 이 권력의 규치화된 배분 내에서만 행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대상과 맺는 관계의 조건, 의학적 인식의 객관성의 조건과 치료적 조작의 조건은(19), 동일합니다. 그것은 규율적 질서입니다. 그러나 어떤 비대칭이 내적 질서를 관통하고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이 질서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정신요양원에 내재하는 이런 심급은 그 무엇도 거기에 저항할 수 없고 저항해서도 안되는 무제한의 권력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접근 불가능하고 대칭이 존재하지도 않으며 상호성이 존재하지도 않는 이런 심급은 이렇게 권력의 원천으로서 기능하고, 질서의 본질적인 비대칭적 요소로서 기능합니다. 의학적 심급은 지식으로 기능하기 이전에 바로 권력으로 기능하는 것입니다.(20)
이 심급이 포데레의 1817년 텍스트 『착란론』에서 어떻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지 이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체를 규제하는 것은 아마도 정신일 것이다. 일반 대중의 마음을 훈련시키려면 정신 외적 형태가 필요하다” 따라서 의사라는 인물 자체가 먼저 최로의 시선으로 기능합니다.(21) 정신요양원은 권력에 본질적인 비대칭을 통해 양극화된 공간이고, 바로 의사의 신체에서 그 형태와 얼굴을 드러내며 의사의 신체 속에 각인된 공간인 것입니다.
권력은 어떤 사람이나 집단에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산, 중계, 망, 상호지지, 잠재력의 차이, 격차 등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로소 권력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권력이 기능하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이 차이들의 체계 내에서라는 것을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포데레는 간수들에게 우선 환자들에 대한 정보를 가져오는 임무, 시선이 되는 임무를 부여합니다. 간수들에 의해 확보되는 이 중계적 시선은 또한 권위의 마지막 고리를 쥐고 있는 간병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시선입니다.(22) 마지막 계층은 아주 이상한 권력을 쥔 간병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간병인은 수행되어서는 안 될 명령을 환자들로부터 받았을 때 환자들에게 봉사하고 복종하는 척하면서, 따라서 독자적인 의지가 없는 척하면서, [하지만] 규정이라는 거대한 익명적 권위에 준거해, 더 나아가서는 의사의 특별한 의지에 준거해, 환자가 요구하는 바를 들어주지 말아야하는 임무를 띤 사람입니다.(23) 그 결과 간병인의 관찰에 포위된 처지에 놓인 환자는 자신이 간병인에게 명령을 내릴 때에조차 만나게 되는 의사의 의지에 포위되고, 이 봉사의 시늉 속에서 의사의 의지 혹은 정신요양원의 일반 규칙에 확실하게 포위되는 것입니다.
정신요양원 안에서 작동하며 일반적인 규칙체계를 왜곡하는 권력체계가 있습니다. 즉 다수성, 분산, 차이와 위계의 차이를 통해, 하지만 더 정확히는 상이한 개인들이 그 안에서 한정된 자리를 점유하고 상당수의 분명한 직분을 그 안에서 확보하는, 소위 전술적 장치를 통해 확보되는 권력체계가 있습니다.(24) 규칙화된 이 세계가 이 세계를 왜곡하고 비트는 그런 종류의 권력의 중계자들에 의해 점유된다면, 그것은 필시 이 공간의 심장부에, 제압하고 정복해야할 위협적인 권력이 있다는 것이겠죠. 이런 전략적 운용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인식, 병의 진실, 그리고 그 치료가 문제시되기에 앞서, 아니 오히려 그렇게 되기 위해 우선적으로, 제압이 문제시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제압되어야 할 것은 당연히 광인입니다.
2. 치료적 조작과 ‘도덕요법’
대략 18세기 말까지, 실은 신념의 체계가 광기를 특징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돌연 19세기 초에 완전히 다른 식별·결정 기준이 출현합니다.(25) 이를테면 광인에게서 발견되는 제압할 수 없는 힘의 폭발입니다. 이 힘은 그것이 적용되는 영역과 그것이 폭발하는 장에 따라 크게 네가지 형태를 취합니다.
1) 개인의 순수한 힘이 있는데, 전통적인 구분에 따르자면 흉포함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2) 본능과 정념이 적용되는 경우에, 흉포한 본능의 힘과 한없는 정념의 힘이 있습니다. 감각의 환상이나 그릇된 신념, 환각을 동반하지 않는 광기, 착란없는 조광증이라 불리는 광기입니다.
3) 관념 그 자체에 적용되는 일종의 광기가 있는데, 그것은 관념들을 뒤죽박죽이 되게하고 정합적이지 못하게 하며 서로 충돌시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조광증이라 부릅니다.
4) 무한대로 강화되어 환자의 행동, 담론, 정신 속으로 집요하게 들어오는 광기의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멜랑콜리 혹은 편집증이라고 부릅니다.(26)
광기의 거대한 폭발력이 정신요양원의 적이라면, 이 힘을 제압하는 것 말고 그 무엇을 치료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는 피넬에게서 정신의학적 치료의 매우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정의를 발견하게 됩니다. 광기의 치료술은 “이를테면 신체적·도덕적 품성을 통해 정신이상자에게 불가항력적인 지배력을 행사해, 그의 관념들의 나쁜 연쇄를 변화[도덕적 교정]시킬 수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정신이상자가 긴밀히 의존하도록 만들면서 그 정신이상자를 제압하고 길들이는 기술[치료적 조작]”인 것입니다.(27)
[순수의학적인 혹은 약물을 사용하는 시술과는 정반대로] ‘도덕요법’이라 불리는 시술이 발달하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3. 치유의 무대
1810~30년대에 걸쳐 정식화된 치료적 조작은 하나의 무대, 요컨대 대결의 무대입니다. 이 대결의 무대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질 수 있습니다. 먼저 1) 준비적 측면이라 불리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환자의 힘을] 소진시키고 시련을 가하는 조작은 의사가 아닌 간수에 의해 행해집니다. 왜냐하면 의사는 당연히 지고한 존재여야 하기 때문이죠.(29) 이것은 예비적인 무대, 간수에 할애된 무대, 교묘하게 조직된 갑작스러운 폭력 같은 것을 통해 정신이상자의 광포한 힘을 제압하는 무대인 것입니다. 2) [일반적인 형태론의 측면에서] 『정신이상에 관한 의학적-철학적 논설』에 유명한 예가 하나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종교적 선입견에 지배되어” 모든 육욕을 피해야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 섭취를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신이상자 가까이에 포타주를 놓고, 만약 가장 잔혹한 대우를 받고 싶지 않으면 밤사이에 이 포타주를 먹으로가 가장 준엄한 명령을 내린다. 자신을 위협하는 처벌의 관념과 다른 삶의 끔찍한 고통이라는 생각 사이에 이 정신이상자를 방치한다. 몇 시간에 걸친 내적 갈등이 있고나서 전자의 생각에 압도된 정신이상자는 음식을 먹기로 결심한다. 회복기 동안 정신이상자는 자신이 겪은 끔찍한 동요와 곤혹스러움을 나에게 종종 고백하곤 했다”(30) 이 무대는 일반적인 형태론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치료적 조작의 성공을 위해 의사는 어떤 진단도, 어떤 질병학적 작업도, 어떤 진실된 담론도 요청하지 않습니다.
2) 두 의지를 대결시키는 것, 그러므로 어떤 전투가 행해지고 일종의 힘의 관계가 설정되는 것입니다.
3) 이 힘의 관계는 이를테면 환자의 내면에서 두 번째 힘의 관계를 촉발시키는 일차적 효과를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환자가 매여있는 고정관념과 처벌에 대한 공포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입니다.
4) 이 무대에서 중요한 것은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 확실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입니다. 환자가 자신의 구원을 위해 단식이 필요하다고 확신하던 것이 그릇되고 착란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환자가 여러 동요·주저·고민(31)을 경험했다고 고백하는 순간인 것입니다.(31)
5) 재구성된 의학적 지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고백을 통해서 이 진실이 획득됐을 때, 이 실제적인 고백의 순간에 치유의 절차가 시행되고 완결되며 확고해지는 것입니다.(32)
정신의학을 특징짓게 되는 것은 [인체]의학과 관련한 이런 이질성입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정신의학은 그 자체를 [인체]의학에 결부시키는 여러 제도체계 내에서 자신의 토대를 구축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무대설정, 정신요양원 공간의 조직화, 이런 무대의 작동과 전개, 이 모든 것은 당대에 의학의 지위를 획득한 시설 내에서만, 또 의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 쪽에서만 수용되고 제도화됐기 때문입니다.
『광기의 역사』와 관련해 이 강의가 행한 문제의 변환
(1) ‘표상’의 분석에서 ‘권력의 분석론’으로
저는 표상의 분석에 머물러있었습니다. 17~18세기에 광기와 관련해 행해질 수 있었던(33) 실천의 기원에 위치시켰죠. 하지만 저는 권력장치가 어떤 한도내에서 일정 수의 언표·담론을 산출해 낼 수 있는지, 그러고 나서 그것들로부터 유래하는 모든 유형의 표상을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인지를 타진해보고자 합니다.(34) 제게 중요한 문제는 이렇습니다. 실은 권력장치야말로 담론적 실천의 형성을 확정하기 위한 출발점이어야 하지 않을까? 권력장치와 진실작용, 권력장치와 진실된 담론. 저는 이런 문제를 올해 강의에서 정신의학과 광기의 관계라는 문제에서 출발해 검토해보고자 합니다.(35)
(2) ‘폭력’에서 ‘권력의 미시물리학’으로
실제로 사람들은 폭력에 대해 논의할 때 신체와 관련된 권력, 불규칙적이고 정념적인 권력, 감히 말씀드린다면 광고한 권력과 연관된 그런 종류의 함의를 언제나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폭력개념은 위험합니다. 좋은 권력 혹은 폭력이 가로지르지 않는 권력은 신체와 관련된 권력이 아니라고 상정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생각에는 반대로, 모든 권력에서 본질적인 것은 권력의 적용지점이 언제나 그 최종적 심급에서는 신체인 듯 싶습니다. 모든 권력은 신체적이며 신체와 정치권력 간에는 직접적인 접속이 존재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균형을 상실한 힘이 신체에 행사되는 것은 합리적으로 계측되고 관리되는 권력행사 작용의 일부를 이루지 않는다고 상정케합니다. 하지만 정신요양원에서 행사되는 권력은 세심하게 계측된 권력이고 그 전략과 전술도 완벽하게 정의된 그런 권력이라는 것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균형을 상실한 힘이 신체에 행사되는 것을 폭력이라 일컬을 수 있다면 우리는 이런 권력의 전략 내에서 폭력의 위치와 역할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 ‘제도적 규칙성’에서 권력의 ‘조치’로
제 생각에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방식으로 제가 참조하고 있는 두 번째 개념은 제도라는 개념입니다.(36) 정신요양원을 가장 중요한 형식으로 하는 몇몇 제도와의 관계 속에서 그 형식과 차원을 갖게 됐다고 말입니다. 이 개념도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듯합니다. 제도가 논의되는 순간부터 개인과 동시에 집단이 실제로 논의되고, 개인과 집단 그리고 양자를 지배하는 규칙들이 미리 주어지며, 거기에 심리학적이거나 사회학적인 담론들이 몰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제시되어야할 본질적인 것은 권력의 불균형입니다. 저는 권력의 이런 불균형이 어떻게 정신요양원의 규칙성을 왜곡하는 동시에 작동시키는지를 여러분께 보여드리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제도적 규칙성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장치입니다. 다시말해 권력의 한 형태를 특징짓고 바로 개인과 집단의 구성이 동시에 관여한다고 여겨지는 조직망, 흐름, 중계, 거점, 잠재력의 차이 등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도들을 다루기 이전에 제도들을 가로지르는 전술적 배치에서 어떤 힘의 관계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다뤄야 한다는 것입니다.(37)
제 생각에 문제는 정신의학의 실천에 고유한 권력관계를 분석하는 것이고, 정당한 언표로서 주어져 있는 몇몇 언표를 생산하는 것으로서 권력관계를 분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폭력에 대해 논의하기보다는 오히려 권력의 미시물리학에 대해 논의하고자 합니다. 제도에 대해 논의하기 보다는 오히려 서로 대결하는 힘 속에서 활용되는 전술이 어떤 것인지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가정 모델 혹은 ‘국가기구’에 대해 논의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신의학의 실천에서 전개되는 권력관계와 대결의 전략을 발견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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